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화(84또래) - 등반한 친구
욥 같은 장로님 아버지와 권사님 어머니 아래서 자랐지만 하나님을 떠난 삶을 살았다.
딸3명이신 부모님이 기도해서 얻은 나실인 같은 아들인데 초등 학교 때부터 술,담배는 기본
20살 때는 깡패가 되려고 문신도 하면서 하나님을 원망하면서 살았다. 술장사도 하고
카지노에서 돈도 많이 잃으면서 하나님에 대한 원망은 더 커져갔다.
내가 선택한 길이면서 형통하지 않으면 하나님에게 원망하는 삶을 살았다.
그러면서도 아버지어머니의 기도와 어려서 있던 믿음의 영향 때문에 이렇게 살면 안되는데
하나님께 돌아가야 하는데 하며 살았다.
그런 마음으로 기도원에 들어가 일주일을 금식하고 회개하고 기도하다가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났다. 그 후 아세아 연합
신학교에 들어가서 1학년부터 다니고 있는데 세상적인 것들로 많이 달려갔었던 나이기에 너무 힘들고 어려움이 많다.
신학생이 되어서 9개월간 끊었던 담배도 3주전 여자친구와의 다툼과 지금 하고 있는 장사가 잘 안되면서 다시 잡게 되었다.
우리들교회에 다니시는 교수님의 권유로 우리들교회에 오게 되었는데 목사님의 권위 없으시고 엄마처럼 편안함과 코까지
푸시면서 우시는 것을 보면서 또 형제들의 간증을 들으면서 말랐던 눈물이 흐르고 은혜를 받아서 우리들교회에 정착해서
신앙생활을 해야겠다고 다짐하고 왔다.
대섭
예전에 나도 사랑의 교회, 삼일교회를 나갔었는데 2009년 8월에 우리들교회를 정착하게 되었다.
우리들교회에 나오면서 나의 세상의 습관들이 신앙과 부딪쳐서 줄어들고는 있지만 완전히 끊
어지지 않음이 있다.
여자친구와 헤어진지 몇 주가 지났다. 여자를 만나면 상대방과 코드가 맞으면 좋고 맞지 않으면
맞추려고 노력하는 편이었다. 사귀던 여자친구는 여자친구 부모님(온유한 아버지, 경제력 있으
시며 와일드한 어머니)까지 너무 좋은 분들이어서 내 맘에 더욱 들었다. 그렇게 티없이 자란 여
자친구에게 내가 잘해주고 보호해 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교제하게 되었다. 헤어지고난 뒤
지금 생각해보면 헤어지게 된 일이 모두 다른 여자 만나고 또 여러 이유로 다 내가 자초한 일이
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서도 내가 참고 이해해 주었던 부분을 떠올리면 배신감과 충격이 남아
있는 것을 본다.
중하
출근한지 몇 일 안 된 회사를 안 좋게 그만 두었다. 요즘에 공허하고 우울함이 많아서
소주 막걸리를 찾는다. 알콜 중독까지는 아닌 것 같은데 의존증 정도는 되는 것 같다.
회사를 그만두고 마음이 안좋아서 목원들과 목장형과 전화통화를 하였다.
이런 생활이 악순환 되니까 오늘 사실 교회에 오기 정말 싫었다.
동성애에 관해서 나는 그런 생각은 꿈에도 없으면서도 동성애가 그렇게 하나님께 매맞는 일인
지 몰랐었다.
동성
직장을 그만두고 작은 가게를 하려고 알아보러 이리저리 뛰다니고 있다. 가게를 알아보고 해당
지역 상권을 분석하면서 돈에 대한 생각과 신앙에 대한 것이 갈등을 겪는다. 부모님은 20년 넘
게 장사를 하시면서 십일조와 헌금 주일성수에 대해서 삶으로 내게 본을 보이셨기에 나에게도
십일조와 헌금 주일성수에 대해서 원칙이 세워져 있는 것을 감사하게 생각했다. 남대문시장에
서 주일에 문을 닫으시고 장사를 하시는데도 지나고 나면 하나님이 다 채워주시는 것을 목도했
었다. 원칙은 세워져있고 그렇게 적용은 하겠지만 정말 내가 믿음으로 하는가? 그 중심이 내가
형통하게 하는 방법인 것을 알기 때문에 하는 것인가?를 생각해보게 되었다. 이번에 퇴직하면서
목돈을 퇴직금으로 타면서 십일조를 드렸다. 당연히 드리는 것이고 당연히 드렸지만 평소 드리
는 것 보다 몇 배가 된 십일조의 액수를 생각하면서 갤럭시탭을 살까? 옷을 살까? 생각했었던
것을 떠올렸다. 요즘 의기소침하고 부모님도 결혼에 대해서 스트레스를 많이 주셔서 남의 결혼
식도 잘 가지 않고 축가부탁도 많이 거절하고 지냈었는데 알지 못하는 자매가 유희사모님을 통
해서 축가를 부탁해 오셨다. 요즘 수요예배 말씀과 주일 말씀을 통해서 은혜가 있어서 인지 거
절하지 않고 기쁜 맘으로 축가를 할 수 있어서 감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