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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7.26.(주일) 신명기 1:9-18 「나 홀로 어찌」 이성훈F 목사님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은 신명기 1장 9절에서 18절 말씀입니다. 제가 봉독하겠습니다.9. 그 때에 내가 너희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나는 홀로 너희의 짐을 질 수 없도다10.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를 번성하게 하셨으므로 너희가 오늘날 하늘의 별 같이 많거니와11. 너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를 현재보다 천 배나 많게 하시며 너희에게 허락하신 것과 같이 너희에게 복 주시기를 원하노라12. 그런즉 나 홀로 어찌 능히 너희의 괴로운 일과 너희의 힘겨운 일과 너희의 다투는 일을 담당할 수 있으랴13. 너희의 각 지파에서 지혜와 지식이 있는 인정 받는 자들을 택하라 내가 그들을 세워 너희 수령을 삼으리라 한즉14. 너희가 내게 대답하여 이르기를 당신의 말씀대로 하는 것이 좋다 하기에15. 내가 너희 지파의 수령으로 지혜가 있고 인정 받는 자들을 취하여 너희의 수령을 삼되 곧 각 지파를 따라 천부장과 백부장과 오십부장과 십부장과 조장을 삼고16. 내가 그 때에 너희의 재판장들에게 명하여 이르기를 너희가 너희의 형제 중에서 송사를 들을 때에 쌍방간에 공정히 판결할 것이며 그들 중에 있는 타국인에게도 그리 할 것이라17. 재판은 하나님께 속한 것인즉 너희는 재판할 때에 외모를 보지 말고 귀천을 차별 없이 듣고 사람의 낯을 두려워하지 말 것이며 스스로 결단하기 어려운 일이 있거든 내게로 돌리라 내가 들으리라 하였고18. 내가 너희의 행할 모든 일을 그 때에 너희에게 다 명령하였느니라하나님 아버지,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저희들이 주님 앞에 나아왔습니다. “나 홀로 어찌, 나 홀로 어찌” 탄식하게 하는 저희의 모든 이 무거운 짐이 오늘 주님의 말씀으로 해석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말씀하여 주시옵소서. 듣겠습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여러분, 요즘 많이 쓰는 말 중에 ‘독박’이라는 말이 있잖아요. 독박 육아, 독박 간병 그리고 요즘 같은 휴가철에는 독박 운전도 있더라고요. 네다섯 시간 혼자서 운전하는데 다른 가족들은 다 주무시죠. 그런데 이 말이 어디서 나왔을까요?이 말의 출처는 화투판이랍니다. 화투, 아시죠?^^; 화투판. ‘고(Go)!’ 하다가 잘못돼서 다른 사람들의 몫까지 전부 내가 독박을 쓰는… 이럴 때 쓰는 단어라고 그래요. 제가 알아서 한 건 아니고 저도 찾아보니까 그렇더라고요. 우리는 지금 육아 또 간병, 가족 이렇게 하나님께서 주신 귀한 선물들인데 여기에조차 우리가 ‘벌칙’을 뜻하는 ‘독박’이라는 단어를 붙여서 살아가는 또 그러한 상황도 있습니다.이것에 대한 세상이 내놓는 해결책이 뭘까요? 이 독박에 대한 해결책, 세상의 해결책은 다른 게 아니라 ‘공평해야 된다!’, n분의 1. 그런데 여러분, 새벽에 육아해 보신 분은 알겠지만 아이가 잠을 안 자고 보채고 울어 제끼는 그 새벽 시간은 n분의 1로 나눌 수가 없더라고요. 그래서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합니까? 외면하거나 아니면 이를 악물고 그 자리를 버티려고 최선을 다하면서 사는 것이죠.마침 어제부터 우리가 신명기 큐티를 시작했어요. 120살의 모세가 남긴 마지막 설교입니다. 그 첫 장에서 모세가 회상하는 장면이 무엇일까요?그 40년의 광야 생활, 아니면 그 120년의 자기 인생을 다 통틀어서 마지막 설교를 하면서 남기는 장면이 영광스러운 열 가지 재앙을 내린 장면도 아니고, 홍해를 갈라서 지나온 장면도 아니고, 또 십계명을 받은 장면도 아니라 ‘나는 이 짐을 홀로 질 수 없습니다’, ‘나 홀로 어찌, 나 홀로 어찌’ 탄식했던 그 장면을 떠올리면서 지금 그 백성들 앞에서 다시 한번 자기의 고백을 하는 장면이에요.오늘 여러분 무엇을 혼자 지고 이 자리에 오셨습니까? 여러분을 짓누르는 그 한 사람, 그 무게를 버티면서 이 자리에 나오신 분도 계실 것이고 또 자기 자신이 너무 무거워서 그 무게를 지고서 이 자리에 나와 계신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오늘 이 모세의 탄식, “나 홀로 어찌, 나 홀로 어찌” 이 탄식에 대해서 우리 주님께서는 무엇이라고 우리에게 말씀해 주시는지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나 홀로 어찌” 첫째는요, 1. 짐 같아도 별입니다(9-12절)9절이에요. 9. 그 때에 내가 너희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나는 홀로 너희의 짐을 질 수 없도다_신 1:9모세가 ‘그때’를 회상하는 거예요. 그때. 바로 왕 앞에 서고, 또 홍해를 가르고, 수많은 백성을 이끌고 나온 그 모세가 ‘그때’ 어떻게 했어요?“못 하겠다! 못 하겠다! 이거 너무 힘들어서 못 하겠다! 나는 너희의 짐을 홀로 질 수 없도다!” 쉽게 말하면요 “나는 너희 자체가 무겁다. 너희가 그냥 내 짐 덩어리다” 지금 이 말을 하는 겁니다. 그것도 모세가 지금 말년에 하는 얘기가 아니라요, 광야 생활 다 끝내고 그 40년의 시간을 다 버틴 다음에 참다 참다 참다 못해서 지금 “내가 40년을 지고 보니까 너희는 내 짐이었어” 이러는 게 아니라 이거 ‘기억’하는 것이죠. 40년의 첫 장에서, 40년 광야 생활을 시작하자마자 홍해를 건너자마자 지금 모세가 백성에게 “나 도저히 혼자서 지지 못하겠다” 이렇게 탄식했던 것을 기억해서 다시 말하는 거란 말이죠.그런데요. 바로 이어서 더 뜻밖의 고백을 합니다. 10절, 11절이에요. 10.