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창 39: 1~6 “ 요셉의 형통 ”
요셉을 팔아먹은 유다는 형편없이 악을 행하다가 찌질함을 보여주고 있다. 오늘부터 이어지는 스토리는 요셉의 형통이다. 오늘의 본문에 요셉이라는 말이 8번이 나오고 요셉을 지칭하는 그라는 말도 9번쯤 나온다. 합쳐서 17~18번 정도 나오는 것은 요셉의 형통이 너무나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것이다. 요셉의 이름은 나의 부끄러움을 씻으셨다 라는 뜻이 있고 다시 다른 아들을 내게 더하시기를 원하노라 라는 뜻도 있다. 그래서 이름대로 부끄러움을 씻기 위해서 너무 열심히 일했고 하나를 가지면 또 다른 것을 가지기 위해서 항상 열심히 살았다. 그런데 유다는 너무 찌질해 보이는 것 같아도 태초부터 유다의 이름은 여호화의 이름을 찬송하리로다 라는 뜻이다. 이름대로 된 것 같다. 오늘은 요셉의 형통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 이제 그 형통에 대해서는 이제 앞길이 열리고 모든 장애물을 넘어가고 건너가고 결국은 다 모든 장애물들을 헤쳐나가는 번영을 뜻하는 것이 요셉의 형통이다. 유다는 찬양하는데 요셉은 형통했다고 한다.
1. 이끌리는 형통이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들을 이주시키기 위해서 선발대로 요셉을 보내신다. 내가 너무 애매한 고난을 받을 때 요셉이 그런 애매한 고난을 받을 때 하나님께서 많은 축복을 쏟아 부어서 주시는 모델이 요셉이다. 진짜 애매한 고난을 당해 하나님께서 너무 미안하셔서 축복을 바가지로 주신 것이다. 자기의 의지가 하나도 없을 때 무조건 강한 힘에 의해서 그렇게 몸이 찢겨지고 마음이 찢겨진 사람들을 하나님은 육적으로도 축복을 많이 하신다. 요셉에게 꿈을 주시고 꿈을 키워가시기 위해서 애굽의 권력자 보디발에게 보내셨다. 요셉의 형들은 동생이 도망가지 못하게 물없는 구덩이에 던져 놓았다가 애굽을 왕래하는 장사꾼에게 팔았다. 요셉이 팔려갈 때 안 가려고 발버둥을 쳤다. 그때 요셉의 나이가 17살에 불과하다. 그때 심경이 형들에게 대한 원망과 아버지 보고싶고 고향 생각으로 힘들었을 텐데 자신의 처지를 생각할 때 노예로서 무슨 소망이 있고 앞으로 무슨 인생에 기대를 할 수 있을까 생각 했을 것이다. 사실 요셉으로서는 겪을 수 없는 인간으로서는 겪을 수 없는 인생 최대의 배신을 겪어 자기 인생을 불공평이라고도 말할 수 없는 불공평이라는 것이 도리어 사치스러운 고난을 요셉이 겪은 것이다. 우리는 인생이 다 불공평하다. 국민의 74% 한국은 공정하지 않은 나라라고 평가를 한다. 그리고 가장 불공평하지 않은 것이 정치권이라고 한다. 국민들이 모두가 불공평한 인생을 살고 있다. 그래서 화가 나서 너무나 미워하다가 자기가 누리게 되면 안누리는 사람을 무시하게 된다. 이런 악순환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이런 악순환을 해석하지 못해서 돈벌려고 악을 쓰고 돈을 벌면 악을 행하게 된다. 비굴하다가 교만하게 되는 것이다. 오늘 말씀은 불공정을 넘어서 요셉이 당한 것은 사람으로는 겪을 수 없는 불공정한 일이다. 진짜 어린 나이에 당하기에는 인간으로서 상상할 수 없는 일을 겪은 것이다. 이스마엘사람들은 사람을 사서 팔면 수지가 맞다. 그래서 이스마엘사람들이 요셉을 사서 애굽에 간 것이다. 보디발장군이 요셉을 보자마다 탐나서 사들였다. 그런데 본문에는 이스마엘사람들에게 요셉이 이끌려 갔다고 그랬는데 시편 105:17 보면 한사람을 앞서 보내셨음이요 요셉이 종으로 팔렸도다 그랬으니까 분명히 이스마엘에게 끌려왔다고 했는데 이것은 하나님께 이끌려 간 것이다. 이스마엘에게 이끌려 간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 이끌려 간 것이다. 요셉의 괴로움을 보고도 듣지 않은 것이 형들이었다. 근데 하나님의 방법은 요셉을 애굽에 보내야 하는데 요셉이 절대로 안 가서 보내는 방법이 형들을 시켜서 장사꾼에게 파는 것을 허락하신 것이다. 이스마엘사람들이 돈을 주고 산 요셉을 놓칠까봐 감시하면서 강제로 끌고 애굽에 갔다. 애굽이 부자나라여서 제일 비싸게 받아먹을 수 있는 곳으로 데려간 것이다. 