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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8.02.(주일) 열왕기하 23:15-20 「산당을 다 제거하되」 김양재 목사님(2부)
15. 또한 이스라엘에게 범죄하게 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이 벧엘에 세운 제단과 산당을 왕이 헐고 또 그 산당을 불사르고 빻아서 가루를 만들며 또 아세라 목상을 불살랐더라
16. 요시야가 몸을 돌이켜 산에 있는 무덤들을 보고 보내어 그 무덤에서 해골을 가져다가 제단 위에서 불살라 그 제단을 더럽게 하니라 이 일을 하나님의 사람이 전하였더니 그 전한 여호와의 말씀대로 되었더라
17. 요시야가 이르되 내게 보이는 저것은 무슨 비석이냐 하니 성읍 사람들이 그에게 말하되 왕께서 벧엘의 제단에 대하여 행하신 이 일을 전하러 유다에서 왔던 하나님의 사람의 묘실이니이다 하니라
18. 이르되 그대로 두고 그의 뼈를 옮기지 말라 하매 무리가 그의 뼈와 사마리아에서 온 선지자의 뼈는 그대로 두었더라
19. 전에 이스라엘 여러 왕이 사마리아 각 성읍에 지어서 여호와를 격노하게 한 산당을 요시야가 다 제거하되 벧엘에서 행한 모든 일대로 행하고
20. 또 거기 있는 산당의 제사장들을 다 제단 위에서 죽이고 사람의 해골을 제단 위에서 불사르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더라
이 여전한 산당 제사는 어떻게 끝이 날까요? 첫째로,
1. 뿌리까지 헐어야 끝납니다(15절)
15. 또한 이스라엘에게 범죄하게 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이 벧엘에 세운 제단과 산당을 왕이 헐고 또 그 산당을 불사르고 빻아서 가루를 만들며 또 아세라 목상을 불살랐더라_왕하 23:15
요시야는 이미 남쪽 끝에서 북쪽 끝까지 산당을 헐고 빻고 우상을 제거했어요. 자기 나라에서 할 수 있는 개혁은 이미 끝까지 한 거예요. 여기서 멈춰도 누가 뭐라 그럴 사람이 아무도 없어요. 그런데 오늘 본문이 무슨 말로 시작합니까? ‘또한’으로 시작이 돼요. 요시야는 멈추지 않고 국경을 넘어 ‘벧엘’로 갑니다. 이 벧엘 산당이 하루아침에 생긴 게 아니라고 했어요. 성전이 세워지기 전에는 -그때 언약궤가 없었던 시절이 있잖아요 각 지역 산당에서 하나님께 제사하도록 허락을 한 것, 이게 잘못된 거죠. 그래놓고는 솔로몬이 불신결혼을 하면서 본격적으로 이방신을 위한 산당을 세웠고, 그다음에 북이스라엘의 여로보암은 아예 금송아지 산당 제사를 나라의 예배 제도로 만들어 버렸어요. 그러니까 정말 하나의 (잘못된) 결정이 이렇게 되는 거예요. 한마디로 쉽게 ‘산당’은 ‘번영 신학’, ‘기복주의’라 이거는 끊어지는 게 아니에요. 누구도 끊기가 어려워요. 그런데 ‘산당이 왜 힘든 건가’ 하면은, 하나님을 금송아지 자리에 놓고 열심히 섬기는 거예요. 그러니까 금송아지를 보고 하나님이라고 그러잖아요. 그죠? 그러니까 나도 속고 남도 속이는 신앙인 거예요. 대상이 ‘하나님’이라고 그러는 거예요. 그리고 지금 ‘돈’을 섬기는 거잖아요. 이처럼 요시야가 벧엘 지역에까지 종교 개혁을 단행한 것은 북이스라엘이 이미 앗수르에 의해 멸망당하고 앗수르의 속국으로 전락하고만 상황에서 정치적인 마찰까지 무릅쓰고 요시야가 거기를 직접 찾아갔어요. 왜죠? 거기 (죄의) 뿌리가 있기 때문이에요.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이 세운 제단과 산당. 북이스라엘이 저지른 죄의 뿌리 바로 금송아지를 섬기는 자리예요. 이는 마치 첫 단추부터 잘못 채운다는 말처럼 여로보암의 우상숭배 정책을 북이스라엘의 후대 왕들이 그대로 이어받아서 악순환이 계속된 거예요. 여러분, 여로보암은 북이스라엘의 국부예요, 국부. 그러니까 요시야의 개혁은 자기 직계 조상인 아버지, 할아버지 므낫세와 아몬을 다 겨냥했잖아요. 그죠? 그들의 일월성신을 다 훼파했어요. 그리고 가장 유다에서 존경하는 (너무 부강했기 때문에) 솔로몬 왕까지도 개혁 대상으로 삼았어요. 우상숭배의 원조 솔로몬. 그리고 북쪽의 건국의 아버지인 여로보암을 이제 개혁 대상으로 놓는 거예요. 대단한 거죠. 여로보암이 왜 그랬을까요? 그냥 자기가 의로워서 그런 게 아니라 성경이 그의 속마음을 그대로 적어놨어요. (여로보암이) 개혁하고 보니까 무서웠어요. (백성이) 얼마나 여로보암을 따랐는지, 통일 왕국의 열두 지파 중에서 열 지파가 여로보암을 지지했어요. 그래서 개혁을 한다고 나왔는데, 나오고 보니까 ‘백성이 예루살렘에 예배하러 올라가면 마음이 돌아설 거다. 그러면 내 자리도, 목숨도 없다.’ 그러니까 여로보암이 막고 싶었던 것은 하나님이 아니고요, 백성이 하나님께 예배하러 올라가는 그 발걸음이었어요. 여러분, 내 예배는 큰 사건으로 무너지지 않아요. 이렇게 나가려던 발걸음 하나가 멈추면서 무너지는 거예요. 그래서 백성에게 뭐라고 했습니까?
