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설득
<창세기 43장 1~14>
사람을 설득하는 것은 어려운 과제이다. 요셉 형제들이 야곱을 설득하는데 필요한 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설득이다.
하나님의 설득이 어떠한 것인지 살펴 보도록 하자.
1. 상대방의 한계를 정확하게 꿰뚫어야 한다.(1~2절)
3일 기근에 담벼락 안 넘는 사람이 없다는 말이 있듯이 양식이 다 떨어지자 야곱도 한발 물러서게 된다. 어떻게 해서든
베냐민을 보내지 않겠다며 굶어 죽어도 양보하지 않았던 야곱이 조금의 양식은 구해올 수 없는지 아들들에게 사정하게
된다. 장자권을 모태 속에 있을 적부터 탐냈던 욕심많은 야곱이 많은 양식이 아니라 조금의 양식을 구하는 것은 야곱이
한계상황에 다달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징표이다. 그는 기근의 환경을 더이상 자신의 지혜와 재산으로 해결하지 못하게
되었다는 것을 인식했다. 야곱과 같이 내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기근을 만났는가? 그것이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
이며 설득의 타이밍이다. 사람은 부를 이름이 없어질 때야 비로소 하나님을 부르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요셉의 형제들이 이 기회를 어떻게 살려서 하나님의 설득을 하는지 살펴보자.
2. 상대방의 한계상황을 무시하지 말고 그 사람의 마지막 자존심을 지켜줘야 한다.(3~8절)
막다른 길에 몰린 쥐가 고양이를 무는 법이다. 한계상황을 틈타 함부로 몰아치면 이판사판 같이 죽자고 나올 수 있다.
그래서 마지막 자존심을 지켜주는 배려가 필요한데 그 배려는 무엇인지 살펴보자.
1) 나부터 죄인임을 인정하자.(3절)
이제 베냐민을 데려가야 한다는 것을 설득해야 하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누가 설득하는가 이다. 3절에 보면 유다가
그 역할을 맡았다. 유다는 며느리와 동침한 죄인중에 죄인이다. 며느리에게 네가 옳도다 라고 고백하며 회개한 그는
구속사를 아는 사람이다. 구속사를 아는 유다는 내가 아니라 "우리"를 인생의 주어로 삼는 사람이며 이것은 유다가
이타적인 사랑을 아는 사람임을 의미한다. 아비의 처와 동침한 르우벤과 누이 디나의 강간 사건때문에 세겜 족속을
살해한 시므온과 레위로써는 야곱을 설득하지 못한다. 결국 자신을 죄인이라고 인정하며 우리를 생각하는 사람이
상대방의 마지막 자존심을 지켜줄 수 있다.
2) 상대방에게 유익이 있음을 주지시키라.(4절)
유다는 막내를 데리고 가서 양식을 구하는 것이 야곱을 위한 일이라고 강조한다. 아무리 좋은 내용과 방법일지라도
상대방의 유익이 있다는 점을 전하지 않으면 설득이 되지 않는다.
3) 다만 결정은 상대방의 몫으로 맡겨야 한다.(4~5절)
사람은 자존적 교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선택권을 넘겨줘야 설득이 된다. 보내주는 것도 아버지의 결정이고 안 보
내면 이자리에서 굶어 죽겠다는 유다의 모습이 상대방의 선택을 존중하는 태도이다.
4) 돕는 지체를 만들어야 한다.(6~8절)
유다의 배려에도 야곱은 원망을 늘어놓으며 책임을 전가한다. 왜 베냐민 이야기에 대해서 솔직하게 이야기 했냐며
거짓을 꾸미지 않은 요셉형제들에게 불평한다. 이에 대해 유다는 답변하지 않았는데, 이렇게 결과론적으로 추궁하는
방법은 가족에게 전혀 이롭지 않다. 그 때 옆에서 다른 형제들이 한마디 거든다. 베냐민을 데리고 오라고 할 의도를
어찌 미리 알 수 있었겠냐며 유다의 설득을 도와준다. 이렇게 내가 죄인임을 인정하면 주변에서 내 편을 들어주는 것
이 있다. 르우벤의 경우에는 아무도 편 들어주지 않았다는 것을 보지 않았는가. 유다처럼 돕는 지체를 만들어야 설득
을 할 수 있다.