하나님께서 보내시지 않았으면 팔아먹지도 못하고 이끌고 가지도 못하는 것인데 요셉은 원치 않았던 곳에 원치 않았던 상태에 이렇게 직면하게 되고 떨어지게 되었다. 요셉을 향한 하나님의 크신 뜻과 목적이 있었던 것이다. 가나안 땅 자기집에서 아버지의 편애속에서 채색옷을 입고 성장한다면 나중에 큰 사람이 되기 힘들다. 애굽이라는 나라는 당시 최고의 문명국이니까 거기 미리 보내서 가르치고자 하는 하나님의 뜻이 있는 것이다. 이 계획과 목적을 우리는 모른다. 요셉은 종으로 갔지만 13년만에 총리가 되었다. 그것이 죽기 보다 싫은 길이었고 가보면 종살이라는 고생이 기다려도 그것은 하나님께서 연단하여 키우고자 하는 이런 계획이 있었던 것이다. 하나님께 이끌려 가는 사람이 형통하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내가 하나님대로 말씀대로 묵상하고 기도하면서 내가 원치않은 길을 간다하더라도 그 길은 반드시 하나님께서 형통케 하시는 길이라 믿어야 한다. 나는 앞길을 모르지만 하니님께서 내 숨소리도 잊지 않으시고 응답하시는 하나님을 믿어야 한다. 애굽에서 종노릇해야 장차 애굽에서 종노릇하는 백성들을 구해낼 수 있는 것이다. 이때 애굽이 경제적으로 번영하고 황금시대로 불릴만큼 번영을 누렸다. 강력한 국가였기 때문에 여유가 있어서 여러 사업을 하며 나라가 아주 부강해졌다. 그래서 이 시대 애굽의 관료들은 너무 지적이고 인격과 덕망을 갖춘 사람이었다. 이런 이 시기에 당연히 많은 노예들이 애굽을 팔려오고 있었는데 이 요셉이 이끌리고 내려가고 팔려간 이 때의 바로 애굽의 귀족 보디발이 이제 요셉을 사게 된 것이다. 이제부터 시작될 요셉의 노예생활 13년이 이렇게 하나님의 장중에 붙들린바 된 인생이었다는 것이다.
이끌려 내려간 곳에서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니 형통한 자가 되는 것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자는 힘든 곳에서 절대적인 예수꿈이 있어 예수꿈을 위해서 그곳에서 또 다른 비전이 되게 하시고 그때마다 조금씩 달라지겠지만 여기서는 보디발을 잘 섬기고 감옥에서 잘 섬기고 그때그때마다 예수꿈을 위해서 그 어려운 환경들이 또 다른 비전들이 되게 하시는 것이다. 종살이하는 그곳에서 형통한 자가 된다는 것은 이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의 고센땅에 모아다가 훈련을 시키야되는 것이 깔려있기 때문에 하나님은 요셉을 축복하셔야 되는 것이다. 근데 옛날 이스라엘과 그의 자녀들은 야곱에 내려오면서 가나안 땅만 하나님만 계시고 가나안 땅을 벗어나면 큰일나는 줄 알았다. 근데 가나안 땅을 벗어난 요셉이 애굽에서 종노릇을 하고 있는데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으로 성전우상주의에서 벗어난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가나안땅보다 요셉이 애굽에 와서 종노릇하면서 더 잘 믿게 된 것이다. 형들의 질투에 의해서 팔려갔지만 이런 핍박까지도 축복으로 바꾸시는 것은 하나님이시다. 그래서 들에서 노동만 하는 것이 아니라 보디발의 집에서 일을 하며 조금조금씩 올라간 것이다. 형통하다는 것은 요셉의 형통은 사람들에게 계속 사랑을 받는 것이다. 이방인인 보디발이 요셉의 정직함과 성실함을 보고 요셉이 믿는 하나님을 인정하게 된다. 그래서 그가 행하는 모든 일마다 하나님께서 관계하신다는 것을 눈으로 보고 마음깊이 깨닫게 되었다. 믿지않는 자들이 믿는 우리를 보고 하나님을 볼 수 있어야 한다. 무슨일이 와도 요셉은 잘되는 일뿐만 아니라 모든일에 한결같이 믿을만한 사람이고 신뢰의 대상이 될때에 함께하심을 보는 것이다. 그래서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케 하심을 보았다는 것은 기쁜일만 형통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어떤 일이 와도 사람의 감정의 높낮이가 없어야 된다는 것이다. 어떠한 환경에서도 한결같이 범사에 형통해야 한다. 언제나 해석을 잘 하니까 그래서 신뢰의 대상이 된 것이다. 우리는 이끌려가도 요셉의 형통을 우리것으로 삼아야 한다.
