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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무덤에 장사하니
열왕기하 23장 28-30절
김양재목사님
요시야는 너무 빨리 병거에 실려 돌아옵니다. 이 성전을 버리리라하더니 너무 간단이 요시야가 죽었고 딱 한줄 그의무덤에 장사하니라고 합니다.
어떻게 드러날까요?
첫번째 ,말씀과 맞선 나 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또 다른 역대하를 남겨 주셨습니다. 요시야의 죽음을 역대하가 어떻게 해석했는지 보려합니다. 나도 모르게 남은 사적과 나의 행한일은 어떻게 기록이 될까요? (29절) 애굽의 왕 느고가 유브라데강으로 올라 갑니다. 성경은 앗수르왕을 치고자 한다고 번역합니다. 치고자=대적 입니다. 새번역은 돕고자로 번역 되었습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돕는게 맞겠다고 해석을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보면 성경저자의 의도는 사실 전달도 있지먼 요시야가 주인공이고 왜 갑자기 죽은건지에만 관심이있습니다
항상 사건은 그 자체로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예를들어 내 시집살이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하지만 성령의 감동된 저자로써 출애굽이 유월절로 해석이 된거초롬 해석이 중요합니다. 이것이 제남편과 제가 결혼한게 중요한건 제가 결혼해서 주님을 만난거라 아주 중요한 결혼이 된것 입니다.
성령께서 이 사건을 어떻게 해석해주는것을 듣는것 입니다 사건은 해결보다 해석으로 보는게 중요하고 이게바로 큐티고 성경이 나를 읽고 가는 것 입니다. 당시 앗수르는 끝나나고 바벨론은 무섭게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애굽왕 느고는 유다를 치려는게 아닌 북쪽으로 올라가려 한 것 입니다. 앗수르를 도와서 바벨론을 치려고한건데 요시야가 막아선 것 입니다. 애굽이 커지는것은 더욱 싫습니다. 출애굽을 기념한 요시야는 놀랍게도 바로가 하나님 명령을 받았다합니다. (22절) 요시야가 ‘ 듣지아니하고’ 라고 합니다. 요시야는 차별없이 잘 듣는 사람인데, 근데 지금 이순간 느고아 앞에서는 들음을 멈췄는데 왜죠? 듣기 싫었습니다. (예를들어 남편의 짜증 아내의잔소리….) 그래서 성경이 하나님의 입에서나온 느고의말이라고 말합니다. 이상하죠? 그만큼 강조 하는 것 입니다. 우리는 문자적으로만 듣지말고 하나님의명령은 우리기 옳은 통로에서만 말하지 않습니다.
유다에서 보기엔 요시야 너무 멋있지않나요? 하나님을 빙자한 유대중심의 편협성이 보입니다. 안믿는 남편이 옳은말할때도 있는데 그때 최상의 찬사를 보내야하는것 입니다. 요시야가 애굽왕 느고를 무시하는데, 무시하면서 변장은 왜하는지? 변장하니까 오히려 죽었잖아요. 명분이 너무 강하잖아요. 예를들어 우리는 일본이라는 통로 들으면 안듣듯이…결국 듣지아니하고로 끝났습니다. 똑똑하고 착하고 훌룽한사람이 더 빠지기 힘든 함정이 바로 이거에요 이미 많은 일을 물으면서 통과해서 자기도 모르게 확신이 생겼고 , 그 확신이 결국 주님과 맞서게 됩니다.
어제의 순종을 오늘의 정답으로 옮기면 순종이 정답이 의가 됩니다. 그렇게 옳고 그름으로 한번 잘못한거 영원히 잘못한거로 싸움이 끝나지 않습니다. 사건 앞에서 누구때문인지 계산하지말고 어떤 말씀과 맞서고 있는지 띵크해야합니다
적용?)
하나님이 지금 내게 듣기 싫은 통로를 통해 하시는 말씀은 무엇입니까?
사람을 골라 가며 듣고 있지는 않습니까? 말씀에 찔렸을 때 내가 하는 변장은 무엇입니까?
바꾸는 시늉만 하면서 끝까지 고집하는 내 길은 무엇입니까?
두번째, 놓지 않으시는 하나님 입니다.
(23-24절)
여러번잘못 해도 안걸리는 사람이 부러운지? 한번잘못해도 걸리는사람이 부러운지?
택자는 한번잘못해도 가만두지않습니다. 하나님은 아모스를 통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죄를 하나도 가만두지않는다 라고 합니다. 걸리는건 죄가 아니고 내게 맡기신거라는 것 입니다. (30절) 이 조용한 문장은 사실 약속의 성취 입니다.
