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설교
창 39: 6~23 “ 범사에 형통 ”
하나님께서는 요셉을 축복해서 형통할자가 되게 하셨다. 여호와의 복이 보디발의 집과 밭에 있는 모든 소유에 미치게 되었다. 분명히 일이 잘되고 형통하게 된 것이 사실인데 여호와의 복이 그의 모든 소유에 미친지라 했는데 보디발의 아내에게는 이 복이 미치지 않았다. 그래서 그녀는 요셉의 외모에 반해서 요셉을 유혹하기 시작했다. 요셉의 어머니 라헬도 용모가 곱고 아리따웠다고 했는데 라헬과 용모가 그렇게 칭찬을 받는 둘을 보면서 요셉의 많은 축복가운데서 이 뛰어난 외모로 인해서 불같은 시련이 온다. 라헬이 외모로 평생 야곱을 힘들게 했는데 요셉도 채색옷 입은 외모로 인해서 형들의 질투를 받더니 이제는 여자의 유혹을 끈질기게 받게 된 것이다. 용모가 준수하고 아름다운것이 축복만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하나님때문에 용모가 쓰이면 너무 좋은데 그러기가 너무 어렵다. 유혹을 받을 일이 너무 많고 시간낭비 할일이 많고 겸손하기가 너무 어렵게 된다. 지난번에 형들이 팔아먹고 죽이려고 하는데 여기서 은혜로 섬기고 원치않지만 이끌려가는 형통 청지기적인 형통 이런 형통을 우리에게 보여주는데 오늘은 요셉이 용모로 인한 유혹에서 어떻게 형통케되는가를 보여준다. 전체적인 주제가 불같은 유혹이 오지만 아주 끈질기게 적용하고 형통하게 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1. 유혹에 형통한 모습을 보여준다.
노예로 요셉은 팔려갔다가 좀 여유로워 졌다. 그런데 너무나 극적인 유혹이 찾아온다. 당시 최고의 실력자들중에서 손꼽히는 시위대장의 집에서 요셉의 말을 거역할 자가 아무도 없었을 이때의 권력을 가진 보디발이 그만큼 바쁘고 가정에 소홀했을 것이다. 시위대장이기 때문에 부인이 외로울 수가 있었다. 애굽이 국가적으로 번영을 이루자 겉으로는 아주 지성적인것 같지만 뒤로 보면 고위관리직 부인들은 일거리가 없어 각나라에서 잡혀온 노예들과 아무렇지도 않게 행음을 했다. 부인은 서슴없이 요셉보고 나와 동침하자고 교만하게 말했을 것이다. 이때 요셉의 상황은 어머니를 어린 나이에 잃고 아버지도 잃었다. 그리고 청년의 대의 정욕을 피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 상황에 어머니같은 이 사람이 요셉에게 관심과 따뜻한 사랑을 부어주는데 특별히 성적으로 민감한 요셉에게 얼마나 이것이 어려운 시험이었는지 알아야 한다. 보디발의 아내가 끈임없이 성적인 유혹을 한다.
당시 애굽에는 아시스라는 여신이 있었는데 그 제사에서는 남녀가 음란한 행위를 하는 것이 공식적인 순서로 들어가는 시대였다. 남녀가 관계를 하고 공개적으로 하는 것이 하나도 죄라고 인식하지 못하는 어떤 가치관이 완전히 무너진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에 지금도 예수가 없는 사람들은 어떤 것이 죄인지 모르는 것이다. 그런데 요셉은 보디발의 아내가 자신을 유혹을 했을 때 그 주인이 자신을 신뢰했고 그 주인의 아내이기 때문에 인간적인 신의도 있고 내가 양심을 따라 버릴수도 없고 내가 어떻게 그보다 더 하나님께 악을 행하리이까 하며 이것이 하나님께 악이라는 것을 알았던 것이다. 이것을 알아야 유혹을 끊을 수 있는 것이다. 이세상에서 우리가 유혹의 짜릿함보다 무서운것 더좋은것이 있어야 끊는 것이다. 더 좋은것을 제시해야 하는 것이다. 요셉은 형들이 죽이려고 했을 때에도 건져주셨고 구덩이에 들어갔을 때도 물이 없음으로 살려주셨고 팔려간 애굽의 시위대장에 오게 하신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이 함께 하셨기때문이라는 것을 고백하지 않을수 없는 그런 하나님을 이제 만나는 것이다. 내 힘으로는 유혹을 못끊는다. 그래서 우리는 더 좋은 성적인 만족보다 더 좋은것은 이 세상에는 하나님밖에 없는 것이다. 더 좋은 예배의 맛을 보게 해야 하는 것이다. 사람의 힘으로는 못끊는데 하나님은 능력이 많으시기 때문에 내가 하나님이 들어가서 내 죄가 보이는 사람은 저절로 끊어지는 것이다.
