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기 6조 1강 나눔 보고서
◈ 날 짜 : 2017년 4월 4일화요일
◈ 참 석 자 : 이은숙, 하현수, 김지연, 김기남, 박수자(총 5명)
◈ 인 도 자 : 이은숙 조장님
삶선 그래프 나눔

이은숙 : 유복하게 모태신앙으로 자랐다. 부모님이 선생님이셨고 율법적이셨다. 잘못이라도 하면 하나님 믿는 사람은 그러면 안 된다고 했었다. 자식에 문제가 있다고 하면 모두 무릎 꿇고 앉아 설교를 들었다. 엄마에게 맺힌 것이 많았다. 15세 때 착한 딸이었으나 속은 불만이 많았다. 불안한 청소년기를 보냈다. 신학교를 졸업했고, 열심히 살았다. 26세 때 사회에서 직장상사에게 성추행을 당했다. 술도 못 마시면서 일찍 가지도 못했다. 과장님과 남자직원들이 집에 가는 길에 안으로 밀어 놓고 택시에서 머리부터 더듬었다. 호텔도 가자 하고 회사 정직원으로 될 수 있다고 하기도 했다 과장님 말보다는 빨리 이 상황을 벗어나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 과천쯤 왔을 때 과장님이 택시에서 내려 노상방뇨하는데 문을 잠구고 택시를 출발해서 왔다. 그러다가 우리들 교회 와서 그 때 지혜롭고 현명하게 행동을 했었으면 좋았을 텐데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전까지는 남자들과 과장님에 대해 불편한 감정을 가지고만 있었다. 돈 욕심이 있었으나 잘 벌지는 못했다. 30세 출산을 연년생으로 낳았다. 36세 때 우리들 교회에 왔다. 남편이 군인이었고 자기준비가 철저한 성격이었고 서울 쪽에 취업하면서 나보고 직장생활을 하라고 했다. 애들한테도 어린이 집에서 늦게 오고 엄마도 직장생활을 해야 된다고 했다. 남편에게도 상처받고 배신감도 느꼈다. 큰 애가 사춘기 때 척추측만이 심해서 수술을 받았다. 길에서 쉬느라고 집에 오는 시간이 길었다. 아이가 수술을 했고, 개복수술을 해서 그것을 볼 때마다 힘들어서 우울증이 왔다. 사춘기 때 큰애가 나에게 욕도 많이 하고 많이 힘들게 했다. 잠을 안자고 수술 안하고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을 인터넷에서 찾느라고 힘들었다. 남편은 오히려 잘 먹고 잘 자고 너무 잘 지냈다. 힘들어 하는 나를 이해 못했었다. 35부터 48인데 지금 회복하는데 시간이 걸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복할 수 있었던 것은 방어기재가 대인기피였다. 그래도 수요예배와 목장은 늘 나갔다. 세포하나하나가 점점 살아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예배가 회복되며 오늘만 살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런 생각이 든 지 불과 2년 정도 되었다. 우울증 증상이 '네네'라는 대답만 했었고 감정을 마음 껏 표현하지 못했었다. 애가 아프다고 할 때가 많이 학교에서 진통제를 가지고 대기하고 있기도 했었다. 지금 척수 신경다발에 공기가 차는 척수 공동증이 와서 염증이 신체 어느 부분으로 갈지 모른다고 했다. 내 열심으로 간호조무사..등등 자격증을 따고 쓰러졌었다. 지금은 공동체에서 같이 가는 것이 감사하다. 하루에 통증이 없으면 정상인 것처럼 착각이 들어 여러 사적인 모임에 나가기도 한다.
하현수 : 시골에서 왔다. 초6까지는 평범하게 살았다. 중3되면서 고등학교가 등록금을 내는데 가난해서 산업체 고등학교로 갔다. 돈만 벌었다. 가난이 싫었다. 돈 벌면서 부모가 원망이 되었고 술 담배 남자 가출 노래방도우미 등 다 해 봤다. 6번 선보고 남편이 돈이 많다고 해서 결혼했는데 사기결혼이었다. 시댁에서는 돈보고 시집왔다며 힘든 시집살이가 시작되었다. 빚과 월세가 10년동안 계속되었다. 동네 슈퍼 아줌마에 의해 우리들 교회에 왔고, 당대 신앙이다 보니 하나님에 대해서 알지 못했다. 작년에 부목자 직분 받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고 있다.
김지연 : 평범한 가정에서 살았고 부모님이 자주 싸우셨다. 중고등학교에는 적당한 열등감이 있었다. 대학을 들어갔고 첫사랑을 만나고 열등감이 더 많아졌다. 열등감 때문에 힘들어서 공부도 열심히 했지만 시험에 실패했다. 임용고시 실패 후에 부모님이 실망을 했었다. 둘째 딸이 기질이 달라서 양육이 힘들다.