2. 은혜로 섬기는 형통을 주신다.
은혜를 입어서 섬겼다는 것은 요셉이 주인에게서 은혜를 발견했다는 것이다. 그 보디발의 눈들에서 은혜를 발견했다는 것은 너무나도 애정과 신뢰의 눈으로 요셉을 바라본 것이다. 은혜를 입어서 요셉이 죽을지 살지 생명을 내놓고 목숨을 바쳐서 충성을 한 것이다. 보디발의 눈속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맛본 것이다. 예수믿지 않는 사람들 가운데도 이렇게 은혜를 입을 수가 있어야 한다. 그래서 요셉이 은혜를 입어 섬긴다는 것이 축복인 것이다. 보디발장군이 하는 일을 보니까 자기보다 더 잘해서 사랑을 열심히 주고 받다보니까 은혜를 입어서 섬길 수 있는 원동력이 되는 것이다. 노예지만 은혜로 섬기니까 요셉이 권위있는 섬김이 되는 것이다. 내가 은혜로 섬길 때는 권위있는 섬김인데 내힘으로 섬기면 시간이 지날수록 생색이 나서 지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보디발은 요셉을 선택한 후에 그 범사에 형통케 하심을 보았기때문에 사실은 성공이 뒤따랐다. 남에게 복의 근원이 되려면 고달픈 인생을 살지 않고는 안되는 것이다. 내가 상대방을 기쁘게 해주고 나로 인해서 얼마나 기뻐졌는지 생각해야 된다. 내가 성공을 가져다 주는 자가 되어야 한다. 그러려면 목숨을 받칠만큼 충성을 해야하고 은혜를 받고 섬길 때 하나님은 요셉이 하는일에 축복을 주신다. 왜냐하면 하나님때문에 일을 하기 때문이다. 은혜로 섬기면 범사에 모든것을 위임을 받지만 생색으로 섬기면 이제 모든것이 있던 것까지 달아난다. 요셉의 대한 신임은 보디발과 그의 토지까지 큰 축복을 가져왔다. 여호와께서 요셉을 위하여서 보디발의 집에 복을 내리셨다. 믿는 나때문에 내가 가는 곳이 토지까지 복을 받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복의 전달자인 것이다. 요셉은 죽을 수 밖에 없는 환경가운데서 자기 인생의 해석을 잘함으로 말미암아 은혜로 섬겨서 주인까지 복을 받게 한 것이다. 근데 이것은 보이지 않는 차이이다. 사람들은 알수 없는 차이인데 그 알수 없는 차이때문에 내가 형통하게 되는 것이다. 손대는 일마다 슬슬 풀리는 사람이 있다. 대단히 잘난것도 아닌데 학창시절에 시험보면 그 사람은 꼭 아는 문제만 나오고 회사입사해서는 칭찬을 혼자받고 그리고 출세도 잘 되고 좋은 배우자를 만나서 만족스러운 생활을 하고 투자만 하면 이익이 나고 어려운 일이 생겨도 누군가에 도움을 받아 금세 풀려나는 것이다. 그런 사람들의 비결이 궁금해서 꼼꼼히 들여다 보지만 우리는 분명한 차이를 찾아내지 못한다. 그래서 운이 좋을 뿐이라고 단정을 짓는다. 우리는 그런 모든 사람들이 운은 타고나는 것이라고 여긴다. 타고난 대상으로 일컫는건 운이 아니고 팔자라고 한다. 팔자는 정해진 것이고 운이라는 것은 흐름이라는 것이다. 누구에게나 운이 있다는 말은 맞는데 다만 발견하지 못하고 지나치는 일이 많다는 것이다. 왜 누구에게나 오는 행운을 어떤이는 발견하고 어떤이는 발견하지 못하는 것인가?? 대부분의 행운은 일과 사람을 통해서 찾아온다. 진심으로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다른 사람들을 기쁘게 하는 과정에서 행운을 만날 기회가 늘어난다는 것이다. 행운을 부르는 황금율은 한마디로 정의하면 좋아하는 일을 남을 위해서 하며 기꺼이 욕을 먹는 것이다. 재수없는 사람은 누구나 슬슬 피한다. 그 사람을 재수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 사람 스스로도 자기가 재수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재수없는 사람의 공통점은 행운을 알아보지 못하고 스스로 발로 차버린다는 것이다. 