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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문] 260726&0802 위드공동체 김성연 목장나눔
2026.07.26.(주일) 신명기 1:9-18「나 홀로 어찌」이성훈F 목사님(2부)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귀한 선물 앞에서조차 ‘독박 육아, 독박 간병, 독박 운전’이라는 표현을 쓰며 타인의 몫까지 전부 내가 부담하는 ‘벌칙’처럼 생각하곤 합니다. 여기에 세상은 ‘n분의 1’이라는 산술적 공평을 해결책으로 내놓지만, 현실은 그렇게 나눌 수 없는 일이 많습니다. 결국은 외면하거나 이를 악물고 그 자리를 버텨내려고 최선을 다합니다. 모세는 마지막 설교(신명기)를 시작하며 인생의 찬란한 기적이나 영광의 순간들이 아닌, 광야 여정을 시작하며 “나는 홀로 너희의 짐을 질 수 없도다”라고 탄식했던 가장 연약한 순간을 가장 먼저 회상합니다. 모세의 탄식, “나 홀로 어찌”를 통해 우리가 짊어지고 있는 그 삶의 무게, 우리를 짓누르는 인생의 짐을 하나님은 무엇이라고 말씀해 주시는지 살펴보겠습니다.
1. 짐 같아도 별입니다(9-12절)
Q. 내게 ‘짐’처럼 무거운 사람은 누구입니까?
Q. 그를 버리고 도망하려 합니까, 아니면 오기로 혼자 감당하려 합니까?
Q. 그가 ‘짐’ 같아도 ‘별’임을 믿음으로 고백할 수 있습니까?
2. 함께 질 사람을 세우십니다(13-15절)
Q. 내 짐을 함께 져 주는데, 내가 고마워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누구입니까?
Q. 자존심 때문에 혼자 버티고 있지는 않습니까?
Q. 나는 누구의 짐을 함께 지고 있습니까?
3. 재판은 하나님께 속합니다(16-18절)
Q. 누구의 말은 듣기도 전에 “옳다” 하고, 누구의 말은 듣기도 전에 “틀렸다”고 합니까?
Q. 혼자 판결하지 말고, 목장에 가져가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기도제목
W
1. 직장 안에서 문제가 있는 다른지점 직원이 우리 지점으로 오는데, 옳고그름으로 판단하지 않고,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묻고, 선하게 인도하여 주시기를…
2. 주일을 쉴 수 있는 직장 허락 하여주시기를…
3. 직장에서 함께 근무하는 직원들
친구(원정인, 김진화)
친 어머니 하나님 만날 수 있기를 중보기도 하고, 전도하기.
4. 건강을 위해서…
5. 생활예배 잘 드리기...
E
1. 동생들 결혼과 임신 소식으로 집에서 혼자 교회 다니는 내가 별이 아닌 짐같지만 나홀로 어찌니까 재판해주실 하나님과 돕는 손길들로 신결혼하길
2. 부모님 천국백성 삼아주시고 동생들 구원과 가정중수 도와주세요 할머니들 예수님께서 찾아가주세요
3. 목장식구들 가족구원과 신결혼에 기름부어주세요
4. 고등부 학생들 학생의 때와 자녀의 때 지켜주세요
5. 미취학큐페와 일본티티와 고등부 수련회 잘끝나서 감사하고 여름사역들이 웨이메이커되길
2026년 8월 2일 주일설교 말씀
열왕기하 23:15-20 <산당을 다 제거하되> / 김양재 담임목사님
15 또한 이스라엘에게 범죄하게 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이 벧엘에 세운 제단과 산당을 왕이 헐고 또 그 산당을 불사르고 빻아서 가루를 만들며 또 아세라 목상을 불살랐더라
16 요시야가 몸을 돌이켜 산에 있는 무덤들을 보고 보내어 그 무덤에서 해골을 가져다가 제단 위에서 불살라 그 제단을 더럽게 하니라 이 일을 하나님의 사람이 전하였더니 그 전한 여호와의 말씀대로 되었더라
17 요시야가 이르되 내게 보이는 저것은 무슨 비석이냐 하니 성읍 사람들이 그에게 말하되 왕께서 벧엘의 제단에 대하여 행하신 이 일을 전하러 유다에서 왔던 하나님의 사람의 묘실이니이다 하니라
18 이르되 그대로 두고 그의 뼈를 옮기지 말라 하매 무리가 그의 뼈와 사마리아에서 온 선지자의 뼈는 그대로 두었더라
19 전에 이스라엘 여러 왕이 사마리아 각 성읍에 지어서 여호와를 격노하게 한 산당을 요시야가 다 제거하되 벧엘에서 행한 모든 일대로 행하고
20 또 거기 있는 산당의 제사장들을 다 제단 위에서 죽이고 사람의 해골을 제단 위에서 불사르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더라
여전한 산당 제사가 어떻게 끝이 날수 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첫째, 뿌리까지 헐어야 끝납니다.
