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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8.30.(주일) 열왕기하 23:31-35 「애굽으로 잡아갔더니」 김양재목사님
31. 여호아하스가 왕이 될 때에 나이가 이십삼 세라 예루살렘에서 석 달간 다스리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하무달이라 립나 예레미야의 딸이더라
32. 여호아하스가 그의 조상들의 모든 행위대로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더니
33. 바로 느고가 그를 하맛 땅 립나에 가두어 예루살렘에서 왕이 되지 못하게 하고 또 그 나라로 은 백 달란트와 금 한 달란트를 벌금으로 내게 하고
34. 바로 느고가 요시야의 아들 엘리아김을 그의 아버지 요시야를 대신하여 왕으로 삼고 그의 이름을 고쳐 여호야김이라 하고 여호아하스는 애굽으로 잡아갔더니 그가 거기서 죽으니라
35. 여호야김이 은과 금을 바로에게 주니라 그가 바로 느고의 명령대로 그에게 그 돈을 주기 위하여 나라에 부과하되 백성들 각 사람의 힘대로 액수를 정하고 은금을 징수하였더라
‘애굽으로 잡아갔더니’ 첫째,
1. 세상의 손에 붙들려 삽니다(31-33절)
31. 여호아하스가 왕이 될 때에 나이가 이십삼 세라 예루살렘에서 석 달간 다스리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하무달이라 립나 예레미야의 딸이더라_왕하 23:31
3개월간 아주 짧은 기간 동안 통치했던 여호아하스에 대한 평가는 32절을 보면,
32. 여호아하스가 그의 조상들의 모든 행위대로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더니_왕하 23:32입니다.
성군 요시야 왕이 하루아침에 전쟁터에서 죽자 나라가 비상이에요. 그래서 백성들이 급히 여호아하스를 왕으로 세웠어요. 그러니까 여호아하스는 요시야가 전쟁터에서 죽게 되자 곧바로 왕이 된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 자리에 단 석 달 있었어요. 그 석 달에 대한 평가가 뭡니까? ‘악을 행했다’고요. 그런데 이상하죠. ‘그의 아버지의 행위대로’가 아니라 ‘그의 조상들의 모든 행위대로’ 악을 행했다고 해요. 아니, 아버지가 요시야잖아요. 아버지에게서 보고 배운 대로만 살아도 중간은 갔을 텐데, 그 전무후무한 아버지를 건너뛰고 할아버지 아몬, 증조할아버지 므낫세의 길로 그냥 딱 돌아선 거예요. 여러분, 사람이 왕이 된 지 석 달 만에 갑자기 악해집니까? 아니에요. 악은 석 달 만에 생긴 게 아니에요. 왕이 될 때 몇 살이라고요? 23살. 그 석 달이 그 스물세 해를 지금 폭로하고 있는 거예요. 여호아하스는 두 살 위의 형을 제치고 백성의 선택을 받았어요. 그러니 사람들의 눈에 뭔가 있어 보였겠죠. 위기의 나라를 맡길 준비된 대안처럼 보였을 거예요. 근데 무엇이 준비된 대안이었을까요? 성경은 나의 죄를 위해 죽어 주신 예수님의 이야기예요. 근데 어디서나 나타난 현상만 보고 옳고 그르고를 생각하면 안 돼요. 그 사건에서 내 죄를 보려니까 ‘상대방이 왜 그랬을까?’를 늘 생각해 보는 것이 구속사라고 했잖아요. 그죠? 그러니까 또 그걸 생각해 봐야죠. 왜 여호아하스를 사람들이 좋아했을까? 그는 아버지 요시야를 날마다 보았어요. 성전을 수리하고 우상을 부수고 산당을 제거하고 유월절을 지키는 아버지를 봤어요. 그런데 그의 눈에는 그런 아버지가 어떻게 보였을까요?