“너희가 다시는 예루살렘에 올라갈 것이 없도다”(왕상 12:28).
협박이 아니에요. 오히려 좋은 소식처럼 들리게 했어요. ‘먼 길 갈 것 없다. 시간 뺏길 것 없다. 이제 그냥 가까운 데서 예배를 드려라.’ 그러니까 여러분, 다른 건 몰라도 가깝다고 좋은 교회는 아니에요. 그렇잖아요. 그죠? 우리가 금송아지 섬기러 갈 수는 없는 거잖아요. 그야말로 산당 예배일 수 있어요. 그래서 금송아지를 남쪽 끝 벧엘과 북쪽 끝 단에 두었습니다. 어디 살든 국경 넘을 일 없이 제사드릴 수 있게 해준 거죠. 게다가 눈에 보이는 형상까지 줬어요. 그것도 번쩍번쩍 빛나는 금이에요. 보이지 않는 하나님보다 눈앞에 보이는 금송아지가 얼마나 든든했겠습니까? 그러니까 백성 입장에서 이건 손해가 아니죠. 예배가 없어진 게 아니라 편해진 거예요. 우리도 예배를 버리지는 않아요. 불편한 부분만 조금씩 바꾸는 거예요. 멀리 갈 것 없고, 손해 볼 것 없고, 관계 깨뜨릴 것 없고, 내 자리 내놓을 것 없는 그 예배를 찾습니다. 물론 예배 하나 지키려고 집과 생업을 버리고 남유다로 내려간 제사장과 레위인들도 있었어요. 그러나 대다수 백성은 그대로 남았습니다. 편한데 뭐가 문제였겠어요? 여러분은 (북이스라엘에) 남아 있는 쪽이세요? (예배드리러 남유다로) 짐 싼 쪽이세요? 그냥 앉아 있는 쪽이세요, 종교의 자유를 찾아서 내려온 우리 집안도 별반 다를 게 없네요. 정말 내려왔다고 또 대단하고, 남아 있다고 이상하고 사실 그건 아니겠지만요. 산당이 뭡니까? 예배를 없애는 게 아니에요. 예배를 꼭 드리되 내 형편에 맞게 고치는 거예요. 하나님이 정하신 자리에서 내가 편한 자리로 옮기는 거예요. 그런데 성경은 이걸 딱 한 줄로 판결을 합니다. “이 일이 죄가 되었으니.” (열왕기상) 12장 30절이죠. 편한 게 죄가 되고 말았어요. 한번 자기가 정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어요. 장소를 바꾸더니 제사장도 자기가 세우고 절기도 자기 마음대로 정합니다. 왜냐하면 이제 국부가 되어서 여로보암이 자기 말한 대로 다 되는 거예요. 권력이 생기니까 마음대로 다 정하는 거예요. 영적인 일을 육적으로 바꿔가지고. 오직 예배를 부르짖으면서 처음에는 ‘조금 편하게 예배하자’였는데 나중에는 이렇게 예배의 모든 것을 자기가 정합니다. 그렇게 한 사람의 계산이 한 나라를 통째로 죄로 끌고 들어갔고, 그 산당이 무려 300년을 갔어요. 여로보암은 죽었는데 산당은 안 죽었어요. 내가 세운 산당도 나보다 오래 살아서 내 자녀가 물려받습니다. 그런데 여로보암은 자기가 하나님을 버렸다고 생각하지 않았겠죠. 그죠? 않았으니까 회개하지 않았죠. 당연히 이 사람의 변은 “솔로몬이 이상하니까 살려고 개혁했다!” 이거예요. 솔로몬이 천 명의 여자를 얻어 들이고 있으니까. 그래서 자리 지키려고 조금 바꿨을 뿐이라고 생각했겠죠. 그러니까 ★개혁을 이해타산으로 하면 그 개혁이 훗날 또 개혁의 대상이 될 거예요. 그러나 하나님은 정확히 말씀하십니다. “나를 네 등 뒤에 버렸도다”(왕상 14:9).★말씀을 내 형편대로 바꾸는 순간 하나님을 등 뒤에 버린 거예요. 여러분 무엇을 잃을까 봐 말씀을 바꾸고 있습니까? “애가 시험이니까 아휴~ 이번 주일은 어쩔 수 없고…, 이번 큐페는 어쩔 수 없고 “이 관계는 깨지면 안 되니까 이 정도 타협은 괜찮고 “아이고, 이 돈은 여기까지는 봐 주시겠지?” 하지 않습니까? 다 이유도, 사정도 있어요. 그렇다고 하면서 하나님이 정하신 예배는 없어지고 내가 편한 예배만 남습니다. 그런데도 나는 ‘믿음 좋다’고 생각해요. 나는 어쨌든 예배를 드렸으니까. 금송아지를 예배드렸는지 하나님을 예배했는지 여러분은 상관이 없어요. 나는 가서 무조건 빌고 왔으니까, 난 예배드렸으니까.★산당의 뿌리는 우상보다 먼저 두려움이에요. 두려움으로 와서 예배를 드리죠. ‘애가 떨어지면 어떡해’ ‘직장이 안 되면 어떡해.’ ★하나님께 맡기지 못하고 내가 지키겠다고 하는 이 두려움.내가! 내가 하겠다는 거기에 두려움이 있어요. 요시야는 제단만 헐고 그만두지 않았어요. 헐고 불사르고 빻아서 가루로 만듭니다. 산당을 파괴하는 정도가 아니라, 부정하게 해서(더럽혀서) 다시는 성소로서의 기능을 하지 못하도록 해야 하는데, 14절, 16절에 거기를 ‘해골로 채웠다’는 것이 그것이에요. 산당이 완전히 해골로 채워졌어요. 그러면 우리는 죽음을 무서워하기 때문에 ‘해골’ 그러면 가기가 싫은 거예요. 이 정도로 구체적으로 요시야가 개혁을 한 거예요. 우리도 끊을 건 끊고, 지울 건 지우고, 차단할 건 차단해야 합니다. 그런데 거기서 멈추면 안 돼요. ★그 제단을 처음 세운 내 두려움과 계산까지 내려가지 않으면 산당은 다른 얼굴로 또 올라와요. 집을 정리하다 보면 분명 버린 줄 알았던 물건이 다른 서랍에서 또 나올 때가 있죠. 없앴던 게 아니라 자리만 옮겨 놓았던 거예요. 우리 죄도 그래요. 돈을 내려놓은 줄 알았는데 자녀에게 가 있고, 사람을 의지하는 마음를 끊은 줄 알았는데 어느새 그 자리와 인정에 가 있어요. 죄는 없어지지 않고 얼굴과 자리만 바