요시야는 유다 전역의 산당을 헐고 우상을 제거했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멈추지 않고 국경을 넘어 벧엘까지 갑니다. 벧엘 산당은 하루아침에 생긴 것이 아니었습니다. 성전이 세워지기 전에는 각 지역 산당에서 하나님께 제사했지만 솔로몬이 이방신을 위한 산당을 세웠고 여로보암은 금송아지 제사를 드리게 했습니다.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도 자기 방식대로 예배하는 것이 산당입니다. 요시야는 정치적 위험을 무릅쓰고 벧엘까지 간 이유가 있었습니다. 죄의 뿌리가 거기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로보암은 백성이 예루살렘에 예배하러 가면 마음이 돌아설 것을 두려워하여 백성들이 다시는 멀리 예루살렘에 갈 필요도 없고 손해 볼 것도 없고 편하게 예배하면 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정하신 예배를 사람의 형편대로 바꾸는 순간 그 편함이 죄가 되어버렸습니다. 처음에는 장소만 바꾸더니 제사장도, 절기도 자기 마음대로 정했습니다. 한 사람의 계산이 한 나라를 죄 가운데 끌고 갔고 그 산당은 300년 동안 이어졌습니다. 말씀을 내 형편대로 바꾸는 순간 하나님을 등 뒤에 버리는 것입니다. 무엇을 잃을까 두려워 말씀을 바꾸고 있습니까? 시험 때문에, 관계 때문에, 돈 때문에 타협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어느새 하나님이 정하신 예배는 없어지고 내가 편한 예배만 남아 있는데도 스스로는 믿음이 좋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까? 그래서 산당의 뿌리는 우상보다 먼저 두려움입니다. 하나님께 맡기지 못하고 내가 지키려는 두려움입니다. 요시야는 제단만 헐지 않았습니다. 헐고, 불사르고, 빻아서 가루를 만들고 해골로 성전을 더럽혀 다시는 성전의 기능을 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요시아는 구체적으로 적용을 했습니다. 우리도 끊을 것은 끊고, 지울 것은 지우고, 차단할 것은 차단하고 거기서 멈추면 않고 처음 그 산당을 세우게 한 두려움과 계산까지 내려가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산당은 다른 모습으로 다시 살아납니다. 돈을 내려놓은 줄 알았는데 자녀가 우상이 되고 사람 의지를 끊은 줄 알았는데 인정욕이 되는 것처럼 죄는 자리만 바꾸어 다시 나타납니다. 죄의 뿌리는 내 힘으로 찾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나를 죄의 시작점까지 데려가실 때 비로소 뿌리가 드러납니다. 말씀의 원칙을 지키며 타협하지 않는 것이 산당의 뿌리를 제거하는 길입니다.
<적용 질문 1>
- 무엇을 잃을까봐 제일 두렵습니까?
- 그 두려움 때문에 '이번만은 어쩔 수 없다'며 바꾼 예배나 순종이 있습니까?
- '이것만은 내 방식대로 하겠다' 고 버티는 한 가지는 무엇입니까?
둘째, 여호와의 말씀대로 끝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임해야 산당 예배가 끝납니다. 요시야는 부수고, 태우고, 빻고, 더럽히는 개혁을 계속합니다. 성경은 이 모든 개혁을 한 문장으로 해석합니다. "그 전한 여호와의 말씀대로 되었더라." 이 한문장을 이해하려면 3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여로보암이 벧엘 제단을 세우던 날에 유다에서 하나님의 사람이 와서 왕이 아니라 제단을 향해 외쳤습니다. 요시야가 태어나기도 300년 전에 하나님은 그의 이름을 미리 말씀하셨습니다. 열왕기하 23장에서는 계속 "왕"이라고 부르다가 16절에서 처음으로 "요시야"라는 이름이 등장합니다. 300년 전에 하신 예언이 이름 하나 틀리지 않고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말씀을 들으면서도 "내 경우는 다르다", "우리 집은 안 된다"고 예외를 만듭니다. 우리집은 어쩔수 없다고 말합니다. 말씀이 틀린 것이 아니라 내가 말씀 밖으로 나가려는 것입니다. 요시야는 비석 하나를 보며 "내게 보이는 저것은 무슨 비석이냐?" 라고 물었는데 그것은 요시야의 개혁을 예언했던 하나님의 사람의 묘실이었습니다. 요시야는 그의 뼈를 옮기지 말라고 명합니다. 그 곁에는 늙은 선지자의 뼈도 함께 있었습니다. 유다에서 왔던 선지자(하나님의 사람)은 말씀을 전했지만 자기에게 주신 말씀(빵도 먹지말고 물도 마시지 말라)에는 불순종하여 죽었습니다. 늙은 선지자는 자기집으로 속여 데려와 음식을 대접하여 하나님의 사람을 죽게하는 거짓말을 했지만 죽기 전에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며 "내 뼈를 그의 뼈 곁에 두라."고 유언했습니다. 그가 전한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질 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두 사람 모두의 연약함을 보여줍니다. 그러므로 사람에게 실망할 수는 있어도 하나님의 말씀까지 놓아서는 안 됩니다. 부모나 목자에게 상처받을 수 있고 말씀을 전하는 사람도 실패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기 말씀을 결코 어기지 않으십니다. 벧엘의 예언은 300년 동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여로보암도 죽고 왕조도 바뀌고 나라까지 망했지만 말씀은 살아 있었습니다. 내가 포기한 말씀을 하나님은 한 번도 포기하신 적이 없습니다. 약속의 말씀뿐 아니라 심판의 말씀도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산당은 300년을 버텼지만, 말씀은 산당보다 더 오래 살아 있었습니다. 오늘도 말씀은 내 안의 산당을 향하여 "제단아, 제단아."하고 외치십니다.