‘나라가 이렇게 위태로운데 지금 성전 수리할 때야? 우상 하나 더 부순다고 나라가 살아? 예배가 밥 먹여 줘? 군대가 있어야 살지!’ 어쩌면 이렇게 답답하게 여겼을지 몰라요. 왜죠? 부자 왕자잖아요. 그래서 에스겔 19장에 보면은 왕자 교육을 받아 가지고 사람을 삼켰다 그러잖아요(겔 19:31). 그게 바로 여호아하스 왕을 말해요. 더군다나 평생 하나님 편에 섰던 아버지가 자기가 안 그래도 지금 떨떠름한데 젊은 나이에 전쟁터에서 죽었잖아요. 근데 반면 하나님 보시기에 악한 므낫세는 몇 년을 왕으로 살았죠? 무려 55년이에요. 세상 눈으로 보면 누가 성공자입니까? 물어볼 것도 없어요. 그동안에도 아버지가 답답했지만 드디어 ‘내 생각이 맞아. 아버지처럼 살면 일찍 죽네. 므낫세 할아버지처럼 해야 오래 살지. 내가 살고 나라가 사는 길은 요시야 길이 아니라 므낫세 할아버지 길이야!’ 여러분, 사회 구원은 개인 구원 없이는 이루어질 수가 없어요. 이 여호아하스가 아버지를 사랑하는 것 같았지만 그는 아버지도 나라도 사랑할 수가 없는 사람이에요. 완전히 세속사적인 사람이었어요. 그는 23년간 바로 옆에서 보았지만 아버지의 하나님 사랑이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았어요. 해석을 못 해요. 성군 아버지가 유대 편협주의와 영적 교만으로 인한 판단 미스로 느고의 애굽에 맞서다가 죽었잖아요. 느고가 요시야에게 기회를 줬던 것은 백성들은요, 알고 싶어 하지도 않아요. 오직 요시야 죽은 것만 분해요. 죽고 나니 요시야만 숭배의 대상이 돼 가지고 백성들은 반(反)애굽의 민족주의자들이 되어서 ‘타도하자 애굽!’ 이러면서 이제 일어났어요. 그러니 백성들이 그렇게 요시야의 개혁을 보고 듣고 했음에도 그냥 구속사에서 세속사로 돌아오는 데는 시간이 안 걸려요. 그게 워낙 오래 몸에 뱄기 때문에. 그래서 이 반애굽을 하기 위해서 아들 중에 가장 강성이고 애국자 같은 둘째 아들을 택한 거예요. 반골이잖아요, 지금 이 아들이.‘사람 앞에서’ 왕이 될 준비와 ‘하나님 앞에서’ 왕이 될 준비는 전혀 다른 거예요. 백성들이 보기에 나라를 맡길 대안이었어요. 그런데 여호와 보시기에는 악했어요. 사람의 눈을 통과했다고 하나님의 눈까지 통과한 것은 아니에요. 근데 유다도 지금 친(親)애굽, 반(反)애굽으로 쫙 갈렸어요. 말씀에서 정치를 보는 것이 무엇인가요? 지금 유다에게 수없이 경고하시다가 안 들으니까 하나님의 징벌로 지금 애굽에게 망하게 되었는데. 그러니까 지금 애굽은 하나님께 쓰임 받은 거예요. 그러니까 애굽도 그 구원의 시선으로 이제는 좀 때를 기다려야 하는 거예요. 그런데 유다는 말씀을 맡은 자로 전 세계를 해석해야 되잖아요. 그런데 요시야 죽인 애굽만 나쁜 놈인 거예요. 이것이 백성들에게 먹혀들어가서 “애굽 타도”를 외치는 것이 여호아하스의 현상이라는 것이죠. 나쁜 놈, 좋은 놈이 없고 예수 믿게 하는 환경이 최고의 환경인 것이 이해가 안 되는 거예요. 그렇습니다. 우리도 여호아하스처럼 20년을 와서 들어도 보아도 들리지 않는 분들이 있어요. 예, 우리 유명한 교수님이 예수가 안 믿어진다 그러시잖아요. S대 출신이라고나 할까. 그 여전히 옳고 그름으로 분노해서 여호아하스 같은 결정을 할 수 있고, 백성들은 열광합니다. 그래서 그 길을 선택한 그에게 주어진 것은 55년이 아니라 단 석 달이었어요. 그를 선택한 백성도 이제 멸망 기차에 같이 올라탔어요. 요시야가 죽은 지 23년 만에 지금 나라가 없어지게 됐는데, 이런 멸망할 선택을 계속하는 거예요. 여러분, 그러기에 항상 다수가 옳은 건 아니에요. 여러분, 하나님이 상급이 아니라 세상 성공이 상급이 되면 내가 성공을 붙드는 것 같지만 어느 순간 그 성공이 내 손목을 붙듭니다.★여호아하스는 왕좌에 앉았지만 자유인이 아니었어요. 이미 세상의 성공에 붙들린 종이었어요. 그는 아버지를 위하는 것 같지만 아버지가 그렇게 일생에 외쳤던 개혁의 말씀은 하나도 못 알아들었어요. ★구속사를 모르고는 사랑도 효도도 할 수 없는 거예요. 여호아하스 같은 효도는 말미잘 같은 효도라 이거예요.그리고 석 달 뒤에 그의 마음을 붙들고 있던 세상이 이제 그의 몸까지 붙듭니다.
