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기회 (창세기 40:1~23)
어떤 사람에게 평생 몇번의 기회가 오는데 그 기회를 살리느냐, 살리지 못하느냐의 차이는 준비가 되었느냐 준비가 되지 못했느냐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 기회는 늘 사람의 얼굴로 찾아온다. 사람을 깔보면 살리지 못하고 이타적으로 욕을 기꺼이 먹기로 작정하면 행운이 온다고 한다. 그러한 과정이 고난이 없으면 되기 힘들다. 내가 어떻게 힘든 사람들을 깔보지 않겠는가? 못살고 가난하고 배운 것 없는 사람을 깔보면 그 기회는 찾아오지 않는다. 우리가 기회를 얻기 위해서 형통하다는 것은 훗날에 하나하나의 나의 고난이 모두 기회로 연결되었다는 뜻이라고 생각된다. 그래서 여러분이 모든 것이 준비되어진, 기회가 올 때 기회를 잡을 수 있는 그런 기회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자.
기회가 어떤 모습을 통해 오는가?
1. 만남을 통해서 기회가 온다.
1, 2절에 요셉이 애굽왕의 술맡은 관원과 떡맡은 관원을 만나게 된다. 술관원, 떡관원 사람들은 그 당시 높은 직책의 사람이며 왕에게 식사시중을 들 정도이니 말상대가 될 정도로 식견과 정치적 경륜이 풍부하며 정치적 견해가 해박한 사람들인 것이었다. 그리고 왕이 취하는 음식을 관장하기에 왕의 신임이 두터운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이러하게 높은 권세에 있던 신복들이었던 사람들의 죄라면 그 죄는 ‘왕의 독살 혐의’에 해당할 것으로 추측이 된다. 그러나 본문에서 이들의 죄명이 구체적으로 거론되지 않았던 것은 요셉과의 만남이 중요하기 때문에 그 범죄내용이 쓰여 있지 않았다. 3절에서 요셉이 갇힌 곳이 중요하다. 요셉이 갇혔기에 관원장들을 만난 것이다. 잡혀 와도 왕의 감옥에 갇히는 그 사람들의 위상이 대단함을 방증한다.
요셉이 이런 사람들을 섬길 수 있게 된 것이 기회라는 것이다. 노예 신분으로 감옥이 아니면 만나 기 힘든 지체 높은 관원장들이었다. 감옥이기에 그 만남이 가능했던 것이다. 감옥이기에 요셉과 만나게 해서 요셉의 얘기를 듣게 하고 요셉의 인물과 인품, 재능과 총명함을 보게 하여 깊은 인상을 받게 하려는 하나님의 작정이 있었던 것이다. 후일에 요셉이 바로를 만날 때 술맡은 관원이 그 만남의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이런 감옥을 요셉이 자의적으로 들어가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자 고난인 것인데 주님이 갖다 놓았으니 그 감옥에 들어갈 수 있었던 것이다. 고통스러운 것이 아니면 만날 수 없는 사람을 감옥에 들어가서 만나게 하셔서 하나님의 큰일을 이루게 하신 것이다.
다들 여러분이 만날 수 없는 사람들을 감옥에 가게 하셔서 할 수 없게 만나게 하심으로 하나님의 큰 꿈이 이루어진다. 이렇게 생각하면 맞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때가 될 때까지 기다리게 하시고 기다리시는 과정 또한 철저히 준비하시는데, 인내가 진실성의 결과라고 그랬는데, 인내라는 것을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으면은 우리가 할 수가 없는 것이다.
기다리는 것도 99%인내하고 1%인내하지 못해서 목적을 이루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무조건 참아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때를 따라야 하는데 이 하나님의 때를 모르고 욕심이 눈에 어두우니까 조금 기다리고 조금 인내하니까 되는 일이 아닌 것이다. 그래서 이 요셉의 만남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자. 야곱과 라헬이 만나고 싶어서 만난 것이 아니다. 아버지를 만났다. 부모의 만남, 형들도 만나고 싶어서 만난 것이 아니다. 형들이 요셉을 죽이려고 그랬다. 미디안 상인을 만나고 싶어서 만난 것이 아니다. 요셉을 팔려가게 하셨다. 보디발을 만나고 싶어서 만난 것이 아니다. 보디발을 만나 좋은 일도 있었지만 보디발의 아내 생각하면 그 사람 때문에 감옥에 갔기에 인생을 쥐어버리고 싶다. 그 아내도 만나고 싶어서 만난 것이 아니다. 지금 대신도 만나고 싶어서 만나는 것이 아니다.
