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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은 키워 가신다
창세기 37:18~36
조선말에 수입된 기독교 목사에게 더 천하게 붙이기 위해 어떤 예수장이, 더 나아가서 신내림까지 합쳐서 예수쟁이라고 불렀다. 예수 믿는 사람을 예수쟁이라고 부른다. 용기 있게 나아가는 자에게 기다리고 있는 것은 오늘 너무나도 천하게 부르는 예수쟁이라는 칭호가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오늘 본문에서 꿈꾸는 자가 오는 것이다. 꿈쟁이, 예수쟁이, 천하게 불림을 당한다. 꿈은 하나님이 주셨는데, 채색 옷을 입은 요셉에게 꿈을 이루기 위해서 걸어가게 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이라 말하시는 것이다. 그러나 가야하는 길이다. 이 꿈으로 인해서 일생이 힘든 요셉을 보면서 그 꿈을 어떻게 키워 가는지 오늘 본문을 통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꿈을 어떻게 키워 가는가 하면,
1. 정면으로 도전받게 하심으로 키워 가십니다.
미워하는 형들을 피하지 않고 직면해서 끝까지 섰는데, 형들은 멀리서 보고도 죽이기로 꾀했다. 혼자 온 요셉을 보고도 연민을 생길 법도 하지만 왕따 시키는 정도가 아니라 죽이기로 모의를 했다. 거짓말로 완전 범죄를 꿈꾸면서 그러면서 그 꿈을 어떻게 되느냐고 하나님까지 시험을 하게 된다. 그러니까 형들은 요셉이 무서운 것이 아니라 요셉의 꿈이 무서운 것이다. 사람들은 나보다 조금이라도 잘 되는 것이 너무나 싫어한다. 꿈을 막고자 한다. 아직 17살의 어린 요셉에게 너무나도 혹독한 시련이 닥쳤다. 오늘도 사단은 우리 예수꿈이 성취되는 것을 원치 않고 있다. 그러니 여기서 형들만 뭐라 그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꿈이 성취되는 과정에서 우리가 또 굉장히 약한 부분이 있고 훈련되어져야 하는 부분이 있게 때문에 요셉과 형들을 놓고 같이 훈련을 시켜 가시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꿈이 사단의 도전을 받았지만 요셉은 크게 써야 하니까 이런 도전을 받아야만 하는 것이다. 집집마다 이런 기가 막힌 문제기 있지만 믿는 예수꿈이 그렇게 사단의 도전에 망할 것 같은가?
2. 하나님이 주신 꿈은 보호가 되는 것이다.
요셉의 꿈을 보호하시기 위해 르우벤과 유다를 사용하십니다. 르우벤이 잘나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꿈이 보호되기 위해서 이렇게 상상하지 못할 사람을 준비해 놓고 쓰신다. 그러니까 요셉을 사랑해서 구해 준 것도 아니고 순전히 아버지에게 잘 보이려고 보호하시는 것이다. 요셉도 너무 웃긴다. 요셉은 그런 장소까지 100km를 가면서 양치로 가는 곳까지 채색 옷을 입고 가니까 분한 것이다. 그러나 요셉은 의식도 못하고 개념이 없고 욕인지 칭찬인지도 모르고 이러고 채색 옷을 입고 다니는 공주병, 왕자병이다. 그래서 요셉이 이 부분은 훈련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 유다의 역시 하나님께서 아무도 상상하지 못한 방법으로 요셉의 꿈을 키워가고 있었던 것이다. 어떤 사람도 감히 하나님의 꿈을 죽일 수가 없는 것이다. 요셉의 삶은 바로 이러한 하나님의 능력을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꿈을 보호하시기는 하셨지만 흥분을 감출 수 없는 요셉의 두 번의 꿈에 비해서 요셉에게 주어진 현실은 너무나 비극적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꿈을 키워 가시는 정말 방법인 것 같다.
3. 하나님의 꿈을 키워 가시는데 위로를 받지 못하는 슬픔으로 또 키워 가신다.