33. 바로 느고가 그를 하맛 땅 립나에 가두어 예루살렘에서 왕이 되지 못하게 하고 또 그 나라로 은 백 달란트와 금 한 달란트를 벌금으로 내게 하고_왕하 23:33
그러면 이제 느고가 여호아하스를 왜 그렇게 미워했을까요? 우리 그 느고가 앗수르를 돕기 위해서 올라가다가 요시야의 저항에 부딪혀서 이제 결국 그 전쟁에 져서 앗수르가 몰락하고 바벨론이 패권을 잡게 되는 거예요. 바벨론, 애굽, 앗수르 삼파전에서 애굽이 진 거예요. 느고가 요시야에게 기회를 주었는데 (요시야가 그 기회를) 저버렸잖아요. 그런데 결국 요시야 때문에 애굽이 졌어요. 이것을 인정해야 되잖아요. 지금은 애굽에게 숨을 죽여야 하는 때인 거예요. 요시야 때문에 그 큰 나라 애굽이 지금 졌잖아요. 근데 이걸 인정을 안 하고 아버지 사랑 혼자 하는 것처럼 그 3개월간에 그렇게 악을 행한 거예요. 악을 행한 거가…. 그냥 느고가 나쁜 게 아니라. 그래서 폐위시켰잖아요. 근데 이런 일이 벌어지게 한 원인이 느고가 아니고 이 32절에 나와 있잖아요. 바로 여호아하스의 악행 때문이라고. 악행 때문이라고 분명히 말해 주잖아요. 여호아하스는 애굽을 타도해야 되기 때문에 그토록 몸부림치며 나라를 거룩하게 개혁하려고 했던 자기 아버지 요시야의 길을 하나도 안 따라요. 그리고 이전에 악한 왕들이 했던 것처럼 모든 악행을 그 3개월 동안에 저질렀다고 해요. 왜요? 구속사를 모르니까요. 그래서 요시야의 종교개혁으로 정화된 예루살렘을 하루아침에 더럽혔어요. 여러분, 나라가 망해 가도, 내일 망해도 믿는 사람은 회개를 해야 돼요. “애굽 타도”를 부르짖는 게 아니고! 그렇게 정치를 하는 게 아니고 회개를 해야 돼요. 그래야 할 일이 보여요. 근데 아무도 이 회개를 안 해요. 회개는 안 하고 그냥…. 우리나라 요시야 죽인 애굽 타도에 온 힘을 다하면 안 되는 거예요. 그것이 ‘악’이라고 하잖아요. 구속사를 알면 이렇게 역사를 읽을 수가 있어야 돼요. 구속사를 모르면 역사도 다 자기 맛대로 내 편, 네 편으로만 읽는 거예요. 근데 이 세상에 구속사를 아는 지도자가 얼마나 있겠어요? 그러니까 날마다 전쟁이에요. 지면 서로서로 원수고, 몇 년을 그냥 서로 네 편, 내 편…. 성경을 그렇게 또 읽어요. 그죠? 백성의 손이 여호아하스와 맞아서 기름을 부었잖아요. 근데 석 달 뒤에는 바로의 손이 그를 결박합니다. 믿는 백성의 손이 세운 왕을 세상의 손이 끌어내린 거예요. 여호아하스의 석 달 천하는 끝났어요. 느고는 그를 왕좌에서 끌어내려 립나에 가둬요. 다윗 왕조에서 왕을 이방 왕이 끌어내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에요. 이제 망할 때가 되면 이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거예요. 이제 유다의 왕을 유다가 정하지 못해요. 목사를 교회에서 정하지 못해요. 나라에서 정해 줘요. 뭐 독일도 그렇고 막 그렇잖아요, 그죠? 기름 부음 받은 왕이 예루살렘이 아니라 지금 남의 나라, 세상 나라 군사 기지에 딱 묶여 있어요. 그게 끝이 아니에요. 애굽 왕에게 벌금을 냅니다. ‘조공’이 아니고 ‘벌금’이요. 벌금은 잘못한 사람에게 물리는 돈이잖아요. 근데 이제는 무엇이 잘못인지도, 얼마를 내야 하는지도 바로가 정해요. 왕의 몸도 나라의 돈도 바로의 손에 다 붙들렸어요. 문자적으로도 여호아하스가 구속사를 모르니 당연히 역사 인식도 없지요. 그러니 그냥 눈앞에 느고가 나쁜 놈이니까 그냥 무조건 나쁜 놈이라고 그러면 다 밑의 사람들도 “지당합니다, 전하” 이러는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는 ‘내 편, 네 편’밖에 모르잖아요. 자기 식구밖에 모르잖아요. 다 팔이 안으로 굽어졌어요. 그러니까 그것이 백전노장 느고에게 전해지지요. 느고가 또 믿음의 대상이 아니잖아요. 요시야는 돕는 것 같더니 그 아들은 잡아가요. 그러므로 안 믿는 사람은 믿음의 대상이 아니에요. 안 믿는 사람은 잘해 주든 아니든 마음을 뺏기면 안 돼요. 미워해도 안 돼요. 하나님의 축복의 도구로, 징계의 도구로 그냥 쓰일 뿐이에요. 바사의 고레스 대왕처럼 유대인들을 포로 해방을 시켜 준 왕도 있지만은,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처럼 잡아간 왕도 있어요. 모두모두 믿는 사람들의 훈련̇ ̇을 위해서 존재할 뿐인 거예요. 그러나 우리는 애굽을 의지하다 미워하다 한평생, 앗수르를 의지하다 미워하다 한평생, 이게 역사서잖아요. 