요셉이 형통하다고 하는데 일생동안 자기가 만나고 싶어서 만나는 사람이 없는 것이다. 생각을 해보시기 바란다. 그 기회라는 것이 요셉이 만나고 싶어서 만난 것이 아니지만은 그런 만남 때마다 기회로 다 연결시킨 것이다. 요셉의 인생을 모두 해석을 잘 해서 결국 기회로 연결시켜서 총리가 된 것이다. 총리를 하라고 해도 준비가 안되었으면 할 수가 없는 것 이다. 몇 번의 기회가 있어도 내가 준비가 되어 있을 때 그 일을 할 수가 있는데, 막상 기회가 와도 준비가 안 되어 있으면 하나도 하지 못한다. 바로 이것이 준비되어지는 삶이다.
내 인생의 만남에 대해서 생각해 보기 바란다. 부모님과의 만남, 배우자와의 만남, 자식과의 만남을 통해서 인내를 배우게 하시고 그리고 우리 모두를 구원시키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이 차질 없이 이루어진 게 아닌가 이렇게 생각할 때 여러분은 감사하지 않겠는가! 우리의 만남은 우연이 아니며 당신을 만나서 우리들 교회에 왔다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하나님의 계획 속에 만난 것임을 믿는다.
목사님은 남편과의 만남을 통해서 이혼생각을 수 없이 했고 이혼 안한 것이 그렇게 자랑스럽다고 수없이 얘기했지만 아무리 얘기해도 지나치지 않다는 것이 그 말이다. 그러니까 목사님이 남편과의 결혼을 통해서 만난사람이 많고 지경이 넓어져서 지금 이렇게 여러분을 많이 만나고 있는데 그 공로자가 남편과의 만남이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만남에 대해서 도망갈 수 없는 감옥에서 기회를 만들기를 바란다. 도망갈 수 없는 감옥, 결혼이라는 것이 도망갈 수 없는 감옥, 만남이기에 그것을 도망갈 수 없는 만남인 결혼, 가족임을 순적하게 인정하고 나서야 참 평안을 누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우리의 만남은 도망갈 수 없는 만남인 것이다.
도망갈 수 없는 감옥에서 얼마나 우리의 부부들이 만났는데, 한쪽은 많이 잘 살았던 것을 부르짖는 부(富)대신 이고, 한쪽에 있는 사람은 요셉과 같은 노예이다. 그러니까 대신들은 잘난 척하고 노예들은 한 집사님처럼 판자집에서, 혹은 철거 촌에서 말도 못하고 남편은 훌륭하시고 그러는데 예수 믿고나면은 이 노예인 요셉이 총리가 되는 것 아닌가? 요셉이 주인공이다. 요셉이 기회를 잡은 사람이다. 집집마다 예수를 모르고 죄인인줄 모르는 부대신들이 잘난 척들 하며 죄를 모르고 지내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러한 대신들은 노예와 같이 섬기는, 요셉과 같은 분들이 있다. 여기에서 우연 아닌 만남 속에서 여러분들이 날마다 하루하루 기회를 만들어내시는 여러분이 되실 줄 믿는다. 이것이 바로 기회이다.
2. 섬김을 통해서 기회로 연결이 된다.
4절에 요셉이 그 관원들을 섬겼다는 내용이 나온다. 요셉은 원래 채색 옷이나 해 입고, 형들이 일할 때 혼자서 놀던 사람이고 형들의 잘못을 고자질 하던 인간이었다. 하나님께서 채색옷을 확 벗겨버리시고 노예 옷을 입히니까 땅 끝까지 내려가니까 하나님을 부르짖게 되었다. 그러니까 요셉이 어렸을 때 만난 하나님, 지금 애굽으로 팔려가니까 아버지도 없고 형들도 없고 어머니도 없고 어렸을 때 알려줬던 하나님만 의지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아이들이 어렷을 적부터 믿음으로 키우고 엄마, 아버지보다 하나님이 너를 지켜주신다. 낮에 해와 밤에 달이 너를 상치 않을 것이다. 죄지을 때도 하나님이 뒷꼭지에 있고 힘들 때도 하나님께서 나를 위로해주시는 그 하나님을 아이들이 만나게 될 줄 믿는다. 그래서 어렸을 때부터 그것이 중요하다.