꾸어서 계속 다시 나타납니다. 그 뿌리는 내가 눈 감고 앉아서 찾아낼 수 있는 게 아니에요. 요시야를 벧엘까지 데리고 간 것도 자기 열심이 아니에요. 성전에서 발견된 ‘말씀’이에요. 하나님 말씀으로 내 죄가 처음 시작된 그 자리까지 나를 데리고 가시는 거예요.‘벧엘’이 무슨 뜻이에요? ‘하나님의 집’이에요. 그런데 이름은 ‘하나님의 집’인데 예배는 자기 마음대로 드리는 거예요. 그게 벧엘이고, 그게 바로 나예요. 성경은 이렇게 끝까지 남는 자리를 ‘산당’이라고 하는 거예요. 끝까지 포기하지 못하는 그 나의 자리.
▪ 적용 질문
Q. 무엇을 잃을까 봐 제일 두렵습니까?
Q. 그 두려움 때문에 ‘이번만은 어쩔 수 없다’며 바꾼 예배나 순종이 있습니까?
Q. ‘이것만은 내 방식대로 하겠다’고 버티는 한 가지는 무엇입니까?
두 번째는 이게 어떻게 제거하냐면,
2. 여호와의 말씀대로 끝납니다(16-18절)
그러니까 말씀이 임해야̇ 산당 예배가 끝나게 되는 거예요. 말씀이 임하기 전에는 내 열심대로 살다가는 이제 끝에 가면 부서지는 거 있어요. 열심히 살다가 지옥에 가는 수도 있어요. 그러니까 열심히 산 사람이 이 얘기를 하라고 지금 저를 여기 세웠어요. 내가 농땡이가 아니었기 때문에. 내 힘으로 별도 따고 해도 따고 할 것인데, 딱 부서뜨리니까 하나님이 나를 부서뜨리셔야 돼요. 저는 저를 부서뜨릴 수가 없는 사람이에요, 제가.
16. 요시야가 몸을 돌이켜 산에 있는 무덤들을 보고 보내어 그 무덤에서 해골을 가져다가 제단 위에서 불살라 그 제단을 더럽게 하니라 이 일을 하나님의 사람이 전하였더니 그 전한 여호와의 말씀대로 되었더라_왕하 23:16
4절부터 15절까지 요시야가 한 것이 부수고 태우고 빻고 더럽히고. 12절이 전부 그 이야기예요. 숨 쉴 틈이 없어요. 근데 16절에서 갑자기 화면이 정지가 되고 왕이 몸을 돌이켜요. 무덤에 해골을 꺼내 벧엘 제단에서 불살라 (제단을) 다시는 못 쓰게 해요. 그리고 성경이 이 모든 개혁을 해석하는 한 문장을 붙이는 거예요. ‘그 전한 여호와의 말씀대로 되었더라’ 우리가 큐티하는 게 이게 대단 한 거예요. 이 한 문장을 알아들으려면, 300년을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여로보암이 벧엘 제단을 세우고 첫 분향을 하던 날이었어요. 북이스라엘 나라에 새 예배가 시작되는 날, 개국 기념일 같은 날이죠. 왕이 제단 곁에 섰는데, 유다에서 웬 사람 하나가 올라왔어요. 그 사람은 자기 뜻으로 온 게 아니래요. “여호와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여호와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왔다”고 했어요. 이름도 안 나와요. 그냥 ‘하나님의 사람’이라고만 해요. 근데 그 사람이 왕한테 말하지 않아요. 여러분, 우리가 이렇게 여로보암은 반역하고 나가서 대왕이 됐잖아요. 그 사람한테 가서 경고를 하려고 그러는데, “여로보암 당신!” 이렇게 하면 안 되는 거죠. 제단한테 말을 해요. “제단아! 제단아!” 이러면서, 이 절에 “제단아! 제단아!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다윗의 집에 요시야라 이름하는 아들을 낳으리니 그가 네 위에 분향하는 산당 제사장을 네 위에서 제물로 바칠 것이요 또 사람의 뼈를 네 위에서 사르리라 하셨느니라” 여로보암이 못 알아들을 소리로 예언을 했어요(왕상13:1-3) 그러니까 우리 믿음은 금세 알아듣겠지만은 이 대왕마마는 이걸 못 알아들어요. 그래서 뭐든지 예언과 경고를 할 때, 지혜가 있어야 돼요. ‘요시야’가 태어나기 오래전에 300년 전에 하나님은 그 이름을 먼저 부르셨어요. 23장의 개혁 기사에서 요시야는 줄곧 ‘왕’이라고만 불려요. ‘왕’이 명령하고, ‘왕’이 헐고, ‘왕’이 더럽게 했다고 해요. 그런데 16절에서 처음으로 ‘요시야’라고 이름이 나와요. 300년 전 예언한 말씀 속에 박혀 있던 그 이름이에요. 하나님의 말씀은 300년 뒤에 이름 하나도 틀리지 않았어요. 근데 우리는 어제 읽은 말씀을 오늘 아침부터 ‘예외’ 처리해요.‘말씀이라도 내 경우는 달라. 우리 집은 어쩔 수가 없어.’ 그죠? 그렇죠? 말씀이 부정확한 게 아니에요. 내가 자꾸 나를 ‘예외’로 만드는 거예요. 하나님의 말씀을 경홀히 여기는 거예요. 무덤들을 보는 요시야 눈에 비석 하나가 들어오는데요.
