
죄를 다스릴지니라
창세기 4:1~7절
세상에서도 인간이 선한가 악한가 끊임없이 실험을 합니다. 짐바르도 교수 1971년에 스탠포그 대학에서 직접 교도소를 지었다. 2주일 간 실험. 인간이 극한 상황에 달했을 때 어떤 마음을 가지는 가를 실험을 했다. 유니폼이 사람에게 영향을 주었다. 죄수복을 입은 사람은 저절로 위축감을 느끼게 되고 간수복을 입은 사람은 저절로 위압감을 주었다. 둘째 날부터 참가자들은 진짜 교도관이 된 모양으로 행동하게 되었다. 죄수들은 진짜 죄수인줄 착각하기 시작했다. 셋째 날-교도관들이 무력으로 죄수들을 통제하게 되었다. 구타발생. 3일전 만해도 평범한 대학생들이었는데, 5일 만에 정신적인 충격으로 발작을 일으키는 사건이 일어났다. 죄수들은 동요가 일어났다. 결국 집단 광기를 보이면서 폭동을 일으키다가 2주일 실험이 5일 만에 중도 포기하게 되었다. 난리가 나서 더 이상 실험을 할 수 없었다. 결과는 5일만에 인간의 이성과 선한 의지가 마비가 되었다는 것이다. 환경이 얼마나 사람을 사악하게 만드는지를 실험을 통해 단적으로 보여주었다. 그래서 인간의 내부의 도사리고 있는 악마적 본성이 얼마나 두려움이 들게 하는지 실험이 일으킨 가장 큰 파장은 진정한 휴머니즘은 없다는 것이다. 누구나 상황에서 악인이 될 수도 있고 선인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한 마디로 죄인이라는 것이다. 상황에 따라 선인이 될 수도 있고 악인이 될 수 있는데 무슨 선한 것이 있을 수 있겠는가? 그 누구를 믿으면 안 되는 것이다. 우리는 죄인으로 출발을 했기 때문에 죄를 다스려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원수의 형벌을 가운데 있기 때문에 죄를 다스려야 한다. 3장의 축복의 벌을 주시자마자 4장부터 벌이 시작되었다. 발뒤꿈치 상하게 하는 것이 시작되었다. 선악과 먹은 죄가 원천적인 원죄라면 그것의 결과로 오늘 본문의 시기와 분노가 나타나는 것이다. 사단의 공격이 시기와 분노이다. 하나님께서는 시기와 분노 가운데 길을 가르쳐 주시는 것이다. 어떻게 죄를 다스릴까요?
1. '여호와로 말미암아' 의 길밖에 없다.
1절. 아담이 그 아내 하와와 동침하매 하와가 잉태하여 가인을 낳고 이르되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 하니라
이것은 '여호와의 도움으로'라는 뜻이다. 우리의 죄는 여호와로 말미암지(하나님의 힘밖에는)는 않고는 다스릴 수가 없는 것이다. 우리는 잉태의 고통과 해산의 고통으로 노동의 수고를 통해서 산자의 어미가 되는 벌을 주셨다. 왜 자녀를 낳아야 하는가? 바로 산자의 어미가 되기 위해서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출생하기 위해서 아기를 낳아야 한다. 자녀를 낳기 위해서 아내 하와와 동침할 수밖에 없다. 동침한다는 것은 깊이 안다는 것이다. 우리가 자녀가 출생하려면 두 부부가 알지 못했던 깊은 유대관계가 있다. 이것이 동침이다. 영적 후사를 낳기 위해서 깊이 알아야 한다. 축복의 벌을 받고 쫓겨났는데 잉태의 고통을 통해서 자녀를 주시니까 이것이 너무 기쁜데, 그래도 혹시 내가 에덴동산에 도로 돌아갈 수 있을까 나를 용서해 주실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인간은 고통이 없이는 자녀를 생산할 수 없다는 것을 들었다. 아기를 낳아보니까 고통이 너무 심한 것이다. 여자의 고통을 통해서 이 고통을 하나님밖에는 처리할 수밖에 없다는 것. 이 고통을 하나님이 주셨으니까 고통을 통해서만이 '아이고 하나님 소리가 저절로 나서 하나님 감사합니다'고 나오는 것이다. 이 고통을 통해서 이 고통을 다스릴 수 있는 분은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오늘 하와가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 하였다. 여호와의 도우심으로 득남 하였다 하는 고백인 것이다. 하나님이 나를 기억해 주셨군요. 가인 낳음.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께서 만들어 주셨지만 가인은 아담과 하와의 작품인 것이다. 가인의 뜻은 ‘획득하다. 얻다. 세우다’의 뜻이다. 인생이 항상 기쁠 수만은 없다.