요셉이 낮은 자리에 가 있을 때 하나님을 만나게 된 것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낮아지니까 깨닫게 된 것이다. 낮아지니까, 고난을 주셔서 처음에는 보디발을 섬겨서 가정총무가 되게 하시고 감옥에 가서 죄수들을 섬겨서 총리대신이 되시게 하시는 것이다. 요셉의 전공은 총무인 것이다. 일인자는 아니고 이인자로 계속 가다가 이인자의 최고가 총리이기에 총리로 가서 늘 섬기는 것이다.
목사님 아들과 며느리도 MBTI(성격유형검사)를 해보았는데 며느리는 조언자이고 아들은 주인공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며느리가 더 똑똑해 보이는데 조언자라는 것이다. 즉, 총무인 것이다. 하나님은 자기 전공별로 고난을 주시는 것이다. 그래서 그것을 가정총무, 감옥총무, 나라의 총무가 되게 하신 줄 믿는다. 딱맞아서 열심히 섬기게 하신 후에 변화시켜서 우리를 들어 쓰시는 것이다.
배병삼 교수의 칼럼, 맞춤과 비움의 힘, 공자에게 경영을 묻다. 를 읽었는데 그 본문 중에 재미있는 내용이 있다. 태풍에 대해서 썼는데 폭풍은 위로부터 아래로 퍼붓는 바람인데 태풍은 아래에서 위로 쳐올리는 바람이다. 폭풍은 고기압 대에서 생긴다면 태풍은 저기압 대에서 생긴다. 폭풍은 물처럼 흐르는 바람이라면 태풍은 꼿꼿이 서서 걷는 바람이다. 태풍을 세우는 힘은 뻥뚫린 눈에서 나오는데 태풍에 눈이 없다면 한낮 열대성 폭풍에 불과하지만 뻥 하고 뚫린 눈은 한밤중에 마주친 고양이 눈처럼 섬뜩하다. 예로부터 자기를 낮추고 고요하며 이 맑은 태풍의 중심이 너무 무서운 것이다. 폭풍이 남자라면 태풍은 여자인 것이다. 태풍의 이름이 다 여자의 이름이다. 여자를 잘못 건드리면 큰일이 난다. 태풍이 정말 무서운 것이다. 그러니까 너무 재미있는 것이 기압이 낮을수록 태풍이 더 힘을 발휘하는데 2003년 9월에 발생한 태풍 ‘매미’가 한반도에 막대한 피해를 입힌 최대의 태풍이었는데, 그때 재산피해가 4조 7천 8백 10억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 매미는 우리나라에서 기상 관측을 실시한 이래 중심부 최저 기압이 가장 낮은 950헥토파스칼을 기록했다는 것이다. 역사상 가장 낮은 기압을 발휘했기에 그렇게 강력한 힘을 가졌다는 것이다. 그래서 정말 강한 힘은 자기를 낮출수록, 중심을 텅비우고 고요하게 유지할 적에야 터져 나온다는 힘의 역설을 태풍에게서 배운다면 인간사회에도 이런 신비한 힘이 있지 않을까 한다.
