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들으시오
창세기 37:5~11
목사님이 어렸을 때 날아다는 꿈을 많이 꾸었다. 그런데 어느 집사님과 대화를 하다보니 그 집사님은 날아다니는 꿈을 꾸고 싶어도 한 번밖에 꾸지 못하는 것을 보고 내 꿈이 시시한 꿈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꿈이 너무 선명하기 기억되기 때문이다. 우주를 날아다니는 꿈이 영적, 육적으로 다 이루어지게 된 것 같다. 전 세계를 많이 다녀보았고 복음이 편만하게 전해지는 것을 보고 그 꿈이 다 이루어지는 것을 보게 되었다. 영육간의 그 꿈이 이루어졌는지 그동안의 시련을 거쳤는지 여러분도 알고 있다. 한 마디로 그것이 참 좋은 꿈이라 할 수 있다. 요셉도 좋은 꿈을 꾸었는데 그 꿈이 총리가 되는 대박 꿈을 꾸게 된 것이다. 오늘 꿈 얘기 좀 하려고 합니다.
1.꿈은 꾸어야 합니다.
한마디로 꿈은 있어야 됩니다. 돼지 꿈, 배설물 꿈은 돈 버는 꿈이라고 한다. 로또 당첨되는 사람들은 조상들의 꿈을 꾸고 복권을 샀다고 한다. 물꿈, 불꿈, 신체관련 꿈, 동물 꿈, 대통령 꿈 순으로 복권을 산다고 한다. 좋은 꿈의 끝에는 돈이 있고 기복이 있다. 오늘 말하는 요셉의 꿈은 돼지꿈과 주제가 다르다. 37장까지는 아브라함과 이삭의 아들 에서와 야곱의 이야기이다. 에서는 너무 잘 먹고 잘 살다가 악하고 음란하고 대대로 원수가 있고 덧없는 것을 의지하지하는 나라이다. 그런 후에 약속의 땅을 떠났다. 그런데 야곱의 족보는 너무나 돈 좋아하고 여자 좋아하고 험악한 인생을 살아 왔지만 믿음의 족보에 거하는 족보이고 그 많은 여러 가지 치부들을 드러내고 오픈을 해서 구속사의 족보, 솔직한 족보고 그래서 가족신화가 깨지는 족보이다. 그러나 야곱은 믿음의 땅을 떠나지 않았다. 집집마다 편애가 있고 비교와 시기와 질투가 있지만 우리 집에 그 모든 사건을 통해서 그리스도가 오는 그리스도의 후손이 오는 것으로 초점이 모아지면 많은 사건들이 해석이 된다. 애돔의 족보를 쓰지 말고 야곱의 족보를 쓰자고 했는데 야곱이 고난이 끝났나 했는데 지금부터 요셉의 이야기가 시작이 되면서 진짜 고난이 시작이 되는 것에요. 야곱에게 꿈이 있다면 요셉이다. 왜냐하면 요셉이 너무 잘났기 때문이다. 너무나 착하고 총리까지 하고 그러니까 꿈이 요셉인데, 진짜 꿈은 유다에게서 이루어지는 그 여행을 이제부터 시작을 하려고 하는 것이다. 요셉인 줄 알았더니 나중에 가보니까 유다였다. 그래서 요셉의 행적 같지만 37장 2절에 이것이 야곱의 약전이라고 한 것이다. 그러나 유다가 전체적으로 보면 그 넷째 아들, 레아의 넷째 아들 유다가 여러 가지 문제가 많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요셉보다는 영적이지만 요셉은 또 다른 구속사의 한 줄기 이기 때문에 이제부터는 이런 본문에서 요셉을 주인공을 놓고 걸어가겠습니다. 우리는 죄인이에요. 그러니까 어떤 날은 내가 예수님을 팔아먹은 유다가 되어서 적용을 하고 어떤 날은 그 예수님을 부인한 베드로의 입장에서 적용하고 이제부터는 요셉에게서 푹 젖어서 가야되겠는데, 여러분은 유다는 좋고 요셉은 나쁜 사람이야 라고 설교를 하는 것이 아니다. 왜 우리들교회에 오면은 요셉을 계명 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 그런 얘기가 아니라는 것이다. 누가 옳고 그른 것이 아니고 우리는 그때그때 어떤 본문이라도 그 누구라도 구속사로 보고 그 본문에서 나를 적용할 수 있어야 된다. 그러니까 이제부터는 요셉 얘기를 하는 것에요.