2절. 그가 또 가인의 아우 아벨을 낳았는데
아벨은 양 치는 자이었고 가인은 농사하는 자이었더라
아벨의 뜻은 ‘공허하고 허무하다’는 뜻. 우리가 문제가 없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한 번 회개 했더니 하나님께서 가인도 주시고 모든 것을 얻게 해주셨다. 그러나 문제가 없는 것이 문제이고 문제가 있는 것이 문제가 아니다. 이런 문제가 들러났기 때문에 우리의 문제의 문제를 성경을 통해서 답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죄가 없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우리 집은 행복하고 아무도 죄 안 짓는다는 것은 구제할 방법이 없고 지옥 갈 사람들이다. 날마다 죄의 기록부를 쓰는 것이 경건의 일기인 것이다. 죄를 지었는데도 하나님께서 돈도 주시고 아들을 주시는데 그 감격이 그리 오래가지 않는다. 완전한 근본적인 회개가 없이는 일시적으로 하나님께서 무엇을 주셨을 때에는 너무 기쁜 것 같다가 이 세상이 에덴을 쫓겨났으니까 고통과 수고의 세상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인생이 허무해 졌다.
아벨은 양 치는 자이었고 가인은 농사하는 자이었더라
아담과 하와가 자녀교육에 실패를 했다. 처음 부모역할을 하다보니까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열심히 일하다 보니까 예배도 소홀히 하게 되었다. 맨 처음 태어난 가인이 얼마나 기뻤을까? 너무 기뻐하다보니까 아벨이 나왔다. 가인이 너무나 너무 이뻐하다 보니까 그 다음에 아벨이 나왔는데 아버지, 어머니가 아벨을 예뻐하니까 가인이 시기, 질투가 난 것이다. 분한 것이다. 부모가 그것을 보니까 인생인 너무 허무해 하다는 것이다. 둘이서 너무 싸우는 것이다. 그래서 허무라는 이름을 붙이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왜냐하면 아담은 너무나 주님의 시선으로 이름을 잘 지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예뻐한다 하면은 답이 없다. 그저 죽어 좋아한다는 것이다. (예-상기, 상원이). 그래서 이 문제를 누구도 빗겨나갈 수가 없는 것이다. 에덴동산을 쫓겨났는데 무엇이 기쁨이 있겠는가? 자기 자녀 교육에 실패함으로 허무해졌다. 아담은 130세 자기형상과 같은 셋을 낳았다. 연약한 씨에서 낳았다. 연약한 씨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나오게 되는 것이다. 생각지 못했던 예수의 씨(셋)이 나오게 되는 것이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 왜 인생이 허무한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데 왜 인생이 허무 하는가? 예배가 올바르지 않아서 그런 것이다.
2.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를 드려야 죄를 다스릴 수 있다.
하나님께서 기뻐 잘 받으시는 예배를 드려야 이제 죄를 다스릴 수가 있는 것이다.
3절 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세월이 지난 후에 이제 예배를 드렸다. 세월이 지난 후에의 뜻은 ‘심사할 때가 가까이 왔다’는 것이다. 자식 키우느라 예배드릴 시간이 없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것이다. 인생의 목표는 하나님께 기도하고 찬양하고 경배하는 것이데, 시간이 없어서 하나님께 예배드릴 시간이 없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소리이다. 그렇게 살다보니까 어느 날 인생이 너무 허무해지는 것을 느끼게 된다. 우리는 세월이 가기 전에 빨리 하나님을 찾아야 하는데, 내가 예배를 잘 드렸는지, 안 드렸는지 세월이 지나면 는 내 예배가 올바른 예배인지 사건이 오면 딱 심시가 받을 때가 온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예배는 무엇이고 안 받으시는 예배가 무엇인가?