18. 이르되 그대로 두고 그의 뼈를 옮기지 말라 하매 무리가 그의 뼈와 사마리아에서 온 선지자의 뼈는 그대로 두었더라_왕하 23:17-18
그 비석은 바로 요시야의 개혁을 예언했던 하나님의 사람의 묘실이었어요. 이를 안 요시야는 그의 뼈를 건드리지 말라고 명령해요. 그런데 그 곁에 누가 같이 묻혀 있었나요? ‘벧엘의 늙은 선지자’예요. 이거 열왕기상 13장에서 제가 아주 그냥 스펙타클하게 설교했는데 하나님은 그러니까 여로보암이 개국하는 날 남유다에서 선지자를 보낸 거예요. “너 그러면 안 된다!” 그러니까 그 하나님의 사람을 보내시면서 조건을 다셨어요. “여로보암 앞에 가서는 떡도 먹지 말고, 물도 마시지 말고, 왔던 길로 돌아오지도 말라!”고 그래요. 그냥 말씀만 딱 전하고 오라고 하셨어요. 그래서 그는 여로보암 왕이 붙잡고 회유해도 안 넘어갔어요(왕상 13:9). 거기까지는 기가 막힌 적용을 했는데 거기에 이제 벧엘의 늙은 선지자가 그를 쫓아와서 “나도 그대와 같은 선지자라~”(왕상 13:18) 이렇게 얘기를 하니까 거기 넘어가서 돌아가 먹고, 마셨고. 그래서 그 길에 사자를 만나 죽었어요. 기억나시죠? 왕 앞에서도 꿈쩍 않던 사람이 같은 선지자의 말 한마디에 무너진 거예요. 그래서 우리는 늘 사람은 믿음의 대상이 아니에요. 그렇게 하는 거예요. 근데 그를 속인 그 늙은 선지자가 괴롭잖아요. 죽기 전에 유언을 남기는 거예요. “내 뼈를 그 유다의 하나님의 사람 그의 뼈 곁에 두라” 왜죠? 그가 외쳐 말한 것이 반드시 이룰 것임을 믿었기 때문에(왕상 13:31-32). 참 이상하죠. 한 사람은 말씀은 전해놓고, 정작 자기에게 주신 말씀에는 불순종해서 죽었어요. 그러니까 말씀은 제대로 잘 전할 수 있는데, 자기는 불순종해서 죽을 수 있는 사역자들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어요. 그래서 “저 사람 설교 너무 잘해. 근데 삶이 이상해” 그런 사람 있을 수 있다는 거죠. 예. 그런데 또 한 사람은 선지자면서 거짓말을 했어요. “나도 그대와 같은 선지자니라~” 이래 가면서. 근데 성경은 두 사람을 미화하지 않아요. 말씀 맡은 사람들이 이렇게 넘어진다는 걸 보여 줬잖아요. 우리가 목회자에게, 부모에게 상처받을 수 있어요. 그런데 목회자 때문에, 부모 때문에, 목자 때문에 목장을 떠나고 싶을 수도 있어요. 그래서 맨날 “떠나겠어요!” 이 많이 말하죠. 근데 부모와 목자의 실패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까지 놓아 버리면 나를 살릴 마지막 줄을 내 손으로 놓는 거예요. 그건 어리석은 거예요. 부모님보다 목사님보다 위대한 게 ‘말씀’인 거예요. 말씀!! 우리도 누군가에게는 말씀을 전하는 사람이잖아요. 부모로, 목자로, 선배로 말입니다. 하지만 내가 전한 그 말씀대로 살지 못해서 나 때문에 말씀을 놓아 버린 사람은 없는지 늘 돌아봐야 하는 거예요. 나 때문에 “상처받았다”고 그러면 늘 인정하시면 돼요. “그랬냐고” 그 하나님이 깨닫게 해 주세요. “그랬냐고, 제가 몰랐다고. 죄송하다고” 그래야 되는 거예요. 목자가 돼서 같이 싸우시면 안 돼요. 왜 싸웠어요? “내가 너 비위 맞추라고 목자 된 줄 아냐?!” 이러시면 이제 안 돼요. 그럴 수도 있겠죠. 그럼에도 이제 여러분들이 그래도 위치상 질서 속에 있을 때 윗사람은 늘 사과 해야 돼요. “내가 뭘 잘못해서 사과해요?!” 그러면 절대로 안 돼요. 잘못해서 사과하라는 게 아니고 ‘구원’이라는 거는 항상 내가 죄인이기 때문에. 전한 사람도 이렇게 듣는 우리도 이래요. 왜냐하면 그 말씀이 어떻게 되는 거예요? 300년이 지나서 하나님이 하신 일을 보세요. 온 산의 뼈가 다 끌려 나와서 불태워지는 날에 “그 무덤 하나만 옮기지 말라!” 하십니다. 그가 외친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졌으니까 그가 전한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도장 찍어주신 거예요. ★말씀 맡은 사람은 말씀을 어길 수 있어도 하나님은 자기 말씀을 어기지 않으십니다. 이 말씀은 지친 사람에겐 위로이고, 버티는 죄인에겐 경고예요. 몇 년을 기도했는데 아무 변화도 없어서 이 말씀은 우리 집에는 안 되나 보다 하고 덮어 버린 일은 없습니까? 근데 벧엘의 그 말씀은 무려 300년을 기다렸어요. 근데 그동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어요. 그리고 여로보암도 죽고 왕조도 바뀌고 나라까지 망해버렸어요. 