5) 희망의 메세지를 주었다.(8절)
똑같이 베냐민을 데려가겠다는 설득을 했지만 르우벤은 실패할 경우를 말하며 자신의 아들의 목숨을 담보로 내 걸었고
유다는 그저 보내기만 하면 다 살아 돌아오겠다며 희망적인 딜을 건다. 설득에 있어서 희망적인 메세지가 호소력있는
무기가 된다.
3.상대방의 가치관을 꿰뚫어야 한다.(9절)
가치관은 크게 육적 영적 가치관으로 분류되는데, 상대방의 가치관의 수준에 따라 내 입장을 #47583;춰야 한다. 르우벤처럼
무조건 희생을 내새운다고 설득이 되는 것이 아니다. 반면에 유다는 9절에 나와 있듯이 내가 책임을 지겠다고 말한다.
앞서 말했듯이 그는 우리가 해야 한다고 말하며 일의 유익과 영광의 주체로 "너"를 포함해서 결국 우리라는 공동체로
귀착시켰을 뿐 만 아니라 일에 대한 책임은 우리가 아닌 자신이 평생 죄값으로 치루겠다고 고백한다. 르우벤과 유다의
차이점을 보면 사람이 쓰는 언어에 따라서 각자의 가치관이 드러난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유다처럼 구원의 확신이 있
는 사람은 이 세상의 흥망성쇠가 주가 아니라는 것을 알기에 내 가족의 구원을 위해서 자신의 삶을 던진다. 이는 로마
서 9장 3절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
라고 했던 사도 바울의 고백에서도 잘 나타난다.
예수 믿는 것은 나그네 인생이라는 말은 이런 것을 말하는 것이다. 영원히 죄를 지겠다는 유다의 고백에서 왜 유다가
예수님의 직계 조상이 되었는지 성경은 말하고 있다. 결국 49장에 야곱이 죽음을 앞두고 유언 할 때 유다가 형제의
찬송이 되고 모든 백성이 그에게 복종하게 된다고 축복하며 유다에게서 예수님이 오실 것을 예언한다. 유다의 나그네
인생과 이타적 사랑의 고백이 야곱을 감동시킨 것이다. 죽을 때 까지 축복받고 싶어 노력했고, 라헬 중독도 못 내려 놓
은 야곱에게 유다의 그러한 고백은 정곡을 찔렀을 것이다. 야곱이 자신의 가치관을 보고 유다의 가치관을 보았을 때
그 찔림이 있고 결국 설득이 되기에 이른다.
십자가를 아는 사람은 이처럼 상대방의 가치관을 꿰뚫어 볼 줄 안다. 상대방 수준에 맞게 영육간으로 관심을 가지면
그에 맞는 지혜가 생기고 설득의 능력이 생긴다. 그래서 유다는 자기 차례가 오기까지 입을 다물고 있었다. 르우벤이
과잉 충성으로 설득할 때에도 시므온과 레위가 살인을 저질러서 입장이 안되어는 것을 보고 난 후 비로소 자기 차례
임을 알았고, 아버지 야곱이 양식을 구해 오라고 할 때까지 기다릴 줄 알았다.
결국 자기 죄를 예수 안에서 보는 사람만이 시기적절한 타이밍을 잡는다. 그리고는 너의 탓이 아니라 내 탓이라고 고백
하는 성숙함을 보여준다. 결론적으로 내 가치관을 파악하고 내 죄를 먼저 봐야 상대방의 가치관도 꿰뚫는 역사가 있다.
