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설교 들으면서 어떠 셨나요? 우리는 각자 꿈을 꾸며 사는데, 그 꿈이
내 욕심에서 출발한 것인지, 그리고 하나님이 주시는 꿈인지 분별이 잘 되시나요?
그리고 이 꿈을 하나님의 비전을 위해서 쓰겠습니다. 기도하면서도,
실제로는 내가 잘 되고픈 욕심이 앞서기도 하고요 (-ㅅ-)
또는 육적으로 출발했지만 하나님께서 영적으로 바꿔 주시기도 하죠.
아무튼 우리는 그렇습니다 ^^:
오늘, 목자 진환 (82), 손희경 (83), 윤지영 (85), 유혜경 (85)
이렇게 탐탐에서 조촐히 목장 모임을 했습니다.
우리 목장 기도제목
유혜경
- 이혼을 앞둔 이모에게 전화해서 복음 전하기
- 수요예배 잘 오고 QT 열심히 하기 (생활예배 회복)
- 구원에 대한 관심이 깊어 지도록. 사람에 대한 관심이 생기게
손희경
- 자존감이 높이지고, 자신감이 생기길
- 내 자신을 객관적으로 직면하며 믿음이 자라도록
- 믿음의 배우자, 믿음의 가정 이뤄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살 수 있도록
- 수요예배 올 수 있게
윤지영
- 엄마께서 일을 2가지 하고 계신데 어머니 일 안전하게 잘 하시고 수 있게
- 직장에서 일 똑부러 지게 잘 했으면, 원장님과도 잘 지낼 수 있게
진환
- 죄가 깨달아지고 진심으로 회개하도록
- 회사에서 교만한 모습이 있고. 불만이 많고. 선배가 무시가 된다. 교만해지지 않도록
오늘 주시는 말씀 (^_^)/
본문 : 창세기 37장 5-11
제목 : 꿈을 들으시오
간단 요약
1. 꿈은 반드시 꾸어야 한다.
2. 내 꿈은 버려야 한다. 나로부터 출발하는 꿈은 버려야 한다.
3. 하나님이 주시는 꿈으로 바꾸어야 한다.
4. 선포 되어져야 하는 꿈이다
본문
영육간에 다 이루어 지기 위해 꿈을 꾼다. 영육간에 다 이뤄진 것이 좋은 꿈, 요셉도 꿈꾸고
나서 훗날 총리 됐으니 대박 꿈인듯~. 그리하여 오늘 꿈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1. 꿈은 반드시 꾸어야 한다.
복권을 살 때, 조상과 관련된 꿈을 꿨다는 사람이 한 22% 그리고 돼지, 배설물, 물, 불, 신체,
대통령 꿈 등등 .. 이런 꿈은 돈과 관련된 기복적인 꿈이라 할 수 있는데, 요셉의 꿈 이야기와
돼지꿈은 주제가 다르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으로 내려오면서 야곱의 두 아들 중, 에서의 족보는 잘나고, 악하고 음란
하고 대대로 원수가 있고, 덧없는 것을 의지하며 자랑만 하였고, 야곱의 족보는 여자 좋아하
고, 돈 좋아하고, 수치들 드러내고.. 등등 수 많은 시행착오 가운데 있었지만, 구속을 이루고
치부를 드러냈기에 구속사의 족보, 솔직한 족보, 가족 간 시기 질투를 다 드러낸 가족 신화가
깨진 족보이다.
그리스도의 후손이 오는 것으로 초점을 모아지면 많은 사건들이 해결이 된다. 이제 야곱의
약전 이라 하며 요셉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야곱의 꿈이 요셉인 것이다. 그런데 결론부터 이
야기 하면 진짜 꿈은 유다에게서 이루어지는 그 여행을 시작하려 한다. 요셉인줄 알았지만
결국 유다이다. 요셉의 행적 같지만 야곱의 약전이라 하며 요셉 이야기가 시작된다. 말씀이
어렵다 느껴져도 말씀을 잘 깨달으려 마음먹으면 깨달아 진다 그러니 잘 들어야 한다.
