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하나님의 설득 >
창 43:1-14
대화의 목적은 의견교환 등이 아닌 상대방의 의견을 앞에 두고 바라보는 것입니다. 설득의 최대 함정은 자신의 장점은 크게 생각하고 약점은 그럴 듯 하게 해석하는 ‘웨비건 효과’로 자신을 정확하게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커트 모텐슨 [여러 가지 설득력과 잠재력])
1. 상대방의 한계를 정확히 꿰뚫어 봐야 합니다. (1-2절)
계속되는 기근에 야곱이 베냐민을 절대 안 보낸다는 고집이 한계에 달하여 양식을 ‘조금’ 사오라는 풀이 죽은 부탁이 입에서 나옵니다. 탐심이 많던 야곱이 대가족의 생존을 위할 만큼만 원하게 됩니다. 자신의 부지런함과 머리로 해결되지 않는 한계상황에서 이 말이 나와야 이제 설득이 시작 될 수 있습니다. 가나안 땅에 돈이 야곱의 인생에서 무용지물이 되어 전혀 미련이 없게 되는 것이 축복입니다. (잠23:5) 땅끝기근으로 설득해 나가시는 것이 하나님의 설득방법입니다.
부를 이름이 없으면 하나님을 부르게 됩니다. 하나님보다 더 섬기며 사랑하는 베냐민 등이 세상 것을 치시고 불로 태우셔서 이 세상에서 눈을 돌려 하나님의 나라만을 보게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설득방법이십니다. 이 모든 것 가지고 안 되는 것이 있는 것이 축복입니다.
자신의 말을 번복하여 베냐민을 보내야 굶어 죽진 않는 야곱의 창피스런 말이 나오는 이 때인 하나님의 신호 ‘이제’가 타이밍이다. 하나님은 사람을 통해 설득하십니다.
Q>상대방이 한계상황인가?
2. 그 사람의 한계상황을 무시하지 않고 남은 자존심을 살려주고 지켜줘야 합니다.
설득을 하기 위해선 상대방을 유리그릇 다루듯이 5가지 방법으로 남은 자존심을 살려주어야 합니다.
(1) 내가 죄인임을 인정해야 합니다.(3절)
상대방을 막다른 길로 몰면 설득을 하기 어렵습니다. 기술이 아닌 내가 죄인임을 인정하는 것이 상대방의 자존심을 지켜줍니다. 내 자존심은 내려놔야 합니다.
이 설득은 죄인의 괴수로 자신의 죄를 인정하여 ‘우리’를 아는 유다가 시작합니다. 유다의
주어는 항상 ‘우리’입니다. 구속사를 알기에 우리를 생각하고 이타적이고 사랑을 압니다. 그러하기에 나를 버리는 지혜가 나오는 설득을 할 수 있습니다.
르우벤의 설득이 실패한 이유는 인간적인 세상을 알며 항상 주어가 ‘나’였기 때문입니다.
(2) 상대방의 유익을 강조해야 합니다. (4절)
‘아버지를 위하여’ 유다는 말합니다. 우리의 말이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은 상대방을 위한 일임을 설득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진실해도 자신에게 유익이 없으면 설득되지 않습니다.
(3) 결정은 상대방에게 하게끔 한다. (5절)
아사할 상황은 사실 그대로 고하면서 인간의 자존적 교만에 거스르지 않고 스스로 하게 야곱에게 결정권이 있음을 알립니다.
(4) 돕는 지체를 만들어야 합니다. (6절)
이렇게 죄인의 입장에서 유다가 설득해도 이스라엘은 여전히 질책하며 안 변합니다.
거짓말하지 않는 일을 책하며 결과론인 것을 추궁합니다. 이런 추궁은 상대방을 억울하게 하고 노엽게 합니다. 야곱은 쓸데없는 원망과 책임전가를 계속합니다.
유다는 이런 애매한 소리를 하는 야곱에게 침묵으로 설득해나갑니다.
이 때에 형들이 추임새를 넣어 거들어 줍니다. (7절) 르우벤 때에는 다 입을 다물었습니다.
유다가 죄인임을 자처하는 이타적인 마음이 있기에 형들을 아우르는 카리스마 생긴 것입니다. 이 돕는 지체는 유다가 만든 것입니다. 이런 과정이 다 있지 않으면 함부로 설득에 나서면 안 됩니다.
(5) 희망의 메시지를 주었습니다. (8절)
유다는 실패를 생각하지 않고 희망적인 발언을 합니다. 살겠다는 호소력이 있는 설득입니다. 그 전의 르우벤은 실패를 전제로 아들을 죽이겠다고 했습니다. (42:47)
목사님의 삶) 물을 때에 제 생각은 이러이러하지만 결정은 당신이 합니다. 자신의 의견대로 해도 나를 높이지 않고 당신의 결정이 탁월하다며 풀 죽은 말로 마지막 자존심을 늘 지켜주는 것이 지혜입니다. 사람이 뻗어나갈 길이 있게 해주고 이야기를 해야 합니다.
마지막 자존심을 꿰뚫어 보고 지켜줘야 합니다.
3. 설득을 하되 상대방의 가치관을 꿰뚫어 볼 수 있어야 합니다. (9절)
상대방이 육적인가? 정신적인가? 영적인가? 그 사람의 수준에 맞춰서 내가 책임을 져 주어야 합니다. 이게 십자가를 길러놓고 가는 것입니다. 설득이 되지 않는 것은 하나님께서 속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구속사적인 인생인 유다는 공동체인 ‘우리’라는 의식이 생겼지만 르우벤은 ‘나’입니다.