3절 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5절 가인과 그 제물은 열납하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심히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제사에는 제물이 필요하듯이 예배에도 제물이 필요하다. 어떤 알맹이를 가기고 어떤 컨텐츠를 가지고 어떤 본질로 가서 예배를 드리는가 이것이 너무나 중요한 것이다. 가인이 예배를 드리지 않은 것이 아니다. 예배도 열심히 드리고 제물도 열심히 드렸는데 하나님께서 받으시지 않으셨다. 예배에는 성령의 열매를 가지고 가야 하는 것이다.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온유와 충성과 절제의 열매를 가지고 가야하는데, 기복적인 예배, 지식적인 예배, 일시적인 예배를 드리니까 시간이 지나면 이렇게 받지 않으신다. 그래서 우리는 너무나 원망이 나오고 분하고 펄펄 뛰는 일이 생기는 것이다.
이사야 1:11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수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수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13절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 너희의 예배와 절기 지키는 것이 나에게는 무거운 짐이고 곤비하며 참지 못하겠다 하신다.
헌금 가져오고 있는데도 예배에 오는데, 절기 지키는 것이 하나님께서 다 무겁다고 하신다. 싫다고 하신다. 너희가 손을 펼 때에 내가 눈을 가리고 너희가 많이 기도할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 교회를 가더라도 듣지 아니하는 예배가 있다. 하나님 앞에 보이로만 오고 누구 요구하였다고 너희들을 하나님의 전 마당만 그렇게 밟고 있느냐? 이런 예배가 있다는 것이다. 왜 이런 예배를 드리고 있는가? 거듭나지도 않고 인격으로 만나지도 않고 종교적으로 위선을 가지고 오기 때문에 그런다. 가치관을 전혀 바뀌지도 않으면서 예수님을 종교처럼 믿는 것이다. 기독교는 종교가 아니고 신분이 바꾸어지는 것이다. 자기의 존재를 모르고 신앙생활만 하려고 하니까 행위만 나타내려고 하는 것이다. 예수 믿고 가장 크는 은혜가 모이는 것인데, 이런 모든 것이 형식이 되다보니까 교이들 간의 불란이 나고 비교하고 시기질투가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정한 절기를 싫어하시면서 그것이 무거운 짐이라는 것이다. 이것을 어떻게 적용을 해야 하는가? 하나님도 안 받아야 할 때 받으면 부담이 되는 것이다. 너는 법대로 욕심 부리지 말고 사업 잘해라. 욕심 부리고 안 듣고 사업하다가 망하면 대출 받아서 빨리 헌금해서 이 번 사업을 꼭하게 해주세요. 우리는 헌금만 하면은 축복을 받는다고 설교를 하면 안 된다. 헌금만 하면 축복을 받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 드릴 열매를 드려야 하지 십일조는 신앙고백으로 눈물로 드리는 것이다. 내가 사업이 잘 되려고 헌금을 드리면 안 된다. 하나님 자체가 상금이 안 되는 것이다. 우리는 힘든 현실 속에서 자식들에게도 같이 겪고 보여주면서 가는 것이 하나님이 기뻐하는 제물이다. 망했으면 같이 망하는 것이다. 식구들도 같이 망하는 것이 하나님을 만나는 큰 통로이다. 이것을 모르기 때문에 내 맘대로 생각하고 내가 복음 식으로 예배를 드리기 때문에 이런 예배를 하나님께서 안 받으시는 것이다.
그러면 아벨의 예배는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예배이다.