우리는 무슨 꿈을 꾸었습니까? 내 나이가 되는 사람들은 다 그저 공기 좋은데서 맛있는 것 먹고 좋은 사람과 놀러 가는 거 그게 꿈이라는 것이다. 점점 꿈이 소박해지는 것이다. 소박하면서 대단한 꿈입니다. 어릴 때 환경으로 꿈이 정해지는 경우가 많다. 가난하게 살면 은 배부르게 먹는 것이 꿈이고 먹고 살만한데 학벌이 없으면 학벌이 꿈입니다. 부모가 이혼을 했으면 행복한 가정이 또 꿈입니다. 마음속에 늘 갖고 있던 잠재의식이 꿈으로 나타난다고 한다. 요셉이 채색 옷을 입고 후계자처럼 늘 사랑을 받으니까 자기가 왕이 되는 꿈을 꾸는 것 아닙니까? 제가 아무리 얘기를 해도 요셉은 너무 좋아요. 우리가 생각하기에 항상 모두를 기쁘게 하고 쉽게 좋아할 수 있는 족장이다. 버릇이 없었지만 채색 옷을 입고 사랑을 많이 받았고 고난을 통해서이지만 총리가 되었고 자기를 팔아먹은 형들을 용서하고 또 수많은 백성을 기근에서 구원하는 그야말로 백마 탄 왕자의 역할이기 때문에 그 누가 뭐래도 요셉은 우리가 가장 좋아하는 유형의 모델인 것이다. 그래서 요셉의 꿈도 우리를 설레게 하는 것이다. 제가 아무리 유다 타령을 해도 우리는 그냥 본능적으로 요셉이 좋습니다. 그래서 이름도 다 요셉의 이름을 갖다 써도 유다라는 이름을 쓰지는 않는다. 우리는 눈에 바라다 보이는 것만 좋아한다. 제가 아무리 유다의 얘기를 해도 여러분은 요셉이 좋은 것이다. 자! 꿈이 이루어지기 위해서 기도하는 사람들은 참 노력한다. 꿈이 있어야 한다. 말보다 편한 마차를 생각한 사람에 의해서 자동차가 발명이 되고 사람도 새처럼 날 수 있다는 꿈 때문에 비행기가 발명이 되었다. 우리는 이런 꿈을 꾼 사람들 때문에 인생을 너무 편하게 산다. 인생은 꿈이 없으면 망한다고 했다. 잠언에."묵시가 없으면 백성이 방자히 행하거니와" 올해 86살인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 ‘나이 드는 것에 대한 미덕’의 책에서 마지막 문장을 이렇게 썼다. ‘후회가 꿈을 대신하는 순간부터 우리는 늙기 시작한다.’ 늙는 것은 나이와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꿈을 이루면 나이가 어리고 젊어도 늙은이고 역으로 꿈이 후회를 덮으면 은 이제 나이가 아무리 들어도 결코 늙지 않는다는 것이다. 항상 꿈이 있어야 되는 것이다. 벤자민 프랭클린은 일흔여덟 살에 다초점 렌즈를 발명을 했다. 100세가 되어도 꿈을 가지는데 꿈이 없는 사람들은 망하는 것이다. 꿈이 없는 사람들은 우울증사람이던지 인생의 아픔사람들이 꿈이 없는 것에요. 정상적인 사람들은 꿈이 다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제 꿈도 종류도 많다. 꿈을 다 꾸긴 꾸어야 되는데, 어떤 꿈을 꾸어야 하는가?
2. 내꿈은 버려야 한다.
나로부터 출발하는 꿈을 꾸면 안 되는 것이다. 시작이 나이면 안 되는 것이다.
5 요셉이 꿈을 꾸고 자기 형들에게 말하매 그들이 그를 더욱 미워하였더라
6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내가 꾼 꿈을 들으시오
7 우리가 밭에서 곡식 단을 묶더니 내 단은 일어서고 당신들의 단은 내 단을 둘러서서 절하더이다
이제 이런 꿈 얘기를 한 것이다. 이제 무언가 언제가 식구들이 자기기에게 절하게 되는 내용이다. 이런 꿈을 하니까 형들이 8절에
그의 형들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참으로 우리의 왕이 되겠느냐 참으로 우리를 다스리게 되겠느냐 하고 그의 꿈과 그의 말로 말미암아 그를 더욱 미워하더니
극도로 피해의식을 가지고 있던 형들은 요셉의 꿈 얘기에 요셉을 더욱 미워하게 되었다. 채색 옷을 입고 후계자가 된 것처럼 행동하더니 이제 요셉이 드디어 꿈에서 왕이 되었다는 얘기를 한 것이다. 가인이 하나님께서 아벨의 제사를 받으시니까 아벨을 살인한 것처럼 인간이 형제라도 너무 악하다고 한 것이다. 그런데 모든 열두 단이 나에게 절하더라. 기분이 꽉 나쁜데 9절에 부글부글 끓어오르는데,
9절 요셉이 다시 꿈을 꾸고 그의 형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또 꿈을 꾼즉 해와 달과 열한 별이 내게 절하더이다 하니라
다시 꿈을 꾸고 이제 더 자세히 고하였다. 이번에는 부모까지 나에게 절하게 된다는 얘기를 했다. 하나는 땅을 무대로 곡식을 수확할 때 다 단들이 일어나서 절을 하고, 하나는 하늘의 해와 별, 달이 자기를 향해서 절한다고 하늘과 땅을 제패하고 절한다고 얘기를 한 것이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10절에
그가 그의 꿈을 아버지와 형들에게 말하매 아버지가 그를 꾸짖고 그에게 이르되 네가 꾼 꿈이 무엇이냐 나와 네 어머니와 네 형들이 참으로 가서 땅에 엎드려 네게 절하겠느냐