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를 번성하게 하셨으므로 너희가 오늘날 하늘의 별 같이 많거니와 11. 너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를 현재보다 천 배나 많게 하시며 너희에게 허락하신 것과 같이 너희에게 복 주시기를 원하노라_신 1:10-11백성을 ‘짐’이라고 부르더니 지금은 뭐라고 그래요? “하늘에 ‘별’과 같이 많게 해 주셨다” 그 말씀을 기억하면서 지금 백성에게 얘기를 하는 겁니다.‘못 지겠다’고 그러면서 어떻게 말을 해요? “천 배나 더 하시기를 원한다”고 지금 말을 하고 있어요.그러면 여러분, 이게 도대체 모세는 이게 백성이 많아져서 좋다는 거예요, 나쁘다는 거예요? 백성이 이렇게 많아진 것이 좋은 거예요, 나쁜 거예요? 둘 다죠. 좋지만, 너무 좋지만 무거운 거예요. 너무 큰 복이지만 힘든 겁니다. 부부가 복이잖아요? 그런데 같이 사는 거 쉽지 않아요. (아, 왜 웃으세요? ^^; 저는 쉽습니다. ^^;; 저는 행복합니다. … 너무 힘들어요. ㅎㅎㅎ) 우리 아이들이 얼마나 귀한 복이에요? 그렇죠? 그런데 아이 키우는 거, 정말 우리 아이들 짐 덩어리잖아요. 짐 덩어리. 그렇죠? (왜 웃으세요? ^^;) 여러분, ‘사역’이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얼마나 귀한 선물이에요. 그렇죠? 그러나 이 사역 감당하는 것도 사실은 무겁습니다. ‘복’이라고 무게가 없는 게 아닌 거예요. 우린 맨날 복주머니 들고서 이렇게 쉽게 생각하지만 복은 무거운 겁니다.한 성도님이 난임으로 오래 고생을 하시다가 드디어 이제 아이를 보셨어요. 그런데 무려 세 쌍둥이를 그냥 보신 거예요. 하나님이 복을 부어 주신 것이죠. 얼마나 이 세 쌍둥이가 귀했겠어요? 여러분, 생각을 해 보세요.그런데 이제 아이를 키우기 시작했습니다. 하루하루 그 무게가 이분의 삶에 더해지기 시작했어요. 그러다 보니 이분은 집으로 퇴근하시는 게 회사로 출근하시는 것과 같은,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이 복덩이인 아이들이 ‘일감’처럼 보이기 시작했다고 정말 자기도 왜 그런지 모르겠다고 목장에서 이렇게 나누시더라고요. 감사함의 선물도 그 무게는 우리가 어쩔 수가 없는 거예요.이스라엘 백성이 어떤 사람들이에요? 만나를 주시면 “또 만나야?!” 이랬던 사람들이죠. 물이 없으면 “아우, 애굽에서는 그래도 물은 먹었는데!!” 길이 조금만 어려우면 “야~ 우리를 다 광야에서 죽이려고 데리고 왔구나!!” (했던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그 스토리를 읽을 때마다 이해가 안 되는 거예요. ‘어떻게 이런 사람들이 있을 수가 있는가!’ 막 이스라엘 백성들이 … (저는 그래요, 저는)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가! 이해가 안 된다! 어떻게 이런 뻔뻔한 사람들이 있지?!’ 하지만, 그 시선을 저 자신에게로 돌리는 순간! 작은 불편함에도…. 저는 여름이 너무 힘들거든요. 이 더위만 조금만 이렇게 습도만 조금 높아져도 막 이제 투덜거리고 불평하는 제 자신의 모습이 이스라엘 백성과 하나도 다를 게 없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어요.그런데도 하나님은 약속을 지키셔서 이 이해가 안 되는, 이 형편없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어떻게 하셨습니까? 하늘의 별처럼 번성하게 하신 것이죠. 남자만, 싸움에 나갈 수 있는 장정만 60만이 넘는 어마어마한 백성으로 키우신 거예요. 백성의 원망이 하나님의 약속을 이기지 못했습니다!그러니 모세를 지금 짓누르고 있는, “나 홀로 어찌…” 하게 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이 짐은, 이 무게는 하나님이 약속을 어기신 그 증거가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이 약속을 지키셨다는 그 증거인 것이죠.그런데 모세가 “천 배나 되기를 원한다” 이렇게 또 기도하잖아요. 축복하잖아요. 근데 왜 하필 ‘천 배’일까요? 지난 수요일 사무엘하 본문에 보면 요압이 다윗에게 100배를 얘기했잖아요. 그렇죠? 130만에 100배, 몇 명이에요? 아침부터 산수 문제 드려서 죄송합니다. 1억 3천인가요? 그런데 지금 이 남자만 60만 명인데 모세는 지금 “천 배나 더 하게 하기를 원한다” 이렇게 하니까 몇 명이에요? 60만의 천 배는 6억이죠. 맞아요? 6억. 맞죠? 갑자기 저도 계산이 안 되네요. 여러분 남자만 60만 명(이니, 여자와 노인과 아이까지 생각하면 전체 출애굽한 인구를) 200만 명이라고 칩시다. 200만도 지금 무겁다고 하는 모세가 천 배를 얘기하니까 지금 20억을 지금 축복하는 거 아니에요? 진짜 이게 계산으로 하면은 ‘도대체 모세가 무슨 말을 하는 거야?’ 하지만 여러분, 이 ‘천(=10^3)’이라는 숫자는 성경에서 여러분이 아시는 대로 완전 수예요. 언약의 숫자예요. 완전 수 10에 3승이잖아요. 그렇죠? 3도 하나님을 상징하는 수거든요. 즉, ‘언약이 완전히 이루어진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신명기 7장 9절 신명기 7:9 그런즉 너는 알라 오직 네 하나님 여호와는 하나님이시요 신실하신 하나님이시라 그를 사랑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그의 언약을 이행하시며 인애를 베푸시되에 보면 ‘천 대까지 그 약속을 이행하시는 하나님’을 노래하거든요. 신명기 7장 9절에. 그러니까 ‘천(=10^3)’이라는 숫자는 약속을 이루는 것, ‘언약의 숫자’인 것입니다.그리고 ‘하늘의 별’도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여러 차례 약속하셨던 그 ‘언약의 언어’인 거예요. 약속의 언어. 그러니까 모세는 지금 10절과 11절 이 두 절에서 약속의 언어를 지금 계속 상기시키면서 지금 스스로 얘기를 하고 있는 것이죠. ‘천’ 그다음에 ‘하늘의 별.’ ★모세는 계산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을 붙든 겁니다.