그래도 그 말씀은 살아 있었어요. 이사야 55장 11절에서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이와 같이 헛되이 내게로 되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기뻐하는 뜻을 이루며 하셨잖아요. 내가 기다리다 지쳐 폐기 처분한 그 말씀을 하나님은 한 번도 폐기하신 적이 없었어요. 근데 듣기 좋은 약속만 말씀이 아니에요. 요시야는 이미 들었어요. “내가 이곳과 그 주민에게 재앙을 내리되” 열왕기하 22장 16절. 벧엘의 이 말씀이 300년 만에 이루어진 것처럼 심판의 말씀도 반드시 이루어지는 거예요. 왜? 하나님은 언제나 100% 옳으시기 때문이에요. 여러분, 산당은 여전했어요. 왕이 바뀌어도 버텼어요. 선지자가 외쳐도 버텼어요. 나라가 망해도 버텼어요. 그러나 말씀은 더!!! 여전했어요. 산당보다 더 여전했어요. 300년을 버틴 산당도 말씀 앞에서는 하루를 더 버티지 못해요.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300년이 하루도 안 되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는 기다리다 가야 돼요, 천국을. (아까 (간증하신) 집사님이 천국에서 나를 뵙겠다고, 아주 고마워요. 저를 천국에서 볼 수 있는 사람으로 인정해 준 것 때문에 너무 반가워요.) 300년 뒤에도 벧엘 제단을 정확히 찾아낸 하나님의 말씀이 오늘도 살아 있어요. 내가 말씀을 읽은 줄 알았는데 말씀이 내 안에 산당을 딱 찾아내는 거예요. 말씀은 오늘도 내 산당을 향해 “제단아! 제단아!!”고 외칩니다.
Q. 오래 기도해도 안 되어서, ‘우리 집에는 안 되나 보다’ 하고 덮어 버린 말씀이 있습니까?
Q. 사람에게 실망해서, 하나님의 말씀까지 놓아 버린 적이 있습니까?
Q. 오늘 말씀이 “제단아, 제단아” 하고 콕 집은 내 산당은 무엇입니까?
Q. 300년 뒤라도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질 것을 믿습니까?
아무리 말씀이 임해도 세 번째는
3. 예배로 돌아와야 끝납니다(19-20절)
19. 전에 이스라엘 여러 왕이 사마리아 각 성읍에 지어서 여호와를 격노하게 한 산당을 요시야가 다 제거하되 벧엘에서 행한 모든 일대로 행하고_왕하 23:19
열왕기의 오랜 꼬리표가 여기서 마침내 뒤집히는 거예요. 선한 왕이 나올 때마다 따라붙던 한 줄 기억하시죠? “오직 산당은 제거하지 아니하였으므로” 기억나시죠? 그런데 오늘은 달라요. “산당을 요시야가 다 제거하되” 같은 ‘제거하다’라는 말이에요. 수백 년 동안 반복되던 그 말이 오늘 마침내 “다 제거하되”로 뒤집힌 거예요. 그러니까 제가 족집게라서 이제 여러분들이 “언제 팔까요? 언제 살까요?” 이제 물어볼 예정이에요? 그게 아니고요. 장로님이 불로소득이 많아지니까 기쁜 게 아니고 병원이 시들해진다고 그렇잖아요. 그렇잖아요? 올라가는데 그 병원 환자 받아봤자
그 돈하고 비교가 안 되니까. 그래서 이 구원에서 멀어질 것 같으니까 당장! 당장! 처분하라고 (말씀)드렸죠. 옆에서 “두어 주일 상반기 실적 보면~~”라고 얘기해도 “그딴 얘기 듣지 마시고 당장 팔라!”고! 그런데 이 말을 안 들으신 거죠. 그죠? 이거 들으셨으면 얼마나 좋아요. 갑자기 저한테 다 물으러 올까 봐 저는 그런 점쟁이 아니에요. 구원 때문에!! 구원 때문에! 드린 말씀이에요. 일단 손해는 보지 않았잖아요. 앞으로 (주가가) 더 올라간다고 할지라도 오늘 파셔야 되는 거예요! 아무리 더 올라간다고 하든 오늘이 팔 때인 거예요. 이게 구원의 타이밍이에요. 십자가는 지혜고 타이밍이라고 했잖아요? 이 19절이 무엇을 겨냥하는지 보세요. 멸망한 북이스라엘 땅에 들어와 살던 이방 사람들의 종교가 아니에요. “이스라엘 여러 왕이 사마리아 각 성읍에 지어서 여호와를 격노하게 한 산당”이에요. 말씀은 늘 남의 우상보다 내 산당을 먼저 겨누죠. 그죠? 그러니까 (이방의)아세라, 바알 목상보다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는 산당이 더 나쁘다는 거죠.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여기 와서 다 금송아지 섬기고 있으면서 “믿는다!!” 그런다는 거예요. 히스기야도 산당을 부쉈죠. 근데 아버지가 부은 것을 아들 므낫세가 금세 다시 세웠어요. 은혜받고 부쉈다가 사건이 오면 도로 세우는 거예요. 우리도 주말에는 히스기야였다가 월요일에는 므낫세가 되고. 