레아의 넷째 아들인 유다가, 죄는 지었지만 요셉보다 더 영적이다. 12아들 중에 한 명을 골라
내라 하면 유다를 골라내겠지만, 훗날 12명이 모두 구속사의 12 지파가 된다. 여기서 요셉도
또 다른 구속사의 줄기이기 때문에 여기서는 요셉을 주인공으로 보고 적용해야 한다. 유다가
좋고 요셉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어떤 날은 예수님 팔아먹은 유다가 될 수도, 예수
님을 부인한 베드로가 될 수도 있지만 오늘 본문을 보며 내가 요셉이었으면 어떻할까? 하며
적용하는 것이다. 이는 옳고 그름이 아니다. 그때 그때 어떤 본문이라도, 그 누구라도 구속사
로 보고 그 본문에서 나를 적용할 수 있어야 한다. (어려워요ㅠ_ㅠ) 그러므로 구속사가 흘러
가는 맥락에서 보아야 한다.
우리는 무슨 꿈을 꾸었는가? 또 꾸고 있는가? 공기 좋은 곳에서 맛있는 거 먹고 좋은 사람하
고 지내는 게 끔인가? 보통 어릴 때의 기억이 꿈으로 정해지기도 하다. 어렸을 때 가난했으면
잘 먹고 잘 사는것이 꿈이고, 학벌이 없으면 학벌이 꿈이고 부모가 이혼하고 가정이 불우했
으면 행복한 가정이 꿈이다. 마음속에 늘 가지고 있던 잠재의식이 꿈으로 나타낸다. 요셉도
채색옷을 입고 후계자 처럼 사랑받고 살다가 자기가 왕이 되는 꿈을 꾸지 않았겠는가?. 요셉
은 항상 도덕적으로 좋은 사람으로 보이나, 이를 거꾸로 보면 그 점을 못 견뎌 하는 사람들이
있다. 요셉은 비록 버릇은 없었지만 채색옷을 입고, 누구보다 사랑을 많이 받았고 고난을 통
해 총리가 되었고, 자신을 노예로 판 형들을 용서하였고, 수 많은 백성들을 기근에서 구하고..
아주 백마탄 왕자 이므로 우리가 가장 좋아할 만한 유형이다. 그래서 요셉의 꿈도 우리를 설
레게 한다. 그렇기에 아무리 유다 타령을 해도 우리는 본능적으로 요셉이란 이름이 좋다. 그
래서 다 요셉이라는 이름을 갖다 써도 유다라는 이름은 안 쓴다.
꿈은 있어야 한다. 그러나 문자적으로 성경을 해석하면 안된다. 신약에서 유다가 예수님을
팔아 먹었기에 유다라는 이름을 전 세계적으로 쓰지 않는다. 세상적으로 잘 된 요셉, 그 이름
을 그렇게 쓴다. 그러나 유다는 예수님의 직계 조상이 되었음에도 그 이름을 쓰지 않는 현실
이다. 그래서 유다는 싫지만, 요셉은 100이면 100다 좋아한다. 이것을 잘 알아야 구속사가 해
결이 된다. 요셉의 꿈은 왕이 되는 꿈이다. 꿈이 이루어지기 위해 노력하면 실현되는 경우가
많다. 말보다 편한 마차를 생각한 사람에 의해 마차가 발명되고, 사람이 새처럼 날 것을 생각
한 그 꿈을 통해 비행기가 발명되고 ~ 누군가가 꿈을 꾸었기에 우리가 편함을 누리게 되었
다. 인생은 꿈이 없으면 망한다. 꿈이 없는 백성은 멸망한다. 정상적인 사람들은 꿈이 다 있는
데 아픈 사람들이 꿈이 없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꿈이 있어야 하는건 중요하다. 그러
나 어떤 종류의 꿈을 꾸어야 하는가?
2. 내 꿈은 버려야 한다. 나로부터 출발하는 꿈은 버려야 한다.