혼자 짐을 지려는 사람은요, 짐이 줄어들기만 바라요. ‘내 짐은 언제 좀 가벼워지나’ ‘쟤네들이 언제 좀 속을 덜 썩이나’ ‘우리 남편 언제 좀 사람 되나’ ‘우리 아내는 언제 좀 부드러워지나’ 이렇게 막 짐이 줄기만 기대하지만, 신실하신 하나님께 맡기는 사람은 ‘천배’를 구할 수 있는 겁니다.하지만 이 ‘별’ 같은 백성이 동시에 모세 속을 너무 지금 썩여 놓는 거예요.12절입니다. 12. 그런즉 나 홀로 어찌 능히 너희의 괴로운 일과 너희의 힘겨운 일과 너희의 다투는 일을 담당할 수 있으랴_신 1:12여러분, 백성의 입장에서 보면 백성도 할 말이 많아요. 애굽에서는 아무리 종살이했어도 누울 집은 있었거든요. 그런데 지금 광야살이를 하고 있단 말이죠. 낮의 해와 밤의 냉기로부터 보호해 줄 수 있는 것이 하나님이 구름 기둥과 불기둥을 주시지 않으면 아무것도 없는, 정말 먹을 것도 없고 아무것도 없는 진짜 천막살이, 텐트살이 하고 있는 것이거든요. 그러니까 이 불편한 생활 속에서 그냥 ‘톡’ 건드리기만 해도 폭발을 하는 거예요.우리, 불쾌지수가 조금 높은 날에는 서로 조심해야 되는 거 아시죠? 불쾌지수가 조금 높아지는 날에는 말도 조심해야 되고 행동도 조심해야 돼요. 왜냐, ‘톡’ 건드리면 그냥 터지거든요. 다들 그냥 폭탄이 돼 가지고. 지금 이 광야를 지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 지금 시한폭탄이란 말이죠.아침에 눈을 뜨면, 모세가 자고 있는 텐트 밖에는 이미 줄이 서 있었을 거예요. 모세가 딱 나오면, “우리 옆집 사람이 우리 염소 훔쳐 갔어요! 쟤 좀 혼내주세요.” “우리 옆집 아저씨가 우리 애를 때렸어요. 쟤 좀 혼내주세요.” 막 이러쿵저러쿵 자기들끼리 치고받고 싸운 일들을 모세 앞에 와서 다 처리해 달라고 지금 줄을 서 있는 것이니, 모세가 정말 이 약속의 성취의 증거인 이 백성들에 대해서 너무 감사하지만 현실 앞에 닥친 이 문제를 보면 ‘도저히 혼자 질 수 없는 일이구나’ 이 무게를 고백할 수밖에 없었던 겁니다.그러면 이 모세의 말이 믿음이 없는 말이었을까요? 아니죠. 우리는 힘들면 어떻게 합니까? 너무 힘들면 말없이 도망가기도 하고요. 여러분, 그런 적 계시죠? 너무 힘든 일이 있으면 그냥 슬쩍 도망가거나, 아니면 너무 힘든데 어쩔 수 없는 일이면 어떻게 해요? 오기를 품고서 이를 악물고 그 자리를 버텨요. 그러나 여러분, 도망가는 것도, 오기 부리는 것도 믿음이 아닙니다.★★믿음은 내 한계를 인정하는 거예요. 그래서 모세는 온 백성 앞에서 지금 “나 홀로 어찌, 나 홀로 어찌 이 짐을 지겠느냐”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눈앞에 (별처럼) 반짝이는 사람 한 명도 없었을 거예요. 정말 전부 다 폭탄 덩어리들이기 때문에 아무리 봐도 별처럼 반짝이는 사람 없었을 겁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저 짐짝 같은 사람들을 ‘하늘의 별’에 비유해 주시기 때문에 모세는 지금 그 약속을 붙잡고서 ‘별’로 그들을 축복하는 것이죠. 그들을 ‘별’로 보는 거예요. 보이는 대로 부르는 것이 아니라 말씀하신 대로! 하나님이 말씀해 주시는 대로 부르는 것, 이것이 ‘믿음’입니다. 우리는 왜 저 사람, 여러분 그 ‘저 사람’ 있죠? 한 명씩 다 지금 있으시죠? 그 사람, 저 사람! 저 사람! 왜 ‘저 사람’을 짐으로 이렇게 여길까요? 저 짐 덩어리, 저 짐짝. 왜 우리는 그런 생각에 사로잡혀 있을까요? 그것은 ‘나는 괜찮은데 저 사람 때문에 내가 고생한다.’ 이렇게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여러분, 말씀 앞에 한번 서 보시기 바랍니다. 나도 가족과 지체에게 참 무거운 사람이라는 것을 우리가 깨달을 수 있죠. 그리고 특히 주님 앞에서 우리의 죄가 얼마나 무거운 짐이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이런 짐 덩어리인 나를, 죄의 짐짝인 나를 버리지 않으시고 오늘 여기까지 데리고 오신 거예요. 그러므로 내가 짐처럼 여기는 그 사람도, 저 사람도. 여러분 머릿속에 떠오르는 그 사람이 짐이 아니라 하나님이 약속하신 별인 것입니다. 그 별을 여러분에게 특별히 맡기셨으니 여러분은 더 반짝이는 별인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이 뭐 미워서 그렇게 짐 덩어리 같은 … ‘별’이라고 부르시면서 그 사람들을 맡겨 주신 게 아니에요. 여러분이 더 반짝이는 별이기를 하나님이 믿으시고 또 기대하시기 때문에 여러분을 아끼시기 때문에 그게 한 사람을 맡기신 줄 믿어요. 우리에게 맡기신 사람이 무겁다고 해서 그게 저주가 아닙니다. 복이에요. 다만 다이어트를 안 한 아주 무거운 복이에요. ‘비만 복’이라고 해야 될까요? ^^; 너무 몸이 무거워서 우리를 짓누르고 있지만 하나님의 ‘복’인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믿음의 고백은 ‘주님, 저 사람 좀 치워주세요’가 아니라 ‘주님! 저는 이 사람을 오늘 혼자 질 수 없습니다. 도저히 제가 질 수 없습니다. 제가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에요. 제 힘으로, 제 성품으로, 제 경험으로, 제 인내심으로 할 수 없습니다. 주님,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에게 이 짐 맡기셨으니 주님 도와주세요.’ 주님께 기도하는 것이 바로 믿음의 고백인 것입니다. 한 성도님이 남편 때문에 너무 힘드셨대요. 남편이 이 분노가 많으셨던 것이죠. 화가 많아서. 그런데 어느 날 남편하고 대화를 하는데, 이렇게 얘기를 하시더라는 겁니다. “내가 말이야 같이 살기가 너무 힘든 사람 같아.” 별말 아니잖아요? 근데 이 말을 듣는 그 무렵부터 남편은 여전히 화내고 남편이 여전히 욱하고 여전히 소리 지르고 그러지만은 그 모습들을 통해서 본인이 타격을 안 받는다는 거예요. 똑같이 화를 내는데 타격이 없대요. 