그죠? 수요일 날 다시 요시야로 돌아왔다가 다시 목장에서는 이렇게 부셨다가 세우고 부셨다가 세우고. 그래서 여러분들이 늘 우상을 (다시) 세우니까 예배를 가서 부셔야 돼요!! 부셔야 돼요! 알아요? 주일, 수요일, 월요일, 목요일, 금요일, 주일, 일주일 내내 말씀으로 부셔야 돼요. 공동체에서 부셔야 돼요!! 알았어요? 요시야는 자기 땅에서 멈추지 않았어요. 국경 넘어 벧엘과 사마리아까지 가서 그 산당들을 다 제거합니다. 여로보암 한 사람의 죄가 여러 왕의 관행이 되고 백성의 문화가 되고 나라가 망한 뒤에도 살아남았어요. 산당은 나라보다 오래 삽니다. 그런데 그 산당을 끝낸 건 요시야의 망치가 아니에요. 하나님이 한 사람의 순종을 통해 마침내 끝내신 거예요. 그런데 열왕기가 무서운 대조를 하나 보여줘요. 산당을 제거하지 않은 북이스라엘 백성을 하나님이 그 땅에서 제거하셨어요, 열왕기하 17장에 보면. 그러니까 산당은 그대로 있는데 세상에! 백성이 뽑혀 나간 거예요. 회개로 내어놓지 않은 산당은 결국 심판으로 드러나는 거예요(왕하 17:22-23). 하나님이 심판을 기뻐하셔서가 아니고요. 돌아오라고 300년을 오래 참으셨는데도 끝내 산당을 붙들었어요, 하나님을 붙든 게 아니고. 산당을 붙들었기 때문에. 이게 남의 얘기가 아니에요. 우리가 여기서 꼭 물어야 할 게 있는데요. ★★요시야는 왜 여기(벧엘)까지 갔을까요? 이 사람은 이미 유다에 재앙이 임한다는 말씀을 들었어요. 북이스라엘도 망했잖아요. 남유다도 망한다고 잘될 보장이 하나도 없었어요. 그런데도 개혁을 멈추지 않았어요. 그것도 자기 나라가 아니라 이미 망해버린 옛 형제의 땅까지 찾아가서. 요시야는 벧엘의 죄를 ‘이제 내 나라의 일도 아닌데 하며 남의 일로 버려두지 않았어요. 그날에 그 남의 땅을 자기 책임으로 여겼어요. 거기 산당 부순다고 세금이 더 들어옵니까? 자기 이름이 더 높아집니까? 우리가 T/T 가는 것이 세상적으로 여러분 명성 때문에 갑니까? 얻을 게 하나도 없어요. 돈 들여가며 차비 들여가며 그 더위를 무릅써가며 가는 건 왜 가요? 하나님이 옳으시기 때문에! 여호와를 사랑하기 때문에! 그거 말고 이유가 있어요? 이게 ★하나님 자체가 상급이 되는 게 산당을 제거하는 거예요. 이게 산당 제사의 반대예요. 그러니까 T/T를 갔다가 너무 은혜를 받으시니까. 거기(현지 교회)보다 여러분들이 은혜를 더 받았어요. 항상 주는 자가 복이 있는 거 아시죠? 그래서 다 여러분들을 위해서 박수를 쳐드리고 싶어요. (박수!!) 정말 수고하셨어요. 저도 수고 많이 했어요. 서로 이제 수고! 그러니까 산당은 잘 되려고 드리는 예배잖아요. 근데 요시야의 순종은 잘될 게 하나도 없는데 드리는 예배예요. 그러니까 잘될 게 없어도 드리는 예배만이 잘 되려고 드리는 제사를 이기는 거예요. 우리 순종에는 늘 조건이 붙어 있어요. ‘이만큼 했으니까 되겠지. 이번에 응답해 주시겠지’ 그런데 안 되면 어떻습니까? 안 될 때도 드리는 예배가 있습니까? 붙으면 회개 떨어지면 감사할 수 있습니까? 그게 없으면 내 신앙은 이름만 예배지 사실은 ‘산당 제사’를 드리고 있는 거예요. 나의 모든 것이 눈에 보이는 금송아지 위해서 예배를 드리면 그게 산당 예배인 거예요.
20. 또 거기 있는 산당의 제사장들을 다 제단 위에서 죽이고 사람의 해골을 제단 위에서 불사르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더라_왕하 23:20
자, 말씀대로 여러분 북이스라엘도 앗수르 때문에 망한 게 아니고 회개하지 않고 우상숭배했기 때문에 망했다고 분명히 나와 있다고 했죠. 그리고 남유다에 100년 이상의 유예기간을 주셨어요. 남유다도 이제 바벨론 때문에 망한 게 아니라 회개하지 않아서 망했다고. 그러니까 우리 전쟁이 오면 회개하라고. ‘그 사람 -전쟁
을 하러 오는 그 사람을- 죽이라고’가 아니라. (우린 죽일 수도 없어요. 그죠?) 그러니까 늘 회개를 해야 되는데. 회개하지 않아서 망했다고 하는데 이런 가치관을 가지는 사람이 성도들 중에 좀 있어야 될 거 아니에요! 우리는 이쪽저쪽 모두 이해타산을 내려놓고 회개하고 교회의 본을 보여야 하는데요. 편 가르기가 아니라! 이 집회에 참여해도 ‘영혼 구원의 마음으로’참여하라는 거예요. 영혼 구원의 마음으로. 누가 뭐라는 게 아니라. 만류를 해도 같은 마음으로 진영 논리를 내려놓고 ‘영혼 구원의 마음으로’ 만류를 하라는 거예요. 여러분, 여러분의 각자 당리당략을 위해서 지금 이러고 저러고 얘기를 하는 게 아니에요. “산당의 제사장들을 죽이라”고 한 것은 구약 이스라엘에 주어진 언약 심판이에요.