현대 기업 경영 연구가 짐 콜린스는 평범한 기업을 위대한 기업으로 도약시킨 탁월한 기업가들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참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된 것이 평범한 기업의 리더들이 지극히 자기중심적인 것과는 대조적으로 위대한 기업으로 도약시킨 리더들은 항상 자신의 이야기를 삼가하고 항상 남에게 공로를 돌린다고 한다. 짐 콜린스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고 하는데, 그런 리더들과 함께 일하거나 그들에 대해 글을 쓴 사람은 그 위대한 리더쉽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표현을 계속 썼다. 조용한 자신을 낮춘, 정중한 부드러운, 말수가 적은, 자신에 관한 기사를 믿지 않는, 나서지 않는 이 그러한 리더들의 특징이었다고 한다. 자신이 자신을 낮추는 것이 테크닉 적으로 경영을 배운다고 해도 인간의 힘으로 가능하겠는가! 그런데 그러한 원리가 성경에는 다 들어가 있다. 자신을 정말 낮추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죄인이라고 하니까, 죄인임을 인정하는 사람은 말하지 않아도 나서지 않는다. 왜냐하면 하나님 힘으로 하니까, 내 힘이 아무것도 없으니까, 자연스런 낮춤이 되는 것이다.
최고의 거룩함은 자연스러움이다. 자연스럽게 자신을 낮추고 나서기 싫어하고 이러한 것이 최고의 덕치이고 기업의 성공하는 비결이고, 항상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는 것에서 부터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다. 내가 죄인임을 인정하는 것이 지혜와 지식의 근본인 것이다. 내가 왜 죄인이냐라고 유독 죄인임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바보이며 기회가 오더라도 기회를 잡을 수 없는 것이다.
3. 함께 갇힌 가운데 위로자가 기회를 얻게 된다.
4, 7, 8절에 함께 갇힌 내용의 구절이 나온다. 함께 갇혀서 고난을 공유하고 있어 요셉이 다른 사람들의 고난을 같이 체휼하고 있기에 그들의 근심을 알 수 있는 눈이 있었다. 그래서 우리가 섬김을 의도적으로 하려는 것이 아니라 저절로 자연스럽게 섬기고 그 마음을 헤아릴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을 만나야 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야 한다. 섬기고 마음을 헤아리는 요셉이기에 그 관원들의 눈에 있는 근심 빛을 알 수 있었던 요셉이었다. 만일 이러한 관심이 없었다면 요셉을 영광의 길로 인도하는 그 기회들은 없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죄수들을 무시했을 거니까 그렇다. 사람의 얼굴로 다가오는 행운을 깔보았을 거니까, 죄인인 주제에 말이야 이랬을 텐데, 목장에서 다른 사람들을 섬길 때 그들의 형편을 잘 살피고 영적인 상태에 관심을 가지며 세심하게 섬길 때 기회는 그 목자에게 오는 것이다. 그렇게 다른 사람을 진심으로 세심하게 살펴본다면 하나님께서 응당의 보상을 해주실 것이다. 진심으로 영적인 관심을 가지고 세심히 섬길때 하나님께서 귀히 쓰시는 일꾼이 되게 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일꾼이 중요하시기 때문에 그 일꾼을 어디에서나 보호하시는 것이다. ‘나는 예수를 믿어도 되는 일이 없다.’ 이것은 말이 안 되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과 나 사이에 해결해야 될 문제가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남들이 보기에 잘사고 못살고가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은 은사가 다르기 때문에 어떤 은사로도 쓰신다. 근데 ‘나는 왜 되는게 없냐?’ 하는것, 그것은 나와 하나님과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는 것이다. 내 힘든 일보다도 주위에 힘든 사람을 깊은 관심가지고, 이웃을 진정으로 생각하면서 기꺼이 욕을 먹기로 작정하는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큰일을 맡길 수밖에 없는 것이다.
