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예물 (창세기 43:11~16)
지난해 각가지 교육계비리로 어려움을 겪었던 서울시교육청은 선물성 접대와 뇌물성 접대의 구분을 제시했는데, 3만원 미만은 선물에 해당되며 3만원 이상은 향응에 해당한다고 제시했다. 그러나 그 기준이 애매모호하니 손쉽게 내린 결정이 '선물 안 주고 안 받기를 하자.’고 정했다고 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뇌물이 존재하지 않은 시대는 없었다. 뇌물의 ‘뇌(賂)는 ‘조개 패(貝)’와 '각각 각(各)'이라는 의미를 조합하고 있어 ‘개별적으로 유통되는 재화’라는 뜻을 내포한다고 한다. 뇌물인가 선물인가는 인류의 영원한 문제인데, 우리의 일상생활 속에 ‘선물 속에 싹트는 우정, 사랑'는 말이 통용되듯이 여자 친구와 사귀는 과정이나, 기타 여러 가지 상황가운데 선물이 필요한 때는 셀 수 없이 많다.
오늘 이 시간은 야곱이 바친것에 관하여 선물과 뇌물을 놓고 진정한 예물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1. 뇌물. 뇌물이 무엇인가?
지난 설교에 요셉이 형제들에게 막내 베냐민을 데려오지 않으면 감옥에 억류되어있는 시므온을 풀어주지 않을것이라고 했다. 야곱은 유다의 설득으로 인해 베냐민을 보내는 것과 관련하여 애굽의 권력자인 총리대신 요셉에게 바쳐 르우벤을 구하고자 하는 뇌물성 예물, 이해타산적인 선물을 준비하고자 한다. 이러한 야곱의 인간적인 면모를 보면서 우리또한 천국갈때까지 해결되지 못하고 해결되더라도 이런 야곱처럼 더디게 해결되어 갈것임을 우리는 보게 된다. 가나안에서는 나지만 애굽에서 나지않는 예물을 준비하게 된다.
야곱은 지략이 뛰어나 예물을 잘 활용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에서때도 예물을 잘 보냈던 야곱이다. 요셉과 라헬을 마지막으로 보내면서도 자기는 두려워서 안간 인간이 야곱이었다. 끊임없이 인간적인 사람이 야곱인데,하나님이 에서의 화를 누그러뜨려서 야곱과 에서가 화해를 하게 된 것이어서 하나님이 해주셨다고 생각해야 되는데, 야곱의 신앙이 후퇴되어 금새 옛날 자기 방식이 나왔다. 일단 '뇌물부터 쓰고보자'는 식의 태도가 나온것이다. 32장때의 야곱은 형 에서에게 먼저 예물로 쌓인 감정을 풀며 야곱 자신을 형이 받아준다고 생각했던 것처럼 요셉에게도 혹시하며 예물을 준비한 것이다. 준비한 것들은 최고의 토산품이며 진귀한 것으로 애굽에서는 볼수 없는 것들로 택하였다. 기근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으며 기근에 더욱더 맛이 뛰어난 선물들이었던 것이다.
야곱은 기근인 상태에서 돈을 많이 들이지도 않고 쓸데없이 많은 양을 준비하지 않으며 자신과 상대방이 부담이 되지 않는 선에서 필요한 것만 준비했다.
‘순서가 틀리고 앞뒤가 서로 맞지 않는 것이다.’ 라는 뜻의 ‘차착’ 이라는 것을 야곱은 언급하면서 형제들이 모른상태에서 가져 온 돈을 가져가고 곡식 살돈을 가져가라고 한다. 내가 정당하게 받지 않은 것을 돌려보낸다며 정직한 모습을 보여주면서 상대방이 부담을 갖지 않는 선에서 예물같은 뇌물을 보냈다. 굉장히 본인 자신을 의로운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하면서 뇌물을 준것이다.
야곱은 의롭다고 하면서 뇌물을 받는 정치가에 버금가는 구단, 십단의 지략을 가진 사람이었던 것이다. 어쨌든 상대 총리대신의 마음을 사로잡고 얻으려는 것에 능통하였다. 야곱은 마음사로잡는 것에 선수가 되었기에 외삼촌 라반이 야곱의 것들을 뺏아 가려고 했을때 가축 양들의 마음까지 사로잡아 양들이 얼룩이, 덜룩이 까지 나오게 만들었다. 가축 양들의 마음까지 사로잡는 야곱이 누구 마음인들 사로잡지 못하겠는가?
야곱은 인간적인 방법으로는 두뇌회전이 빠른 사람이기에 인간적인 방법을 총망라하고 있다.