★우리가 무너뜨려야 할 것은 사람이 아니라 내 안에 교만과 탐욕과 자기 방식의 산당이에요.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에 대한 싸움이 아닌 거예요. 그러니 본문은 마지막에 어디를 보여줍니까?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더라” 요시야는 부수는 사람으로 끝나지 않았어요. 예배의 자리로 돌아오는 사람이었어요. 산당을 제거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옵니다. 예배̇ ̇이 귀환은 다음 본문에 ‘유월절’로 이어져요. 산당을 제거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고, 그러고 이 를 하는 거예요, 예배!근데 우리는 어디서 멈추나요? 부수는 데서 멈춰요. ‘끊는 결심’은 있는데 ‘돌아오는 예배’가 없어요. 술은 끊었는데 말씀을 안 봐요. 관계는 차단했는데 목장에는 안 나와요. 중독된 앱은 지웠는데 예배의 자리를 채우지 않아요. 그러니까 비워놓은 그 자리에 다른 산당이 들어오는 거예요. 반쯤 태운 우상은 반드시 다시 살아납니다. 산당을 비워놓는 것이 회개가 아니에요. 하나님께 돌아와 예배하는 것이 ‘회개의 완성’이에요. 근데 요시야가 돌로 된 제단은 다 부쉈어요. 그러나 백성의 굳은 마음까지 새롭게 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새 언약을 약속하세요. 에스겔 36장에서 말씀하십니다.
“너희 모든 더러운 것에서와 모든 우상 숭배에서 너희를 정결하게 할 것이며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겔36:25-26)
오늘 ‘제거’라는 말 많이 들으셨죠? 마지막으로 제거해야 될 게 뭡니까? 내 굳은 마음 이에요. 우리의 인생을 주장해 가는 것은 감정, 이성, 지성이 아니라 바로 죄̇예요. 눈을 뜨면 지탱하는 것들, 살게 하는 것들이 다 죄̇예요. 그 굳은 마음̇̇이죠. 그걸 내가 제거를 못해요. 하나님이 해주실 수밖에 없어요. 하나님이 해주셔야만 우리 굳은 마음이 달라지는 거예요. 수백 년 뒤에 바로 그 옛 북이스라엘 땅 사마리아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세요.
“너에게 남편 다섯이 있었고 지금 있는 자도 네 남편이 아니니라”(요 4:18).
그 사마리아 여인에게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요 4:21-23). 그러니까 이런 사람만 예배의 말을 알아들어요. 사마리아 여인 같은 사람만 이 ‘예배’, ‘산당 제거’ 이 말을 알아듣는 거예요. 요시야는 잘못된 예배의 자리를 제거했고, 예수님은 참된 예배의 길을 여셨어요. 여러분들이 진짜 ‘사랑’하셔야 돼요. 백성을 사랑하고, 여러분을 사랑하고, 목장 식구들을 사랑하고. 하나님은 산당을 비우신 그 자리를 참된 예배로 채우십니다.
Q. 응답이 없어서 그만둔 기도나 예배가 있습니까?
Q. 끊었다가 도로 살아난 습관이나 죄는 무엇입니까?
Q. 내가 다시 찾아갈, ‘버려진 벧엘’ 같은 한 사람은 누구입니까?
Q. 회개로 예배가 완성되었습니까?
목장 중보기도입니다.
같이 기도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ㄱ
1. 빈자리가 산당으로 채워지지 않게 큐티와 기도생활 꼭꼭 하기!!
2. 아빠의 어떠함을 두려워하지 않고 끝까지 책임져 주실 하나님의 언약을 믿고 내죄를 진멸하는 복이 임하길
3. 우리 목장을 지켜 보호해 주시고 한 주 살아갈 힘 주시기를 세상짐을 함께 나눠지고 함께 울어주는 목장이 되기를!
4. 유제품 멀리하고 밀가루 줄이기 12시 전에 취침하는 적용할 수 있도록!이번주 운동 2번 이상 꼭 적용하기!
5. 직장지체와 적당한 거리 유지하면서 지혜로 대하고 정죄의 마음 사라지도록
6. 알맞은 때와 방법으로 부모님과 분리되는 길을 꼭 열어 주시기를! (전세자금대출알아보려하는데 모든 과정이 순탄하기를)
7. 신교제에 소망을 갖고 간절함이 회복되기를
8. 엄마 간검사 결과가 안좋은데 구원의 사건으로 잘 해석하고 회복의 은혜 허락해 주시기를!!
9. 첫째조카 외롭고 힘들 때 주님찾고 만나기를 건강과 학업 가운데 지혜 허락해 주시기를
ㄴ
1.저희 어머니 자궁내막암 대장암 잘 유지되길
2.제 동생 가족구원
3.신교제 중인데 건강한 신교제 되길
4.교회와 목장 사랑부 그리고 십일조 생활 잘 유지되길
5.제 동생 내년 한국 들어온다는데 오는길 지켜주시고 한국에서 거처와 직장 허락해 주시길
6.8월12~16일 제수씨 조카 제수씨 언니 한국 관광 온다는데 오고가는길 지켜주시고 즐거운 관광 되기를
7.왼쪽 어깨 아픈거 잘 치료되서 후유증 없게 되길
ㄷ
1. 예배를 통해 내 굳은 마음이 제거되고, 인정받고자 하는 마음 내 뜻대로 계획하고 앞서나가는 나의 산당이 제거되는 한주 될 수 있도록
2. 토요일에 누수 확인을 한다고 합니다. 원인이 잘 찾아지고 수리 방향이 정해 질 수 있도록.