<적용 질문 2>
- 오래 기도해도 안 되어서, '우리 집에는 안 되나 보다' 하고 덮어 버린 말씀이 있습니까?
- 사람에게 실망해서, 하나님의 말씀까지 놓아 버린 적이 있습니까?
- 오늘 말씀이 "제단아, 제단아"하고 콕 집은 내 산당은 무엇입니까?
- 300년 뒤라고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질 것을 믿습니까?
셋째, 예배로 돌아와야 끝납니다.
요시야는 벧엘만이 아니라 사마리아 여러 성읍의 산당까지 제거했습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습니다. 오늘 본문은 단순히 우상을 부수는 이야기로 끝나지 않습니다. 돌아오는 이야기입니다. 요시야가 돌아온 곳은 왕궁이 아니라 예루살렘 성전, 하나님께서 택하신 예배의 자리였습니다. 우상을 헐기만 해서는 개혁이 완성되지 않습니다. 예배가 회복되어야 개혁이 완성됩니다. 산당은 단순히 우상을 섬기는 장소가 아니라 내 방식대로 하나님을 섬기는 자리였습니다. 반대로 예루살렘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방법대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리입니다. 그러므로 회개의 마지막은 죄를 끊는 것이 아니라 예배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예배가 회복되지 않으면 비워진 자리를 또 다른 우상이 차지합니다. 반쯤 태운 우상은 반드시 살아납니다. 산당을 비워놓는 것이 회개가 아닙니다. 하나님께 돌아와 예배하는 것이 회개의 완성입니다. 말씀을 듣고 공동체 안에 거하고 하나님 앞에 서는 삶이 계속될 때 비로소 산당은 다시 세워지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내 죄를 제거해주실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산당을 부수신 자리에 참된 예배로 채워주십니다. 하나님이 보시는 것은 하나님께 돌아왔느냐입니다. 회개는 하나님께 돌아와 예배를 회복하는 것입니다.
<적용 질문 3>
- 응답이 없어서 그만둔 기도나 예배가 있습니까?
- 끊었다가 도로 살아난 습관이나 죄는 무엇입니까?
- 내가 다시 찾아갈, 버려진 벧엘 같은 한 사람은 누구입니까?
- 회개로 예배가 완성되었습니까?
☆
1. 생활 예배가 회복하기!!
2. 직장 안에서 문제가 있는 다른지점 직원이 우리 지점으로 오는데, 옳고그름으로 판단하지 않고,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묻고, 선하게 인도하여 주시기를…
3. 돈을 내려놓구, 주님께 기도하면서 주일을 쉴 수 있는 직장 허락하여 주시기를…
4. 직장에서 함께 근무하는 직원들
5. 건강을 위해서…
J
1. 진로와 커리어에 기름부어주시도록
2. 생활예배 잘 드릴 수 있도록 (큐티&기도)
3. 가족들이 예배 회복할 수 있도록
4. 신교제와 신결혼 허락해주시도록
O
1. 집에서 혼자 교회 다니는 내가 동생들 보다 영육간 잘살고 싶은 첫째 우상의 산당제사를 큐티와 예배 말씀으로 뿌리뽑고 신결혼하길
S
1. 이번 한 주는 하나님과 친밀히 교제하는 시간들을 가질 수 있도록
2. 나의 한계를 인정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는 마음을 주시도록
3. 면접 준비가 막막한데 실마리가 풀릴 수 있도록
4. 가정구원에 대한 가난한 마음을 주시고 주신 마음으로 기도, 적용할 수 있도록
I
1. 지금 고난중인 일에 있어서
현명하게 대처 할 수 있는 지혜를 주시길
2. 마음의 안정을 찾을수 있게
기도로써 극복 할 수 있기를
3. 약과 술에 기대지 말고
나태해지지 않기를
A
1. 설교때 들은 하나님의 말씀 생활에 적용하기
2. 다낭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모두 잘 다녀오기
H
1. 가족이 수년간 저의 신앙생활을 위해 기도하고 있지만, 저는 아직 응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주일예배도 일 년에 다섯 번 남짓, 그마저 자발적이지 않습니다. 제가 스스로 믿음 안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기도 부탁드리겠습니다.
1. 하나님과 더욱 친밀해지고, 말씀과 기도로 생활예배가 될수있도록 해주세요 ????
2. 제가 하는 일을 통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경험하며, 재정이 회복되고 맡겨진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3. 부모님과 가족의 구원,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먼저 구하며 믿음으로 살아가는 삶이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