야곱은 믿는 사람으로 이정도 되었으면 아들들에게 하나님께 물어보자,기도하자 하며 하나님께 묻자와 가로되를 먼저 시작했어야 하는데 금새 인간의 처세술로 자기의 정성을 추구하며 뇌물의 형태를 추구한다. 우리도 급하면은 뇌물성 예물을 드리며 '다오. 다오.'하는 모습을 취하여 정성이 하늘을 찌르는 듯 하지만 그것은 자기의 정성을 위한 것일 뿐이다. 야곱은 자기를 위한 정성을 추구하였던 것이다. 자기를 위한 정성이기에 선물이 아니고 뇌물인 것이다.
2. 왜 뇌물을 쓸까? 두려움의 문제가 해결이 되지 않은 것이기 때문이다.
'선물을 받은 사람이 밤에 잠이 잘 오면 그것은 선물이고, 밤에 잠이 안 오면 그것은 뇌물' 이라는 내용으로 한국고용정보원의 윤리경영가이드에서 최근 밝힌 바 있다.
인생은 악하고 음락하기에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이 팽배하여 사는것이 인간인 것이다. 악과 음란을 즐기기위해서 돈이 있어야 하고, 권세가 있어야 하는 두려움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가령 진학에 실패하거나, 사업에 실패 하면 세상 깊은곳에 이세상 정욕을 즐기지 못할까봐 두려워하게 된다는 것이다. 인간은 자존적 교만함을 내려놓기가 쉽지 않다. 그런 돈, 권세가 없어지는 상황이 오면 두려움이 물밀듯 엄습하는 것이다.
높은 영업직으로 승승장구하시던 한 집사님은 뇌물을 마다 하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이 뇌물을 좋아한다고 한다. 하물며 부부간 혹은 고부간의 갈등이 뇌물 앞에서는 잠잠해진다고 한다. 이것이 두려움의 문제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목사님은 시댁에서 시집살이 하던 젊은 시절 시댁집안 일을 해주던 두 아주머니에게 너무나 혹독하게 시달렸다고 한다. 하다못해 그들은 목사님이 전화도 마음대로 쓸 수 없게 했다고 한다.
그 당시 시어머니가 부재시엔 그 두 아주머니가 더한 시어머니 노릇을 하는 통에 '새댁이 일어나. 새댁이 청소해. 새댁이 걸레 빨어. 새댁이 밤 까!' 하며 온갖 집안일을 지시받으며 힘들게 지냈다고 한다. 아줌마와 목사님보다 나이가 어린 그 일하는 아이가 목사님을 골려먹으니, 목사님은 치사한 생각이 들면서도 시어머니 두렵고, 남편 두렵고, 목사님 보다 한참 나이 어린 일하는 아이가 두려워 어찌할 바를 몰랐다고 한다. 목사님은 인생이 너무나도 비굴하게시리 그 두사람에게 돈을 주었다. 그 돈 줘서라도 두려움에서 해방되고 싶었다고 한다. 돈을 주고 난 후 그 사람들을 보니 목사님 스스로 ‘대학을 졸업한 나자신과 무학자인 그 두사람이 별반차이가 없다.’ 하며 인생의 무상함을 절로 느꼈고 그러한 서글픔에 힘들었다고 한다. 집안의 일하는 아주머니들은 목사님에게 “밤 잘 깎았냐?, 마늘 잘 다듬었냐?” 등등의 질문을 연신 던졌고 그러한 시어머니가 주는 힘든 것에 버금가는 시달림에 고통스러웠던 목사님은 급기야 그들에게 돈으로 그들의 마음을 사고자 했던 것이다.
정말 하나님께서 목사님을 혹독하게 다루시니까 그 뇌물때문에 올무에 잡혔다고 한다. 오히려 그 뇌물을 받은 아주머니들이 그 사실을 시어머니에게 이르겠다고 하며 두려움을 주었기 때문이었다. 문자적으로 이렇게 야단을 맞으니 숨이 안 쉬어지는 철타작기(요즘 매일성경 아모스 본문에 등장하고 있는 철타작기를 지칭함) 에 타작당하는 상황임을 느꼈다고 한다.
돈을 아주머니들에게 주어 그들로부터 '얼마나 힘들겠냐?'며 위로를 받고자 했지만 그렇게 목사님 뜻과 의도대로 되지 않았고 결국 두려움의 문제에서 해방되지 않고 수렁에 더 깊이 빠지는 형국이 된 것이다.