3. 더운 여름에 부모님 건강 지켜주시고 잘 지나갈 수 있도록
4. 회사에 새로운 프로젝트가 생기고 이사 문제도 결정 날 수 있도록
ㄹ
1. 하나님보다 앞서 있었던 세상의 관심과 욕심을 내려놓고 하나님을 가장 사랑하는 마음을 회복할수 있도록
2. 매일 성경 1장을 읽고 예배를 우선 순위에 두는 내 삶의 제단을 세울수 있도록
3. 하나님의 뜻 안에서 신앙과 마음으로 준비하며 예비된 배우자를 만날수 있도록
4. 가족 모두가 건강하고 감사와 기쁨으로 하루를 살아가도록
5. 유치원에 맡고 있는 열매반 친구들이 다치지 않고 안전하고 행복하게 생활할수 있도록
6. 화장품 신제품 사는 습관을 끊
고 응답이 없어도 기도 계속할수 있도록
7. 출근하기 싫어하는 마음을 감사와 기쁨의 발걸음이 되도록
ㅁ
1. 성령충만하여 믿음 생활 무너지지 않도록 붙잡아주소서
2. 가족들의 영혼 구원과 건강
(아버지의 치매로 인하여 아버지, 어머니 모두 힘들어하시는데 두 분 모두 잘 이겨내시고 구원 받으실 수 있도록, 여동생 부신에 혹이 생겨서 수술을 해야 하는 상황인데 수술 날짜가 잘 안잡히고 있는 상황입니다. 수술 날짜가 빠른 시일 안에 잡혀서 원활하게 수술이 잘 진행되어 건강회복 할 수 있도록)
3. 신교제, 신결혼 이제는 내려놓을 때가 되었다는 생각이 드는데, 하나님께서 끊어주시는 것인지, 내가 스스로 하나님보다 앞서서 끊는 것인지 깨달을 수 있게.
4. 직장과 가정에서 빛과 소금 감당할 수 있게
5. 퇴근 이후 아무것도 하기 싫을만큼 무기력해지는데, 자격증 시험 준비를 잘 할 수 있도록 체력과 지혜 부어주시기를.
6. 다음 진로를 위한 준비 잘 할 수 있도록 해주시고 그 길을 열어주시도록.
7. 어쩌면 이번 목장이 우리들교회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데, 어느 방향이든 주님께서 이끌어주시기를..
ㅂ
1. 아버지 황인수
* 위암 투병 가운데 치료를 잘 견디시고 날마다 필요한 은혜와 체력을 허락하여 주시며, 무엇보다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 영혼이 구원받는 은혜를 허락하여 주세요.
2. 어머니 박현숙
* 정신과 마음과 몸을 치유하여 주시고, 하나님 안에서 참된 평안을 누리게 하소서. 저와의 관계도 회복되어 사랑과 이해로 하나 되게 하여 주세요.
3. 동생의 아내(올케) 전도
* 교회에 함께 오고자 하는 마음을 지켜주시고, 수원에서 오가는 길과 교통편을 주님께서 열어 주세요. 더운 날씨와 여러 현실적인 어려움도 하나님께서 도와주셔서 복음을 듣고 예배의 자리까지 인도하여 주세요.
4. 건강 회복
* TT를 다녀온 후 몸살과 기침, 설사, 열, 근육통으로 월·화 이틀을 쉬었습니다. 내일 수요일 출근을 앞두고 있는데 온전히 회복시켜 주시고, 필요한 체력과 면역력을 채워 주셔서 맡겨진 사명을 감당할 힘을 허락하여 주세요.
5. 직장과 사명
* 맡겨주신 아이들과 학부모님들을 사랑으로 잘 섬기게 하시고, 함께 일하는 동료들과도 좋은 관계를 이루게 하소서. 지혜와 센스, 사랑, 체력을 더하여 주셔서 모든 일을 주님의 마음으로 감당하게 하여 주세요.
6. 목장과 예배
* 목장과 예배의 자리를 끝까지 잘 붙들게 하시고, 어떤 상황에서도 예배를 가장 소중히 여기며 말씀과 기도로 더욱 주님께 가까이 나아가게 하여 주세요.
7. 하반기 10주 양육
* 하반기에 시작하는 10주 양육을 끝까지 성실하게 잘 받아낼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세요. 매주 과제도 미루지 않고 기쁨으로 감당하게 하시고, 말씀을 통해 저를 다루시고 변화시켜 주셔서 삶으로 순종하는 제자가 되게 하여 주세요. 바쁜 일정 가운데서도 양육을 우선순위에 두고 끝까지 완주할 수 있는 지혜와 체력, 은혜를 허락하여 주세요.
8. 새로운 한 해의 삶
* 생일을 축하해 주신 모든 분들께 하나님께서 풍성한 은혜와 복으로 갚아 주시고, 제게 허락하신 새로운 한 해도 하나님 뜻 안에서 살아가며 주님께 영광 돌리는 삶이 되게 하여 주세요.
9. 대한민국
* 대한민국을 긍휼히 여겨 주시고, 이 땅에 정의와 사랑이 세워지게 하시며, 다음 세대와 교회를 지켜 주시고 복음이 더욱 힘 있게 전파되게 하여 주세요.
10. 우리들교회
* 김양재 목사님과 모든 부목사님들, 그리고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 섬기는 모든 사역자와 성도들에게 성령의 충만함과 건강, 지혜를 더하여 주시고, 우리들교회가 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교회로 쓰임받게 하여 주세요.
ㅅ
1. 더 순종하기
고단하고 부조리함이 가득한 이 세상에서 인간으로서 살아내야 하는 창조주의 뜻에 여전한 의문이 있지만 그래도 믿음을 지속하기
2. 삶을 긍정하기
생로병사의 순리에 벗어날 수 없는 존재로서 늙고 쇠약해져도 삶을 원망하거나 비관하지 않게 이끌어 주셨으면 함
3. 의미찾기
돌이켜보면 엄정하고 순식간에 흐른 세월인데, 시간의 흐름에 따른 다양한 환경 변화에 불안해하거나 허망함을 느끼지 않고 일상의 순간에서 의미를 찾아보기
“산당을 제거합시다!”
“돈과 술을 내려놓읍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