요셉의 꿈 내용이, 언젠가 그의 가족이 요셉에게 절 할 것이라는 내용이다. 형들이 “ 네가 우
리의 왕이 되겠느냐? 참으로 다스리게 되겠느냐 ?! ” 하며 극도로 피해 의식을 가지고 요셉을
더 미워하게 되었다. 채색옷을 입고 후계자 처럼 행동하더니 이제는 꿈에서 까지 왕이 되었
다는 이야기를 하는 요셉이다. 가인이 아벨을 살해한 것처럼, 인간은 형제라도 악한 것이다.
또 요셉이 다시 꿈을 꾸고, 해와 달과 열한 별이 내게 절한다 하며 아주 더 자세히 말한다. 이
제는 부모까지 절할 것을 이야기 하게 되었다. 하나는 땅을 무대로 밭에서 곡식을 수확하고
다른 하나는 하늘을 무대로, 땅과 하늘에서 다 자기를 보고 절한다는 이야기를 한다 이 말을
원어를 보면, 시도 때도 없이 고한 것이라 한다. 아버지, 형님에게 ” 내게 다 절한데 ” 하며 눈
만 뜨면 이야기 하는 것이다. 이러면 엄청 밉상이다. 요셉이 계속 이러니까 아무리 요셉을 사
랑하는 야곱이라도 이 대목에서 참을 수 없어 꾸짖는다.
아버지가 “ 어떻게 부모와 형제가 참으로 네게 절하겠느냐?! ” 이렇게 이야기 하며 꾸짖는다.
요셉이 지금 염장을 지르고 있다. 형들은 피해 의식이 많고, 그 말을 들을 태새도 안 되있는데
요셉은 꿈 꿨다고 계속 이야기 한다. 그러나 꿈 꾼 것은 사실이다. 야곱은 요셉이 형들하고 저
러다 불화 생기면 어떡하나 걱정한다. 근동지방에서 아래 동생에게 형이 꿇어 엎드린다는 것
은 말이 안되기 때문이다. 사실 꿈을 미워할 수는 없다. 꿈은 fact 이기 때문이다. 형들은 왜
요셉을 죽어라 미워할까? 요셉이 흥분하여 자랑하는 것 때문이다. 때에 맞는 말은 은쟁반에
옥구슬이지만 때와 타이밍을 맞추지 못하고 하는 말은 상대방의 미움을 산다. 요셉으로부터
꿈이 출발했기에 온 식구들이, 다들 치를 떨고 있다. 나로부터 출발한 꿈(자기 중심적) 이기
때문이다. 복음 전하는 나의 태도가 정말 중요하다. 예수님을 전할 때 겸손하게 전해야 한다.
그러므로 전도할 때 태도도 참 중요하다.
요즘은 story의 시대인데, 한 칼럼에서, fact의 시대에는 신문기사가 전부였기에 기사만 믿을
수 밖에 없었고 정보도 별로 없었다. 그런데 요즘은 인터넷과 트위터로 인해 사적인 정보까
지 나돌고, 실시간으로 인터넷 정보가 올라온다. 과거 수용자로 존재했던 대중들이 이제 스
스로 정보를 생산해 낸다. 그리고 그게 story로 엮어 진다. 그러므로 정보가 과잉될 수 밖에
없다. 인터넷에 아주 사적인 이야기 들이 넘쳐나고 사람들은 그 이야기들을 신뢰 한다. 인터
넷에 누군가 실시간으로 소식을 올리고, 어떤 제품에 대해 그 회사의 이야기는 신뢰하지 않
는다. 회사원의 연구원이 연구결과를 올리는 것 보다, 어떤 주부가 쓴 사용기가 더 신뢰감이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리고 연예인이 신비에 싸인 시절은 다 지나갔다. 다 오픈되어지는
그런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내 가까운 사람의 이야기, 스토리라는 것이 혹독한 현실을 이
겨내는 힘이기도 한다. 우리가 꿈이라 부르는 건 스토리를 통해 구체화 된 것이며 스토리에
대해 굉장히 신뢰를 한다.