그래서 그게 싸움으로 이어지지 않는다고 그럽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보세요. ★자기 자신이 무겁다는 걸 깨닫고 그걸 그냥 고백하기만 해도, 내 옆에서 나의 짐을 져주는 사람의 느끼는 무게가 줄어든다는 것이죠. 이게 진짜 ‘은혜의 원리’ 아니겠습니까? 그러니까 여러분 이분도-지금 우리 고백한 목장에서 나누신 이분도- 이렇게 이제 “내가 무거운 사람이다”라고 너무 귀한 고백을 하셨는데, 거기서 이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아내분의 짐을 좀 같이 져주시기를 축복합니다! 그리고 여러분도요, 진짜 본인이 짐이… ‘나는 짐이 아니지’라고 생각하시는 그분이 이제 짐일 가능성이 큰 거예요, 집에서.^^;; 제가 이번 여름에 그걸 굉장히 많이 느껴요. 저는 진짜 ‘나는 아무한테도 부담을 주지 않고, 항상 이렇게 하고 다 이제 이렇다’고 생각을 했는데 제가 진짜 한 주 한 주 보는 거는 ‘내가 진짜 짐 덩어리였구나’라는 것을 생각할 수밖에 없더라고요. 그래서 주변에서 진짜 감당을…. 보세요. “내가 짐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제일 짐이었다”는 말이잖아요. 그러니까 여러분 중에 혹시 “나는 짐 지느라고 너무 힘들어! 나는 왜 이렇게 당하고만 살아야 돼?” 이러시는 분들 계시다면 오늘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짐인 거예요. 여러분이! 여러분이 짐이에요! 여러분의 짐을 주님이 지금 지시느라고 너무 지금 수고하고 계신다는 거! 기억하시고 짐을 잘 감당하시길 바랍니다. ▪ 적용 질문Q. 내게 ‘짐’처럼 무거운 사람은 누구입니까?Q. 그를 버리고 도망하려 합니까, 아니면 오기로 혼자 감당하려 합니까?Q. 그가 ‘짐’ 같아도 ‘별’임을 믿음으로 고백할 수 있습니까?고백이 잘 안 나오실 거예요. 쳐다보면 ‘별… 참, 별… 인생, 별난 인생이네~’ 이렇게 말이 나오지 ‘별’이라는 고백이 진짜 안 나오실 텐데 오늘 말씀 붙들고 ‘별’이라고 고백하시기 바랍니다. 그럼 우리가 “주님, 저는 혼자 질 수 없어요. 이 짐 덩어리 전 진짜 나 홀로 어찌… 혼자 질 수 없습니다.”라고 이렇게 주님 앞에 손을 들면 주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실까요? “나 홀로 어찌” 두 번째는,2. 함께 질 사람을 세우십니다(13-15절) 13절에서 15절입니다. 13. 너희의 각 지파에서 지혜와 지식이 있는 인정 받는 자들을 택하라 내가 그들을 세워 너희 수령을 삼으리라 한즉 14. 너희가 내게 대답하여 이르기를 당신의 말씀대로 하는 것이 좋다 하기에 15. 내가 너희 지파의 수령으로 지혜가 있고 인정 받는 자들을 취하여 너희의 수령을 삼되 곧 각 지파를 따라 천부장과 백부장과 오십부장과 십부장과 조장을 삼고_신 1:13-15“홀로 질 수 없습니다”라고 하는 모세에게 하나님이 주신 답은요, ‘더 강하게 만들어 주시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더 백성을 가볍게 줄여 주시는 것’도 아니었어요!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주신 답은 함께 질 사람들! 함께 그 짐을 질 사람들을 세워주신 겁니다! 하나님은 짐을 없애 주시기보다 함께 짐을 질 어깨들을 세워 주시는 것이죠! 그런데 아무나 이 어깨로 세우시는 게 아니에요. 말 잘하는 사람, 목소리 큰 사람, 아는 거 많은 사람, 힘센 사람 이런 사람들이 아닙니다! 대신에 일을 바르게 처리할 줄 아는 그 지혜가 있는 사람, 그리고 상황을 분별할 수 있는 그 지식이 있는 사람, 그리고 무엇보다도 곁에 사람들이 ‘저 사람이라면 이 짐을 맡길 수 있겠다’ 이렇게 인정하는 사람- 주변 사람들로부터 인정받는 사람입니다. 무엇을 인정받느냐? “맡길 수 있는 사람이구나. 짐을 지울 수 있는 사람이구나.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이구나.” 그런데 여러분 그럼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이 누군가요? 똑똑한 사람, 많이 배운 사람, 잘생긴 사람, 힘센 사람? 우리는 이렇게 생각하잖아요. 그런데 진짜 믿고 맡길 수 있는 사람은 뭐예요? ★짐을 지고 있는 사람이에요. 여러분 주변에서 여러분의 짐을 털어놓을 수 있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똑똑한 사람, 잘난 사람, 능력 있는 사람보다 나보다 더 무거운 짐을 지고 있는 사람이잖아요. 그렇죠? ★자신의 짐을 잘 지고 자기 자리를 잘 지키고 있는 사람이 맡길 수 있는 사람인 거예요. 그 사람이 인정받는 사람인 거예요. 모세는 혼자 이런 사람들을 다 골라서 그 자리에 꼽아 놓지 않았습니다. 이 과정을 잘 설명을 하니까 공동체가 “좋습니다!” 동의를 하고, 그리고 중요한 건 각 지파가 –각자가- 직접 그 사람들을 선택하게 한 거예요. 그리고 모세는 그 사람들을 이제 임명을 한 것이죠. 그렇게 천부장부터 조장까지 세우신 것처럼 우리들 공동체에도 무엇이 있죠? 평원지기, 초원지기, 마을지기, 목자, 부목자. 다 이런 섬김이들이 있어요. 근데 이름도 뭐예요? ‘-지기’에요! 짐을 지는 ‘-지기’! 공동체에 속한 한 사람도 자기 짐에 눌려서 무너지지 않도록 하나님께서 짐을 지는 이 ‘-지기’들을 우리의 어깨로 세워 두신 것입니다. 그런데 보세요. 우리가 지금 오늘 9절부터 쭉 보지만 1대지에서 우리가 본 것처럼 말씀으로 짐을 지는 게 먼저인 거예요. 그 짐을 해석하고, ‘내가 그 짐을 잘 지겠다’ 짐에 대한 해석이 먼저라는 것이죠. ‘내가 짐을 잘 져야 되는구나. 내가 짐을 같이 져야 되는구나.’ 이걸 먼저 깨달은 다음에! 그다음에 이제 천부장, 백부장 오십부장 십부장, 조장의 ‘조직’이 나온다는 것이죠. 여기에 대해서 제가 이제 목사님께 배운 것인데요. 우리들교회도 처음에 13개 가정이 모였을 때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한 번도 좋은 조직, 좋은 시스템을 만들려고 하신 적이 없다고 그러시더라고요. “그저 말씀으로 그날 하루하루 지체들의 짐을 같이 지다 보니까 그것이 저절로 조직이 되었고, 저절로 시스템이 되었고, 그러다 보니까 이제 천배의 축복을 주셨다”고 목사님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들으면서 제가 저 자신을 또 한 번 생각을 해봤어요. 