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창 38: 12~30 “ 그는 나보다 옳도다 ”
당신이 나보다 옳아 이것이 평생 안되는 것이 우리의 인생이다. 이것만 되면 모든 인생의 문제가 해석되는데 이게 안되는 것이 우리 죄인의 인생이다.
1. 내가 옳다.
한마디로 니책임이다. 유다는 요셉을 죽이고 이스라엘 공동체가 싫어서 떠났다. 떠나서 아버지가 이뻐하는 요셉을 팔아먹고 이제 떠나서 한 일이 이방여인과 결혼해서 아들 셋을 낳았는데 아들 둘이 죽고 이 모든 책임을 며느리에서 책임전가를 했다. 근데 아직도 유다는 내가 옳다고 해서 하나님이 또 아내를 죽였다. 수아는 아내이자 수아의 아버지 장인은 부자였다. 부자좋아해서 결혼했는데 아버지하고도 관계가 끊어지게 생겼다.
아둘람사람 히라가 반석같고 훌륭하고 빛나니까 믿는 친구보다 휠씬 있어보여 아직도 히라를 못 끊고 있는 것이다. 부인까지 죽으면 믿음의 공동체로 돌아가야 하는데 아직도 내가 옳기때문에 히라하고 노는 것이 너무나 좋아서 안 돌아가고 있다. 유다는 상처가 많은 사람이고 유다에게는 가족신화가 있고 가족비밀이 있다. 이 기가막힌 찌질한 것을 누구에게도 말하고 싶지 않지만 가나안땅에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믿음의 집안이었다. 믿음의 집안이니까 영적 선민사상이 있고 그래도 나는 괜찮아라는 가족신화가 있었다. 가족신화가 너무 수치스러운 일이 유다에게 있었다. 유다는 아버지의 야곱이 낳았고 자기의 같은 배에서 낳은 큰 형 르우벤이 서모 빌하와 통간을 했고 둘째 형 셋째 형은 살인을 하고 누이 디나는 강간을 당했다. 그리고 모든 형제들이 아무 죄가 없는 요셉을 팔아먹었다. 그래서 가족비밀이 너무나 많았다. 하지만 자기 집안은 괜찮은 집안이라서 숨기고 살려니까 유다에게 자기집안의 수치스러운 집안의 비밀을 주셨다. 하나님께서 갈대아우르에서 아브라함을 불러 내셔서 가나안땅에 와서 정착하라고 하면서 너무 연약한 아브라함에게 재물을 많이 주셨다. 그래서 저녀들이 경건하지 못하고 가나안문화에 동화되어서 유다의 아들들이 성적방종으로 죽임을 당한 것이다. 하나님은 이 유다의 가족신화와 가족비밀을 우리에게 다 보여주심으로 애굽으로 이주시켜서 애굽의 고센땅에서 400년동안 노예생활을 하게 할 구별되게 하신 계획을 갖고 계신 것이다. 돈을 좋아하면 절대로 훈련이 되지 않는다. 애굽 사람들의 수치스러워하는 사람에게 목축을 시킴으로서 다시 믿음의 땅에 돌아오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계획이었다. 여기 통로에 쓰이는 것이 요셉이고 잘나서 애굽에 가는 것이 아니라 이 유다처럼 형편없는데 은혜로 이끌어가는 것이라는 메세지를 주시기 위해서 급하게 유다가 등장된 것이다. 정말 그는 나보다 옳도다가 유다의 인생을 대표하고 있다. 이런 들키고 싶지 않은 비밀을 간직하고 너무 열심히 살고 있다.
작가이자 방송인인 태미 몰트비는 우리 주위에서 이렇게 거절 수치 부모에게 폭행 친척들에게 성폭력 이혼 등등에 상관도 없을 것 같은 착한 크리스찬들이 너무 많다고 말한다. 조금만 깊이 들어가 보면 모든 것들이 탄로 날까봐 두려움에 떨며 방황하는 크리스찬이 많다. 그래서 끝없는 절망감을 떠안고 살면서도 도리어 크리스찬이라는 이유로 절대로 드러내지 못한다. 그래서 얼마나 자신이 가혹한 시련을 견디고 있는 조차 못하면서 신앙생활을 한다. 안과 밖이 다른 삶이 치명적인 삶을 주는지 본인은 알지 못한다. 그래서 하나의 허물을 덮기 위해서 다른일에 몰두하고 끝없는 노력에 구속을 당하는 모습을 이것이 다 상한마음의 결과이다. 하나님보다 사람의 눈이 무서워서 거기에 민감하게 반응해서 자신을 더욱 채찍질을 하고 열등감 가족비밀이 많아서 절대로 헛점을 보이지 않고 언제나 성공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열등감이 많으면 내가 옳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열심히 살게된다.