그 성경의 스토리이고 우리 인생의 스토리예요. 돈 있는 남편 미워하다 의지하다 한평생, 친정아버지 미워하다 의지하다 한평생, 전부.오직 거기서 ‘하나님만 의지하는 것’이 할 일인데, 이 쉬운 것을 한평생을 통하여서 성경을 보고 들어도 내 인생의 지나가는 것을 보고 들어도 알아도 안 돼요. 안 돼, 하나님 의지하는 게 안 돼요. 이게 여호아하스만의 이야기입니까? 아니에요! 세상의 손은 지금도 있어요. 어떻게 해요? 통장 잔액이 나를 붙들어요. 인사권자의 눈치가 나를 붙들어요. 진단서에 적힌 병명이 내 마음을 붙들고, 끝났다고 생각한 술과 게임과 그 사람이 나를 다시 붙들어요. 붙들려 있으니까 못 가는 데가 생기고 못 하는 말이 생기고, 하기 싫어도 해야만 하는 일이 생기는 거예요. 그게 ‘종살이’에요. 예수 믿는다고 하면서 예배드린다고 하면서 내 손목은 딱 딴 데 잡혀 있는 거예요. 지금 여러분 손목 어디에 잡혀 있어요? 그러니까 그런데 이 캄캄한 본문에서 꼭 봐야 할 게 하나 있어요. 이 모든 일도 누구의 말씀 아래에서 일어납니까? 23장 27절에,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이스라엘을 물리친 것 같이 유다도̇ ̇ ̇ 내 앞에서 물리치며_왕하23:27a
바로 느고가 왕을 가두고 벌금을 매기는 이 일이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거예요! 바로가 내 맘대로 하는 것 같죠? 세상 손이 제일 센 것 같죠? 아니에요! ★세상 손이 내 손목을 붙들어도 그 손까지 하나님의 말씀 아래 있는 거예요. 역사는 한 톨도 남김없이 하나님의 말씀 밖으로 나가는 법이 없어요! 역사는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다 이루어지는 거예요! 그 큐티를 하면서 처음부터 (차례대로) 보면 이게 다 들어와요. 성경도 여기저기 보니까 구속사를 깨닫지를 못해요. 서론, 본론, 결론을 모르니까.
▪ 적용 질문
Q. 사람에게 잘 보이기 위해 열심히 하는 동안, 하나님 앞에 쌓여 가는 악은 없습니까?
Q. 내가 붙들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나를 붙들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쉽게, 지금 여러분 손목은 어디에 잡혀 있습니까?
Q. 여호아하스와 백성들이 얼마나 공감되세요? 구속사가 들리세요?
붙들려 사니까 두 번째는,
2. 세상이 붙인 이름으로 삽니다(34절)
34. 바로 느고가 요시야의 아들 엘리아김을 그의 아버지 요시야를 대신하여 왕으로 삼고 그의 이름을 고쳐 여호야김이라 하고 여호아하스는 애굽으로 잡아갔더니 그가 거기서 죽으니라_왕하 23:34
사실 첫째 아들은 ‘여호야김’인데요. 여호야김은 친(親)애굽이에요. 그럼 이 사람이 구속사를 해석해서 친애굽이 아니라 육신의 영달을 위한 친일파 같은 친애굽인 거예요. ‘애굽에 붙으면 지금 괜찮겠네~’ 그래서 이 아들은 그냥 ‘감’이 안 되는 또 아들이에요. 사실 백성이 택할 아들도 없었어요. 그나마 여호아하스가 낫다고 해야 할 지경이에요. 세상의 손은 붙드는 데서 멈추지 않아요. 느고는 이제 아주 자기 말을 잘 들을 것 같은 여호아하스의 형 엘리아김을 왕으로 세웁니다. 그러니까 여호아하스를 왜 폐위했는지 이제 이해가 되시죠? 자기 말 안 들으니까 폐한 거예요. 여호아하스가 조금 지혜가 있었으면 후일을 도모했을 터이지만, 그런 게 이제 안 보일 정도로 강성으로 교만하게 굴다가 애굽으로 잡혀가는 거예요. 참으로 삶의 결론이라는 것이 이해되지 않으세요? 석 달은요, 짧다면 짧지만 아주 길다면 긴 시간이에요. 얼마든 자기를 보일 수 있는 시간이에요. 끌어내리는 것과 세우는 것은 달라요. 끌어내리는 건 힘만 있으면 되잖아요. 근데 세우는 건 주인이 하는 거예요. 그 바로가 이제 다윗의 보좌에 왕을 세웁니다. 다윗의 보좌가 애굽의 인사 발령을 받는 자리가 된 거예요. 애굽에서 이제 유다 왕을 세우는 거예요. 이게 끝이 아니에요. 더 이상한 게 나와요. 이름을 고칩니다. 엘리아김을 여호야김이라고 바꿔요. 엘리아김은 ‘하나님이 세우신다’는 뜻이에요. 여호야김은 ‘여호와께서 세우신다’는 뜻인 거예요. 사실 똑같아요. 바꿔서 얻는 게 없는 개명이에요. 근데 바로는 왜 이름을 고칠까요? 이름의 뜻이 마음에 안 들어서가 아니고 이름은 주인이 짓는 거잖아요. 