그랬더니 저는 그 반대였더라고요. 저는 그냥 ‘천배’부터 생각했던 거예요. ‘천배의 복, 천배의 사역’ 그렇다고 제가 또 교양과 체면이 있는데 이것을 어떻게 또 대놓고 그랬겠어요? “부흥을 주옵소서!” 제가 이런 과는 아니거든요. 이 체면이 있기 때문에^^; 하지만, 하지만 제 속에는 왜 그런 야망과 욕심이 없었겠습니까? 늘 속으로는 이제 ‘넘버 게임’을 했던 거예요. 속으로 이제 칼을 갈고 무기를 준비하고 ‘내가 천배의 부흥을 일으키리라! 천배의 사역을 하리라!’ 이러면서 헛된 망상을 꾸면서 그렇게 살았던 것입니다. 근데 사실 지금도 그럼 (그런 생각이) 없어졌을까? 돌아보니까 지금도 있어요. 그래서 조직으로, 또 시스템으로 이 ‘천배’를 만들려고 하는 것이 제 안에 있더라고요. 그런데 저는 정말로요, 아무리 생각해도 저는 정말로 하나 원하는 게 있습니다. 우리 <큐티인 시리즈>가 천배의 부흥을 하기를 정말로 원해요. 왜냐? 이게 무슨 이게 그 ‘책’ 그게 문제가 아니라 제가 그 큐티인을 통해서 살아났잖아요. 제가 저 자신을 전혀 못 보다가 <큐티인>을 통해서 그 말씀을 다시 만나고 저 자신을 보게 되고, 이 사역에 또 이렇게 쓰임을 받고 있잖아요? 저 같은 사람이 천배가 생겨야 이 세상이 하나님 나라가 되지 않겠습니까? 진짜 사람 살리는 우리 사역자들이 세워지고 교회가 생기지 않겠어요? 그런데요 여러분, 이 ‘좋은 조직’은 우리가 원하고 준비하고 노력한다고 되는 게 아니더라고요. ★말씀으로 서로의 짐을 질 때! 여러분들이 우리들교회에서 지금까지 살아오신 것처럼! 저보다 더 잘 아시는 것처럼! 저보다 더 많이 경험하신 것처럼! 이렇게 말씀대로 서로의 짐을 지면서 살아갈 때 세우시는 분이 세워주시는 줄 믿습니다. 교회는 관중석이 아니에요. 앞에서 누군가는 책임을 지고, 또 옆에서 누군가는 함께 그것을 들고, 또 뒤에서 누군가는 그것을 미는, 받쳐주는 그런 곳이 교회입니다. 그렇게 우리가 함께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어 가는 거예요. 하나님은 이미 내 말을 들어줄 목자도 두셨습니다. 그리고 함께 울어줄 또 지체도 내 옆에 두셨어요. 여러분 주변에 다 있으시죠? 그런데 목장에서 “이번 주 기도 제목 뭐예요?” 이렇게 물어보면 우리는 가끔 “이번 주엔 특별한 거 없어요.” 그럴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 집에 돌아가면 눈물이 흐르는 현실 앞에 마주하게 되는 것이죠. ‘도움을 주는 사람, 기도해 주는 사람’으로 보이고 싶은데, ‘도움을 받는 사람 기도 받는 사람’으로 보이기가 부끄러울 때가 우리의 연약함 가운데 있는 거예요. 한 성도님의 나눔입니다. 일이 잘 풀릴 때는 “아, 이거 다 하나님께서 하셨습니다.” 이렇게 고백하셨대요. 그런데 일이 풀리지 않고 뭔가 뜻대로 안 이루어지고 고난이 오면 교회도 큐티도 목장도 다 싫어지더랍니다. 이제 이분이 자존심 때문에 공동체에 기도 제목 나누는 거를 좀 잘 못 하셨대요. 꺼려하셨대요. 근데 이제 한 번은 어떤 프로젝트가 있어서 이제 진행하는데 그게 너무 이제 중요하고 어려운 거여서 마감이 닥쳤을 때 -참다 참다 참다 못해서 마감이 닥쳤을 때- 이제 기도 부탁을 목장에 하셨답니다. 사실 조금만 더 일찍 하셨으면 같이 우리 목장에서 기도하고 같이 그 힘든 거 들어주고 위로해 주고 이런 더 풍성한 복을 누리셨을 텐데 참 아쉽습니다. 하지만! 이 마지막 순간에라도! 막판에라도! 자존심 내려놓고 기도 부탁하신 거 정말 잘하신 것 같아요. 이분이 이런 경험을 하면서 이렇게 나누셨더라고요. 앞으로는 이 새로운 프로젝트 또 어려운 일 있을 때는 목장에서 자존심을 다 내려놓고 기도 부탁하시겠다고. 정말 여러분, 우리가 상황마다 또 믿음의 분량이 다 다르고, 사람의 성품이 다 다르기 때문에 어떻게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게 되는지 모르는 거예요. 근데 진짜 공통된 문제는 뭐냐면 진짜 그 ‘자존심’은 우리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문제 같아요. (어려움을) 나누기 전에도 우리는 자존심 때문에 고민할 때 있고, 나누고 나서도 또 자존심 때문에 싸움할 때가 우리 목장에서 있지 않습니까? 여러분 자존심 내려놓으시길 바라요. 그 자존심 내려놓고 그냥 솔직하게 우리가 하는 것처럼 나누고 가는 것이 우리가 함께 짐을 지고 가는 사람으로 살아가는 모습입니다. ★목장에서 짐을 꺼내놓는 것은요. 약해지는 게 아니에요. 오히려 목장을 통해서 내 짐을 함께 지게 해 주시는 그 지체들을 두신 하나님을 향한 신앙고백인 것입니다. “내가 다 구해주겠다”고 나설 수도 없죠, 사실은. 그러나 “나는 상관없다”고 빠져서도 안 되는 거예요. ★아무도 우리 중에 누구도 ‘구원자’는 아닙니다. ★그러나 또 우리 중에 누구도 ‘구경꾼’도 아닌 거예요. 우리는 그냥 같이 이 삶의 짐을 지고서 같이 한 걸음 한 걸음, 같이 하루하루 살아가는 지체이자 믿음의 가족인 줄 믿습니다. ▪ 적용 질문Q. 내 짐을 함께 져 주는데, 내가 고마워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누구입니까?Q. 자존심 때문에 혼자 버티고 있지는 않습니까?Q. 나는 누구의 짐을 함께 지고 있습니까?우리가 짐을 혼자 질 때는 사실 부딪힐 일도 없고 갈등할 일도 없어요. 내 힘 조절해 가면서 그냥 들 수 있는 만큼 들면 됩니다. 근데 이 짐을 ‘같이’ 지는 순간 좀 편해지는 것 같다가도 무슨 일이 생겨요? 서로 손이 부딪히고, 서로 발이 안 맞고, 서로 가고 싶은 방향이 다르고, 맞춰야 될 일이 생기는 겁니다. 이럴 때 누구 말대로 누구 뜻에 따라야 될까요? “나 홀로 어찌” 세 번째는, 3. 재판은 하나님께 속합니다(16-18절)16절 18절입니다. 16. 내가 그 때에 너희의 재판장들에게 명하여 이르기를 너희가 너희의 형제 중에서 송사를 들을 때에 쌍방간에 공정히 판결할 것이며 그들 중에 있는 타국인에게도 그리 할 것이라 17. 