4.용기있게 가치관에 도전해야 한다.(10~14절)
유다는 서둘러서 벤야민과 자신들을 보내달라고 야곱에게 결단을 촉구하며 지금하면 너도 나도 죽지 않고 살 수 있다
고 설득한다. 목장에 들어가고 있지 않은가? 지금이라도 목장에 들어가고 양육도 받기로 결단하면 누구라도 살 수 있
다. 과거 거란이 고려를 쳐들어 왔을 때 서희가 외교담판으로 강동6주를 반환받는 쾌거를 이루었다. 거란이 요구하는
요동땅이 우리의 것일 뿐 아니라 오히려 그들이 차지하고 있는 강동6주도 과거 고구려의 것이고 고려가 그 후손이므
로 돌려줘야 한다는 자신의 이익을 당당히 요구했고, 거란과 화친을 못하는 것은 중간에 낀 여진 세력 때문이라고 말
했고 거란이 원하는 교류는 자신들도 원하는 바라며 거란의 이익도 겸해서 설득했다. 나의 유익이 상대방의 유익도 됨
을 알리는 설득이 진정한 설득인 것이다. 또한 이 진정한 설득은 모든 상대에게 동일방법으로 쓰이지 않는다. 상대가
누구냐에 따라 각자의 코드에 맞게 재해석되어야 하고 그에 맞는 설득하는 기술이 필요하다. 하지만 진정성 있는 설득
과 적절한 기술이 있어도 결국에는 하나님의 설득으로 마무리 되야 함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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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장나눔>
내가 가족관계에 있어서 설득 해야 하는 것(직면해야 하는 것)은 무엇인가?
목자님: 나에게는 어머니가 고난이다. 가난을 피해 시집오셨고 가부장적 아버지를 만나고 숨도 못 쉴 정도로 힘든
환경였는데, 어느새 아버지를 객관화 하시고는 가정중수를 위해 본인 의지로 성품마저 바꾸셨다. 결국 아버지보다
혈기있고 쎈 성품을 갖게 되셨고, 어머니와 아버지의 모습을 모두 갖추시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한 사람이 두 역할을
감당하다 보니 역기능이 있었는데, 어머니가 필요할 때에 아버지의 모습으로 아버지가 필요할 때 어머니의 모습으로
자식을 대하게 되었고, 급기야 자식들이 힘들어 지게 되었다. 오늘 말씀을 들으면서 그런 어머니 가치관을 인정하고
설득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명절 때 억지춘향으로 어머니와 관계가 회복되는 환경이 만들어졌다. 아무래도 가족들도 모이고 같이 있는 시간이
생기니까 서로 말도 조금씩 걸면서 관계가 나아졌다. 이번 일을 계기로 어머니 자체를 인정해 드리고 존경을 표현
해야 한다. 내 자리와 입장을 찾아가는 것은 그 다음 일인듯 싶다. 내가 직면해야 하는 것은 어머니 자체의 가치관
을 존경해야 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나에게 쏟아지는 피해가 있겠지만 기쁨과 감사로 감당하길 원한다. 그동안
어머니에게 반감해서 골이 깊어졌던만큼 이래서 저래서 싫은 게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가 되는 자녀가 되
고 싶다. 우리 어머니가 아프다가 아니라 어머니를 주신 것 자체에 감사하기를 소망한다. 구원의 책임은
먼저 믿는 자에게 있다고 하셨듯이 유다처럼 이 일의 책임은 내 죄값으로 치루어야 한다. 그래도 결국 설득은
하나님이 하신다는 말씀에 힘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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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오: 내가 설득해야 하는 이는 아버지이다. 요즘 들어 아버지가 나에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되었다.
아버지가 세상 가치관으로 가득하셔서 나에게 성공을 원하시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것 말고 다른 것이 있다는 생각을
계속 주시고 있기 때문이다. 다름이 아니라 아버지가 나를 사랑한다는 마음말이다. 어렸을 때에도 설명없이 혼나고
맞고 난 후에야 혼난 이유를 설명들었던 나는 늘 아버지의 표정과 말투에 온 신경이 가 있었고 두려움이 가득한 아이
로 자랐다. 그러다보니 내 대응방법은 다름이 아니라 무시였다. 두려워서 폭언과 폭행으로 아버지를 대했고 아버지 반
응 자체를 무시해버렸다. 생각해보면 아버지는 사랑을 자식에게 먼저 받고 싶으셨던 것 같다. 열 두 형제 5째로
자라면서 누리지 못하고 선택권 없는 환경에서 자랐고 할머니는 강압적인 할아버지 밑에서 눈물만 흘리다 돌아가셨고
무조건 일단 매맞고 시작하는 환경 속에서 혼나지 않으려고 애어른이 되셨다. 할아버지 비위를 유독 잘 맞춰주던
아버지는 이쁨을 받기 시작했고 인정받기 시작했다. 그렇게 자식이 먼저 표현해야 인정받는 구조를 배우셨지만 결국
사랑은 못받고 자라셨다. 그런 가치관이기에 나에게도 예의바르고 먼저 표현할 줄 아는 자식을 원하셨던 것 같고 할아
버지에게 못받은 사랑을 받고 싶으셨던 것 같다.