아버지와 형들에게 고한다는 것은 원어에게 계속적으로 고한다는 것이다. ‘아버지 해별달이 나에게 절했어. 형님! 곡식 단이 다 나에게 절했어!’ 점심 먹다가 ‘아버지! 형님! 해달별이 나에게 절을 했다니까~’ 가만히 있어 줄려고 해도 봐줄 수가 없는 것이다. 시도 때도 없이 그 꿈을 말했다. 그러니까 아버지 야곱이 요셉을 사랑해도 이 대목에서 참을 수다 없었다. ‘그에게 꾸짖고 이르되 네가 꾼 꿈이 무엇이냐 나와 네 어머니와 네 형들이 참으로 가서 땅에 엎드려 네게 절하겠느냐" 이제 이런 말에 꾸짖었다. 요셉이 지금 염장을 지르고 있다. 형들은 피해의식이 있는데 거기서 가서 지금 되도 안 되는 얘기를 들을 태세도 안 되어 있는데 계속 꿈꾼 얘기를 한 것이다. 요셉을 탓할 수 없다. 꿈꾼 것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러분! 그 꿈과 말을 인하여 우리가 꿈을 꾸었어도 타이밍을 못 맞추고 제때에 맞는 말은 은쟁반의 옥구슬이지만, 사람이 싫으면 누가 얘기를 해도 안 듣는 것이다. 여러분! 제가 싫으면 제가 어떤 설교를 하더라도 안 들리는 것이다. 설교를 좋게 해도 안 들리는 것이다. 사람이 싫으면 안 들리는 것이다. 그런데 요셉을 지금 온 식구들이 싫어하는 것이다. 꿈과 말을 인하여 미워했다고 그러는데 그 꿈이 요셉의 자기로부터 출발한 꿈인 것이다. 자기중심적인 것인 것이다. 그런데 너무 요셉이 이 꿈을 말하면서 이 땅에서 잘 먹고 잘사는 왕이 되는 꿈을 흥분해가지고서 자랑스러워하는 것 때문에 내가 복음을 전할 때 그 전하는 태도가 참 중요하다. 예수님을 전할 때 겸손하게 전해야 하는데, 더 이제 중요한 숨은 뜻이 있다. 요즘에는 참 스토리 시대라고 한다. 어떤 칼럼을 보니까 펙트의 시대에는 정보가 많지 않았다. 우리가 옛날에 인터넷이 시대 전에는 신문에 나오면 그것이 다 사실인줄 안다. 너무 대단한 진리로 다가온다. 그런데 지금은 인터넷, 트위터까지 사적인 정보들이 홍수를 이룬다. 과거에는 수용자들을 존재하던 대중들이 스스로 정보들을 생산해 내는 것이다. 정보 과잉이다. 아주 사적인 얘기들이 넘쳐나는 것이다. 부산에 참사가 났으면 내일을 못 기다리고 인터넷에 들어가면 계속 그 소식을 올려놓았다. 우리는 회사의 얘기를 신뢰를 안 한다. 어떤 말을 신뢰를 하냐면 주부가 직접 쓴 사용기가 올라오면 회사의 얘기보다 더 신뢰를 받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러니까 이제 연예인이 신비에 쌓여 있는 시대는 지나갔다. 다 오픈이 되니까 사생활이 없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 스토리는 혹독한 현실을 이겨내는 힘이 되기도 한다. 왜냐하면 저 사람은 어렸을 때 힘들어서 저런 배우가 되었데. 그러면 우리는 스토리 때문에 그 사람을 너무 좋아하는 것이다. 우리가 꿈이라고 부르는 것들은 스토리를 통해 구체화되는 것들이다. 지금 요셉이 꿈을 꾸는 것은 펙트다. 사실이다. 꿈을 꾸었는데 형들은 요셉의 지금까지의 스토리가 싫은 것이다. 요셉이 콩으로 메주를 쓴다고 해도 싫은 것이다. 요셉의 비하인드 스토리는 야곱이 요셉의 어머니를 너무 사랑해서 머슴살이를 7년 동안 했다. 라헬의 아들이 요셉이다. 요셉이 라헬을 빼다 닮았다. 어머니를 잃은 요셉을 야곱은 너무나 측은히 여겼을 텐데, 부인이 예쁘면 처갓집 말뚝을 보며 절을 한다고 한다. 김정일 지도자 동지께서 부인중에도 제일 사랑하는 고영희의 둘째 아들 후계자를 세우는 것을 보면서 고영희를 사랑해서 고영희의 아들을 후계자로 앉힌 것이다. 이것이 막내인데 진짜 열한째 아들이었던 이런 요셉을 특별히 아름다운 채색 옷을 입히니까 아빠 사랑받고 엄마 사랑받고 얼굴도 예쁘고 채색 옷 입고 게다가 똑똑하기까지 하다. 이런 시각에서 보면 형들의 잘못을 고자질하는데 너무나 맞는 얘기만 하는 것이다. 자기가 보기에는 그것이 틀렸으니까 의롭기까지 하다. 그러니까 이런 요셉이 자기 본이가 되는 것은 당연하고 이렇게 모든 것을 갖춘 요셉이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것까지 원하는 것은 무리라고 보이는 것이다. 이런 요셉의 그 행위를 보면서 남들이 보기에는 너무나 착하고 너무 똑똑 하는 것 같지만 요셉이 꿈을 꾸었다는 펙트보다는 요셉의 이런 스토리들이 형들이 싫어하는 것이다. 요즘에 유명한 연예인 학력위조 사건으로 인터넷을 달구고 있다. 그 사람이 스탠포드 대학을 나온 것이 사실인데 자꾸 다 들쑤시는 것이다. 직접 거기까지 가서 확인을 했는데도 안 믿으려고 한다. 왜 그러겠습니까? 그 펙트는 졸업한 것은 사실인데, 그 스토리는 그 사람의 그 병역문제와 국제문제 딱 닿아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그 사람은 군대도 안 갔다 오고 그 시간에 그 훌륭한 대학을 나오고 너무 미스코리아 같은 사람과 결혼을 하고 게다가 성공해서 우리가 참을 수가 없는 것이다. 아무리 뭐라고 해도 사촌이 논을 사면 배가 아픈 것이다. 우리가 예수도 안 믿으면 이런 문제가 해결이 안 될 것 같다. 어떤 유명한 가수는 군대를 안가서 아직도 한국에 들어오지 못 들어오고 있다. 그 때부터 군대 갔으면 벌써 복귀 했을 텐데. 원정 출산을 갔는데, 남자아이들은 국적을 군대를 갈 때 포기 못하게 한다고 한다. 군대 갔다 와서야 포기하게 한답니다. 어제 그 법이 발표가 되었다. 