뇌물은 두려움 그리고 선물은 감사함에서 하는 것인데 그 당시 목사님은 전혀 감사하지 않았다. 감사하지 않은 뇌물을 자꾸 쓰면 망하는 것이다. 뇌물 쓸때는 좋더라도 그것은 잠시잠깐이며 결국 망하기에, 망할 것 같아도 뇌물을 쓰면 안되는 것이다. 두려워서 하게 되는것 보다 안하는 것이 더 나은 것이다.
3. 아끼던 것을 내려놓아야 한다.
야곱이 할 수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게 된다. 야곱은그 예물을 준비하면서 마지막까지 베냐민을 안보내볼려고 그러지만은 마지막까지 안보낼 방법을 못찾았다. 드디어 야곱이 좋아하던 베냐민을 데리고 떠나라고 한다. 이제 베냐민을 떠나라고 했던 야곱이었다. 예수님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는 제자들 보고 이야기하였다. 그것은 이 세대의 가치관을 부인한 것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자녀들의 학교와 결혼과 사업들의 문제에 직면해서 이 세대의 가치관을 따르지 않기가 쉽지 않다.
본문에서는 드디어 야곱이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 지는 적용을 햐였다. 베냐민보고 떠나라고 한것이다. 야곱은 이제 때가 되어 결국 자식을 내려놓은 것이며 자식을 내려놓으니 박수를 쳐주며 기뻐하시는 하나님을 보게되는 것이다. 우리도 ‘베냐민 데리고 떠나라.’고 하는 것처럼 욕심에서 자식을 내려놓고 하나님 앞에 내어놓는다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상황을 맞이 할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목사님에게 피아노연주와 세상인정 받는 것을 내려놓고 가정을 택하도록 인도하셨다. 피아노연주와 세상인정을 억지로라도 내려놓으니까 하나님을 부르게 되었던 것이다.
4. 하나님을 부르게 된다.
세상에서 아끼던 것 내려놓으니 부를 것이 없고 허해지니, 하나님밖에 부를게 없게 된다.
야곱은 ‘자식을 잃게 되면 잃겠다.’는 엄청난 말을 한 것이다. 집착의 종점인 베냐민을 드디어 내려놓게 된 것이다. 라헬, 요셉을 사랑하다 그 사랑하는 마지막인 베냐민까지 보내며 내려놓게 되니까 전지전능한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 주시기를 바란다고 기도가 나오는 축복을 주신 것이다.
우리는 나그네 인생으로 죽을때 가져갈게 없어 먹는것만으로 만족해야 되는데 부를 이름이 너무 많으니 주식 등 아직도 못끊는것이 있다.
우리는 자식을 하나님께 맡겨서 하나님의 자녀로 키워주셔야 최고의 교육을 받는데,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주시지 않으면 이제 우리는 뇌물을 쓸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내 것을 반대로 포기하니, 하나님을 부르기가 쉬워지는 것이다. 인생을 열심히 살아오다 내려놓으니, 하나님밖에 부를것이 없는 것이다. 내 것을 포기하니까 결국 하나님을 부르기가 쉬워진다. '내가 자식을 잃으면 잃으리로다.'한 것은 곧 야곱에게 가정문제가 해결되는 시점에 이른 것임을 말해준다. 내가 끼고도는 자식을 내려놓으면 아이가 보이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돈과 자식 등을 내려놓을 때 그때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돈과 자식이 보이게 되는 것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좋다고 했던 것을 내려놓았는데 하나님께서 상을 안주시겠는가? 즉 돈, 자식 등이 하나님이 맡긴 것이고 하나님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것, 내 아이가 자폐아일수도 있고, 감옥에 갈 수도 있고, 아플수 있고 등등, 인정하는 것이 내려놓는 것이다.
자식을 내려놓으면 그때 자식이 보이는 것이다. 그러나 야곱도 내려놓기가 쉽지않은데, 하물며 우리라고 내려놓기가 쉽겠는가?
전능하신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는 것이 무엇이겠는가?
젊은 시절의 목사님은 모범으로 똘똘 뭉쳐진 ‘모범생’이었기에 은혜 하나 안 받으면서도 교회는 열심히 다닌 인간이었다. 교회를 누구보다 일찍오고, 늦게가는 모습이 있었다. 우리는 그러한 겉모습에 속으면 안된다. 우리는 겉모습만 가지고 속으면 안 되는 것이다. 우리 교회아이들이, 청년 아이들이 나는 도둑질 하고, 낙태 하고 등등 이런 얘기 다해도 자기 죄를 알고 결혼 하기때문에 잘사는 것이다. 이 세상에 자기 죄를 아는 것이 최고임을 명심해야 한다. 목사님도 자기 스스로가 보이니까 말씀보고 기도하고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은혜이다.