부모가 자식의 이름을 짓지 자식이 부모 이름을 지을 수는 없어요. 이름을 짓는 자가 주인이에요. 훗날 바벨론 왕도 똑같이 새 왕의 이름을 고칩니다. 애굽이든 바벨론이든 세상은 자기 종에게 자기가 지은 이름을 붙여요. 그래서 우리도 복을 기대하면서 내 자식이 내 거니까, 내가 주인이니까 아이들 이름을 지어요. 너무 세상의 복을 바라면서 기대하면서 그래 가지고 그냥 뭐 그렇게 그냥 우리 어렸을 때 김봉수라는 작명소는 아주 유명했어요. 근데 거기 가서 다 이름을 지어도 또 뭐 일이 안 되면 ‘아우, 이름 때문에 안 되네’ 그러고 또 개명해요. 이름이 이렇게 쓰여지면 안 되는 거죠. 사명의 이름! 사명의 이름은 달라요. 제 손녀딸이 6.25에 태어났잖아요. 그래서 “상기하자! 6.25!”를 기념하여 ‘상기’로 지었어요. 서로 상(相), 기억할, 기록할 기(記). “6.25 나라의 고난을 서로 기억하자. 믿음의 6대손인 거 서로 기억하자. 외할머니 믿음을 서로 기억하자. 그리고 기록하자!!”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기록하는 것이기 때문에 큐티와 맥이 같죠? 그리고 남자가 아니고 여자니까 그렇게 해줬어요. 남자면 하나도 안 물어봐요. 여자니까 “네 이름이 왜 상기야?”다 물어봐요. 이럴 때 전도하는 거예요. 그래서 구속사적으로 이름을 지어야 돼요. 나머지 손녀도 다 같이 그날 큐티 말씀으로 각자의 가정에서 지었어요. 그렇게 지어놓으니까 이름 때문에 불평하지 않고 날이 갈수록 그걸 생각하게 돼요. 감사해요. 그 사명을 위한 이름이 최고의 이름 같아요. 우리들교회는 정말 이름 짓는 것에 대한 당위성과 만족도가 높아요. 말씀으로 지으면 이렇게 같은 이름도 없고 모든 것이 일원론이라서 성경에서 지었기 때문에 불평이 없더라고요. 개명한 사람이 지금까지 없어요! 엘리야김은 이름을 바꾸고, 그러면 끌려간 여호아하스는 어떻게 됩니까? 이 두 왕이, 나라가 지금 풍전등화인데 아무도 기도하고 회개했다는 말이 없어요. 애굽 편들고 안 들고 이런 것만 하면 안 되는 거죠! “여호아하스는 애굽으로 잡아갔더니 그가 거기서 죽으니라” 오늘 제목이 여기 있어요. 아버지 요시야는 자기 무덤에 들어갔어요. 온 유다가 울었어요, 마지막이라도. 그런데 아들은 무덤 기사조차 없어요. 조상들 곁이 아니라 애굽 땅 남의 나라에서 끝나요. 그러니까 예레미야가 바로 이 왕을 두고 22장
10절에서 이렇게 말해요.
10 너희는 죽은 자를 위하여 울지 말며 그를 위하여 애통하지 말고 잡혀 간 자를 위하여 슬피 울라 그는 다시 돌아와 그 고국을 보지 못할 것임이라_렘 22:10
‘죽은 자’는 요시야고, ‘잡혀간 자’는 이 여호아하스예요. 슬퍼하지 말라는 말씀이 아니에요. 울음을 거기서 멈추지 말라는 말씀이에요. 죽은 요시야는 자기 무덤에 들어갔지만 살아서 잡혀간 아들은 다시 고국을 보지 못해요! 무슨 뜻입니까? 약속의 땅을 영영 영원히 떠났다는 거예요. 요시야의 아들로 살다가 지옥을 갔다는 결론이 나왔어요. 말이 됩니까? 이 세상 모든 걸 다 갖추고 지옥 갔어요. 우리는 누구 때문에 울고 웃어야 하는지를 거꾸로 할 때가 많아요. 여호아하스는 우리의 슬픔 아니겠습니까? 내 아들이 잘되고 잘 먹고 잘살기를 원하지만은 말씀이 안 들리는 거예요. 그래서 들리는 게 아니에요. 오늘 간증한 예본이가 아빠가 저렇게 딴 여자 얻어 들여서 갔지만 너무 해석을 잘하잖아요. 우리도 세상에 붙여준 이름표를 달고 살아요. 학벌의 이름표, 연봉의 이름표, 직급과 지위의 이름표, 사는 지역에 이름표를 붙이고 살아요. 뿐만 아니라 실패와 병명과 사연이 이름표가 되기도 해요. 세상은 부지런히 이름을 갖다 붙여요. 그리고 그 이름표대로 내 값이 정해지고 나는 그 이름값을 치르느라고 그냥 등급 하나 떨어질까 봐 밤을 새우고 평판 하나 무너질까 봐 막 아닌 척하고 삽니다. 그런데 그 이름, 누가 지었습니까? 세상이 지은 이름을 내 정체로 받아들이고 사는 거, 그게 종의 방식입니다. 종은 주인이 부르는 대로 불리는 거예요. 여호아하스가 의리가 많았죠. ‘여호아하스 증후군’이라고 이름을 붙여드릴게요. 그런데 이런 얘기를 이렇게 솔직하게 나누시는 것이 증후군에서 놓임받는 비결이에요. 죄가 힘을 잃게 되는 거예요. 근데 죄를 쌓아 놓으면요. 그게 독이 돼 가지고요. 혼자 처리해야 되니까 ‘중독’이 되는 거예요. 그래서 목장에 와서 이 얘기를 하는 게 이게 얼마나 얼마나 … 이건 정말 여러분 집안이 사는 길이에요. 사는 길! 오늘 큐티 본문에서 뭐라고 하죠? 신명기 14장 1, 2절이에요.