요셉은 총리대신이 되기 위해서 어떤 획기적인 이벤트를 기획한 적이 없다. 오직 자신의 일에 조그만 일에 충실히 했고 주변에 대해 늘 이렇게 세심한 것이었다. 우리는 큰일은 잘하지만 이렇게 작은 일에 세심하것을 못한다. 목사님이 어떤 성도님의 목장보고서를 보며 그렇게 재혼하지 말라고 했지만 재혼을 결국 하였다. 재혼한 후에 전처의 아이가 아프다고 하니 그 아이에게 문안을 간 것이다. 이 아버지는 아이가 아픈데 부인 눈치 볼라고 하고, 전처 눈치 보려고 하다가 결국 가게 된 것이다. 가니까 전처가 이 남편과 익숙하게 재미있게 얘기를 하는 것이다. 그러니 이 부인이 감당이 안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 남편은 남편대로 아들이 아픈데 인사하러 나가는 것, 병문안 나가는 것, 부인 때문에 눈치 봐야 되는 일이 되었다. 부인은 부인대로 갔다와서 “당신이 많이 힘들었지?” 하면 인생이 다 해결 될 텐데, 그 한마디를 안 한 다는 것이다. 남편께서 목자이신데, 이게 마음대로 안 되는 것이다. 실컷 좋아도 작은 일에 충실하고 세심한 일에 충실할 텐데, 결혼 전에 사랑한다는 말, 평생 사랑하겠다는 말보다 결혼하고 나서 생활 가운데 평생 사랑하겠다는 말이 더 믿을만한 말이여 중요한 것이다. 때를 잘 맞춰야 하는 것이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죽어 넘어져도 무덤덤하고, 무감각하고 눈도 깜짝 않는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에 사람이 죄인이라 그럴 수 있지만은 역으로 조금만 관심을 가져져도 아주 지혜를 얻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하는 것이다. 요셉은 형들이 달려들어서 죽이려고 했다. 열심히 살았지만 현실적으로 강간범이 되어있지만 어디서나 어떤 상황가운데에도 성실하고 한결같은 것이다. 동료죄수들에게 무시하지 않고 위로자가 되었다. 위로는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이다. 요셉은 사람에게 위로를 받지 않았다. 요셉은 사람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었다. 하나님께 위로를 받고 사람을 위로 했다, 기회를 얻는 자의 특징은 남의 어려움에 관심을 갖는 것이다. 내가 암에 걸렸는데 다른 사람의 아픔에 관심을 가진다면 어찌 믿지 않을 수 있겠는가! 택자가 아니더라도 감동을 받을 것이다. 우리 애가 시험에 떨어졌는데 다른 떨어진 아이의 엄마를 위로하는 것이 함께 갇힌 가운데 위로자라는 것이다. 근데 내가 떨어졌는데 붙은 아이를 축하해주는 것은 더욱 기회를 얻는 비결이라는 것이다. 이 믿음은 할 수 있는 것이다.
존 맥스웰이 관계의 기술에 대해서 책을 썼는데, 이 관계의 기술 중에서 사람마음을 싹 얻어내는 사람중에 최고의 카리스마가 있다는데, 카리스마의 중요한 특징은 다른 사람에 대해 관심이라는 것이다. 감상적으로 보호하고 내가 너를 도와줄게 이런 관심이 아니라 그 사람이 얼마나 중요하다고 자기 자신을 생각하게 해주는 것이 카리스마라는 것이다. 나 말고 상대방이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지 인식하게 하는 것, 바로 그것이 카리스마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누군가 워싱턴 사교계의 명사인 펄 멕스타에게 물었다. 어떻게 당신의 파티에 이렇게 많은 부자와 명사들이 많이 참석할 수 있는가 물었더니 ‘만남과 작별의 인사 때문에 그런 것이다.’ 라고 했다. 만날 때 ‘드디어 당신이 오셨군요.’ 헤어질 때 ‘당신이 벌써 가야한다니 너무 아쉽습니다.’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집사님 오셨네.’하는 사람에게 많은 이들이 모이는 것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자기 유익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으로 접붙인 사랑은 전염된 사랑이 느껴지도록 살 갖게 맞는 것이 관계의 기술이라는 것이다.
분열에는 카리스마가 없다. 누군가를 화평케 하지 못하고 분열케 하는 사람은 카리스마가 없다. 방안으로 들어가서는 카리스마가 생길 수 없다. 자기중심적인 사람은 다른 사람을 지배하는데 쓰는데 이런 것은 카리스마라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카리스마를 가진 사람들은 믿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을 돕고 자신감을 갖게 만들어 준다는 것, 그런 의미에서 카리스마는 십자가에서 출발하게 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접붙인 사람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전염시키는 사람이 관계의 기술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이다. 늘 남을 화평케 못하고 분열케 하는 사람은 카리스마가 없다. 방안으로 들어가 혼자 지내서는 카리스마가 생길 수 없다. 자기중심적인 사람들은 자신의 강점을 다른 사람들을 지배하는데 쓰는데 그것을 카리스마라고 할 수 없다. 그런데 믿는 사람들은 자신의 강점을 사용해서 다른 사람들을 돕고 다른 사람들이 자신감을 갖게 만들어 준다는 것, 그런 의미에서 카리스마는 십자가에서부터 출발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진정한 카리스마라는 것이다.