명절 때 아버지가 꼼장어 만원어치와 소주를 사가지고 오셨는데 같이 먹자고 하셨다. 그날따라 신기하게 거부감없이
아버지와 마주앉아서 좋아하지도 않는 꼼장어를 먹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다. 아버지는 소주와 함께 안주하셨고 난 그
앞에 있었다. 먹을만하다고 말하니 아버지가 좋아하시더라. 짧지만 이런 저런 대화를 하면서 하나님이 그런 마음을
주셨다. "경오야 이 꼼장어 같이 먹어주는 거 이 정도의 작은 표현을 못해서 30년동안 아버지를 미워했고
외면 했지만 막상 해보니 할만 하지? 생각보다 아버지를 사랑하는 게 어렵지 않지?" 하며 말씀 해 주셨다.
그날 밤 자기전에 기도하며 엄청 울었다. 내 유익만을 생각해서 피하고 무시했던 아버지에게 필요한 것이 정작
작은 관심이었다는 것에 회개가 되었고, 그래도 여전히 아버지에게 표현하기 싫은 내 마음이 보였기 때문이다.
정말 내 힘으로는 내 자신도 아버지도 설득할 자신이 없지만 하나님이 다 하신다니까 위로가 된다.
목자님: 아버지도 사람이기 때문에 사랑 받고 픈 본성이 있다. 자식이 자신을 사랑해주길 원하는 마음이
아버지에게 있다. 그런데 우리는 아버지의 마지막 자존심을 나의 마지막 자존심을 지키려고 무시하고 있다.
그래서 관계가 회복되지 않는다.
상대방의 가치관을 인정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꿰뚫어 보고 무시하면 안된다고 하셨다.
우리 아버지는 이래서 이래 라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래서 이런 관심을 써드려야 겠다는 마음이 필요하다.
하나 둘씩 아버지에 대한 관심을 찾아가보자. 할아버지와 할머니에게 못받았던 사랑을 가족에게 받고 싶은 마음을
모른 척 하면 구원으로 가는 설득을 할 수 없다.
사람은 못 받은 것들이 쌓여서 관심을 넘어 집착이 된다. 그래서 가족간에 집착이 있고 진정한 표현이 없이
관계만 깨진다. 이것을 보다 쉽게 직면하는 것은 감사합니다 의 적용같다.
서로 신뢰하게 되는 시작이 감사합니다 의 적용이다.
경오가 아버지에게 삶 속에서 관심을 잘 표현하고 잘 감사하길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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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주연: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는 바람에 원하는 대학을 가지 못한게 억울했다. 생전에는 한번도 감사하다고 사랑
한다고 표현 한 적이 없었고 돌아가시고 난 후엔 남들만큼 누리지 못했다는 생각으로 아버지에게 피해의식이 있었다.
내 길 닦아주는 사람으로 아버지를 생각했던 것 같고 날 위해 부모님이 존재한다고 막연히 생각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많이 울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여러가지 의미가 있다. 아버지가 고생하고 사셨다는 생각도
있지만 앞으로 내가 어떻게 살아갈지 막막해서 울었던 것 같다.
아버지가 살아계실 때 표현하지 못한게 많아서 안타깝다.
어머니 이야기는 잘 들어주는 편인데 호불호가 명확한 형보다는 막내인 나에게는 이런 저런 이야기를 편하게 하신다.
그런데 잘 들어준다고 했지만 진정으로 들은 적이 별로 없었다. 관심과 표현이 부족한 사람이 나라는 것을 인정할 수
밖에 없는 듯 싶다.