원정출산 가봤자 군대 가야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런 항상 우연은 없다는 것이다. 보아라는 가수는 1등을 했는데, 대학을 안가고 쭉 가요계로 나갔는데, 성공을 하니까 그러는 것은 열광을 하는 것이다. 공부 1등 하는데, 대학 안가고 가수가 되었다고. 이 마음속에 하여튼 분한 감정이 있는 것이다. 이것이 스토리의 시대에 살기 때문에 펙트 가지고 안 되는 그래서 내가 잘 살지 않으면 끊임없이 사적인 얘기가 올라가는 것이다. 연예인들은 악플 때문에 자살하는 경우가 생기는 것이다. 이것이 공인인 것이다. 함부로 살아서는 안 되고 스토리가 엮기는 것보다 숨기는 것이 훨씬 많다. ‘가난했는데 이렇게 되었데~’ 굉장히 더 좋아하는 것이다. 이런 것을 보면서 나에게서 출발하는 꿈을 꾸면 안 된다. 나의 욕심에서 출발하는 꿈은 더더욱 안 되는 것이다. 이제 히틀러는 자기 야망으로 세계를 정복하겠다는 꿈을 꾸었는데, 히틀러의 이 꿈 때문에 전 세계가 피와 파멸과 처참한 정말 고통을 주는 그 꿈을 이었다. 모든 사람들이 자기를 위하는 이 꿈을 이렇게 꾸게 되면 이러한 결과 밖에 올 수밖에 없다. 내가 교회를 오래 다녔어도 내가 대학교 잘 가서 성공하고픈 야망으로 가득 찼는데, 그것이 잘못 되었다는 생각은 애당초 하지도 않았다. 저는 모범생이니까 남들을 잘 속이는 것이다. 교회도 잘 가고 공부도 잘하니까 참 믿음이 있어 보인다. 나도 나에게 속는 것이다. 지금 이렇게 보니까 아주 진짜 우리들교회 김형민 목사 수요예배들으니까 56명 중에 54등. 뒤에는 공부하고는 상관없는 장애아가 2명 있었다고 얘기했다. 그러면 꼴지라 고나 할까? 그러는데, 그렇게 공부를 못했어도 설교하는데 전혀 지장이 없다는 것이다. 전혀 지장이 없는데다가 어머니는 화투하고 형님은 정신분열이고 이런 얘기를 하니까 약재료가 저보다 더 갖추어 가는 것 같다. 예전에는 이런 얘기도 못했는데 자기가 그냥 배고파서 그럴 적에 그냥 선생님이 6개월 동안 먹을 것 사주어서 지금 교회에 왔다. 목사님 먹는 것 밖에 모른다. 그래서 우리 애들 먹을 거 사주어야 온다고 먹는 재미 때문에 온다고 그래서 만날 예산을 달라고 그래서 그동안에 내가 많이 주었는데, 강남 쪽에도 보니까 배불러서 오는 애들은 다 똑같이 나누어 주니까 무상 급식하니까 버리는 아이들이 있다. 무상급식 원리를 우리들교회에서 알았다. 부잣집 애들은 주면은 그래서 안 된다. 힘들고 어려운 애들이 자발적으로 가서 부페식으로 찾아 먹게 하라. 강제적으로 나누어 주는 것 하지 말자. 얼마나 그 애들이 교회 돈을 우습게 여기겠느냐? 내가 막 야단을 쳤다. 이번 주일에 그 먹는 것 때문에 그 사람이 거듭났기 때문에 먹는 것에 한이 맺어서 먹여야 된다고. 그래서 우리들교회에서는 그것 선생님이 먹였다고 하니까 선생님들이 알아서 하시기를 바랍니다. 선생님이 먹였고 교회에서 먹인 것이 아니다. 그러다보니까 세상에 꼴지를 했는데, 저한테 가끔 메일 보내는 것을 보면 맞춤법도 가끔 틀린다. 그런데 설교 너무 잘하신다. 너무 잘 하시는데다가 대학, 대학원에 지금 겸임교수까지 되었다. 그렇게 어렸을 때 배운 것이 없이 너무 힘든 인생을 살았기 때문에 저보다 지금 얼마나 제네레이션이 빨라졌는가? 내가 그 나이가 되었으면 좋겠네. 나는 모범생이까 이렇게 늦게 별 인생이 없기 때문에 공평하지요? 어렸을 때부터 너무 마음을 둘 때가 없으니까 빨리 예수를 믿었다. 야구만 하다가 야구 못하게 하니까 빨리 예수 믿었고 빨리 예수를 인격적으로 만나가지고 그 때부터 목사를 해서 지금 대단한 목사의 반열에 올라섰는데, 참고로 우리 아들보다 한 살 위에 있다. 정말 공평한 세상이다. 그러니까 뭐가 좋은 건지 길고 짧은 것은 대봐야 아는 것이다. 그래서 여러분들 우리들교회 중고등부 막강한 목사가 지금 있다. 어찌나 야구를 하면서 애들을 세게 다루었는지 말만 하면 5분에 한 번씩 애들을 잡겠다. 도저히 김형민 목사 설교 듣고 자는 사람은 병원에 가야 한다. 가만히 있어도 계속 웃는 것이다. 그래서 참 우리들교회에 좋은 사역자들 보내주셔서 너무 감사하고 내가 너무 은혜를 받고 있다. 그러니까 저같이 모범생이 깨어지는데 너무 힘이 들고 그런 분들은 깨어질 것이 없어서 미리미리 채워지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오늘 꿈처럼 왕이 되어서 모두가 내 부하가 되어서 나를 받들어 주고 모두들 ‘예예’하면서 꿈을 꾸고 깨면 얼마나 기분이 나쁘겠는가? 깬 것이 원통할 것이다. 꿈을 깨고 나니까 개꿈이다. 그렇게 개꿈꾸지 마시라고요.
이시야 29장 8절
주린 자가 꿈에 먹었을지라도 깨면 그 속은 여전히 비고 목마른 자가 꿈에 마셨을지라도 깨면 곤비하며 그 속에 갈증이 있는 것같이 시온산을 치는 열방의 무리가 그와 같으리라
이러니까 나에게서 출발하는 꿈은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는 것이다.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하나님을 소홀히 하고 예배를 소홀히 하고 그리고 아무리 내 꿈을 이루고 먹고 마셔도 여전히 주리고 목마르다는 것이다. 그것은 헛된 꿈이기 때문이다.