예전에 목사님도 요셉과 같아서 채색 옷 입고 방안에서 피아노 앞에 앉아있고 교회 가서도 베풀기보다 남이 갖다 주는 것을 바라고 안 갖다 주면 안 먹고 그냥 가버리는 모습이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목사님을 단련시키고 연단시키셔서 지금 이렇게 다른 사람의 아픔에 관심을 갖게 되었으니 이것이 하나님의 작품이지 않은가 한다.
관계의 기술은 요셉처럼 낮아졌기에 가져진 게 아닌가 한다. 다른 사람을 살리기 위해 다른 사람의 눈빛을 관심 있고 세심하게 물어야 한다. 다른 사람의 눈빛을 보고 물어야 한다.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치 못하는 사람은 진심으로 사람을 대할 수 없는 것이다. 진정성 있는 여러분이 되었으면 하고 그러기 위해서 자기 죄를 봐야 한다.
4. 기회를 얻으려면 하나님이 해석자이기에 말씀으로 해석해야 한다.
8절에 관리들이 꿈을 꾸고 해석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인생은 해석 못할 일로 가득차서 근심이 많다. 사람들은 죄진 마음으로 근심 빛이 있는 것이 당연하다. 자신의 근심에 관심을 갖고 있는 요셉이 있기에 상담을 의뢰하게 된다. 꿈을 꾸었는데 해석이 어려운 가운데 있어 요셉이 해석은 하나님에게 있다고 얘기하였다. 우리는 내 인생의 감옥에서 빠져나가는 것이, 붙는 것만이, 감옥에서 저 남편과 이혼하는 것만이 진리임을 믿고 싶어 하기에 기복신앙을 갖기 쉬운 경향이 있다.
요셉은 하나님만이 해석자이고 성경묵상임을 진리임을 본문에서 말하고 있다. 성경대로라면 해석 못할 것이 없다. 오늘날은 환난이 주제가 되고 성령이 스승이 되시고 성경이 교과서가 되어 하나님의 뜻을 발견해야 한다. 어떤 것도 지나치게 신성시 하면 어리석음을 범하게 된다. 오로지 신유, 방언, 말씀 등등 이 최고라고 하며 균형 잡히지 못하고 치우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성령의 도움을 받아서 내 죄를 보면서 말씀, 찬양, 감사, 선교, 구제가 부족한 것을 찾는 것이 성경묵상, 말씀묵상인 것이다. 우리의 성경묵상은 ‘balance of life’를 말하는 것이다. 균형 잡힌, 인격적인 신앙생활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렇게 신접한 자를 쫓아다니며 예언 받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말씀으로 해석하는 게 중요한 것이라 본문에서 긴 구절에 걸쳐 얘기하고 있다.
그리스도인은 예수를 믿는 순간부터 순풍에 돛 단것처럼 모든 면에서 형통하는 것이 좋겠지만 은 성경은 그런 형통을 약속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을 통해서 요셉의 모델을 통해서 고난 속에서 형통함을 얘기하고 있다. 여러분들 가운데 질병, 사업, 건강, 자식, 결혼 감옥으로 힘들 수 있지만 항상 하나님이 함께 계심을 믿어야 한다. 요셉의 아버지 야곱이 사기꾼이고 여자 좋아했지만 야곱을 성자가 되게 하기 위해서 130년을 험한 인생 살게 하신 것이다. 여자, 돈 을 내려놓게 하셔서 연단하신 것이다. 높은 성화의 수준에 이르게 하신 것이다.