설득을 잘해야 한다고 하셨는데 난 하나님께 잘 설득당하지 않는 것 같다. 사건이 오면 구렁이 담 넘어가듯 그
순간만 모면하려고 하니 진정한 설득이 안되어지는 듯 하다. 내가 죄인이라고 인정하면서도 구체적이 아니라 원론적
으로 내 모습을 보고 넘어갈 때가 많다. 오늘 말씀처럼 자신을 잘 인정하고 하나님께 설득 당하도록 기도해야 겠다.
요즘 들어 아침에 일어나기가 힘들다. 몸이 피곤하다보니 쉽게 짜증이 나고 생색이 난다. 직장선교 단체에서 고위간부
한분이 간증을 했는데 내 자신을 보는 것 같았다. 모든 일을 자기열심으로 하다보니 넉다운 되기 직전이라고 고백을 하
셨다. 기도하지 않고 묻지 않고 내 열심으로 사는 것이 지치게 만든다는 것에 공감이 되더라. 처음에는 설득이 안되는
부분도 있었다. 난 나름 잘 한다고 했는데 내 열심이라니? 하지만 요즘의 나는 기쁨과 즐거움 없이 일로써만 느낄 때가
많기 때문에 설득이 되나 싶었다. 하지만 막상 설연휴가 되니 여러 일로 아내에게도 안되는 모습도 보이고 생색 짜증
이 올라오는 일이 있었다.
목자님: 주연이는 일 중심적이라 목적지는 분명한 듯 하지만 가끔 목적이 헷갈리는 것 같다. 내가 어디 가야
하는지는 알고 계획대로 잘 해 나가지만 정작 그 곳에 가서 무엇을 할지 헷갈리게 되는 것이다. 내 열심으로 살면 목
적이 헷갈리는 삶을 살 수 밖에 없다. 가야 하는 것은 알겠는데 왜 가야 하는지를 잊고 일에 몰두하다 보니 생색 짜증이
올라올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우리는 기도와 말씀으로 끊임없이 자신의 가치관과 죄를 봐야 하고 자신을 하나님 설득에
넘어가게 만들어야 한다. 그 설득이 주연이에게도 가족에게도 임할 때까지 표현하는 적용하면서 잘 기다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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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상현: 오늘 말씀을 들으면서 스터디 했던 선배가 생각이 났다. 선배였지만 나보다 나이가 어린 자매였는데, 자매는
사자 들어가지 않은 남자는 쳐다보지도 않았다. 한번은 의사를 만난다고 했는데, 그 남자는 자신이 원할 때 만나야 하
고 여자의 입장은 철저히 무시했다. 외제차를 다니고 의사인데 임용고시 준비하는 여자를 왜 만나겠나 싶어 판단 되더
라. 그런데 우연히 그 의사가 그 친구를 상처를 줘서 일주일을 스터디에 안나오는 일이 있었다. 그런 모습에 화가 너무
나서 설득 아닌 설교를 했다. 안 믿는 친구라서 나름 복음도 전하고 여러 이야기도 해주었는데 이해가 된다고 하더라.
그래서 그에 멈추지 않고 너는 공사를 구분 못한다. 스터디에 피해가 되었다고 이런 정신으로 뭘 하냐고 자존심을 꺾
는 이야기를 해버렸다. 내가 믿는 자이고 옳다는 생각으로 너무 밀어 붙였던 것이다. 결국 그 자매는 울며 스터디를
떠났다. 오늘 말씀을 들으면서 하나님의 설득이 아니면 설득할 수 없다는 것이 와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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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정동: 별일 없이 직장 잘 다니고 있다. 목사님 말씀을 참 재미있게 들었다. 설득이라는 것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사실 우리들교회 와서 처음엔 충격적이고 신선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다 똑같은 이야기 같다. 나도 말씀대로
흉내는 내고 있지만 정작 자신은 안 변하는 모습을 보고 있다. 오늘 말씀에 자존심을 지켜주는 게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사실 내가 목장에서 말하면 실수하게 되는 것 같아서 말을 잘 안하게 된다.(형 실수 아니에요 ㅠ ㅅ ㅠ)
다른 사람은 신교제 신결혼 이야기 하는데 정작 나는 결혼해야 겠다는 생각이 안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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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원: 아버지 살아계실 때 아버지가 고난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동생이 고난이다. 요즘 동생이 무서워서 눈치를
보고 있다. 관계도 서먹하고 대화도 몇마디 이상 하지 않는다. 얼마 전 여자친구가 생겼는데 어머니가 돈 많은 과부고
형은 대학원생이라고 둘러대며 좋은 집안으로 부풀려 놓은 것 같다. 나는 정작 찌질한데 마음이 그렇다. 납골당에
모신 부모님 사진을 바꾸려고 한다기에 앨범을 오랜만에 들추어 보았다. 어렸을 때 참 해맑고 미소짓는 모습을 보니
동생이 귀엽더라. 그런데 정작 어렸을 때 동생을 숨도 못쉬게 괴롭혀서 그 애가 저렇게 변했나 싶어서 마음이 무거웠다.