4절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 제물은 열납하셨으나
가인과 아벨의 차이는 무엇인가? 재물의 종류가 달라서 안 받으시는 것이 아니라 가인은 곡식 중에 일부를 드린 것이고 아벨은 양 새끼 얼마 안 되는 첫 새끼를 드린 것이다. 가장 뛰어난 것을 드렸고 살지고 기름진 것은 가장 아름다운 것을 드렸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셨다. 하나님께 큰 관심을 받으셨다. 사실 제물의 종류는 가인 것이 좋으나 가인이 자기가 좋은 거 다하고 있으나 아벨은 별로 드러나지도 않은 과부의 엽전 두 푼 같이 드러나지 않고 양을 받쳤으니까 보기에 아름답지 않았지만 하나님께서 관심을 가지셨다. 가장 큰 정성으로 너무나 부끄러운 마음으로 이런 것을 드린 것이 하나님께서 아주 기뻐하시는 제물인 것이다. 돈 많은 사람들이 헌금을 하지 않고 없는 사람이 너무나 열심히 하는 것을 나도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런 사람을 돌아본다.
이사야 1:15~17 너희의 손에 피가 가득함이니라 너희는 스스로 씻으며 스스로 깨끗케 하여 내 목전에서 너희 악업을 버리며 악행을 그치고 선행을 배우며 공의를 구하며 학대 받는 자를 도와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 하셨느니라
이것이 참된 예비이다.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예배이다. 우리가 이렇게 하려고 맘만 먹어도
18절 너희 죄가 주홍 같을찌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찌라도 양털 같이 되리라
그런데 우리가 참으로 우리의 선행을 죄가 문제가 아니라 스스로 씻지 않는 회개하지 않는 마음이 문제인 것이다. 죄가 문제가 아니다. 우리는 늘 죄의 소원이 있다. 선행이 적용이다. 행위가 아니다. 그러나 성경을 많이 알면 적용이 풍성해 지는 것이다. 날마다 선행을 하지 못한다는 것을 배우는 것이다. 적용도 배워야 하는 것처럼 선행도 배워야 하는 것이다. 모든 것을 낱낱이 드러내고 간증하는 것이야말로 주께서 오라 너희 죄가 주홍 같을찌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찌라도 양털 같이 되리라 하시는 것이다. 나의 찌질한 것을 드러내기만 하면 오라 눈같이 희어질 것이다. 이것이 주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예배라는 것이다. 내가 죄 안 짓는 것이 아니라 날마다 회개 하고 내 죄를 씻는 것 혼자서는 힘들고 말씀 듣는 구조 속에서만 가능한 것이다. 구조가 너무나 중요한 것이다. 하나님이 복을 안 주신다고 슬퍼하고 안색이 변하는 날이 온다.
이사야1:19 너희가 즐겨 순종하면 땅의 아름다운 소산을 먹을 것이요
너희가 거절하여 배반하면 칼에 삼키우리라 여호와의 입의 말씀이니라
결국은 가인은 거절하여서 칼에 삼키우는 인생을 살게 되었다. 아무리 양육을 받아도 내가 선택을 해야 하는 것이다. 스스로 드러내고 깨끗하고 회개를 하고자 하면 하나님께서는 오라 하신다. 눈같이 희게 해질 것이다 하신다. 가인처럼 멋있고 아름다운 게 그것이 아름다운 예배가 아닌 것이다. 그러나 온전하지 못하지만 목장에서 이런 얘기를 드러내고 권고하고 서로 충고하고 교훈 받고 책망 받고 바르게 나아가는 것이다. 이것이 아벨의 제사인 것이다. 내가 잘나서 모이는 것이 아니고 못나서도 속상해도 이렇게 목장에서 떠들어야지 밖에서 떠들으면 흉밖에 안 되는 것이다. 잘못된 예배가 되면 분노가 온다.
3. 분노를 다스려야 한다.
잘못된 예배의 결과로 분노가 오게 되어 있다.