다른 점은 유다는 영광은 공동체로 책임은 내 몸이지만 르우벤은 내 영광에 책임은 자식의 목숨을 건 것입니다. 어떤 언어를 쓰는 가로 가치관을 알 수 있습니다.
(27분35초) 축복에 평생 집착하고 축복권을 가진 이스라엘에게 유다 자신과 자손들이 축복을 포기하고 저주를 받아 이 땅에서 끊어져도 형제의 구원을 위해 어떤 대접을 받아도 나그네 인생에서 모든 것을 나누어 주겠다는 의지를 피력한 것입니다.(롬9:3)”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
이스라엘이 그 사랑하던 요셉과 베냐민이 아닌 유다에게 유언에서(43:9~10) 다윗의 왕권과 예수님의 조상이 됨을 축복합니다.
(31분) 논리적으로 설득을 하며 모든 축복을 다 내려놓는 자신을 희생시키는 책임감을 보여 이스라엘을 너무나 감동시켰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이 모든 이를 감동시킵니다. 유다는 아주 현실적으로 책임을 지는 방법을 제시한 것입니다.
이 제안이 먹힌 이유는 축복을 내려놓지 못해 평생 험악한 삶은 산 야곱에게 유다가 전 가족을 살리기 위해서 평생 죗값을 치르며 이 땅에서 끊어질지라도 축복을 내려놓겠다 말했기 때문입니다. 야곱은 자신의 삶을 볼 때 죽어도 내려놓지 못했던 기복신앙의 가치관에 정곡을 찌르는 설득을 유다가 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설득만이 정곡을 찌르는 설득을 할 수 있었습니다. 르우벤은 자신의 기준으로 설득했기에 멋있어 보였지만 사람을 설득하지 못 하였습니다.
Q> 상대방이 무엇을 귀히 여기는가?
내 죄는 나만 보면 상대방의 죄는 저절로 보게 되어있습니다. 그 눈높이에 맞춰 책임은 내가 지고 이해하며 기다려야 합니다. 유다도 르우벤 설득과 기근의 계속과 시몬의 투옥과 레위의 불신으로 자신이 순서로 마지막으로 보이고 아버지가 양식을 사오라 했기에 그제야
나섭니다. 삶에서 일으켜 줄 수 있는 설득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성공의 비결은 모든 것을 자신의 탓으로 돌리고 자기 안에서 해결책을 찾으면 그때부터 부자의 길로 들어섭니다. 그러나 자신의 문제를 타인의 탓으로 돌리면 가난의 길로 들어서게 됩니다.’내 탓이요’ 지금 사회의 문제는 책임을 다 사회로 돌리기 때문으로 진단합니다. (공병호)
4. 용기 있게 그 가치관에 도전해야 합니다. (10절)
유다는 빠른 실행을 말하여 지체하지 않는 것이 사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설득의 힘은 거란이 80만 대군으로 고려를 침략할 때 소손녕을 설득한 서희의 담판으로 최대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 강동6주를 얻은 일에서 크게 드러났습니다. 상대방의 삶도 개선시킬 수 있어야 진정한 설득입니다. 상대방의 이익과 겸하여 진정성 있어야 합니다. 설득의 달인은 각 상대방의 코드를 해석하여 그에 맞춰서 설득합니다.
이 모든 기술과 진정성이 있어도 하나님께서 설득을 하셔야 상대방이 설득됩니다.
Q> 내가 가야 되는데 가지 못하는 애굽은 어디인가?
야곱의 사건원인은 기근이 아니라 가정의 불화였습니다. 영적 기근에 살 길은 오로지 하나님께서 계신 애굽에 가는 것입니다.
유다가 남을 부요 하게 하는 자신은 십자가지는 아름다운 사랑을 하였습니다.
< 기 도 제 목 >
* 이미현 목자님: 스터디그룹을 잘 선택할 수 있는 지혜를 주시기를
하나님께 집중하는 시간을 확보하기를
* 양윤원 부목자님: 어려운 상황 속에서 기도의 문이 열리기를 기도해주셔요.
* 이현주 자매님: 집문제를 하나님의 방법으로 잘 해결하기를
아주머니들과 하나님의 방법으로 잘 지내고 기쁨으로 요동치 않기를
* 박윤선 자매님: 주어질 성사여부를 내려놓고 잘 인정하며 받아들일 수 있기를
늘 감사하며 하나님께 집중하기를
* 채혜성 자매님: 2011년 새 학기를 지금 위치에서 겸손히 잘 준비하기를
주변의 사람들을 위한 중보기도에 열심내기를
우선순위를 잘 정하는 지혜를 주시기를
* 서희원: 내 계획이 아닌 하나님께 온전히 한 해를 맡기고 하나님께 집중하기를
직장을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믿고 앞서거나 뒤지지 않기를
오랜 불면증을 내 마음의 요동이 큰 원인임을 인정하고 평안을 허락해주시길
목장의 마지막이 되면서 참 많은 마음이 교차되네요. 르우벤처럼 '우리'가 없는 '자'로 가득찬
사람임을 이번 설교로 뼈저리게 알게 되었어요. 하나님이 이끄시는 대로 다음 목장에서도
은혜와 사랑이 지체간에 넘치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