지금은 늘 무표정이고...나 때문이라는 마음이 들었다. 부모님이 늘 나에게만 관심을 두셔서 동생이 삐뚤어진것 같다.
나는 늘 동생을 괴롭혔는데 심지어 재수 때 대학 원서를 고3이었던 동생을 시켜서 넣었다.
가족과 어울리지 못하고 유학을 보내달라는 동생을 보면서 역시 내 잘못이라는 생각이 든다.
목자님: 형제는 아무리 때리고 괴롭혀도 용서된다. 어찌 되건 핏줄이기 때문이다. 동생이 싫어하는 건 과거의
대우가 아니라 형 행위와 가치관이 싫은 것이다. 어렸을 때야 시키는 대로 하고 때리는 대로 맞았지만 나이먹
고 자기 상황과 형의 상황이 객관적으로 보이게 되면서 자신이 떠 맡아야 할 것을 생각하니 답답한 것이다. 형 상태
는 그대로이고 자기는 사회에 진출했는데 어머니 사랑은 여전히 형에게 가는 것에 상처가 있을 것이다. 태원이형이
나 때문이라고 했는데 결국 그 상처는 부모님과 동생간의 문제이다.
죄는 과거진행형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이다. 만약 죄가 과거진행형이면 사람은 누구나 평생 그 죄 감당 못해 우울증에
걸릴 것이다. 동생과 대화가 안되는 것은 마음에 벽이 생겼기 때문이다. 그래서 꾸준한 신뢰가 필요한데 어머니도 형
도 동생에게는 신뢰를 끼치지 못하고 있다. 사실 모든 문제의 해결은 형과 어머니와의 관계 회복에 달려있고 그 후에
동생은 자연스럽게 그 회복에 끼어들게 되어 있다. 그래서 형이 꾸준히 행위로 보여주어야 한다. 다른 것보다 먹고
자고 입고 하는 기본적인 것을 규칙적으로 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현재 동생에게 하는 적용이다.
태원이형 나눔에는 늘 어머니가 빠져 있다. 아버지 동생이 전부다. 어머니는 평생 피해자라 치부하면 회복의 시작이
없다. 어머니부터 객관화 하는 것이 필요하다. 나도 어머니도 피해자라고 이야기가 끝나면 회복이 더딜 수 밖에
없다. 모두가 죄인이므로 어머니의 가치관을 객관화해야 한다. 아버지만 가해자가 아니고 어머니만 피해자가 아니다.
그렇게 편견의 시선이 있는 구조에서 문제 자식이 나오게 된 것이다.
아버지를 용서하게 되었지만 동생이 새로운 아버지로 나타났다. 이게 죄의 대물림이다. 형을 무시하고 행위로 판단
하기 때문에 태원형이 눌리겠지만 지금은 어쩔 수 없다. 일단은 어머니와 형간의 관계회복이 있을 때 동생이
그 회복에 끼어든다.
형은 늘 어머니가 자신을 믿는다고 그래서 뭘해도 놔둔다 말하지만 자식에 대해 모르고 싶고 무관심하고 픈 부모는
세상에 없다. 형이 피해자인 어머니로 묵상하고 그 이상의 어머니를 생각하는 것에 마음을 닫고 있는 것 같다. 형이
직면하고 설득 해야 할 대상은 어머니이다. 돌아가신 아버지에게 직면하기 보다는 살아 있는 어머니와 직면하자.