마귀가 요셉을 유혹할 때 항상 요셉의 가장 약한 부분을 공격했다. 사단은 어디에 약한지 다 안다. 그래서 그 부분을 늘 공격을 하기 때문에 약점을 내가 파악하고 그것을 보강해 놓지 않으면 우리는 여러가지 죄악으로 죽는 것이 아니라 나의 약점으로 인한 한가지 죄악으로 죽게 되는 것이다. 사소하게 보았던 한가지 죄악으로 죽는 것이다. 그래서 요셉은 유혹이 승리했다.
2. 끈질긴 유혹에도 형통한다.
한번 유혹했으면 웬만하면 물러가는데 계속해서 유혹을 한다. 모든 희롱에는 돈이 있다. 성희롱도 상사가 보직을 걸고 하는 것이기 때문에 다 돈과 결부되는 것이다. 그 당시 노예는 새 한마리값도 안되는 생사여탈권이 주인에게 달려있는데 그 요셉의 위치에서 이제 거절하기가 하늘에 별따기인것 이다. 이 끈질긴 유혹에도 요셉은 함께 있지도 아니하며 대처를 했다. 아까는 말씀으로 예배에 참여함으로 대처했는데 이번에도 함께 있지도 아니했다. 이것이 죄에 대한 물리적으로도 같이 있지 아니하는 적용인 것이다. 우리는 죄를 다스리기 위하여서 보지도 가지도 않아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다스리는 것이다. 적용하면 요셉처럼 지금은 힘들어도 범사에 형통할텐데 잠시뒤의 일을 몰라서 죄의 종노릇을 하는 것이다. 참으면 하나님께서 수천배 축복을 주시는데 그것을 보지 못해서 쾌락의 종노릇을 하는 것이다.
3. 죄 지을 환경이 만들어져도 형통하게 된다.
다 보는 사람이 없을 때 죄를 범하는 것이다. 마침 그 집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죄짓기 딱 좋은 환경을 만들어 놓고 공격을 해왔다. 계속 거절했는데 노예로서 환경이 이렇게 된것이 견딜수가 없는데 점점 유혹하다가 드디어 행동으로 부인이 옮기기 시작했다. 옷을 붙잡으며 더 유혹을 했다. 이런 상황에도 요셉은 자기 옷을 버려두고 도망갔다. 유혹이 왔을 때 아까운것도 버리고 도망가야 한다. 가까운 곳에 있으면 대적하지 못한다. 반드시 도망가야 한다. 요셉에게 있어서 옷은 유일한 재산이지만 벗어버리고 도망갔다. 유일한 생계줄이어도 이런 일이 생기면 벗어두고 도망가야 하는 것이다. 요셉이 이렇게 형통을 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끈질기게 적용하는 것이 형통인 것이다. 자기가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고 죄에 대해서 민감했기 때문에 죄인이라는 것을 인식이 되야 좋은 해석을 할 수가 있다. 보디발아내보다도 하나님이 더 두려운 것이다. 이 세상에서 하나님이 가장 두렵다는 것을 알면 모든것이 끝나는 것이다.
4. 모함에서도 형통하게 된다.
이정도되면 크게 축복하셔야 하는데 모함을 받아 노예보다 못한 죄수의 신세로 전락하게 된다. 일반적으로 자유인 여자를 겁탈하면 불구가 되든지 죽던지 말던지 상관이 없는 것인데 요셉을 믿고 부인을 알았지만 부인이 물증을 가지고 있었기에 하는 수없이 자기의 땅에 있고 자기가 보호할 수 있는 곳으로 보냈다.