1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자녀이니 죽은 자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베지 말며 눈썹 사이 이마 위의 털을 밀지 말라
2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성민이라 여호와께서 지상 만민 중에서 너를 택하여 자기 기업의 백성으로 삼으셨느니라_신 14:1-2
하나님이 지어 주신 이름이 있잖아요. 자녀, 성민, 자기 기업의 백성. 그런데 하나님 이 부르시는 이름은 성경 안에만 두고, 실제 우리의 하루는 세상이 붙인 이름에 끌려갑니다. 학벌 뭐~ 그냥 평판 뭐~ 그냥. 여기서 잘 보세요! 바로는 자기 권세를 보여주려고 엘리아김의 이름까지 고쳤어요. 그때 그가 새로 붙인 ‘여호야김’의 뜻은 “여호와께서 세우신다”예요. 바로는 ‘내가 이 왕을 세웠다’고 과시했는데 그가 붙인 이름은 오히려 최고의 이름이에요. 아니 ‘여호와께서 세우신다’는 이름보다 더 좋은 이름이 어디 있어요? 그죠? 일제도 창씨개명을 했어요. 전부 ‘-자’자 이름을 붙여서 우리 시대 이름들은 다 영자, 순자 그냥 옥자 ‘-자’자 돌림이잖아요? 근데 일제도, 바로도 이름을 아무리 고쳐도 역사의 주인이신 여호와의 이름은 고칠 자가 없는 줄 믿습니다! 그래서 애굽이 아무리 노력해도 가나안에 들어가면 하늘에서 비를 내려 주셔야 되는 거예요.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는 거예요. 하나님을 의지해야 되는 거예요.
Q. 세상이 내게 붙인 이름표 가운데, 어느새 내 정체가 되어 버린 것은 무엇입니까?
Q. 나는 그 이름값을 치르느라 무엇을 하며, 무엇을 잃고 있습니까?
그리고 나도 세 번째는
3. 나도 세상의 감독자로 삽니다(35절)
35. 여호야김이 은과 금을 바로에게 주니라 그가 바로 느고의 명령대로 그에게 그 돈을 주기 위하여 나라에 부과하되 백성들 각 사람의 힘대로 액수를 정하고 은금을 징수하였더라_왕하 23:35
자, 33절과 34절의 주어는 ‘바로’예요. 바로가 가두고 바로가 벌금을 매기고 바로가 왕을 세우고 바로가 이름을 고칩니다. 근데 35절은요, 주어가 ‘여호야김’이에요. 다윗의 자손이 다시 무대에 등장하는데요. 근데 무엇으로 등장합니까? 바로에게 바칠 돈을 걷는 징수원으로 등장해요. 이 “징수하였더라”는 그냥 세금을 걷는다는 말이 아니에요. ‘몰아붙여서 짜내는’ 말이에요. 성경은 애굽에서 이스라엘을 몰아붙여서 짜내던 자들을 똑같은 말로 ‘감독자’라고 부릅니다.
출애굽기 3장 7절이에요.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분명히 보고 그들이 그들의 감독자로 말미암아 부르짖음을 듣고 그 근심을 알고_출 3:7
똑같은 얘기예요. “감독자”! 하나님이 감독자 밑에서 부르짖는 소리를 들으시고 건져 내신 백성이 이스라엘 백성인데, 그런데 지금 어떻게 됐습니까? 유월절을 지킨 지 불과 13년 만에 다윗의 자손이 자기 백성에게 애굽 감독자 노릇을 하고 있는 거예요. 그것도 ‘각 사람의 힘대로’. 그러니까 전 국민을 짜낸 거예요. 바로는 저 멀리 애굽에 있어요. 백성이 날마다 마주친 것은 바로가 아니라 액수를 정하고 독촉하는 자기 왕이었어요. 여러분, 이게 종살이의 끝(결론)이에요. ★종은 당하는 데서 끝나지 않아요. 당한 대로 꼭 갚아줍니다. 회사에서 짜내 주면 집에 와서 짜냅니다. 위에서 눌리면 아래를 누릅니다. 사장이 누르면 이제 부장은 과장을 누르고, 과장은 계장을 누르고, 계장은 사원을 누르고. 세상이 나에게 내민 고지서를 나는 가족에게 내밀어요. 밖에서는 종처럼 살고 집에 와서는 바로처럼 살아요. 제일 사랑한다는 사람들에게 제일 애굽처럼 굽니다. 제가 하늘이 열려서 저의 추함을 보지 못했다면 저는 정말 당한 만큼 한 시집살이를 시켰을 거예요. 