형들은 요셉이 꿈을 꾸었다는 fact 보다 요셉의 지금까지의 story 가 너무 싫고, 요셉이 콩으
로 메주를 쑨다 해도 싫은 것이다. 요셉의 숨겨진 이야기를 보면, 야곱이 요셉의 어머니 라헬
을 너무나 사랑해서 7년 간의 머슴 살이를 수일 같이 여겼다. 그 라헬의 아들이 요셉이고, 또
라헬을 닮아 용모도 수려했다. 그리고 엄마가 죽었기에 측은 해서 야곱은 요셉을 사랑할 수
밖에 없다. 김정일 대통령이 가장 아끼는 부인 고영희의 둘째아들을 후계자로 앉혔듯이 말이
다. 그래서 요셉에게만 특별히 아름다운 채색옷을 입힌다. 그러니 요셉이 자기 중심적이 되
는 건 당연하다. 자기가 라헬에게서, 아빠에게서 사랑받고, 채색옷 입고, 똑똑하고 옳은 소리
하니, 근본적으로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것을 바라는 것은 무리다. 그렇기에 눈만 뜨면 해달
별이, 곡식이 나에게 절했어!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 꿈을 꾸었다는 것 보다 누가 꾼 것인
가가 중요하다. 요셉이 꾸었다는 것 때문에 형들은 너무너무 요셉이 징글징글 한 것이다.
요즘 유명 연예인의 학력 위조로 문제다. 사람은 정말 졸업을 증명했는데 왜 사람들이 미워
할까? 졸업한 것은 fact 지만, 그 밑바닥에 깔린 story는 병역문제이다. 한국적 정서는 병역
문제만 나오면 고슴도치처럼 가시가 솟는다. 그러나 공부 1등만 하다가 학업을 포기하고 가
수의 길은 간 사람의 story 에는 열광을 한다. 자신의 어떤 한국적인 정서와 맞물려 있어서 그
런 것이다. 원정출산 가서 태어난 남자 아이들은 국적 포기하려 하면 군대 갔다와서 국적 포
기하는 것으로 얼마 전에 법이 바꾸었다. 항상 우연은 없다. 이제는 좀 더 너무나 실질 심사를
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누구는 남들 놀때 일류 대학갔지, 미스코리아 같은 부인과 결혼
했지, 성공했지 그러니 분해서 못 사는 것이다.
그랬을 적에 억울하다 생각하면 안된다. 내 꿈을 펼치게 되면 허무한 결과가 올 수 있다. 예수
를 믿지 않으면 해결이 되지 않는다. 나에게서 출발하는 꿈을 꾸면 안된다. 또 나의 욕심에서
출발하는 꿈은 더더욱 안된다. 히틀러는 전 세계를 정복하겠다는 꿈을 꾸었지만, 자신과 많
은 사람들에게 처참한 고통과 파멸을 가져다 주었다. 자기가 꾸는 꿈은 이런 결과밖에 올 수
없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자기 자신으로부터 출발하는 꿈을 꿀수 밖에 없다.
우리는 별 인생이 없다. 공부를 잘 못해도 훨씬 더 빨리 출세할 수 있다. 학벌이 높다고 빨리
성공하는게 아니다. 모범생일수록 이 꿈이 깨어지기가 힘들다. 그래서 하나님은 공평하시다.
우리는 천국에만 입성하면 그만이다.
어떤 날 꿈을 꾸었는데 모두가 내 부하가 되는 꿈을 꾼다면, 깨고 나서 기분이 너무 좋다가도
원통할 것이다. 그러니 이런 꿈을 개꿈이라 한다. 아무리 꿈을 꾸어도 헛된 꿈 자기 욕심에서
출발하는 모든 꿈은 헛되고 멸망과 파멸의 길을 걸어갈 수밖에 없다. 이뤘어도, 영원히 목마
르다. 욕심이 죄를 낳고, 사망을 낳는다. 예배를 소홀히 하면, 꿈을 이루고 먹고 마셔도 영원
히 주리고 목마르다. 모든 것을 갖춘 사람은 내려오기 힘들지만, 하나님이 채워 주시는 것이
최고이다. 나는 공부도 못하고 다 못하는데 하나님이 채워주셨다. 이것이 최고이다.