2, 결정적 악을 행하게 된다.
다말이 변장을 하고 그리고 이제 시아버지를 유혹하러 나섰다. 다말의 동기는 셀라를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씨가 마르게 생겨서 다말이 갔다. 이해하기 힘들지만 이것이 신약적으로 예수 믿는 사람이 하나라도 생기기 위해서 영적 후사가 중요하다는 것을 가르켜 주는 것이다.
이제 유다는 슬픔을 일로 잊으려 했고 일로 잊는 사람이 돈이 생기면 쾌락과 음란으로 가는 것이다. 그래서 며느리를 창녀로 여겼다. 풍성한 양털로 인해서 하나님께 감사드리지 않고 영이 깨어있지 않고 육의 쾌락을 찾아서 가나안 생활에 젖어있는 유다를 보고 아들이 왜 죽어는지 알 수 있는 것이다. 아버지가 매춘행위를 하고 창녀를 찾는데 아들들도 똑같이 성적방종과 이기심으로 죽은 것이다. 왜 악을 저질렀는지 알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슬픔의 젖어있다가 일에 미쳐서 신전창기랑 놀아 나는데 그 신전창기가 며느리가 되며 결정적인 악을 범하게 되는 것이다.
유다가 드디어 죄의 흔적이 남게 생겼다. 자기가 옳다고 해서 자기의 씨가 잉태가 되었다. 도장과 끈과 지팡이를 그녀에게 줌으로 주도권이 완전히 다말에게 갔다. 동공체를 떠나서 혼자서 히라하고 잘 살아보고자 한 것이 아들죽고 놀아나고 매춘행위까지 하고 겉으로는 신실한 유대인이 되어 가지고 드러나지 않는 너무 악과 음란에 젖어있는 유다의 모습을 보여준다. 한번 자려고 염소새끼를 준다고 한다. 값을 치르고 기가막힌 우리의 거룩해 보이는 신실한 유다가 염소 한마리를 내고 여자를 샀다. 그런데 다말이 없어지고 나서 염소새끼를 보냈는데 다말을 못 찾았다. 그래서 순간적으로 드러날까봐 도장, 끈, 지팡이가 그때야 생각났다. 자기네 집을 상징하는 것을 갑자기 줘버려서 부끄럽당하게 생긴 것이 두려워 책임전가하게 된다. 하나님보다 인간을 더 의식하면 죄가 멀어지지 않고 더 큰 범죄의 기회가 오는 것이다. 유다도 얼마전에 행음했는데 며느리를 죽이라고 한다. 며느리하고 똑같은 경우인데 자기의 죄를 인정하지 못하고 인식하지도 못한다. 내가 옳기 때문이다. 공동체를 떠나서 잘 살아볼 것 같았는데 결국 성경에서 시아버지와 며느리가 간음한 죄는 한번밖에 안나온다. 이 끔찍한 죄를 예수님의 조상인 유다가 지은 것이다. 잉태까지 시켰는데 자기 씨인지 모르고 예수님의 씨인지도 모르고 며느리를 끌어내어 불사르라고 한다. 더한 악을 범하고 있는것이다. 내가 옳은 사람은 내가 옳다고 나한테 토달지 말라고 한다. 내가 옳은 사람은 다른사람이 늘 틀렸기 때문에 결사적으로 정죄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 책임을 전가하는 것이다. 다 책임전가하는 것이 신실한 남자들의 들키고 싶지 않은 비밀인 것이다. 자기 행동에 책임을 지지 않으려고 하면 우리는 단 한 발자국도 전진 할 수 없는 것이다. 크리스찬으로서 고통을 무릎쓰고 자기 행동에 책임을 지는 법을 배우지 않으면 누구때문에 라는 것은 아무런 이유가 될 수가 없다. 자꾸 환경으로 돌리고 내가 옳다고 하며 손가락질을 할 때 결정적 악을 범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성령이 임하지 않으니까 며느리가 잉태를 했다고 해도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성령님께서 깨닫게 해주셔야만 한다.
3. 이 땅에서 모든 문제의 해결책은 ‘너는 나보다 옳도다’이다.