왜냐하면 13년 동안 제가 시집살이의 달인 아니겠어요? 아는 게 그거밖에 없는데…. 정말 은혜인 것 같아요. 은혜. 사람들은 다 시킨 사람을 그대로 하더라고요. 금요일 큐티 본문에서 하나님이 정확히 그것을 경고하셨어요. 신명기 12장 30절에서 “나도 그와 같이 하겠다 하지 말라” 그러잖아요. 우리는 세상 방식이 이기는 것 같으니까 나도 그와 같이 살 때가 많아요. 짜내는 세상에서 살아남으려고 나도 남을 짜냅니다. 애굽을 이기는 길은 애굽처럼 되는 것이라고 믿어 버린 거예요. 그게 종처럼 사는 방식이에요. 그러면 이 종살이를 누가 끊습니까? 유다는요, 은과 금을 걷어서 바로에게 주었어요. 돈을 냈으니까 자유로워졌습니까? 아니죠! 돈을 내고도 더 심한 바로의 종으로 살아가고 있는 거예요. 제가 시댁의 아줌마에게 돈을 주었죠. 그런데 돈을 주니까 자유롭기는커녕 “시댁에 이르겠다”고 협박하니까 더욱 아줌마의 종이 되었어요. 딱 이해가 되시죠? 종이 주인에게 바치는 돈은 몸값이 아니에요. 종살이의 증거예요. 매인 자는 자기 몸값을 낼 수가 없어요. 누가복음 9장에 보면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나서 예수님이 별세하실 것을 말해요(눅 9:312)). 그런데 이 ‘별세’가 그냥 ‘돌아가신다’는 말씀이 아니라 ‘엑소더스(Exodus)’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떠난 그 일, 출애굽 때 쓰는 말이에요. 하나님이 모세를 통해 출애굽을 이루셨죠.
그런데 그 출애굽으로 나온 백성이 오늘 본문에서 거꾸로 갑니다. 왕이 애굽으로 끌려가고, 나라가 애굽 앞에 조아리고, 열왕기 끝에 가면 남은 자들마저 애굽으로 다 내려가고 말아요. 그런데 ★★예수님이 예루살렘에서 이루신 엑소더스-출애굽-은요, 거꾸로 감기지 않아요. 왜 거꾸로 감기지 않습니까? 값이 다르기 때문이에요. 바로는 백성에게 각 사람의 힘대로 값을 내게 했어요. 근데 우리 주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시죠? ★우리를 짜내지 않으셨어요. 오히려 자기 몸을 우리 죗값으로 내어 주셨어요.
요한복음 8장 34절에서 36절에요.
34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
35 종은 영원히 집에 거하지 못하되 아들은 영원히 거하나니
36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로우리라
할렐루야!! 여러분 하나님의 아들이 우리를 자유롭게 하셨어요. 어떻게요? 죽어지심으로!! 그래서 우리가 참으로 자유로운 줄 믿습니다! 그런데 말씀이 안 들리면 “뭐 어디 누가 죽어져서 내가 어떻게 자유로워져?” 요시야의 아들들이 다 그렇게 생각하는 거예요. 이게 마음대로 안 돼요. 그죠?
Q. 세상에서 눌린 것을 나는 누구에게 풀고 있습니까?
Q. 나는 가족과 지체에게 어떤 액수를 정해 놓고 내놓으라고 독촉합니까? 성적입니까, 돈입니까, 인정입니까, 순종입니까?
Q. 이번 주, 내가 짜내 온 그 사람에게 무엇을 돌려주겠습니까? 사과입니까, 시간입니까, 회복입니까?
목장 중보기도입니다.
같이 기도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가
1. 알맞은 때와 방법, 타이밍에 집을 구할 수 있는 길을 꼭 열어 주시기를.
2. 부모, 가족간의 사건을 나를 위한 징계의 도구로 잘 해석하며 갈 수 있도록
3. 목장식구들 어제 약속한 적용 꼭 하고 하나님 손에 잘 붙들려 일주일동안 잘 살아내기를
4. 유제품, 단음료, 밀가루 줄이기 12시 전에 취침하는 적용할 수 있도록! 이번주 운동 2번 이상 적용
5. 직장지체와 적당한 거리 유지하면서 지혜로 대하고 미움, 정죄의 마음 사라지도록
6. 신교제에 소망을 갖고 간절함이 회복되기를
7. 엄마의 건강과 남동생집안의 구원!