젊은 시절 목사님 자신이 얼마나 열심을 냈으면 소위 ‘빽’도 없이 S예술 고등학교 강사가 되었겠는가? 그 시절에는 시간이 금이라고 여겼는데 지금은 돈이 안생기는데도 누구 살리겠다고, 자살하지 말라고, 이혼하지 말라고 입에서 단내가 나도록, 입이 부르트도록 얘기한다. 이것은 전능하신 하나님이 목사님에게 은혜를 베푸신 것이다.
젊은 시절 목사님께서 황금보자기를 너무나도 좋아했었던 사람이었지만 '잃게 되면 잃으리로다.' 그러니까 시므온과 요셉은 야곱이 모르는 사이에 없어진것이다. 그러나 야곱은 베냐민을 자기 의지로 보낸 것이다. 처음으로 자기 의지를 내려놓은 것이다. 결국 하나님은 환경으로 문제주시고 생각하게 하시고 결국 포기하게 하셨다. 모든것은 그러므로 하나님의 작품이지 야곱이 훌륭해서 예물을 드리는 인생이 아니란 말이다. 드디어 뇌물을 드릴 수밖에 없는 야곱의 인생이 아끼던 것을 내려놓고 하나님을 부르니까 뇌물이 곧 선물로 변하였다.
5. 뇌물이 선물로 변했다.
아버지 한 사람이 변하니까 베냐민 데려가는 아들들의 발걸음이 가벼워져서 너무 자녀들을 사랑하게 했다. 문제아는 없고 문제부모밖에 없다고, 아버지 한 사람의 결정이 온 집안을 활력 있게 했다. 나 한 사람 변하면 온 가족이 자유롭게 되는 것이다.
'잃으면 잃으리로다.'의 댓가성없이 보내겠다는 야곱의 마음인 것이다. 그렇게 되니 뇌물이 아니라 선물이 되었다. 그러니 하나님만 바라고, 하나님께 죽이는 것과 살리는 것의 주권이 있다고 인정한 것이다. 즉 하나님 자체가 선물이 되는 인생이 되는 것이다.
요셉이 베냐민을 보고싶은 것인데, 애굽의 권력자가 자기네들을 목숨을 쥐고 흔드는 무서운 존재로만 인식하고 뇌물로 '다오. 다오.가지시죠.'하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그저 하나님이 복 주시는 분, 예배한번 안보면 우리를 저주하시는 분으로 오해할 때가 있다. 가령 ‘1, 2, 3부 예배다보면 시험붙여주세요.’라는 얄팍한 생각을 가지며 내 행동하나에 상을 줬다 벌을 줬다하시는분으로 하나님을 착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미 우리의 애원을 넘어서서 우리가 원하시는 것을 이미 앞서 잘 알고 계신다.
최고의 예물은 베냐민인데, 내가 내려놓은 자식이 최고의 예물로 요셉을 베냐민을 보고 잔치를 베풀어 준다고 한다. 하나님이 내가 내려 놓은 것을 보고 하늘나라에서 우리를 위해 잔치를 베풀어 주신다고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뇌물로 자식을 키우려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예물로 자녀를 키워야 하는 것이다. 형들이 다가도 베냐민이 안가면 이것은 뇌물이 되서 다 죽는 것이다. 진짜 정곡을 찌르는 이런 예물을 드려야 한다.
정곡을 찌르는 예물은 형들이 요셉을 죽이려고 했던 것을 회개하는 것이고, 정곡을 찌르는 설득은 유다처럼 내 생명이 저주를 받아 끊어질지라도 형제골육의 구원을 원한다는 것 바로 이것인 것이다. 정곡을 찌르는 예물은 나 자신, 베냐민, 본질의 예물을 드려야 하는 것이다. 정곡을 찌르는 예물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서는 알 수가 없는 것이다. 베냐민이 선물이듯이 내가 가장 아끼는 것을 포기하는 것 그것이 하나님께 가장 큰 선물인것이다. 최고의 예물은 내가 가장 아끼는 것 내려놓는 것, 하나님께서 그것을 가장 최고의 예물로 보고 하늘나라에서 잔치를 베풀어 주신다.
우리는 자식을 내려놓기가 쉽지 않고 영육간에 욕심이 많은 편이다.
뇌물로 자식을 키우는 것이 얼마나 자식을 죽이는 것인지 중등부 학생의 간증을 통해서 살펴보자.