재판은 하나님께 속한 것인즉 너희는 재판할 때에 외모를 보지 말고 귀천을 차별 없이 듣고 사람의 낯을 두려워하지 말 것이며 스스로 결단하기 어려운 일이 있거든 내게로 돌리라 내가 들으리라 하였고 18. 내가 너희의 행할 모든 일을 그 때에 너희에게 다 명령하였느니라_신 1:16-18세워진 지도자들이 져야 될 가장 큰 책임이 뭐였습니까? 백성의 송사를 듣고 옳고 그름을 분별해서 판단하는 ‘재판하는 일’이었어요. 그러나 재판장도 똑같이 죄인이고 연약한 사람이기 때문에 재판에서 자기편을 들 수밖에 없었고, 그다음에 사람의 얼굴을 보고 그것에 따라서 흔들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재판장에게 가장 필요한 게 무엇이었을까요? 재판석에서 탕!탕!탕! 두드리는 그 법봉(法棒)이 아니라 오늘 말씀 보니까 “귀”였어요! 귀! 우리 성경에 16절에 보면 “송사를 들을 때에”라고 되어 있잖아요. 근데 이 원문은 ‘명령’입니다. 뭐냐 하면 “들으라! 그리고 판결하라!” 그냥 “들을 때에~” 뭐 이게 아니라 “들으라! 그리고 판결하라!”예요. ★바른 판단은 말 잘하는 데서 나오지 않습니다. 잘 듣는 데서 시작되는 거예요. 내 형제, 내 편의 말만 들을 것이 아니라 아무 연고도 없고 뒤를 봐줄 것도 없는 그 타국인의 말도 “잘 들으라”고 하십니다. 이건 이제 ‘타국인’이 대표하는 것이겠죠. 나와 상관없는 사람, 내가 무시해도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 심지어 내가 미워하는 그 사람의 말도 이 재판이라는 자리에 있어서는 “잘 들어주라!” 똑같이 들어주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우리는요, 듣기 전에 판결을 내릴 때가 너무 많아요. 그래서 아내가 세 문장 말하기도 전에 “또 그 소리야!” 이렇게 판단을 내리고요. 아이들이 뭔가 설명을 하기도 전에 표정만 보고서 “네가 잘못했잖아!” 이렇게 우리가 판단을 내립니다. 친한 사람한테는 ‘뭔가 사정이 있겠지.’ 듣지 않아도 ‘뭔가 사정이 있겠지’ 덮어주고 내가 싫어하는 사람은 듣기도 전에 ‘네 그럴 줄 알았다~’ 이렇게 얘기하는 것이 우리의 모습이에요. 내 편 말은 확성기로 듣고, 남의 편 말은 음소거를 해버립니다. 저마다 다 재판장이 되어서 이런 판결을 내리면서 사니까 우리가 사는 … 그게 심지어 가정이라 하더라도 얼마나 다툼이 많겠어요? 매 순간이 사실은. 그게 겉으로 드러나냐 안 드러나냐 이 차이가 있을 뿐이지 속으로는 늘 부딪힘이 있는 것이죠. 우리는 좋아서 한쪽으로 기울기도 하고, 싫어서 또 한쪽으로 치우치기도 합니다. 그래서 모세가 오늘 말하는 거예요. “재판은 하나님께 속한 것인즉!” 재판은 하나님께 속한 것인즉! 이게 그 법정에서 하는 재판만 말하는 게 아니죠. 지금 말씀드린 것처럼 우리 생활에서, 우리 삶에서 내리는 모든 판단들, 우리 머릿속으로 내리는 모든 판단들이 누구에게 속하였다는 거예요? 하나님께 속했다는 겁니다. 우리는 대법관이 아니라는 거예요. 모든 판단의 최종 결재가 우리 자신에게 있지 않다는 겁니다. 내 기분이 판결문이 아니고, 내 이념 그것이 기준이 아니고, 내 확신이 하나님의 뜻 자체도 아니라는 거예요. 그렇다고 그러면 아무 판단도 내리지 말고 살아야 되느냐? ‘좋은 게 좋은 거지~’ 하고 살아야 되느냐? 그게 아닙니다. ★끝까지 듣고 말씀을 기준으로 바르게 분별하되! 그렇게 내린 판단도 이것이 마치 하나님의 최종 판결인 것처럼 상대방에게 휘두르지 말라는 거예요. 오늘 우리 찬양 앞에서도 했지만 우리가 “말씀 앞에서” 우리의 생각과 판단을 내려놓아야 되는 겁니다. 말씀만이 하나님의 말씀만이 너와 나 사이에 진정한 기준이 되는 거예요. 판단하기 어려운 일이 있을 때 그래서 어떻게 하라고 그래요? “내게로 돌리라 내가 들으리라” 내게로 돌리라 내가 들으리라. 모세가 듣겠다는 거예요. 혼자 결론 내리지 말라는 것을 다시 한번 강조해서 말하는 겁니다. 우리는 혼자 생각할수록 이런 생각이 강해져요.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내가 맞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내 생각이 맞아~ 내가 보는 게 맞아~’ 혼자 생각하면 내 머릿속 법정에서 내가 혼자 검사도 하고~ 증인도 서고~ 판사도 하면서~ 그렇게 그냥 내 결론을 내려버리는 것이죠. 그래서 우리는 날마다 말씀 앞에 가지고 나가야 되는 것이고요. 주마다 목장에 가지고 나가서 믿음의 지체들과 나누면서 물어봐야 되는 거예요. 사람 얼굴을 보면 우리 판단은 휘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거기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이 없어요. 그러나 하나님을 보면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을 보면 내 생각이 바로 세워지기 시작하는 거예요. ★여러분 짐은 함께 지십시오. 그러나 하나님의 자리에는 앉으면 안 됩니다. 내가 짐을 져준다고 내가 그 하나님의 자리에 앉으면 안 되는 거예요. 우리는요, 특히 저같이 사역자 또 우리 직분자들은 짐을 이렇게 지어 주다 보면, 섬기다 보면 어느덧 우리도 모르게 우리 안에 그 하나님의 자리에 앉으려 하는 우리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때가 있더라고요. 그러면 안 된다는 겁니다. 재판은 하나님께 속한 거예요. ▪ 적용 질문Q. 누구의 말은 듣기도 전에 “옳다” 하고, 누구의 말은 듣기도 전에 “틀렸다”고 합니까?Q. 혼자 판결하지 말고, 목장에 가져가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한 성도님은요, 어릴 때부터 모든 문제를 혼자 해결해야 되는 그러한 상황 속에서 이제 자라셨어요. 묻고 의논하는 대신에 혼자 판단하고 결정해서 그냥 통보하는 것이 오랫동안 그렇게 살다 보니까 이제 습관이 되셨습니다. 거절과 비난이 두려워서 아내와 소통도 피하셨어요. 그러다 최근에는 아내 몰래 회사에서 퇴직금을 미리 땡겨 받아다가 엄청나게 이제 투자를 하셨다는 거예요. 