한마디로 내 책임이라고 고백할 수 있어야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다. 다말이 끌려가면서 아버지의 물건을 보여주었다. 그러면서 이 물건의 임자가 내 아이의 아버지라고 한다. 그러니까 며느리가 유다보다 더 나쁘다. 유다가 책임을 망극하고 안하고 있으니까 며느리가 이것을 한 것이다. 지금까지는 깨달아 지지 않았는데 며느리가 끌려가면서 도장과 끈과 지팡이를 주니까 이때서야 깨달은 것이다. 그러니까 며느리의 행동때문에 유다가 자기 죄를 보게 된 것이다.
‘너는 나보다 옳도다’성경에서 제일 위대한 글이고 창세기에서 제일 중요한 키워드이다. 모두 책임전가만 하다가 내가 그를 내 아들 셀라에게 주지 아니 하였음이로다 하고 다시는 그를 가까이 하지 아니하였더라 이것은 다말이 창녀로 변장해서 자신을 속이고 임신한 일이 유다 자신이 저지른 잘못에 비하면 너무 약하다는 것이다. 이것이 절대적인 의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너는 나보다 의롭다’ 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상대적인 의로서 이제 유다보다 다말이 더 의롭다라는 뜻이다.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고 하는데 믿음이라는 것이 인간은 절대적인 믿음이 누구도 없는 것이다. 상대적인 믿음으로 너와 나의 사이에 정말 믿음이라고 하는 것은 내가 지금까지 그래도 아버지 믿음의 집안이지만 니가 이방사람이었지만 넌 나보다 훨씬 옳다 라고 이야기 하는 것이다. 나보다 옳도다 막 그냥 너무너무 자기 죄를 보면서 상대적인 의를 이야기하니까 이것을 공동체앞에서 며느리가 옳다고 이야기하지않으면 죽게 생겼다. 그래서 이것이 공동체의 고백인 것이다. 공동체에서 창녀와 동침했고 내가 구원에 대해서 관심이 없었고 며느리가 욕정으로 나를 유혹한 것이 아니고 기억을 물으려고 예수를 우리집에 믿게 하려고 예수씨가 오게 하려고 저렇게 수치스러운 일을 감당했다고 죽음을 불사르고 화형에 처해질 위험을 감수하고 우리집을 위해서 이 일을 감당한 것은 바로 다말이라고 한다. 다말을 너무나 의를 높여 주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11절에서 셀라를 주겠다고 하고 약속을 무시한 것을 다 고백하고 유다의 말이 인정되어 주고 다말은 찬란히 빛나는 구속사의 계보에 마태복음 1장까지 이름을 올리게 된 것이다. 다시는 다말을 가까이 안 했다는 것은 근친상간의 부도덕한 범죄로 끝난 것이 아니고 영적후사 잇기위한 뜻을 정확히 지금 여기서 알게 된 것이다. 너무나 유명한 이야기를 유다가 한 것이다. 여기에서 예수님이 이제 오게 되는 것이다. 너무나 힘들고 태미몰트비가 그런 상황에서 너무 지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발견한 것은 정직이라는 것이다. 어느 무엇보다 삶에서 하나님의 사역을 방해하는 것은 아무 문제가 없다고 우기는 것이다. 자신의 단점에 대해선 정직해야 한다. 나의 고통이 되어서 정직해야 된다. 이것을 배워야 하는 것이다. 아프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치유는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정신과를 스스로 가는 것은 치유가 시작된 것이다. 그런데 스스로 죄를 지은것이든 누군가의 희생양이 되어서 지금 내가 그런 열등감을 가졌던 것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고 이제 내가 담대한 확신을 가지고 사랑하고 용서받았다면 그때부터 자유인 것이다. 나의 모든 환경이 그때부터 예수님의 대한 문제로 바뀌는 것이다. 내가 그 문제를 끼고 있을 필요가 하나도 없는 것이다. 예수님께 toss하면 되는 때에 우리가 이것이 아직 안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제 우리는 하나님이 원하는 것은 내 삶에 대해 정직하고 내 고통과 내 모든 단점에 대해서 정직해야 되는데 우리는 기도와 성경에만 매달리면서 나름 애써서 만족하고 감사해야해 하면서 이런것도 강박증이다. 하나님은 이런것을 원하지 않으신다. 당신께서 알려주시는 신뢰의 마음을 열기를 원하고 경청하고 듣기를 원하시는 것이다. 