동생에게 형이 한 잘못은 정작 동생은 크게 기억하고 있지 않을 것이니 그 죄책감은 덜어버리자.
그리고 어머니에게 시선을 돌리고 기도제목도 이제는 어머니 문제를 내놔야 한다.
형은 주연이와 반대로 목적이 아니라 목적지를 위해 기도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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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범희: 내가 직면해야 하는 가족은 우리 누나이다. 사실 가장 안변하는 사람이 나라는 사람이라서 가족에게 고난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내 입장에서는 누나같다.
명절에 외할머니께서 돌아가셨다. 떡국을 드시고 체하셨는데 약 드시고 링겔도 맞으셨으니 괜찮다 싶었는데 상태가
위독해지셔서 급하게 119로 병원에 갔지만 돌아가셨다. 92세 이다보니 노환인듯 싶기도 하지만 밤에 잠이 안왔다.
제사도 드리고 바쁘게 지내다 상가집에 오신 손님들 대접도 하면서 명절내내 쉬지도 못했다. 집에 돌아와서 드는
생각에 인생이 참 허무했다. 세례요한도 헤로디아와 딸의 말 한마디에 어이없게 순교한 것처럼 내 인생도 별 것
없겠구나 싶었다.
몇달 간 만나지 못했던 누나를 만나고 집에 태워 가지고 오는 길에 내 명의로 받아준 대출 이자금 갚는 것 때문에
수련회에 가 있을 때 처리하기 힘들었다는 이야기를 꺼내자 바로 눈을 감아버리더라. 정말 울분을 삼키며 운전을
했다. 처음 우리들교회 와서 말씀듣고 기도할 때는 애틋하고 그랬는데 지금은 그냥 참는거 밖에 없다. 그냥 내 노력
으로 참는 것 같다. 외국에 있는 남동생에게도 전화로 살아 있어줘서 고맙다는 적용을 했을 때에도 오히려 형이
어머니 잘 챙겨주라는 충고에 분이 났지만 참았던 것도 하나님이 아니라 내 의로 억지로 참았던 것 같다는 생각이
지금 와서 든다. 죽을 것 같이 절박했던 마음이 점점 무뎌지고 여전히 변하지 않는 나를 보며 열정이 금새
식었다는 생각이 든다.
하나님께 설득당해야 하는데 설득이 안되다보니 가족에게 나아가는 것이 한계가 있고 직장문제 역시 자신이 없다.
술을 한 두잔은 받아 마실 수 밖에 없는 내 자신이 보인다.
목자님: 어찌됐든 가족 문제도 말씀 안에서 해석이 되었고 직장도 말씀으로 인도받은 만큼 말씀으로 잘 기다렸으면
좋겠다. 면접 볼 때 술도 끊는다고 말했듯이 새로운 마음으로 시작하니까 적용했으면 한다. 예수님이 시간이시기
때문에 붙어 있으면 해 주시는 부분을 기대하며 설득 당하는 때가 오기를 잘 기다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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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제목>
목자님: 가족구원을 위해서 기도하도록(아버지와 형의 구원을 위해서 관심갖도록)
어머니에게 감사할 수 있도록
내 모습에 기뻐할 수 있도록
김태원: 큐티 먼저하도록
구직 활동 직면 잘 하도록(갈급한 마음으로)
외할머니 건강을 위해서
주상현: 아침 큐티하도록
기도의 생활화
공부 최선을 다하도록
손정동: 어머니와 동생의 건강을 위해서
이범희: 신앙의 열정이 회복되도록
직장 잘 분별할 수 있도록(월요일 첫 출근!!)
가정문제가 회복되도록
송주연: 금토에 예정된 회사 산행이 취소되어
고등부 기도모임에 갈 수 있도록
강경오: 규칙적인 삶을 만들어 가는 적용 잘하도록
아버지에게 꾸준한 적용하기
두려움 벗어나서 과정에 대해 충실하도록
참석하지 않은 채진욱 강원희 형제를 위해서도 기도해 주세요!
그리고
양원호 형제와
그 가족을 위해서도
중보해 주시고 말씀으로
안부 전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