그의 죽음은 약속의 취소나 버림이 아닙니다. 백성들이 어떻게 하는지 보세요 (35절) 백성들이 온 유다가 울었다 합니다. 시켜서 울은게 아니거 복받쳐서 울었다합니다. 이건 헤세드 신실한일 충선된일 합니다. 하나님이 놓치 아니하신다는것은 죽음을 막아주신다는것이 아니라 죽음조차 떨어지지않게해준다는 것 입니다. 금요일 큐티에 “신실하신 하나님이시라” 라거 합니다. 무덤앞에서도 언약을 신실하게 이행하신다는 것 입니다. 실족하신 하나님 앞에사도 약속을 이루시는 것 입니다. 슬픔이 그 죽음의 마지막 해석이 아닌것 입니다. 그분이 주님의사랑이라면 아무리 이해가 안되는일이라도 성도은 살아도 죽어도 주의 것 입니다. 요시야의 죽음은 밖으로 떨어진 것 이 아닙니다. 평소에 구속사적으로 해석 큐티하면 갑자기 오는일도 해석이 되는 것 입니다.
내 인생에서 '왜?'가 풀리지 않은 그 사건을, 무엇으로 해석하고 있습니까?
내 감정입니까, 기억입니까, 하나님의 약속입니까?
내 죄와 변장이 드러난 것을 저주로만 여깁니까, 나를 놓지 않고 다루시는 은혜로 받습니까?
설명할 수 없는 사건을 겪는 지체 곁에서 나는 이유를 붙이고 있습니까, 함께 울고 있습니까?
세번째 , 대신 죽으신 참 왕입니다.
(30절) 여호아하스 기름부음을 받았고 요시야가 여호와아스의 아버지입니다. 이 왕이 석달 후에 애굽으로 끌려갑니다. 기름부음이 다 해결해 주진않습니다. 이스라엘백성도 보이는 왕 달라고 떼부리는 기도를 부려서 보이는 왕을 구했더니 백성을 회개하지않고 한결같이 므낫세를 따랐습니다. 악의 평범성이 온나라를 55년간 강타하니 요시야의 개혁이 먹히지않는 것 입니다. 아무리 개혁을 해도 도로 제자리 인것 입니다. 요시야는 좌 우로 치우치지않았다 햅니다. 자식박으니 자식이 나를 압제하고, 제물달라했더니 제물이나를 압제합니다. 자녀의 성공을 위해서라면 매질하고 때려도 상관 없는 것 입니다. 하나님께 기도안들어주면안믿겠다하고…말한마디에 일희일비하지마세요. 정치인들도 그렇듯이 말바꾸는거 아무렇지아니합니다. 왕좌를 대신할 왕은 있었지만 죄인을 대신할 사람은 없었던 것 입니다. 나에게 돈과 권세 있으면 다 달라집니다. 안달라진 왕이 유일하게 요시야 였습니다. 하나님으네 왕위가 견고하리라 약속 했기때문에 요시야도 있는것 입니다. 다윗은 많이 무너졌어도 처절하게 끝까지회개 했습니다. 그만큼 회개가 중요한 것 입니다. 요시야는 마지막에 듣지않았지만 예수그리스도는 죽기까지 복종하시고 무덤을 이길 왕을 준비 하샸습니다 요시야는 자신이 죽음으로 생을 마쳤지만, 예수님은 죽으셔서 자신의 죽음을 끝났습니다 예수믿고 천국가는게 가장 큰 선물 유산 축복입니다.
나는 누구를 내 인생의 왕으로 세우고 있습니까?
그 사람이 흔들리면 내 믿음까지 흔들리는 그 이름은 누구입니까?
나는 기름 부음과 직분, 신앙 경력이 나를 책임져 줄 것처럼 살고 있지 않습니까?
나는 오늘도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유일한 왕으로 모십니까?
이번목장은 신종문전도사님과 함께했고
부목자 목원 총3명이 목장모임을 가졌습니다.
✔️사건이 왔을때 어떻게 해석하는지?
✔️죽음조차도 하나님말씀으로 이루어지는일임
이 두가지에대해 나눴습니다.
8월 셋째주 기도제목
A
1. 내일 김천티티 일정 가운데 사고없게 맡은 바 잘 소화하며 다녀올 수 있길, 잃어버린 한 영혼 인도해주시길
2. 가족구원, 특히 가족과 관계 절연한 동생부부가 다시 돌아올 수 있길
3. 거룩한 신교제 통해 신결혼까지 잘 준비되길
B
1. 광야의시간을 두려워말고 하나님이랑 더 많이 대화하고 교제할 수 있게 해주세요.
2. 손에 한포진 나을수 있게해주세요.
3. 다이어트 재활 잘 해나갈수 있기를
4. 엄마 동생 구원.
5. 사명을 위한 신결혼에대해 잘 알 수 있게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