요셉도 감옥에 갇히게 하지만 하나님을 의지하니 결국 총리대신으로 되게 하시는 것이다. 우리가 억울하게 당할수록 영화로운 자리에 가게 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억울한 일 당할 때 우리가 속상해 하지 말고 하나님생각하고 참으면 하나님 앞에 아름답게 살게 되므로 하나님께서 책임져주시지 않겠는가! 억울한 일 당하기로 결정하시기 바란다. 내 인생이 억울함이 특징이다. 그 억울함 때문에 아무것도 모르고 당한 요셉을 이렇게 형통하게 하신다. 택한 백성을 고난을 통해 영화, 성화에 이르게 됨을 요셉의 삶을 통해 이해하기 바란다. 억울해서 어떡해, 어떡하라고 외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100%옳다 하는 여러분이 되길 바란다.
바람피우는 능력 좋은 남편이 바람피우는 여자와 헤어지게 된 상황과 어려움을 자신의 부인, 그 여집사님에게 토로하자 그 지경에 이르게 된 것을 여집사님 자신의 잘못과 죄에서 비롯되었음을 고백하고 남편이 구원되길 학수고대하는 일례는 많은 점을 시사 하는데, 즉, 남편의 얘기를 들어주고 이해하는 것이 곧 기회를 얻는 것이며 집안을 주님께로 이끄는 길인 것임을 시사하는 것이다.
우리가 이렇게 해석을 하면 해석 못할 일이 어디 있겠는가! 기회가 안 될 일이 어디 있겠는가! ‘너죽고 나죽자.’ 밤낮 그런 얘기만 하면서 다 죽일 것인가! 알코올중독이라 다 헤어져야 되고 난 감옥에서 어떻게 빠져 나갈까 이런 생각만 하겠는가! 물론 힘들겠지만은 힘든 것을 말씀으로 놓고 나갈 때 정말 기회를 얻어서 형통케 될 줄을 믿는다. 반드시 이 감사를 기억하셔서 형통케 하실 줄을 믿는다. 세상이 감당 못하는 믿음으로 어려운 가정들이 성화되어질 줄을 믿는다.
우리의 모든 고난은 형통으로 가는 기회이다. 이 기회를 놓치지 말고 계속 감사하며 가는 것이 추수하는 비결이다. 기회를 정말 놓치지 말고 우리는 계속 감사하며 가야한다. 우리의 만남이 우연이 아니기 때문에 어떤 만남도 성실하고 감사함으로 생각하시기를 바란다. 섬김으로 위로를 찾고 갇힌 자 가운데에서도 위로가 되는 것도 기회가 오는 축복인 것이다. 말씀으로 해석하고 가면 더더욱 기회가 찾아온다. 지금도 기회고 나중도 기회가 온다. 감사함으로 생각하면 버릴 것이 하나도 없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자녀들에게 이 전리품을 가지고 예수를 믿어야 되는 당위성을 설명할 수 있는 좋은 간증이 될 것이다. 여러분들 모두 그렇게 감사하고 그렇게 기회를 잡으시길 바란다.
우리는 지금 어떤 감옥에 있는가? 돈의 감옥에, 자식의 감옥에, 남편의 감옥에, 아내의 감옥에, 질병의 감옥에 있는가?
감옥에서 도망갈 수 없는 이 만남가운데 기회를 얻게 해달라고, 이것은 모두 추수할 우리의 식구들이라고, 기회 지나가기 전에 추수할 일꾼이 되어서 정말 우리 집, 우리가 모두 다 추수할 곡식들인데 기회가 지나가기 전에 기회를 얻기 원한다. 살리기를 원한다.
어떤 상황에도 감사하기를 원한다. 도망갈 수 없는 감옥 같은 상황가운데에서도 기회를 얻으시길 바란다. 나 한사람이 요셉과 같은 사람이 되어서 대신들을 살리고 우리 모두를 살리는 기회를 얻으시길 바란다.
기도제목
이창엽
직장의 동료 무시하지 않고 사건 있는 그대로 잘 해석할 수 있도록
와이프가 건강하고 직장에서 믿는 자로 직장일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조카가 말씀 잘 적용하고 믿음안에서 신앙생활 잘 할수 있도록
성광모
부모님의 건강과 구원을 위해서
일에대한 인도함 얻을 수 있도록
유시윤
본질에 대해서 깊게 생각 할 수 있도록
윤정우
아버지가 건강할 수 있도록
게임 끊으려고 노력하는 것 잘 지속할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