3. 하나님이 주시는 꿈으로 바꾸어야 한다.
야곱은 요셉의 그 꿈을 마음에 두었다. 본문에 하나님이란 말이 안 나오지만 하나님의 사람
야곱이 그 말을 마음에 두었다. 그 꿈은 허튼 이야기 같아도 씨가 있는 꿈이다. 하나님이 주시
는 꿈은 육적으로 출발해도 영적으로 바꾸어 주신다. 하나님 주시는 꿈은 희망과 환상과 비
전을 의미한다. 꿈과 비전 중에 제일 좋은 것은 예수 꿈이다. 하나님 주시는 꿈이다. 누구도
처음부터 사명을 따르는 꿈을 꾸기는 힘들다. 어린 아이가 나는 사명 따라 살겠노라 하지 않
는다. 하나님 주시는 꿈을 꾸려면 내가 가진 꿈을 버려야 한다. 온전히 버릴 때 하나님 주시는
꿈을 볼 수 있는데 인간의 힘으로는 힘들다. 꿈을 빙자해서, 교회를 다니면서도 인생이 힘들
다. 교회 다니면서도 시집 잘 가야 하고, 배우자는 전문적이어야 하고, 미인이어야 하고 예언
기도 받아야 하고, 그 종교적 열심이 하늘을 찌르는 신앙인들이 드글드글 하다. 내 꿈을 버리
는 것이 쉽지 않다. 요셉의 꿈과 야곱의 장자권은 금세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야곱이 장자
권 얻기 위해 아버지와 형을 속였지만 그것은 축복이 아니다. 요셉의 꿈도 일류 처럼 보이지
만 하나님 나라의 통치를 보여주는 역할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예수님이 부자 청년 양육하셨는데도 부자 청년은 슬퍼하며 갔고 결국은 구원 받지 못했다.
모두 다 세상의 성공을 구원이라고 생각하는 것에서 시작하니 예수님께서 십자가 지는 인생
으로 십자가를 가르쳐 주신다. 요셉이 이 꿈을 꾸었지만 주인공은 야곱이다. 그래서 야곱의
꿈이다. 요셉 보다는 야곱이 우리에게 모델이 되는 것은 야곱이 험악한 인생을 평생 살며 진
정한 십자가를 가르쳐 주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진정한 언약이고 십자가 이다. 이 역할을 위
해 요셉이 등장한 것이고. 성도가 가야 할 길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요셉처럼 살아야 하겠지
만, 요셉은 하나님이 총리되게 하셨다. 요셉이 잘나서가 아니기에 여기 속지 말아야 한다.
그리스도인 교회 공동체는 내 중심, 내 가족, 내 나라 중심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꿈을 꾸는
공동체와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한다. 손양원 목사님 60주년 추도가 있었다. 그 분은 자기를
위해서 살고 자기를 위해 죽는 인생은 개죽음 이라고 하셨다. 예수님을 위해서 살고 예수님
을 위해 죽는 꿈을 꾸어야 하는데 성령님이 사람들에게 이런 마음을 주신다. 사랑의 원자탄
손양원 목사님이 자기 아들을 2명이나 죽인 공산당을 양아들로 삼은 것은, 인간은 개조될 수
있다는 확신에서였다. 지상 낙원이 아닌 하늘 나라의 영광의 부요함을 보여주셨는데. 손양원
목사님의 그 꿈이 누구도 이기지 못한 공산주의 세력을 이겼다. 6.25때 우리나라는 진짜 공산
주의 나라가 될 뻔했다. 그런데 어떻게 공산 주의에서 건져졌을까? 두 아들을 죽인 공산주의
청년을 자신의 아들(안재선)로 받아들인 손양원 목사님은 후에, 자신도 총살 당하셨는데, 자
신에게 총을 쏜 공산당원을 보며 “ 저 청년이 아무것도 모르고 한 일이니 용서해 주시오 ” 하
신 것이 마지막 유언이다. (스데반처럼). 친척분이 그 말을 듣고 후에 증언 하셨다. 그리고 확
인사살을 까지 했는데도 친척분은 총이 옆으로 비켜가서 살아나셨다고 한다. 6. 25전쟁 시기
에 경제가 파탄나고 공산국가가 될 수 밖에 없었음에도, 공산주의에서 건져진 이유는 이 목
사님의 사랑이 우리나라 남한을 지킨 것이다. 진보도 보수도 아니다. 바로 이 손양원 목사님
이신 것이다. 이것이 사랑의 원자탄이다. 진정 하나님께서 주신 꿈을 이루고 가신 것이다. 그
공산당원 안재선을 사람들이 뭐라 뭐라 해도, 손양원 목사님은 그 누구든지 인간은 변화할
수 있단 확신이 있기에 양자로 들인 것이다. 육적인 꿈이 이루어지지 않을수록 다른 사람을
살리는 영적인 꿈, 하나님의 꿈으로 바뀌어 진다.