이렇게 믿음의 조상 야곱이 위로를 받지 못하는 슬픔 속에 쌓여 있게 되었다. 믿음의 조상인 야곱이 시간을 낭비하며 울며 애통하고 믿음의 눈으로 보지 못하고 자기 아들이 살아있는데도 죽었다고 생각을 하고 위로도 받지 못하는 일도 있게 되는 것을 보게 된다. 믿음의 조상이 이러는 것이다. 야곱은 자식들의 의해서 지금 자신이 속고 있는 것이다. 그 자식들이 못된 것이 아니고 자기도 자기 아버지를 속이고 장자권을 형에게도 속이고 아버지에게도 속여서 축복권을 받아내고 자기가 속임을 당해서 외삼촌에게 품삯을 10번이나 변혁을 당하고 라헬을 레아로 속임을 당하고 그러면서도 이 또 라헬의 중독을 끊어내지 못하고 라헬 라헬 타령을 하고 조강지처가 귀한지를 모르고 하나님이 기가 막혀서 라헬을 죽였는데도 정신을 못 차리고 라헬의 아들 요셉을 너무 이뻐하니까 편애하고 채색 옷을 입히니까 하나님께서는 요셉을 보낼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벌이기 때문에 라헬 중 독의 벌을 요셉을 이제 떠나보내게 하므로 톡톡히 벌을 받고 있는 것을 본다. 지금까지 당했던 슬픔과 비교도 안 되는 인생의 최고의 슬픔을 겪으면서 잡혀간 이후로 고통당하는 쪽은 야곱과 형들이 되는 것이다. 야곱은 믿음 없는 라헬밖에 모르는 것이다. 그러더니 라헬이 죽고 요셉밖에 모르더니 온 집안을 쑥대밭으로 몰아 놓은 것은 야곱이라는 것이다. 세상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진리는 심은 대로 거둔다는 뜻이다. 그래서 우리 앞에 벌어지는 어려움을 믿음으로 보는 지혜가 필요하다. 사실을 앞에서 두려움과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어가야 하는 것이다. 그러면 이런 사실이 팩트이다. 이 사실을 어떻게 해석을 해야 하는 것인가? 어떻게 꿈을 키워가야 하는 것인가?
4. 성경을 가지고 하나님의 섭리를 믿어야 되는 것이다.
아브라함이 이 땅으로 업으로 삼을 줄을 무엇으로 알리까? 내가 이 모든 것을 다 준다고 그러는데 내가 어떻게 무슨 사인으로 알겠습니까? 그랬더니, 너는 여기서 평안히 죽겠지만은 네 자손이 이 땅을 차지할 것이다. 이러한 예언을 주셨다. 그러나 아브라함이 400년 후에 땅차지 한다는 것을 믿었다는 것이다. 미리 이렇게 성경을 읽어두면 이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의 섭리가 믿어지는 것이다. 성경을 순서대로 구속사적으로 읽어가는 훈련을 하게 되면 내 인생의 꼬인 것들이 해석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방에서 객이 되는 예언이 이루어지려면 반드시 팔려야만 하는 것이고 총리가 목적이 아니고 애굽으로 내려가기 위한 역할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고 애굽으로 내려가는 도구가 바로 요셉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다. 성경을 이렇게 자세히 보면 그냥 답이 다 들어있는 것이다. 이 모두가 인도함을 받아야 함을 받으려면 하나님의 섭리를 성경을 가지고 날마다 묵상을 하면 자꾸자꾸 묵상을 하다보면 딱 걸리는 것이 있다. 환경으로도 걸리는 것이 있다.
왜 형들이 이렇게 악독해졌는가? 야곱의 편애로 인해서 걷잡을 수 없도록 타락하게 된 것이다. 사랑받지 못하면 타락합니다. 요셉은 형들의 상처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니까 이런 일은 형들에게도, 요셉에게도 있어야 되는 일들인 것이다. 열등감이 많은 사람들은 비교만 한다. 우리들은 잘 먹고 잘사는 것이 땅 차지하는 것이 소원이니까 400년 후에 땅 차지하는 것이 귀에 들어오지도 않는 것이다. 그러니까 요셉의 형들에 대해서 이해를 해야 하는 것이다. 내 주제를 인정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섭리가 바로 그런 것이다. 400년을 생각하면서 내가 오늘 기다리고 또 기다리고 참고 인내하면서 형들이 난리를 칠 때 왜 그러냐? 하지 말고 내 살아온 날의 결론인 것을 생각하고 뼈아프게 회개를 하고 인정하고 내 자신을 인정하고 내 주제를 인정하고 갈 때 각자 예수님의 꿈이 키워갈 줄 믿습니다.
맺음말: 꿈을 키워가기 위해서 조롱과 죽임과 잔임 함으로 정면 도전 당하게 하신다 고합니다. 그러나 이 꿈은 보호하신다고 하세요. 그러나 우리가 꿈을 키워가는 과정에서 위로를 받지 못하는 슬픔도 겪게 하신다고 합니다. 성경을 통하여서 하나님의 섭리를 깨달음으로 내 인생은 우연이 없다는 것을 아시기를 바랍니다. 늘 아직도 깨닫지 못하고 기억하지 못하는 나의 부족함과 죄 됨을 정말 깨닫기를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심은 대로 거둔다는 것을 아시기를 바랍니다.
* 기도제목
종율형
1. '나'라는 존재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지도록. 잘 객관화되어 질 수 있도록.
2. 매 시간 하나님의 감성을 잘 구해지는 내가 될 수 있도록.
보호형
1. 기도생활 잘 할 수 있도록.
2. 큐티생활 잘 할 수 있도록.
성남
1. 묵상을 할 때 모든 상황이 내가 되어져서 해석 잘할 수 있도록.
욱진
1. 큐티 가운데 제 상황적용을 구체적으로 하는 것
2. 건강문제로 일희일비 안하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