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장 보고서*
총 인원 4명
목자 김헌태(82또래), 부목자 김성원(83또래),목원 장재경(82또래),원태희(84또래)
출석 인원 4명
결석 인원 0명
우리 목장은 예배가 끝나고 강당해체를 한 후 강당2층에서 편안하게 나눔을 시작했습니다. 비록 목장 인원은 4명이지만 전원 참석해주신 목장가족들에게 감사 드립니다.^^
(목자)
사래는 연약한 사람이었지만 하나님의 명령에 반응하고 따랐기 때문에 영적 후사를 낳을 수 있는 열국의 어미인 사라가 될 자격이 생겼습니다. 여러분이 느끼는 하나님의 명령하심은 무엇입니까? 우리는 예수 믿는 자로서 좁은 길을 지향하려 적용하기 때문에 손해 보는 일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런 일이 생기더라도 먼저 말씀을 보고, 중요한 일(예배, 묵상, 기도)을 방해하는 나의 이스마엘(내가 내려놓지 못하는 무언가. 욕심.)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김성원 부목자)
저는 어려운 가정에서 태어나, 남들 보다 일찍 직장생활을 하면서 이스마엘 같은 세상의 물질과 명예를 위해서 걸어 갔습니다. 어릴 때 가정환경의 어려움과 왕따를 겪으며 남에게 무시 받기 싫어 완벽해지려고 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직장 일이 끝나고 밤늦게 귀가할 때마다 술에 취한 아버지를 볼 때마다 하염없이 실망하며, “나는 술을 끊겠어. 아버지처럼 되지 않겠어.” 되 내이면서도 저 역시 술로 우울한 마음을 달래곤 했습니다. 변하지 않는 아버지를 볼 때마다 혈기 내고 무시하며 이스마엘 같은 능력 있는 아버지를 원하며 원망을 했던 저의 어리석은 모습들이 있었습니다. 이런 제 모습에 또 회개합니다.
(목자)
치유의 시작은 아프다는 걸 인정하고 드러냄으로 시작됩니다. 신뢰 받는 사람은 변하지 않는 상대 앞에서 내가 먼저 변하는 사람입니다. 믿지 않는 아버지께서 술을 드시며 변하지 않는 모습으로 나를 대하시더라도, 그 모습을 인정하고 내가 먼저 변해서 아버지에게 순종 하는 모습을 보여드리는 것이, 믿는 내가 보이지 않는 이삭을 향해 걸어가는 순종의 자세입니다.
(장재경 형제)
겉으로는 반항 한번 하지 않는 착한 자녀였지만, 윤리와 도덕적으로 “나는 아들이기 때문에 순종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부모님과의 가치관 차이를 내 의로 억누르며 힘들어 했던 적이 있었다.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도 내가 믿는 자로서 섬기는 것이 아닌 윤리적으로 상대방을 참아주는 격이 되니 겉으론 스마일 이었지만 마음으로부터 힘들고 분에 찰 때가 많았다.
(목자)
우리는 때로 성품으로 참으니까 힘이 많이 듭니다. 말씀으로 적용해서 섬기는 삶으로 변해야 합니다. 물론 처음부터 쉽지는 않습니다. 제 자신도 보수적인 집안 분위기에서 태어났고 다른 사람들이 나를 더 이상 건드리지 않도록 참고 보고는 했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참다 참다 나중에 홧병이 되서 ‘예의없는 것들’을 보면 욕부터 나오곤 했습니다. 목장에서 지체들과 같이 욕하다가 그제서야 회개 기도가 생각났습니다. 자신의 그런 연약함을 공동체에서 나누었다는 것이 변화의 시작입니다. 보이지 않는 이삭(영적 자녀가 되는 길)을 향해 기도하며 나아 가면서 나의 옛사람이 변해 져야 합니다.
(원태희 형제)
처음으로 나의 숨겨진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나는 어머니에 대한 깊은 상처가 있다. 목회자 안수를 받으신 아버지와 신앙인이신 어머니 슬하에서 두 동생과 자라왔다. 그러나 나의 어린 시절은 상처로 얼룩져 있다. 어머니는 엄격하셨던 외할아버지로부터 받은 폭력에의 상처가 크셨던 분이다. 맏아들 이었던 나는 종종, 이해하기 힘든 사소한 이유로 어머니에게 심하게 구타를 당했다. 어머니께서는 한번 감정적으로 고조되시면 그것이 풀리실 때까지 나를 심하게 때리셨다. 한번은 어린 나이에 너무 무서워서 “어머니 하나님 믿으시면서 이러시면 벌받아요!”하면서 울부짖었던 기억이 있다. 그러나 나를 더 아프게 했던 건 그런 일이 있고 난 후에 내 침대 옆에서 날 위해 기도하시곤 했던 어머니의 모습이었고 나는 그런 모습들의 지속되는 반복이 ‘위로’ 는 커녕 ‘이해’가 되지 않았다. 방문을 나가시면 여전히 감정적인 혈기를 보이시며 나를 힘들게 하는 어머니에의 상처를 나는 아버지에게도 친구에게도, 그 누구에게도 드러내지 못하고 참아야 했다. 내가 그런 어머니에 반항을 한적이 있었는데, 그 소식을 접한 담임 선생님은 지극히 도덕적인 말로 나를 다독이려 하셨지만 전혀 위로가 되지 않았다. 오히려 상처는 마음 속으로 꼭꼭 숨어들어 갔고 분노가 키워졌다. 대학 시절 선교단체에서 말씀공부를 하며 비로서 내 깊은 분노의 원인을 보게 되었으나, 어린 시절의 상처가 지금도 부모님과의 관계회복을 가로 막고 있다.