근데 여러분 이런 걸 어떻게 끝까지 숨길 수 있겠습니까? 드러났죠. 그래서 이제 이 부부가 난리가 났습니다. 그런데 이분이 이 사건을 이제 겪으면서 생각을 하신 거예요. “도대체 내 문제의 근원이 뭔지” 심각하게 생각을 해 보신 겁니다. 그래서 깨달으신 것이 이렇게 지금까지 혼자 모든 걸 결정하고 해결하려는 이 태도가 우상이었다는 것을 이분이 깨달으셨다는 거예요. 근데 한번 제가 이분 입장에서 생각을 해 봤어요. 저도 살짝 이제 이분과 비슷한 과다 보니까 살짝 감정이입이 되더라고요. 생각을 해 보니까 정말 그 모습을 ‘우상’이라고 상상도 못 하셨을 것 같아요. 왜냐하면 그거 능력이잖아요. 책임감이잖아요. 성실함 아니겠어요? 그런 어려운 환경 속에서 혼자 그렇게 이제 어떻게 보면 자수성가를 한 거잖아요. 책임지고. 가족들 다 건사하고. 그러니까 그거는 사실 내가 가진 장점이고 내가 하나님 앞에 내세울 어떤 내 수고지. 인정받아야 될 것이지. 충성이지. 이걸 그렇게 생각해 보신 적이 없는데 이 사건을 통해서 스스로를 돌아본 것이죠. 그래서 제가 이걸 읽으면서 저도 생각을 해 보니까 여러분들이 진짜 별거 아닌 것 같아도요. 목장에서 매주 이렇게 나누시고, 부끄러운 얘기 뭐 지질한 얘기 막 우리 뭐 그렇게 얘기를 하지만 하여튼 그렇게 여러분들이 살고 계시는 여러분들이 지고 계시는 그 짐을 그냥 나누시면서 가면 전혀 이런 거 깨닫지도 못하는 저와 같은 사람도 그냥 그 분위기 속에서 저절로 그 생각의 시스템이 바뀌는 거더라고요. 한 번도 그거를 그렇게 생각을 안 해봤을 거 아니에요. ‘내가 다 잘한 건데’ 그래서 이분이 이렇게 이제 우상이라는 걸 깨달으시고 이것을 아들과 나누셨대요, 이 상황을. 그랬더니 아들의 말이 “아빠, 모든 경제권을 엄마한테 넘기세요.” 그랬다는 거예요. 그런데요. 그런데 이분이 그렇게 하신 거예요. 그래서 그 듣자마자 자기 통장에 있는 모든 돈을 아내 통장으로 쏴 줬다는 것이죠. 그런데 더 놀라운 게 있습니다. 제가 그랬다면 별로 안 놀랐을 것 같아요. 왜냐하면 저는 뭐 돈도 잘 모르고 재정에 제가 뭘 알겠어요? 아무것도 모르니까 그냥 ‘사고 쳤으면 그렇게 해야지’ 하겠는데 이분은 직업이 재정 전문가예요. 재정 전문가. 이 돈의 흐름을 아는 분이고 돈을 관리하는 분이란 말이에요. 그러니까 재정 전문가인데 지금 아들의 말을 듣고 이렇게 적용을 하신 거니까 이거 진짜 ‘믿음의 적용’ 맞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이 우상으로 보신 것도 너무 기적과 같은 일이고, 이런 분들한테는. 평생 그렇게 의롭게 사신 거잖아요, 책임지면서. 근데 이제 이 일을 통해서 자기가 우상을 마음속에 … ‘그게 우상이다!’ 내가 자랑삼았던 것이 우상이라는 걸 깨달으시고. 그리고 그 적용으로 진짜 내가 전문가인데 그것을 다 맡겨버리는 그 순종에-적용에- 하나님이 진짜 기름 부어 주실 줄 믿고요. 이것이 다른 게 아니라 여러분이 함께 짐을 진 그 열매라고 생각을 합니다, 여러분이 목장에서. 그러면서 이제 이렇게 나누셨어요. 앞으로 이제 어떻게 할까? 이제 결단을 하신 건데 “중요한 문제는 혼자 판단하거나 결정하지 않고 아내에게 묻고 의논하겠다”고. 그리고 “목장과 공동체에 오픈하여 묻겠다”고 하셨습니다. 너무 당연한 말이겠지만 이분한테는 이게 엄청난 적용인 거예요. 근데 여러분 제가 한마디 더 보태고 싶더라고요. “중요한” 여기 지금 제가 따옴표까지 쳐서 이제 인용을 했는데 “중요한 문제”라고 그랬어요. “중요한 문제는 그렇게 하겠다”고 그랬는데 여러분, 우리는 뭐가 중요하고 뭐가 중요하지 않은지 모릅니다. 재판은 하나님께 속한 거예요. ‘중요하고, 중요하지 않고’의 그 판단도 하나님이 아시는 것이지- 하나님이 결정하시는 것이지- 우리는 뭐가 중요한지 모릅니다. 우린 “급한 일보다 중요한 일 먼저 하라” 이거 알고 있지만 사실 뭐가 중요한지 우리는 잘 몰라요. 우리가 그걸 어떻게 판단하겠습니까? 급한 일이 뭐고 중요한 일이 뭔지 우리가 그걸 어떻게 분별하겠습니까? 그러니까 물어봐야 되는 거예요. “이런 걸 뭘 물어봐~ 이런 건 물어볼 필요 없어~” 여러분 집에서 맨날 부부끼리 그러시죠? “이런 거 물어볼 필요 없어~” 특히 남자분들! 아내분들이 “여보, 이거 목장에 가서 좀 물어보지. 이번 주에 조금 기다렸다가.” 그러면 뭐라고 그러세요? “아니, 뭐 그런 걸 물어보고 그래! 이거 당연한 건데!!” 그러시죠? 제가 대표해서 말씀드리지 않습니까? 뭐, 저도 그러기 때문에. 그러시면 안 된다는 거예요! 그러시면 안 된다는 거예요! ★작은 일도 재판은-판단은- 오직 여호와께 속했음을 고백하는 것은 우리 안에 있는 사소한 것도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말씀에 묻고, 또 목장에서 묻고, 믿음의 지체들에게 물어가면서 그걸 통해서 또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가면서 이렇게 한 걸음 한 걸음 인도함 받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말씀 맺겠습니다. “나 홀로 어찌” 탄식할 수밖에 없는 우리에요. 정말 우리 다 그런 짐을 짊어지고 있어요. “나 홀로 어찌… 혼자 어떻게 감당합니까? 주님” 이렇게 할 수밖에 없는 우리에게 오늘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짐 같아도 - 네가 무겁게 지고 있는 그게 짐 같아도- 그 별이다. 함께 질 사람들 내가 너 세워 주지 않았니? 옆을 봐라. 함께 짐을 짊어져 주는 우리 지체들을 내가 두지 않았니?” 우리 주님이 말씀하시는 거예요. 그리고 “얘야, 판단은 나한테 달려 있어. 최종 책임은 내가 지는 거야. 그러니 걱정하지 말고 근심하지 말고 너에게 맡겨준 그 짐을 별로 여기고 오늘 한 걸음 한 걸음 잘 살아라.” 이 주님의 음성을 오늘 들으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함께 이 고백하는 마음으로 찬양 드리겠습니다. ♬ 죄 짐 맡은 우리 구주 (새찬송가 369장)1. 죄 짐 맡은 우리 구주 어찌 좋은 친군지 걱정 근심 무거운 짐 우리 주께 맡기세주께 고함 없는 고로 복을 받지 못하네 사람들이 어찌하여 아뢸 줄을 모를까2. 