중등부 학생이 초등학교 5학년 때 해외 유명 어학원으로 유학을 가게 됐다. 그 학생의 표현에 의하면 부모의 바람대로 여권도 억지로 끊고, 여행 짐도 억지로 꾸리고 이른바 명문으로 불리는 어학원으로 가게 됐다고 한다. 이미 그곳에는 다섯 살 많은 한국 아이들이 공부하고 있었는데 그 아이들이 텃새를 부리는 통에 너무나 고통이 극심했다고 한다. 중등부학생이 힘들어 하여 어머니가 어학원원장과 면담을 했지만 원장 또한 그 텃새부리는 아이들만 두둔하기에 해결점을 찾을 수 없었다고 한다.
오히려 원장과 소통이 되지 않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기에 원장과 중등부학생어머니 사이가 틀어지기만 하여 결국 다른 어학원으로 옮기는 것을 결정했다고 한다.
그러나 옮긴 어학원에서도 분필테러사건에 자신이 휘말리게 되어 먼저 공부하고 있던 아이들의 모함과 따돌림에 큰 상처를 받게 되었다고 한다. 수업시간에 그 아이와 다른 학생들 간에 욕이 난무하게 되고 시비가 붙어 싸움으로 번졌지만 어학원 원장 또한 먼저 있던 아이들과 한편이었기에 올바른 방향으로 중재되지 못햇고 힘든 상황이 계속 연이어 졌다.
어느 날은 어학원학생들이 단체로 수영장을 갔는데, 중등부 아이가 괴롭히는 아이들로 인하여 물에 빠트려져 익사당할뻔 한 사건이 있었다. 처음부터 그 아이들이 자기를 죽이려고 했으며 그 뜻대로 되지 않자 아쉬워했다고 한다.
그러한 사건이 있은 후 중등부 아이에게 정신적 질병이 생겼고 급기야는 괴롭히는 아이들을 부엌칼로 죽이고 싶었으며, 자살로 위장한 추락사를 시키고자 할 만큼 살인충동까지 일었다고 한다. 다행히 그러한 일이 일어나기 전에 귀국하게 되서 살인을 저지르지 않게 되었지만 돌아온 자신의 한국학교생활은 폭력적인 생활로 점철되게 되었다. 같이 공부하는 남녀학생들에게 폭력을 일삼았던 것이다. 결국 남들 부러워하는 유학생활이 아무 쓸모가 없게 된 것이었다.
너무나 큰 상처로 얼룩져 아무것도 할 수없는 그 아이가 우리들교회로 오게 되었고 다른 중등부VIP 학생들이 자신의 상처와 힘든 부분, 연약한 부분을 오픈하며 간증하는 것을 듣고 이 교회는 좋은 교회, 괜찮은 교회라는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게 됐다고 한다. 이전에 하나님을 원망하고 남을 비난하였던 생각과 마음이 이제는 하나님께 감사하고 다른 아이들을 이해할 수 있는 마음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뇌물로 자식을 키우는 것은 자식을 죽이는 길인 것이다. 내가 변하고 자식이 변하는 것이 예물인 것이다. 부모가 이타적인 삶을 살고 뇌물로 양육하지 않으며 예물로 양육하면 그 자식은 하나님 보시기에 기쁘게 성장하게 되는 것이다.
'베냐민을 내려놓는 것이 베냐민을 얻는 것'이었듯이 아끼던 것을 내려놓아야 나 자체가 변하며 또 내가 변해야 자식이 변하는 것이다. 곧 그것이 진정한 예물인 것이다.
내 자녀들을 뇌물로 키우는지, 예물로 키우는지 반드시 돌아 봐야한다. 하나님 자체가 상급이 되고 내 자체가 변하여 아이들의 인생이 예물로 바뀔수 있도록 기도하기 바란다.
기도제목
이창엽
출산이후의 아내가 몸 잘 회복하여 태어난 둘째아이와 건강하게 교회 잘 나올 수 있도록
유시윤
여동생에게 믿음의 언어를 쓰고 우리들교회 전할 수 있도록
또 한 번 5개월이라는 시간이 빛의 속도로 지나갔네요.
늘 그렇듯이 마지막 목장모임은 아쉬움이 남는 것 같습니다.
어디에 있든 서로를 위해 기억하고 중보하며, 설령 우리의 가는 길이 좁고 협착하더라도 그 길을 벗어나지 않기 위해 고군분투해야된다는것 늘 잊지 않는 우리가 되었으면 합니다.
한동안 못 봤던 정우와 같이하지 못한 민식형제 그리고 광모형 위해서도 많은 기도 바랍니다.
각자의 위치에서 수고 많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