(목자)
도무지 해석할 수 없었던 깊은 상처는, 세상에 어떤 좋은 말로도 올바르게 치유 할 수 없습니다. 다만 하나님께서 나의 상처를 만져주시고 목놓아 울게 하시며 위로해 주시는 역사하심만이 올바른 치유의 길입니다. 저도 한때는 상당히 아팠던 아이였습니다. 저 역시 부모님에 대한 상처가 많았습니다. 동물을 귀여워하면서도 어느 순간 학대하고 프라모델과 레고를 만지작거리며 완성하면 때려 부셔버리고, 또다시 만들고 하는 이상한 행동을 보였었습니다. 그 이면엔 월례 행사로 집안이 뒤집어지는 부모님의 싸움과 화해의 반복. 아버지의 강팍, 그에 대한 반작용인 어머니의 혈기가 있었습니다. 당연히 저는 가정에서 소외되며 병들어 갔습니다. 누구 하나 저를 제대로 위로해주는 이 없었고, 제 아픔을 얘기할 곳도 없었습니다. 저는 태희 형제의 아픔을 이해 합니다. 그런 저를 변화하게 한 건, 바로 어머니의 눈물의 회개와 아버지의 무릎 꿇는 적용 이었습니다. 추상적인 수사들의 열거가 아닌 구체적이고 당신의 자식에 보이셨던 모든 모습을 구체적으로 드러내시는 회개였습니다. 회개와 눈물만이 상대를 진정으로 변하게 합니다. 이전까지 받았던 모든 물질이나, 세상적인 부모자식 관계에 대한 도덕관념도 주지 못한 참된 눈물과 위로와 관계회복의 역사하심 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때 알게 된 것이 먼저, 나 역시 마음으로 부모님을 정죄하고 죽이곤 했던 내 상처의 악함을 보았던 것입니다. 다음으로 내가 그토록 싫어했던 부모님의 모습을 나 역시 닮아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가계에 흐르는 저주였습니다.
(원태희 형제)
맞다. 나에게도 내가 닮기 싫어했던 아버지와 어머니의 약한 모습이 그대로 다른 사람에게 드러내어지는 모습이 있었다.
(목자)
가계에 흐르는 저주를 우리가 말씀과 기도를 통해 끊어내야 합니다. 특히나 우리 목장의 형제들처럼 자신이 먼저 회개하고 변하는 순종을 해야 할 지체들은 그 과정이 더 힘들고 길며 괴로울 것입니다. 많은 형제들이 부모님에 대한 상처를 드러내지만, 서글프게도 적지 않은 형제들이 똑같이 닮아있는 자신의 모습으로 괴로워합니다.
그러나 자신의 아픔을 기도해줄 수 있고 함께 체휼 할 수 있는 공동체에서 오픈 했다는 건 세상 술자리에서의 푸념과는 비교할 수 없는 값진 치료과정이자 축복입니다. 드러내지 못했던 내 깊은 상처가 조금씩 터뜨려지는 것을 통해 비록 당장은 부끄럽고 슬프게 자기연민이 느껴져도 같은 상처와 아픔을 가진 공동체에서 조금씩 치유가 시작됩니다. 태희 형제의 값진 오픈이 진정한 회복의 시작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기도제목>
목자
타인에 상처를 보듬고 걸어갈 수 있는 목자가 될 수 있게 기도. 하나님 믿는 자로서 손해 보아야 하는 일을 당연하
게 받아 들일 수 있기를.
부목자
일대일 양육훈련 잘 받을 수 있게 기도. 가족 구원을 위해서.
장재경 형제
사소한 사람관계에서 성품으로 참는 게 아니라 말씀으로 적용해서 받아주고 이해 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기를.
원태희 형제
아픈 과거의 나를 드러냄으로 인해 또 다시 상처 안 받을 수 있도록. 말씀으로 나에 삶이 해석 될 수 있게 기도, 한 주간 생활예배 잘 지키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