4. 선포 되어져야 하는 꿈이다
이 꿈은 덮어져서는 안될 꿈이다. 한번 밖에 없는 메시아 적인 꿈이다. 구속사적인 꿈, 하나님
에게로부터 온 꿈이다. 창세기 12장에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을 어떻게 성취하는가 보여주
는 꿈이다. 믿는 자에게는 구원, 안 믿는 자에게는 망하는 것이기에 복음을 받은 사람으로 선
포해야 되는 꿈이다.
49장에서 이 꿈은, 이루어지기 때문에 반드시 이야기해야 하는 꿈이다. 요셉도 꿈의 내용을
모르고 형들도 모르기에 서로 훈련을 받아야 한다. 그런데 아버지 야곱만이 자기도 험악한
인생을 살았기에 이 꿈을 마음에 두는 한 사람이 되었다. 야곱도 자기가 잘나서 이 꿈을 받은
게 아니다. 그래서 야곱의 약전이다. 다시 말하면 아들들이 시기 질투하고, 야곱은 편애를 하
지만 그래도 하나님의 꿈은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약속은 이루어 진다. 야곱은 장자로 태어
나지 못했지만 하나님 나라 약속을 희미하게나마 붙잡음으로, 그 꿈을 마음에 둘 수밖에 없
고 소중히 간직했다. 집집마다 갈등이 처리되지 않아도. 하나님은 여전히 일하고 계시다는걸
믿었다. 선포하면 말씀이 이루어지는 인생을 살게 된다. 여러 가지로 훈련 시켜 주시며 꿈과
비전을 확실히 알게 된다. 이제는 내가 진심으로 내 꿈을 들으시오 확실히 이야기 할 수 있다.
“ 내 꿈, 비전을 들으시고, 예수를 믿으시고, 오늘 교회 한번만 가요 ” 이랬을 때 얼마나 내 식
구들이 욕을 바가지로 할까 .. 하지만 요셉이 아무것도 모르고 외쳤어도 하나님이 신실하게
이루어주셨다.
내 꿈은 예수 꿈이다. 내 꿈을 들으시오 하려면 꿈이 있어야 하고 나로부터 출발하는 꿈은 안
된다. 하나님이 주시는 꿈으로 바뀌어야 한다. 하나님의 꿈은 선포 되어야 한다. 모르고 선포
했어도 하나님은 이 예수 꿈을 책임 지신다. 집집마다 예수님을 비전을 선포하고, 꿈을 말해
서 핍박당할 지라도 선포하고 가야 한다. 우리가 이제 지혜가 생겨 행동으로, 침묵으로, 말로
선포하고 예수꿈을 선포해야 한다. “ 내 꿈을 들어주세요 이것은 내 꿈이 아닌 하나님의 꿈입
니다. ” 이 꿈은 나로부터 출발하지 않았기에, 하나님이 이끌어 주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