3.나의 꿈은 하나님이 주시는 꿈으로 바뀌어야한다.
11절 그의 형들은 시기하되 그의 아버지는 그 말을 간직해 두었더라
본문에 하나님이라는 말은 없지만 이 꿈은 하나님이 주시는 꿈이라는 것이 틀림없는 것이 하나님의 사람 야곱이 마음에 두었기 때문이다. 다 못 알아봐도 하나님의 사람 야곱이 이것을 마음에 두었다. 내가 육적인 꿈을 꾸었다고 해도 하나님께서 영적인 꿈으로 바꾸어 주시는 이제 그런 사람이 되어야겠다. 여기서 말하는 꿈은 희망과 환상과 비전을 의미한다. 이런 꿈과 환상과 비전 중에서 예수 꿈 예수 비전보다 더 좋은 것은 없다. 이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꿈이다. 그러나 누구나 처음부터 사명을 따른 꿈을 꾸는 것은 힘들다.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나는 사명을 따라 꿈을 꾸겠다. 이러는 사람은 없다. 10살이라도 없다. 맨 처음에는 그렇게 육적인 꿈을 꾸는 것이다. 강영우 박사 아들이 자기는 아빠가 눈을 떴으면 좋겠다. 왜? 자기는 아빠와 야구하고 싶어서. 그게 꿈이 육적인 꿈이지만 아빠가 눈을 안 뜨니까 점점 더 바뀌어져서 나는 눈먼 사람들을 도와주는 그런 의사가 될 테야. 그래서 더 많은 사람들을 살려줄 테야! 이게 꿈이 바꿔지는 것이다. 이게 꿈이 자꾸 내가 육적인 꿈이 이루어지지 않으니까 꿈이 자꾸 바뀌어지는 것이다. 영적인 꿈으로 지경이 넓어지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이 주시는 꿈을 꾸지 않으면 는 내가 가지고 있는 꿈을 버려야 한다. 내가 꿈을 꾸고 있는 포기할 때에 하나님이 주시는 꿈을 주실 수 있다는 내용이다. 야망에서 소망으로 바꾸어야 하나님이 주시는 꿈을 꿀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을 빙자해서 꿈이 나로부터 출발하기 때문에 교회를 다니면서도 인생이 힘들다. 좋은 학교를 가야만 하고 시집은 잘 가야하고 배우자의 전공도 전문직이어야만 하고 용모는 미스코리아야 하고 그 꿈을 위해서 신령한 분들을 동원하고 예언을 받기를 원하고 그 야망을 소망으로 착각하고 열심히 하늘을 찌르는 신앙인들이 곳곳에 너무 즐비 하는 것이다. 그만큼 내 꿈을 버리는 것이 쉽지 않다. 그런 야곱의 장자권과 요셉의 꿈은 금세 알아지는 것이 아니다. 야곱은 세상적인 것인 줄 알고 이 장자권 얻겠다고 그러고 얻기 위해서 형을 속이고 아버지를 속였지만 살아갈수록 장자권은 이 세상에서 축복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래서 험악한 인생을 통해서 장자권을 알게 해주셨다. 요셉의 꿈도 일류가 되는 것, 왕이 총리가 되는 것처럼 보이는 꿈이지만 그것이 아닌데, 요셉은 하나님 나라의 통치를 가르쳐주는 그 역할을 하기 위해서 총리가 된 것인데, 다 총리 밖에 모르는 것이다. 요셉하면 총리밖에 모르는 것이다. 이세상의 모두 보이는 것에 가치를 두기 때문에 요셉이 그 총리가 되는 꿈을 듣기만 해도 이를 갈고 시기 질투를 하는 것이다. 하다못해 예수님의 제자들도 부자청년이 이제 슬퍼해서 예수님을 떠나니까 그러면 저 청년이 가면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으리오? 예수님의 제자들도 세상의 성공을 구원이라고 생각을 하는 이 가치관이 딱 있는 것이다. 야곱의 장자권도 날이 갈수록 이제 야곱의 인생을 쭉 보면서 십자가 짐 같은 인생을 사는 것이라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이다. 그래서 요셉이 꿈을 꾸었는데, 야곱이 주인공이라는 것이다. 야곱의 얘기라는 것이다. 요셉이 후에 총리가 되었으니까 우리는 요셉이 주인공 같지만은 총리가 아니고 요셉보다는 야곱이 우리에게 모델이 되는 것은 야곱의 험악한 인생을 평생 알게 하면서 우리에게 진정한 십자가를 가르쳐 주기 위한 그 역할로 요셉이 등장했다는 것이다.