그런데 이 지금 다말처럼 이런 수치스러운 것을 온 천하에 고백을 해서 우리가 은혜를 받는 것이다. 이런 고백을 하면 이것은 겸손이 아니라 우리는 굴욕처럼 느낀다. 이처럼 느끼는 것은 아직 죄인이라고 느끼는 것이 아직 멀은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조금만 해도 상처를 받는다. 그러므로 고통과 수치심을 예수 그리스도와 다른 사람에게 감추지 않고 과감히 들어낼 때만이 우리는 다른 사람의 깊은 고통의 닫는 길을 찾을 수가 있는 것이다. 오픈했을 때 우리가 닮는 것이고 치유가 일어나는 것이다. 자신들의 단점과 모든 고통에 정직한 얘기를 들으면 우리도 정직해 지는 것이다. 그래서 치유가 일어나는 것이다. 혼자서 결코 끙끙 앓지 않아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베풀어주신 은혜를 잊어버렸을 때 옆에서 계속적으로 환기를 시켜주고 하나님이 준비하신 큰 그림을 볼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는 사람과 계속 나누어야 하는 것이다. 결국은 다말이 유다를 도와준 것이다. 우리는 너무나 우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말고 하나님앞에서 애통하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신뢰인 것이다. 애통하니까 하나님을 신뢰하고 눈물을 흘리니까 위로를 받는 것이다. 내가 날마다 내 죄때문에 애통하고 하나님을 신뢰하는 표시인데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에 나는 늘 하나님께 도움을 받고 위로를 받았는데 그 훈련을 계속 받으면 어느날 내가 다른사람의 손을 잡아주고 있는 것이다. 내가 딱 도와주는 사람으로 변해서 나는 운 것 밖에 없는데 내 죄때문에 울었는데 애통했는데 어느날 누군가가 내가 손을 잡아주고 있는 것을 보게 되는 것이다. 대단한 스킬을 가지고 상담을 하고 기술적으로 테크닉적으로가 아니라 우리는 정직한 것이 보물인 것이다.
4. 그는 나보다 옳도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온 집안을 살리는 것이다.
믿음이 성숙한 사람은 죽을때 까지 잘못한 것이 있는 것이다. 이것은 상대적인 의이다. 내가 그 사람이 믿음이 없어서 잘난척을 해도 내가 옳다고 하는데 너는 나보다 옳다라고 이야기해 주는 것이 의다. 엄청난 축복을 받게 되는 것이다.
다말이 난산을 했다. 장자가 나오다가 도로 들어갔다. 다말이 이 집에 시집와서 정말 힘든 일을 겪었고 비정상적인 시아버지관계를 통해서 쌍태를 임신했는데 거기다가 3개월때 화형에 처할 위기를 겪었고 정신적인 고통을 많이 겪었고 자기는 이방인이라고 얼마나 속에서 나는 불신결혼해서 들어왔는데 꼭 자기때문에 이 집안이 저주받는 것처럼 첫째남편 둘째남편이 죽고 구원도 못 시키고 아들도 구원을 못 시키고 다말은 당하고 당하고 또 당한 인생밖에 없는 것이다. 유다보다 겸손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우리는 부끄러운 일을 자존심때문에 아무도 안하는 것이다. 다말이 그런데 이 일을 한 것이다. 우리 집에 구원을 위해서 한 것이다.
하나님은 유다와 다말사이 불륜관계 속에서 난산을 통해서 언제나 약할 때 강함을 주는 것이다. 이 사건을 불륜으로 이해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다말 혼자서 중심을 잡고 가문의 가계를 잇게 하는 구속사적으로 중요한 사건인 것이다. 이 사건을 하나님이 칭찬하셨고 후대에 룻기에도 나왔다. 믿음이 없으면 불륜으로 보이고 저주로 보인다. 세상적으로는 저주이고 창피스러운 일이지만 인간은 아무것도 선한것이 없기 때문에 그 사람들도 구속사를 알고 있었던 것이다. 유다는 그동안 공동체를 떠나서 지체가 없었기 때문에 자기 혼자서 홀로 독야청청했기 때문에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것이다. 이제 다말이 옳다고 한 것이다. 유다가 옳다고 한 이야기를 야곱이 알아 들었다. 야곱이 거듭난 사람이라서 알아먹었다. 요셉이 너무나 훌륭해도 믿음의 사람 야곱은 요셉보다 유다가 믿음이 더 있다는 것을 알고 유다를 예수 그리스도의 조상으로 축복하고 이 세상을 떠난 것이다.