행운은 대개 사람의 얼굴을 하고 찾아오는데 재수없는 사람은 그것을 알아보지 못한다. 그것은 남을 깔보는 습성때문에 행운이 찾아오는데 항상 발로 차버리기 때문이다. 반면 운이 좋은 사람은 행운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행운이 최대한 오래 머물도록 상황을 관리하고 불운을 막기위해 신경을 쓰고 살다보면 피할 수 없는 불운이 찾아올 수는 있지만 오래 머물지 않도록 한다. 그래서 불운을 항상 행운으로 바꾸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힘이 센 행운은 외부에서 만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내면에서 찾아내는 것인데 그 행운의 이름은 좋은 해석이라는 것이다. 좋은 해석앞에서는 아무리 무서운 불운과 악운이라도 꼬리를 내리고야 만다는 것이다. 이것은 보이지는 않지만 결정적인 차이인 것이다. 그래서 요셉이 너무 힘든 상황이지만 좋은 해석을 함으로 은혜로 섬겨 형통케 되어서 주인의 집에까지 복을 넘치도록 주게 한 것이다.
3. 청지기로서의 형통을 주신다.
종에게는 소유권과 관리권이 없다. 청지기에는 소유권이 없지만 관리권이 있다. 요셉이 하도 일을 잘 하니까 관리권을 맡겼다. 주인의 전재산을 맡겨 잘못관리하면 진노를 면하지 못하는데 요셉이 너무 주인집을 잘 관리해서 애굽의 귀족생활을 배우게 하셨다. 그리고 나중에 나라의 살림을 하게 된 것이다. 요셉이 살림을 해봤기 때문에 나라살림을 할 수 있었던 것이고 감옥속에서 정치범을 만났기 때문에 또 정치를 배우고 청지기를 잘 하니까 나라도 맡겨준 것이다. 나한테 맡겨진 일을 내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면 모든 이 세상의 것을 다 우리에게 맡겨주신다. 요셉은 또한 용모가 준수하고 아담했다. 요셉은 바로왕을 만나서 협상을 해야 하는데 얼굴이 못 생기면 안되는 것이었다.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서 요셉이 너무나 불운의 역할을 한 것이다. 그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만세전부터 여셉은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작품이었다. 모든것이 형통했는데 하나님께서는 기가막힌 너무나 불이익을 당하고 죽음에 이르는 배신을 당한 요셉에게 쏟아부은 복을 주셨다. 이것이 오늘 말씀 주제인 것이다.
요셉의 형통은 이끌려 내려가다 하나님이 이끄셨다는 것을 아는 것이 형통인 것이다. 고난은 하나님께서 섭리하신 작품이니까 은혜로 섬기는 형통으로 나가야 한다. 내 고난을 좋은 해석으로 해석해서 나뿐만 아니라 내옆에 모든 사람에게까지 복의 통로가 되게 하시고 청지기적 형통까지 허락하신 요셉의 형통을 위해서 우리가 다 나아가야 한다.
기도제목
선경 (80) 억지로 수련회 또래모임 교회 섬기는 일 할 수 있도록
어머니께 애정표현 할 수 있도록
식욕 절제해서 다이어트 할 수 있도록
진희 언니(79) 아버지 다음주에도 말씀들리고 우리들교회 정착 하실 수 있도록
오빠와 오빠 여자친구 교회에 잘 정착 할 수 있도록
믿음의 배우자 ( 가족구원을 같이 할 수 있는 배우자) 만날 수 있도록
몸이 아픈데 건강 회복 될 수 있도록
서윤(80) 동생에게 내 열심이 아닌 하나님의 은혜로 섬길 수 있도록
믿음의 배우자 만날 수 있도록 (서로 알아보기...)
동생 사업 준비 잘하고 잘 될 수 있도록
교회 섬길 부서 잘 기다리고 인도함 받기를....
모두 축복의 통로가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