시험 걱정 모든 괴롬 없는 사람 누군가 부질없이 낙심 말고 기도드려 아뢰세이런 진실하신 친구 찾아볼 수 있을까 우리 약함 아시오니 어찌 아니 아뢸까3. 근심 걱정 무거운 짐 아니진 자 누군가 피난처는 우리 예수 주께 기도드리세세상 친구 멸시하고 너를 조롱하여도 예수 품에 안기어서 참된 위로 받겠네 아멘 ♬ 기도 제목 우리 주님은 죄 짐 맡은 구주세요. 그 품에 안기면은 우리가 어떤 경우에라도 위로를 다 받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아직도 혼자 지려 하는 일이 너무 많습니다. 주께 온전히 아뢰지 못해요. 주님, 저희가 홀로 질 수 없습니다. 혼자 지겠다고 버티다가 지쳐버린 저희를 이 시간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복을 짐이라고 저주라고 불평했던 저희의 입술을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이제는 주님 품에 안기어서 우리의 모든 짐을 별이라 고백하며 성령의 힘으로 십자가 사명 잘 감당하게 해 주시기를 함께 기도하십시다. 진행 중인 큐페와 티티 위해서, 우리 목사님의 튀르키예 사역 위해서, 우리나라 위해서 다 함께 “주여” 한 번 부르시고 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저희가 지고 있는 짐이 참으로 참으로 무겁습니다. 건강의 짐, 가정의 짐, 공부의 짐, 사업의 짐, 관계의 짐, 섬김의 짐, 사역의 짐. 이 모든 무게에 눌려서 “나 홀로 어찌… 나 홀로 어찌…” 탄식할 수밖에 없는 저희들입니다. 주님은 저희의 가장 무거운 죄의 짐을 온전히 홀로 지시면서 저희를 이고 지고 안고 가시는데, 하나님 저부터가 그 은혜를 자꾸 잊어버리고 무겁다고 부르짖고 있습니다. 연약한 저와 저희 모두를 주님 불쌍히 여겨 주시고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저희 가운데 지금 심한 고통 중에 울고 있는 지체들이 있습니다. 삶의 무게에 짓눌려서 숨쉬기 어려운 주의 자녀들이 있습니다. 주님, 오늘 이런 저희들을 주님의 강한 팔로 그 넓은 품에 안아 주시옵소서. 우리가 지고 있는 짐. 짐이 아니라 별이라고 주님 친히 말씀해 주시고 설득해 주시고 감화시켜 주시옵소서. 주님이 불러주신 이 공동체 안에서 함께 그 짐을 감당할 수 있도록 은혜 내려 주시옵소서. 큐페와 티티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섬기는 모든 주님의 종들에게 능력과 위로와 기쁨과 감사를 내려 주시옵소서. 모두가 천부장, 백부장, 오십부장, 십부장, 조장처럼 영혼 구원과 가정 중수의 이 거룩한 사명을 함께 잘 짊어지고서 주님의 길을 걸어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 아버지, 우리 목사님 튀르키예 땅에서 말씀 전하실 때 성령의 권능을 주시며, 말씀이 들리는 그 한 사람, 그 한 사역자, 그 한 가정, 그 한 교회가 우뚝 세워질 수 있도록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 아버지, 이 나라가 끝없는 혼란과 갈등과 다툼 속에 있습니다. 주여, 저희 홀로 어찌 이 나라를 세울 수 있겠습니까? 어찌 담당할 수 있겠습니까? 주의 성령으로 이 모든 시험을 잘 통과하고 주님이 족하다고 해 주실 때까지 그래서 이 재앙이 그칠 때까지 저희가 들어야 할 짐을 잘 들 수 있도록 그 짐을 질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함께하여 주시옵소서. 모든 악법 막아주시고, 모든 재판이, 모든 판단이 하나님께 속했음을 믿고 고백하고 순종하는 참된 일꾼들이 세워지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하나님, 저희의 죄 짐을 맡아주신 그 은혜에 감사하여서 드린 이 예물을 주님께서 기쁘게 받아주시고, 주님 나라 위해 사용하여 주시옵소서. 예물 드린 손길마다 하나님께 드릴 것만 있고 사람들에게 나눌 것만 있는 인생 되도록 저희의 건강과 가정과 또 학업과 직장과 관계와 사역과 아이디어와 프로젝트 위에 성령의 기름을 부어 주시옵소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짐 같아도 별입니다!”
*** 목장 기도제목 나눔 ***
A:원하지 않는 환경에 있더라도 말씀으로 바르게 해석할 수 있는 은총내려 주시도록 B:인생을 직면 하여 영육의 필요한 곳에 일반은총의 치료 받을 수 있는 용기 주시어 많은 사람 살리는 별이 되도록 C: 1. 가족과 둥이에게 나눠 주고 싶은 사랑과 완전히 반대로 하고 있는 것을 알고, 멈추어, 불안한 영육에 약 받을 수 있는 일반은총의 은혜 내려 주시고 많은 사람 살리는 약재료 되도록 2. 회사와 직장 상사에게 잘보이려는 세상 작전으로는 만물의 주인인 하나님을 감동 시킬 수 없다는 것을 알고 회사/돈/ 생명의 주인인 예수님 말씀에 하루만 사는 적용 할 수 있는 힘과 지혜 주시고 (양교 받도록)D:1. 은혜 없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인생임을 알고 보내 주신 그곳이 사명의 자리임을 알고 최선을 다해서 감사하는 은혜 내려 주시고 (어찌하여 같은 상황들에)돕는 손길 보내 주시도록2. 할 수 없을 때 오묘한 표정으로 예의 바르게 NO, Thank U 거절 할 수 있는 지혜 내려 주시도록 E:올라가 차지 하라는 그곳이 내 안의 아모리 인것을 알고 힘써 무찔러 그 땅을 정복 하도록
함께 나누며, 우리의 연약함을 고백했습니다.
내 짐이라고 생각했지만, 그것이 별이라고 해석해 주셨습니다. 다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여전히 잘 모르겠지만 약속의 하나님을 믿고 목장에서 나눠 가면서 더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모든 목장 식구들이 모일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드리며, 풍성하게 먹고 눈물의 기도를 할 수 있음에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