요셉은 때마다 적용을 잘한다. 또 맡은바 열심히 섬겨 옥중 죄수를 다 맡기고 형통케 하셨다.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어디를 가던지 하나님이 함게 하시는가 슬픔을 참으면 아름답다고 했는데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여호화의 궁전을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이 세상에서 7번넘어져도 다시 일어나는 모델을 보여 준 것이다.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능하신 손안에서 겸손함으로 부르심을 받는 것이다. 현재의 고난은 장차의 영광과 비교할 수 없다. 하나님은 항상 내인생에서 하나님이 100%옳으시고 나는 100%모르니까 하나님이 언제나 옳으시다고 생각하는 것이 좋은 해석이 형통케 되는 비결인 것이다. 내가 어딜가든지 하나님만 생각하고 열심히 살면 범사에 형통케 되는 것이다.
5. 형통케 하시는 하나님
형통케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요셉이 형통할 수는 없다. 내가 형통할 수 없고 하나님만이 형통케 하신다. 형통은 좋은 환경이 아니고 끊임없는 적용이 형통인 것이다. 힘든 환경일수록 승리하기 어렵지만 내가 힘든 환경에서 내가 적용을 하면 하나님께서 천만배의 복을 주신다. 그런데 그것을 적용하게 하신분은 하나님이신 것이다. 여호와께서 함께 하심으로 범사에 형통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그 순간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는 것을 믿는 순간 우리안에는 그 분이 본질적으로 사랑스러운 존재이기 때문에 사랑하신다고 믿고 싶은 충동이 자꾸 생겨난다. 사람이 선하기 때문에 사랑을 받는다. 그러나 교회에 들어와 양육을 받다보면 우리에게는 하나님을 사랑하실 만한 것이 조금도 없다.
겸손은 참 좋아하시는데 너무 겸손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내가 연민하고 겸손하게 인식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칭찬을 해 주신다. 나에게는 선한것이 조금이라도 있다고 생각한다. 사랑받을 수 없는 무언가가 다 있다. 사람들이 그것을 사랑하지 않는 것은 사람들의 잘못이 아니고 사랑하지 못하는 것을 사랑하라는 것이 힘든 것이다. 우리의 사랑스럽지 못한 모습에도 불구하고 내가 용서와 동정과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인 것이다. 하나님 은혜때문에 사랑을 받고 동정을 받는 것이다. 그러므로 요셉의 형통 범사에 형통하기 위해서는 내가 의지를 가지고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지 못하면 적용을 못하게 된다. 내가 죄인이라는 것을 하나님앞에서 여호와께서 함께 하실 때 하나님 예수님을 통해서 밖에는 형통할 수 밖에 없다. 다른길은 없는 것이다. 십자가의 길을 계속 걸아가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자기가 죄인이라는 것을 아는 것이다. 환란이나 핍박이나 유혹이나 어떤 환경에서도 범사에 형통케하신다는 것을 요셉을 통해서 보여주시는 것이다. 날마다 날마다 요셉은 고생을 했다. 우리에게 이런 환경에서 어떤 것이 형통한 것인지 알아야 한다. 이것이 형통한 인생인 것이다.
범사에 형통케 하시는 것은 불같은 유혹에서 끈질긴 유혹에서 죄지을 환경이 되어도 끈질기게 적용하는 것이다. 함께 있지도 않고 옷을 버리고 도망가는 것이다. 모함에도 변명하지 아니하고 좋은 해석을 함으로 형통한 것이다.
기도제목
현정 (81) 두 사람분의 일을 하고 있는데 시간관리 능력관리 잘 할 수 있도록
결혼식 준비 잘 하도록
진희 언니(79) 가족 내에서 생색부리지 않도록
아바지 한 번 더 나오시는데 말씀이 더 잘 들려서 정착 할 수 있기를
오빠랑 오빠 여자친구 우리들 교회 잘 정착할 수 있도록
서윤 (80) 동생 구원 하나님이 맡아주시기를...
동생 사업 준비 잘 할 수 있도록
믿음의 배우자 잘 분별하고 만날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