요엘 2:28
그 후에 내가 내 신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이것이 무슨 뜻인가? 그리스도인 교회 공동체인 내 중심으로 내 가족 중심으로 내 나라 중심으로 꿈을 꾸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 중심으로 꿈을 꾸는 공동체와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제가 이번 주 손양원 목사님 60주년 추도 예배를 갔다 왔다. 여러 유고설교와 여러 친척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손양원 유고 설교 중에 ‘자기를 위해서 살고 자기를 위해서 죽는 인생은 개죽음’이라고 설교를 하셨다. 예수님을 위해 살고 예수님을 위해 죽는 꿈을 꾸어야 한다고 하셨다. 성령은 사람들에게 이런 꿈을 일으키는 영인 것이다. 그런데 이 땅의 지상 낙원의 꿈을 꾸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나라의 꿈을 꾸는 것이다. 사랑의 원자탄 손양원 목사님이 자기 아들을 둘이나 죽인 공산주의 청년 안재선을 양아들로 삼은 것은 인간 변화의 확신을 했기 때문이다. 인간은 개조될 수 있다. 이것은 자상낙원이 아닌 하늘나라의 영광의 부유함을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손양원목사님이 목사가 되겠다고 꿈을 가졌는데 그 꿈으로 그 누구도 이기지 못하는 공산주의 세력을 이겼다. 2차 세계대전에서 히로시마의 원자탄 한 방이 딱 떨어져서 일본이 25만 명이 죽음으로 한 번에 항복을 했다. 그런데 무조건 항복을 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공산주의 국가가 될 뻔했다. 6.25때 국방력도 약화되고 경제력도 바닥이고 공산주의가 치고 들어왔을 때 손양원 목사 아들도 죽고 손양원 목사님도 총살되어서 죽었는데, 우리는 공산화가 될 수밖에 없었는데 누가 이 공산주의를 물리쳤는가? 그 공산주의 청년을 용서했다. 양 아들로 받아들였다. 자신도 공산주의 청년들에게 총살을 당하면서 막지막 돌아가실 때에 그 친척이 그 증언을 했다. 총알이 몸을 피해갔다. 그분이 증언하는데 , 마지막 하시는 말씀이 ‘저 청년이 모르고 하는 일을 용서해달라’고 그러고 마지막 유언이었다. 스데반처럼. 우리가 그들을 용서하는 사랑이야말로 공산중의를 무너뜨리는 발아점이 되었다. 공산화에서 지켜주는 것은 진보도 보수도 아닌 이 공산주의를 사랑으로 이긴 하나님의 꿈을 가졌던 손양원 목사님이었다는 것이다. 진실로 하나님이 주신 꿈을 이루고 가셨다. 아들을 죽였던 안재선을 보면서 손양원 목사님은 예수 꿈이 있었기 때문에 이제 양자를 받아들였다. 마음에 두는 이 한사람이 있어서 형편없는 우리의 꿈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안재선은 후에 목사가 되었다. 그래서 이렇게 바꿀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오늘 형들은 시기해도 아비는 마음에 두었다고 한다. 저 형편없는 요셉을 마음에 두었다. 그 씨를 본 것이다. 누구도 주님이 함께 하시면 그 씨를 보고 그 마음에 두시는 그 누구를 보아도 그 말 안듣는 남편, 아내, 부인, 부모님을 보아도 마음에 두는 그 한사람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반드시 변화될 것이다.
4. 이꿈은 선포되어져만 하는 꿈이다.
이 꿈 얘기는 안 하면은 미움을 덜 받았고 팔리지도 않았을 꿈이지만 이 꿈은 덮어졌을 꿈이 아니다. 이 꿈은 한 번 밖에 없는 메시아적인 꿈이다. 구속사적인 꿈이다. 하나님께로부터 온 꿈이다. 야곱집안이 그리스도의 모형으로 묘사되고 있는 꿈입니다. 창세기 12장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것이 어떻게 성취되는가를 보여주는 꿈이다. 이 꿈 때문에 일생을 힘들게 살았지만 그래도 이 꿈은 반드시 선포되어져야 하는 꿈이다. 49장에서 이 꿈은 이루어지기 때문에 진짜 총리가 이루어진다. 반드시 얘기해야 되는 꿈인 것이다. 요셉도 꿈의 내용도 모르고 형들도 모르기 때문에 서로 훈련받아야 될 꿈인 것이다. 아버지 야곱은 자신도 꿈속에서부터 예언이 받은 몸이고 험악한 인생을 살았기 때문에 마음에 두었다. 이 꿈의 내용이 무엇인지를 알아먹었다. 그래서 야곱의 약전이라고 하는 것이다. 야곱이 이것을 알아먹었다. 지금 현재는 아들들은 서로 시기하고 자기는 편애하고 가지만은 하나님의 꿈은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꿈을 소중하게 간직했다. 집집마다 문제가 있고 갈등 처리가 되지 않고 있어도 하나님은 여전히 일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계시기를 바랍니다. 내 꿈을 들으시오. 쉽게 얘기를 합니다. 제 남편이 천국 갔을 때 그 때 말씀은 에스겔 말씀이었다. 그가 스스로 헤아리고 돌이켜 떠났으니 정녕살고 죽지 아니하리다. 그렇게 천국 갔다고 얘기했다. 에스겔은 1장~20장까지 유다에 대한(자기백성에 대한) 이 돌이킴을 주님께서 계속 말씀하셨는데, 그 때 에스겔 부인을 데려가셨다. 저도 우리남편을 데려갔다. 그 24장까지 유다에 대한 회개를 촉구하던 하나님께서 25장부터는 전 세계를 향해서 예언을 하라고 하신다. 시돈, 애굽, 블레셋, 모압, 암몬. 그런데 우리남편을 가고 한 사람의 구원을 위해서 24장까지 수고를 하게 하신 하나님은 그냥 25장부터 전 세계로 나아가라는 말씀인 것이다. 제가 저한테 주신 말씀으로 그 때 큐티를 하니까 받는 것이다. 지금 전 세계로 저보고 나가라고 하는 것이다. 목자들을 쳐서 파하라고 한다. 제가 서리집사가 목사님들에게 가서 말씀을 전했다. 그리고 천국성전이 지어졌다. 에스겔은. 