인생은 우리 뜻대로 되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인생을 통제하고 조절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아니다. 게을러서 그런거야 조금만 더 부런해지면돼 등등 이런 거짓말을 믿고 살다가 정반대인 믿음에 빠지게 되며 나중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절망감에 다 빠진다는 것이다. 인생의 벽에 부딪히면 우리가 할 수 없는 일을 하나님께서 대신 해주시겠다는 사인인 것이다. 그러니까 항복은 포기하고 아무것도 안하고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는 행위이다. 적극적으로 의식적으로 하나님께 돌아서는 행위가 항복인 것이다.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는 행위 혼자서 내가 다 해보겠다는 태도는 지극히 파괴적인 태도인 것이다. 하나님은 관계를 통해서 우리를 치유하신다. 공동체에서 유다와 다말이 회복이 되었다. 서로 죄를 공동체에서 고백할 때 치유되는 것이다. 이것이 상대적인 의이다. 그래서 유다가 공동체에서 고백을 한 것이다. 진짜 죄라고 생각하면 공동체에서 고백하는 것이다. 아무런 앙금이 없어야 진짜인 것이다. 혼자서 하겠다는 태도는 아주 파괴적인 태도인 것이다. 아직도 공동체에 안 들어가는 것은 아둘람 사람 히라가 좋아서 세상이 좋아서 아직도 예수 믿는 공동체가 찌질해 보여서 안 들어간 것이다. 그래서 기다릴수 밖에 없다. 멀고 고통스러운 길을 돌고 돌아서 결국은 제자리로 돌아오는 것이다.
자기 통제해서 내가 뭐든지 할 수 있다는 비현실적인 기대를 내려놓으면 하나님이 일하시기 시작한다. 하나님이 주시는 진정한 소망을 얻을 수가 있는 것이다. 이런 일을 유다의 며느리 다말이 주님때문에 나와서 기가막힌 수치를 오픈하는 것을 하나님이 이뻐하신다.
그는 나보다 옳도다. 우리는 늘 내가 옳다고 한다. 비밀과 신화에 쌓여서 내가 옳다고 해서 몸이 부서지도록 열심히 산다. 그 책임전가할 상대를 정해놓고 가족신화를 위해서 일에 미치고 음란에 미친 악을 행한다. 결정적인 악을 행하고 드러나기 전에는 내가 옳다가 주제인 것이다. 이제는 드러난 수치사건을 통해서 내죄를 봐야한다. 드러난 수치사건이 없다고 죄가 없다고 생각하면 안된다. 이제 며느리와 동침한 사건통해서 며느리가 옳다고 할 수 있었기 때문에 이 수치와 조롱을 무릎쓰고 이 집안에 구원을 위해서 내가 정말 그 오픈한 다말때문에 그 집이 우리집을 살린다고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정직한 것은 보물이다. 내 아픔에 직면하고 공동체에 고백하게 될 때 상처가 치유되고 자유함이 생기고 예수님이 오게 된다. 우리는 신실한 남자 여자에게도 하나님의 은혜가 끊임없이 필요하다. 그래서 그것이 공동체의 고백인 것이다. 누구를 보고도 그는 나보다 옳도다를 고백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기도제목
김선미 (80) 하나님과 날마다 교제하도록
하나님께 물어가며 진로 잘 찾아 갈수 있도록
장선경 (80) 믿는 사람 만나는 환경 주시길
매일 어머니께 사랑 표현하길
액티브하게 활동하길
진희언니 (79) 서로 잘 맞는 배우자 만날 수 있도록 (믿음의 콩깍지가 생기도록 ㅋㅋ)
아버지 전도축제 오시면 마음이 열리셔서 계속 교회 나오실 수 있도록
오빠와 오빠여자친구 교회 잘 정착 할 수 있도록
'옳소이다' 잘 할 수 있도록
최서윤 (80) 믿음의 배우자 만날 수 있도록
동생 잘 섬기고 교회 잘 나올 수 있도록
섬기는 자리 시기와 방법을 기다리며 기도 할 수 있도록
동생 사업 잘 준비해서 오픈 할 수 있도록
새로 등반한 김선미 자매 아직 보지 못했지만 같이 기도 해주세여~~주일날 볼 수 있기를......
옥아, 현정이도 못나왔는데 이번 주일엔 꼭 얼굴보여주기~~~ㅋㅋ
내 죄보며 옳소이다 인정하는 한 주 보내시길 바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