5절 가인과 그 제물은 열납하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심히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사건이 왔다. 그러니까 그야말로 내가 대학교에 떨어졌다. 가슴이 벌렁벌렁 하는데 아벨 동생이 학교에 붙었다. 아벨에 대해서 맹렬하게 시기하는 마음이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없기 때문에 이렇게 분하고 안색이 변하는 것이다. 특히 아벨의 것을 받아서 더 분하는 것이다. 가까운 것에서 더욱 분이 나는 것이다. 오죽했으면 동생을 죽였겠는가? 우리는 화가 나면 모두 죽여 버리는 것이다. 자녀교육 잘 시키려고 얼마나 눈물로 살아야 하는지 모른다. 적용을 길로 놓고 걸어가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아벨의 제물을 받으셨구나 하는 것을 배우면 되는데, 시기하고 배가 아픈 것이다. 내가 벌 잘 받으라고 수고하고 아이 낳고 남편을 사모하고 다스리고 거기서 일도 못하겠지만 이런 가운데 모든 것이 메시지인 것은 ‘너 거기서 제발 죄 짓지 마라. 죄의 소원은 일어나지만 너 남편이 바람피워서 너무나 밉겠지만 죄를 다스려라. 일거리가 없어도 죄를 다스려라. 상사가 미워서 죽을 지경이지만 죄를 다스려라.’ 그것이 하나님이 주시는 메시지이다. 너 하나님께서 너 돌아오게 하려고 하는 메시지이다. 어떤 사건도 어떤 환경도 분해하면 아닌 것이다. 내가 예배가 잘못 된 것이다. 내가 안색이 변하면 잘못된 것이다. 목장에서 안색이 변하면 내 예배가 잘못된 것이다. 내가 인정받지 못함에 대해서 심히 분해하면서 하면 구원이 이루어지는 것이 늦어지는 것이다. 시어머니는 시어미이다. 친정어머니처럼 모신 것이 생색이 나고 억울하다고 하는 것은 아직 수준이 안 되는 것이고 구원이 오려면 먼 것이다.
히브리서 11:4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거하심이라 저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오히려 말하느니라
하나님이 원하시는 제사는 십자가 제사인 것이다. 피 제사. 아벨의 제사인 것이다. 내가 남편을 섬기고 아이를 낳아서 고통을 당하려면 십자가 짐 같은 그냥 사단이 와서 뱀이 발꿈치를 날마다 상하고 피를 내는 그것을 가지고 천부여 의지 없어서 손들고 아가는 것이다. 내가 아무것도 할 수가 없는 것이다. 내가 할 일이 무엇이 있는가? 내가 남편한테 잘하는 것이 내 힘으로 잘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힘으로 잘해야 하는데 내 힘으로 하니까 생색이 나는 것이다. 내가 예수님 앞에서 죄인이라는 것을 깨달으면 내 힘으로 하는 것이 어디 있겠는가? 내 힘으로 하니까 억울하고 생색이 나는 것이다. 가인이 얼마나 생색이 나면 가인이 아벨을 죽였겠는가? 이 세상 시기질투분노가 얼마나 무서운 병인지 모른다. 그런데 이런 십자가 제사는 안 드리고 가인은 싫은 부모 남편 다 안 버리고 이혼해 버리고 와서 헌금만 내고 교회만 나오니까 하나님께서 "내가 무겁다"라고 하시는 것이다. "네가 진짜 드려야 되는 것은 헌금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남편사모하고 때려도 맞고 다스림을 받고 아이는 가출해도 길러야 되고 이것 하느라고 천부여 의지 없어서 손을 들고 이래야 되겠는데, 그런 것 다 안하고 애들은 유학 보내고 이혼해 버리고 돈 가지고 와서 헌금 하니까 하나님이 내가 수양의 제물에 배가 불렀다고 하시는 것이다. 아벨의 제사는 정말 끝까지 상함, 십자가의 예배 , 피 제사를 말하는 것이다. 이렇게 십자가 제사를 드리면 하나님께서 가죽 옷을 입혀 주셔서 부끄러움을 가려 주시는 것이다. 내가 이렇게 쉽게 인생을 살면 무엇 때문에 십자가를 지겠는가? 내가 집에 돌보아야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다 하기 싫은 것이다. 이것이 가인의 예배인 것이다.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것이 상급 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자체가 상급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러니까 사람에게 별로 기대하지 말라는 것이다. 별 인생이 없다. 착한 사람도 없고 악한 사람도 없는 것이다(스탠포드 감옥실험). 여호와를 말미암아 죄를 다스려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계속 어찌하여~
6절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찜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찜이뇨
7.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하나님께서 가인에게 계속 찾아오셔서 양육을 하시는 것이다. 가인이 하나님 말 안 듣는 것이다.