8. 첫째조카 외롭고 힘들 때 주님찾고 만나기를 건강과 학업 가운데 지혜 허락해 주시기를
나
1.저희 어머니 자궁내막암 대장암 잘 유지되기를
2.신교제를 하고 있는데 건강한 신교제가 되기를
3.제 동생 가족구원
4.제 동생 가족 내년 한국 들어 올려고 하는데 거처와 직장을 허락해 주기를
5.교회와 목장 사랑부 그리고 십일조 생활 잘 유지되기를
6.직장 고난이 있는데 잘 해석하며 다니기를
다
1. 세상에서 이름붙여진 것에 끌려 다니며 종 노릇하지 않고,
말씀보며 중심 잘 잡을 수 있도록
2. 3개월 정도 남은 결혼예배 서로 잘 자신을 보며 준비 할 수 있도록
3. 아빠 검사 받게 되시는데, 하나씩 잘 챙길 수 있도록
4. 회사에 기름부어 주시고, 신규 직원도 입사 잘 할 수 있도록
라
아버지 황인수
위암 말기로 투병하며 항암치료를 받고 계시는 아버지의 체력과 마음을 끝까지 붙들어 주시고, 치료 과정 가운데 통증과 부작용을 잘 견딜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무엇보다 살아 계시는 동안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 영접하고 구원의 확신을 얻어, 허락하신 삶을 끝까지 잘 살아내다가 천국에 가실 수 있도록 은혜를 주세요. 제가 조급하게 아버지를 설득하려 하지 않고, 언제 어떻게 복음을 전하고 교회로 인도해야 할지 지혜를 주시며 제 삶과 사랑으로도 예수님을 보여드릴 수 있게 해 주세요.
어머니 박현숙
정신적·육체적·영적으로 너무 많은 어려움 가운데 있는 어머니를 불쌍히 여겨주시고, 필요한 치료와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길을 열어 주세요. 현재 저와의 관계도 많이 틀어져 서로 보지 않고 있지만 제 안의 상처와 원망도 다스려 주시고, 하나님의 때에 관계가 회복되게 해 주세요. 지금은 너무 불가능해 보이지만 어머니도 예수님을 만나고 믿음의 공동체에 연결되게 하시며, 가능하다면 우리들교회와 예배의 자리까지 인도해 주세요.
나의 건강과 마음
비만과 폭식, 당뇨, 우울과 무기력으로 몸과 마음이 많이 지쳐 있는데 저에게 꼭 맞는 치료와 약을 잘 만나 빠르게 안정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힘들고 공허할 때마다 음식으로 채우려는 습관을 끊게 하시고, 이미 몸이 힘든데도 계속 먹게 되는 마음을 절제할 힘을 주세요. 제 자신을 포기하거나 미워하지 않고 몸을 건강하게 돌보며, 다시 살아가고 싶은 마음과 삶에 대한 의지, 기쁨과 열정을 회복하게 해 주세요. 무엇보다 제 힘으로 버티려 하지 않고 저 자신을 하나님께 내려놓게 해 주세요.
직장생활
요즘 직장에 가기도 싫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을 만큼 지쳐 있는데 체력과 마음을 회복시켜 주시고, 다시 감사함으로 맡겨진 일을 감당하게 해 주세요. 아이들을 가르치고 학부모와 상담하며 동료들과 함께 일할 때 필요한 센스와 지혜, 말의 분별력을 주세요. 원장님과 이사님, 위의 상사들과 선생님들과 관계를 잘 맺게 하시고, 사람의 인격이나 감정에 끌려가기보다 맡겨진 역할과 질서에 순종할 수 있게 해 주세요. 감정적으로 반응하지 않고 필요한 말은 지혜롭게 하며, 어디에 있든 함께 일하기 편하고 믿을 수 있는 사람이 되게 해 주세요.
마
1. 세상의 인정과 욕심에 붙들려 살아가지 않게 해주시고
하나님의 시선으로 살아갈수 있도록
2. 작은것 하나라도
주님에 뜻에 순종하며 살아갈수 있도록
3. 하나님의 뜻 안에서 신앙과 마음으로 준비하여 예비된 배우자를 만날수 있도록
4. 내 생각과 계획보다 하나님의 뜻을 먼저 구하고 내가 원하는 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길로 인도할수 있도록
5. 가족 모두가 건강하고 감사와 기쁨으로 하루를 살아가도록
6. 유치원에 맡고 있는 열매반 친구들이 다치지 않고 안전하고 행복하게 생활할수 있도록
7. 원장님을 볼 때 올라오는 싫은 감정과 분노를 하나님께 내려놓게 해주시고 유치원에서 일하는 시간이 괴로움만이 아니라 의미와 기쁨도 발견하는 시간이 될수 있도록
바
1. 성령충만..예배가 회복 될 수 있도록.
(예배 2시까지 늦지않게 참석할 수 있도록~~주일 오전 일 끝나고 집에서 쉬고 싶은 마음 사라지도록)
나의 옳은 소견대로 행하지 않고 하나님 항상 생각하며 말씀 순종할 수 있는 인생 되도록
2. 가족들의 영혼 구원과 건강
(아버지의 치매로 인하여 아버지, 어머니 모두 힘들어하시는데 두 분 모두 잘 이겨내시고 구원 받으실 수 있도록//
여동생 수술이후 회복중인데 예수님 믿을 수 있도록 )
3. 신교제, 신결혼.
4. 직장과 가정에서 빛과 소금 감당할 수 있게
5. 자격증 시험 준비 잘 할 수 있도록 체력과 지혜 부어주시기를.
6. 다음 진로를 위한 준비 잘 할 수 있도록 해주시고, 주일에 온전히 교회에 집중할 수 있는 여유를 주소서.
7. 청년부 마지막 목장 유종의 미를 잘 거둘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