그러니까 저는 그 때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큐티를 통해서 날마다 본문으로 늘 큐티모임을 하니까 전 세계를 향해서 복음을 전하라고 허신다. 천국성전이 된다고 한다. 목자들을 향해서 가서 예언을 해라. 이런 얘기를 하니까 이거가 제가 그것이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계속 하나님의 들은 말씀대로 할 때 내 옆에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가소롭게 보겠는가? 얼마니 비웃겠는가? ‘어휴 지가 전 세계에 복음을 전한데. 웃겨.’ 이러지 않겠어요? 어떤 분은 심지어 저보고 어휴 내가 우리 큐티모임에 오세요 하면 ‘자기가 뭔데 오래?’ 그래서 제가 그냥 자꾸 사역을 하다보니까 오라는 말이 입에 붙었다고 하니까 ‘어휴~ 자기 주제에 사역을 한데.’ 별것을 다가지고 제가 말만 하면은 미워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니까 전 세계 이런 말을 하니까. 어떤 사람은 또 나에게 이런다. 요셉이 다 갖추었는데 외롭게 떠나갔는데, 갖춘 것 같은데 늘 외롭다. 늘 혼자다. 나는 집사님처럼 모든 것을 갖추고 학벌도 있고 먹고 살 것도 있고 그러면은 나도 복음을 전하겠다. 이렇게 하고 복음전하지 못하는 사람이 어디에 있겠는가? 하고 복음을 전하는데 비아냔 거리는 사람들이 있다. 내가 피부가 좋다고 피부도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좋을 수가 있느냐? 내가 막 과부티를 내면서 막 불쌍히 동정을 받고 이래야 될 텐데, 복이 많으면 나만 보고 기분이 나빠하는 인간들이 있다. 요셉을 보면 기분이 나쁜 것이다. 저거는 채색 옷만 입고 앉아가지고 왜 계속해서 형들까지 살려주는 거야~ 안 그래도 레아의 아들들은 고난을 당하고 있는데, 꿈까지 요셉의 도움을 받아야 된다고 하니까 힘든 것이다. 이러니까 저는 요셉만 보면 기분 나쁜 것을 보면서 나만 보면 기분 나쁜 사람들이 있었을 것이다. 왜 제는 저기다가 믿음까지 좋은 거야. 뭔가를 갖춘 것 같은데 믿음까지 좋은 거야. 용서가 안 돼. 그런데 제가 전 세계에 복음을 전한데, 여기가 천국성전이래. 기분이 얼마나 나쁘겠는가? 더군다나 저는 서리집사인데, 동종업계에 속하는 목사님들은 기분이 더 나쁘지 않겠는가? '저거는 왜 말씀을 전해. 말씀전하는 것은 내가 전공인데' 이것을 보니까 딱 내 얘기인 것을 알았다. 설명이 떡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뭔지 모르지만은 그래도 선포를 했으니까 내가 오늘날 그 때 선포했으니까 이게 이루어지게 된 것이다고 생각을 한 것이다. 내가 다 몰라도 그때그때마다 말씀을 주셨으니까 내가 선포하고 왔기 때문에 그 꿈을 확실히 꿈과 비전의 내용을 알게 되는데,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사건과 시련들이 지나갔는지 모르겠다. 이것이 바로 오늘 꿈을 들으시오 한 것이다. 그러니까 내가 요셉이 아무것도 모르는데, 꿈을 들으시오. 들으시오. 그게 자기로부터 출발한 것 같지만 결국 하나님의 꿈으로 바뀌었다. 내가 하나님의 꿈으로 바뀌어서 계속 외치는데, 사람들은 세상 적으로 들으니까 '뭐? 세계로 가서 복음을 전하는' 이딴 얘기만 기분 나빠하고 그러니까 여러분이 지금 저한테 엎드려서 말씀을 듣잖아요. 이게 꿈이 이루어졌잖아요. 그러니까 이것을 세상 적으로 들으니까 ‘저 잘났네’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그때에는 그것이 이해가 안되었겠다 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이 바로 예수 꿈인 것이다.
*나눔
목자님: 스토리의 시대이다. 제일 무서운 것 같다. 이럴때 일 수록 사실을 분별하고 잘 살아야겠다. 고난이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육의 문제들이 해결되는 것이 다가 아니고 하나님의 꿈으로 변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보호형: 손양원 목사님. 자식이 얼마 큰 것인데 , 우리같은 사람들은 초월해야 하는데, 우리가 얼마나 절제하면서 해야 하는데 힘이든다. 가시적인 꿈(여자친구에 대해)을 너무나 바라고 있는 것 같다. 내가 바로 서지 못하니까 외적인 사인이 오기만을 바라고 있었다. 여자친구와의 만남. 내죄를 아직 깨닫고 있지 못하고 있다. 그러면 내 믿음의 분량의 문제인가? 여자친구를 만나는 것은 좋은데 헤어지면 분이 나온다. 계속 이런 마음이 든다면 내가 문제인 것 같다. 이것이 고민이다. 나의 주제를 모르고 있는 것 같다. 이것이 내 육적인 꿈을 꾸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율형: 우리들교회에 오게 되면서 과정을 거치게 되는데 너무 자신을 괴롭히지를 않았으면 좋겠다. 지금의 삶에서도 지금 가지고 있는 고민들이 그 자체로 이해가 된다. 분이 올라오는 것은 예민하기 때문에 올라오는데, 그런데 전적으로 그것이 형의 문제만은 아니다. 결국은 터져버리는 것이다. 형이 말씀을 통해서 이렇게 분별해서 가는 것이 좋은 것이다. 처음부터 그렇게 할 수는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과정을 생략하는것) 있는 사실을 객관적으로 잘 보려고 노력해야 한다. 여자친구에게 솔직하게 나눔을 하는 것이 제일 좋다. 형이 여자친구와 결혼을 하고 안한고를 떠나서 영적인 꿈을 꾸는 것이 중요한다. 소박하게 지속적으로 꾸고 이루어 지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면서 자매의 진가를 볼수 있을 것 같다. 하나님의 기준으로 보도록 노력했을면 좋겠다. 잘하고 있습니다.