7절 죄가 문에 엎드리느니라 죄의 소원은 네게 있으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이 기가 막힌 죄를 행하고 있는데, 가인에게 찾아오셔서 죄를 다스리라고 하시는 것이다. 우리는 믿음으로 죄를 다스릴 수가 없다. 미국의 죄수의 고백이야기. 37개월 만에 교도소 독방에서 나왔다. 37개월 동안의 독방생활은 결코 재활이나 갱신은 이루어질 수가 없다는 것이다. 감옥 가서 사람 안변하는 것이다. 사람은 죄인이라서 더 악해지는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욕심과 탐심과 죄를 어떻게 다스려지는가? 단순하지만 파워풀 하는 것은 날마다 모여서 나누고 격려 받고 교훈하고 책망 받고 이것이 최고이다. 말씀 듣는 구조가 최고인 것이다. 우리는 끊임없이 가지치기를 하는 것이다. 우리가 버리지 못하는 것 중에 그것이 좋든 싫든 자기화 시키는 것들이 너무나 많다. 내가 나의 것을 버리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모른다. 그러므로 버리려고 애쓰는 것이 아니고 버리기에 앞서서 욕심에 있어서 채우는 것을 조절해야 하는 것이다. 늘 말씀 듣는 구조 속에서 채우는 것을 가지치기 날마다 하고 그 때에 무조건 다 잘라내는 것이 아니라 삶의 중심을 항상 단단히 하고 마음의 가지치기를 하고 내가 어디가 잘못되었는가 이런 생각을 하면서 죄를 다스리기를 바랍니다.
*나눔
추석 연휴 어떻게 지냈는가?
보호형: 오늘 3시쯤에 왔다. 오늘 말씀을 못 들었다.
종율형(목자): 선행은 목장에 와서 나의 죄를 잘 오픈 하는 것이 선행을 하는 것이다.
수연형: 아토피 많이 좋아졌다. 추석 때 덜 먹으려고 했는데 어쩔 수가 없었다. 양육 과제를 열심히 하고 있는데, 그렇게 하는 이유는 안들렸던 것이 들리는데, 이제 조금 말씀이 들리는 것 같아서 좋았고 재미있었다. 이해가 되고 재미 있었다. 아버지, 엄마께 감자탕 먹으러 가자고 교회에 꼬셨다. 가족을 위해 환경을 만들고 있다. 교회에 오실 수 있도록. 부모님의 고난은 수연형과 동생 고난. 부자는 아니지만 돈 걱정은 하지 않는다. 자식들이 돈벌이 재대로 하지 못하는 것 때문에 걱정하시는 것 같다. 그래서 어머니한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가족에게 자연스럽게 눈을 돌리게 되었다. 흥행의 결실이 있어야 하는데…… 가족을 위해서 많이 기도하려고 한다. 동생하고 성격이 다른데 관계가 좋지 않다. 동생을 사랑하는 마음이 들지 않아서 기도를 하고 있다.
종율형: 수연이 1년 전의모습이 아니다. 점점 시야가 넒어지고 있다. 얼굴이 좋아졌고 많이 변했다. 네가 일부러 보여 주려고 하지 말고 하나님을 누리고 모든 초점을 하나님과 맞추어서 마음으로 행하라.