수연형: 기복이 있는 한 주였다. 양육 받고 있는데 지난 주까지는 감동이 있어서 잘햇는데, 4과에서는 말씀. 감동이 없었다. 하기는 하는데 별로 감동이 없어서 했다. 성훈형이 알아버렸다. 과제를 하다보니까 지치게 되었다. 좀 제대로 하다보니까 길게 했다. 정말 지친다. 감동이 없으니까 지친 것이다. 양육의 목적은 받아도 그만 안 받아도 그만이지만 배우자를 위해 받아야 한다는 것 때문에 하게 된 것이다. 대학동기한테 전화를 했더니 놀고 있다고 한다. 허무함을 보게 되었다. 그래서 불안한 마음이 생기게 되었다. 영화에 대한 생각이 허무해 졌다.
동생에 대한 애정이 없어졌다. 해병대를 다녀오고 난 후부터 더 싫어졌다. 엄마는 나한테 잔소리를 하지는 않는데, 동생한테는 잔소리를 잘한다. 그래서 동생도 엄마한테 신경질을 많이 부리게 되었다. 그래서 동생이 호주로 갔으면 했다. 기도응딥을 받은 것 같은데(호주 안가는것) 마음에서는 기분이 별로 좋지는 않았다(같이 또 부디쳐야 하니까). 기분이 다운이 되니까 산책을 하고 큐티를 했다. 성경의 말씀이 나의 얘기가 되어야 하는데 답답하다. 초등부도 그만둘까 답답한 것이다. 순종을 안해서 그런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해야할지 잘모르겠다.
율형: 수연이가 이제 일대일 양육을 하고 있는데 이런 힘든 4과 같은 주가 있는 것인데, 문제는 전에 가지고 있던 불신과 자존감 때문에 스스로를 옛날로 파고 들어가는 것이다. 그래서 모든 관점들이 다 극단적으로 치우치게 되는 것이다. 마음 가짐이 부정적으로 치우치게 되었다. 객관적으로 보려면 더 말씀을 들어야 한다. 하루 아침에 시나리오를 쓰는 것은 무리이다. 과정이 있는데 무시하지 말고 하나님의 전적인 주권을 인정하는 것이 너무 힘이 든다. 그러나 이전처럼 파괴적인 마음이 줄어들 것이다. 인내하며 기도하고 말씀듣고 붙어있는 것이 감사하다.
욱진: 안색이 변하는 자는 예배가 잘못된 것이라고 하는데, 가끔씩 전 교회 친구들을 만났다. 남아있는 사람들은 별로 찾지 않은 것 때문에 욱진이는 서운해 있다. 나는 교회를 나왔지만 여전히 전 교회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다. 그런데 화가 났다. 내가 교회를 나온 것에 대해 교회에 남아 있는 지체들은 별로 마음을 쓰지 않는 것 같다.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남들에게 나이스한 성격을 보이고 싶은 마음이 아직도 많이 있다. 지금 어떻게 대해야 할지도 잘 모르겠다. 전 목장에서는 직장 얘기를 많이 했었는데, 힘들어서 그만 두고 시었다. 그 때마다 친구(사장)는 자존심이 상한 것이 많이 있었다. 나는 나오고 싶었는데, 큐티하면서 나오지 못하도록 하게 하셨다. 친구가 제안하는 것은 적은 자본으로 동업을 하자고 하였다. 주먹밥 장사를 하자고 달콤한 말로 꼬득였다. 목사님은 불신자와 동업을 하지말라. 일적인 부분에서는 비전을 잘 모르겠다. 가정(화목)에 대한 마음이 더 많았는데, 사업적으로 제안이 들어오자 친구한테 거절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은 들지만 한편으로는 하고 싶은 마음도 들었다.
율형: 모든 것이 상황마다 다 다르게 적용하는 것이 맞다. 묻자와 가로되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물어 물어 보고 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맞고 틀리는 것이 아니다. 지금 하나님께서 나에게 하시는 마음이 있는가? 나는 지금 내가 합리화 하고 있는 것이 아니가? 개인적으로는 안했으면 좋겠다. 친구가 어떤 동기로 동업을 하자고 하는지를 분명하게 알고 속지도 말고 잘 분별해서 결정했으면 좋겠다.
목자님:
감성과 이성을 잘 잡혀지고 있는데, 지금 감성이 좀 죽은 것 같다. 세상의 즐거움을 좀 줄이고 영적인 즐거움을 더 채워지면서 감성이 올려지게 되었다. 목사님의 책을 읽다보니까.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교제를 통해 감성이 채워진다는 생각이 든다. 이번 주에는 시간관리를 하면서 살았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감성이 올라오면서 이것이 변한 것이다. 세상적인 곡은 더 쉽게 쓸 수가 있다. 그런데 가스펠은 영적인 마음에서 올라오는 영감 때문에 기다리고 느끼고 있는 것이다. 세상 음악은 다 쓰레기이다 라고 생각을 하면 이미 가스펠의 곡을 쓸 수가 없다. 하루하루를 허송 세월하게 되려면 끝이 없다. 하나님깨서 감성적인 부분에서 훈련이 되어서 이제는 맡겨도 되겠다는 것을 생각을 하게되었다.
*기도제목
종율형
1. 성령님의 감성이 떠나지 않도록 시간을 깨어 기도할 수 있도록.
2. 엄마, 아빠의 꿈을 들어 주시도록. 애통하는 마음이 품을 수 있도록.
3. 에제르를 알아볼수 있도록.
보호형
1. 예배시간 잘 지킬 수 있도록.
2. 학교에서 일이 잘 안잡혀지는데 충실 할 수 있도록.
3. 에제르를 분별할 수 있도록.
수연형
1. 기도를 통해 더 알아갈 수 있도록. (과제를 하면서 알려 주셨으면)
2. 동생과의 관계에서도 지혜를 주시고 사랑하는 마음이 생길 수 있도록(내가 동생에게 어떻게 대해야 하나요? 라고 기도해보는 것이 좋겠다)
성남
1. 전임 강사 구해지도록.
욱진
1. 영적으로 방심하지 않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