욱진: 화요일날 가족들이 모였다. 어머니는 안산에서 정성으로 음식을 준비하셨다. 아버지, 형 다 모였다. 깨달은 것은 전공과 상관 없이 서비스업을 하고 있는데 어머니가 식당일을 하면서 어머니를 생각나게 하셨다. 어머니를 이해하게금 하셨다. 어머니의 사정을 이해하게 하셨다. 그래서 내가 지금 서비스업에서 일하는 것을 오묘하신 하나님의 섭리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엄마가 일하는 것이 이해가 되었다. 힘들게 일하시는 것이 이해가 되었다. 엄마를 정죄하던 것이 이해가 되었다. 만났는데,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있을 때 두려웠는데, 뭔가를 해야 했기 때문에. 작은 것부터 허자. 적용. 그러니까 마음이 편해졌다. 우리집은 원래 대화가 많았는데, 칼날있는 말들이 좀 있다. 날선 농담. 계속 속으로 기도를 했다. 아버지가 이제 친정집에 가봐야지. 친정집에 고난이 많다. 가봐야 되지 않겠냐고 물으셨다. 그 순간 아버지가 두려웠다. 인간적으로 나이스하면서 예수 믿으면 정말 힘들겠다. 그래서 아버지께서 친정집가지 가게 되었다. 화요일 날 그날에 가셨다. 대박~ 아빠가 너무 나이스하셨다. 오늘 큐티하면서 오늘 나한테 말씀하시는 것 같았다. 큐티, 기도하는 것이 더 해야한다. 형이 예수를 믿지 않는데, 형에 대해서 콤플랙스가 있다. 형이 에서처럼 되면 안되는데, 하고 걱정이 되었다. 돈을 드렸는데 분노가 올라왔다. 같은 봉투. 오늘의 결론은 잘 될 때 더욱 민감하게 큐티하고 기도해야 겠다는 메세지였다. 형에게 내 자신이 큐티를 해서 많이 변했다. 형에게 4번만 가자고 했다. 권유함.
종율: 때가 기다려지는 것은 나 때문이다. 내가 먼저 삶으로 나아가야겠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보호형: 연휴 동안 처음으로 추도예배 인도. 납골당가서. 큰 집 둘째 형이 이혼한다고 해서 책을 사서 들고 갔다. 형이 많이 노력을 했는데, 사업으로 치유하려다가 망해서 갈라선다고 했다. 큰 집 식구들을 이혼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내일 법원에서 합의 이혼 한다고 한다. 지금 갈등을 하고 있다. 책을 선물하고 읽어보겠다고 한다. 다들 이혼하라고 한다. 형에게 정확하게 얘기했다. 큰 어머니는 이혼하라고 하신다. 지금 잘 전달 되었을지……
종율형: 아버지를 섬기는데, 좀 자유해 졌다. 아버지 보면 감사한 마음이 생긴다. 엄마가 아빠를 잘 받아쳐 주니니까. 미니 게임 많이 함. 어제부터 노는 것이 도를 넘어섰다는 것을 느꼈다. 목사님의 책을 일고 정신을 차리다 보니 분별이 되기 시작했다. 무의식으로 베어 있는 중독들. 적용을 하니 하나 하나가 감성이 다시 회복 되기 시작했다. 스트레스 때문에 이러한 중독들에 물들어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작은 적용이 영적으로 많이 깨어 있었다. 하나님과 개인적인 관계가 중요하다는 것을 많이 깨달았다.
기도제목
종율형:
1. 시간 시간 마다 하나님의 영을 잘 붙드는 적용과 영적 싸움 잘 하도록
2. 겸손하게 하나님게 나의 음악 예물이를 잘 드릴 수 있도록.
3. 어머니와 아버지의 확실한 구원.
보호:
1. 여자친구와의 관계가 하나님이 이끌어 주시는 데로 이루지도록.
2. 큰 집 형 이혼 하지안하고 가정의회복을 위해.
수연형:
1. 가족 구원등록, 목장, 동생 호주로 가는데 안갔으면 좋겠다. 교회에 나왔으면 좋겠다. 동생을 사랑할 수 있는 마음 주시도록.
2. 초등부 짜증이 날때가 있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겠는데 지혜를 주시도록.
성남
건강하게 일을 잘할 수 있도록. 안될 것에 대한 극도의 불안함. 여유를 가져라. 본질적인 큰 그림을 그려아. 전적인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