김기남: 저를 임신하셨을 때 엄마가 제 위에 아들을 사고로 잃으셨다고 합니다. 아마도 뱃속부터 저에게 우울이 있었을 것 같아요. 어린 시절,초등학생시절까지 몸이 약하고, 사립초등학교를 다니며 열등감을 많이 느꼈기에 주눅이 많이 들었고, 어렸음에도 옳고그름에 대한 눌림이 많았어요. 중고생시절은 비교적 모범생으로 잘 지냈고 고3때 학벌 욕구로 인한 스트레스가 있었고 원하는 대학은 아니었지만 대학에 가면서 조금의 자유함으로 얄팍한 자유를 즐겼습니다. 21살 세상에서 가장 즐거웠던 기억인 일본연수기간이 있었습니다. 나를 아는 사람이 없는 곳에서 일본 사람이 된 것처럼 혼자 기숙사생활하고 학교를 다니는 것이 당시에 가장 큰 행복이었습니다. 22살 대학4학년에 조기 취업을 했고 아빠의 사업이 어려워지면서 부모님이 불화하셔서 스트레스가 최고도였습니다. 24살 2월에 대학을 졸업하고 당시 연애하던 남편과 결혼을 하여 시집살이가 시작되었습니다. 시댁에 살면서 첫 애를 임신했고 심한 입덧과 시부모님과의 불편함으로, 남편과의 거리감으로 매우 우울했습니다. 26살-28살 생후6개월 딸을 데리고 분가했지만 그때부터 남편과의 싸움이 시작되어 피터지는 시간이 계속 되는 중에 둘째를 출산하였습니다. 33살 먼저오신 시부모님의 권유로 우리들 교회에 왔지만 등록하지 않고 다니다가, 메니에르병이 발병한 그날 등록을 하고 목장에 붙어가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남편과는 각방을 쓰며 싸우며 애들에게 매달려 살았습니다. 35세 큰딸 유빈이가 영어유치원과 과외 등 사교육과 엄마의 분노에 시달려온 상처를 표출하기 시작했습니다. 매일 울며 무섭다고 죽고 싶다고 저에게 매달렸고 공동체의 처방으로 놀이치료를 받기 시작했습니다. 남편에 대한 분노와 시집살이의 스트레스를 아이에게 풀어대고 대리 만족하고자 영어에 집착하며 사교육으로 끌고 다니고, 불안함을 자위하는 아이의 모습에서 나의 어린 시절이 보여 무섭게 때렸음을 생각나게 하시니, 나도 힘들었는데 주님 좀 봐주시면 안 되요?? 원망도 들었습니다. 사교육을 내려놓고 목장처방대로 매일 우는 아이 안아주고 뽀뽀하기, 교환 일기 쓰며 소통하기, 화내지 않기 등의 적용을 했습니다. 36세 큰아이의 우울치료를 일년쯤 받고 있는데 다니엘이 포로생활 하는 때에 남편의 음란,외도가 드러났습니다. 아이는 아프고 남편은 오랜 시간 술집 여자들과 관계해 온 증거들이 속속 드러나면서 예수님께서 지고 가셨던 십자가가 제 십자가로 다가왔습니다. 수치스럽고 자존심이 상해 죽고 싶었습니다. 못 견디고 분노가 쏟아지는 것을 보며 아이보다도 제 자신이 더 소중한 사람이었음을 다시 한번 알게 되었습니다. 어떤 것이든 누구에게도 말하면 이혼하겠다고 하는 남편으로 인해, 여자목자님의 처방으로 두 달여 동안 입을 다물고 목자님과 전화로 소통하며 낮에는 쓸고 닦고 운동하고 아이들과 부대끼며 밤과 새벽에는 울고 목사님 책 읽고 약 먹고의 포로생활을 하던 중에도 7배 뜨거운 풀무불에서도 상하게 안 하신 주님의 은혜로 9키로가 빠지고도 건강한일상을 보내니, 남편이 달라져가는 저의모습에 불안함을 느낀 나머지 부부목장목자님께 음란을 털어놓게 하심으로 완전히 무너졌던 저의가정을 느헤미아와 함께 다시 세워가기 시작하셨습니다. 남편은 중학교 때부터 야동중독이 있었고, 사회에 나와서 음란업소를 가게 된 것이 인정받지 못하는 사회,가정에서의 욕구를 충족시켜 준 것에 빠지게 되었다고 고백해주었습니다. 남편은 그 이후 목장이 우리가정을 살려주었다며 감사함으로 잘 섬겼고, 저는 살려주신 주님께 순종하는 삶으로 드리겠다고 고백했습니다. 작년에 또다시 남편이 비밀 폰을 만들어 음란업소에 다니다가 들키는 사건이 왔지만, 그 일로 비로소 남편은 자신이 환자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주님 앞에 고백하며 시부모님께도 자신의 중독을 오픈하고 상처를 드러내는 기적을 주셨습니다. 저희 부부는 아직도 부부관계가 안되고 남편은 여전히 야동을 보고, 세상 음란에도 노출되어 있을 겁니다. 저는 출애굽한 이스라엘백성들처럼 살려 주신 감사함을 잊고, 올해 들어 남편의 습관들을 탓하며 원망하고 분해하다가 이번에 발등뼈가 부러지는 사건을 통해 사망의 길로 가는 저를 돌이키시고자 저를 너무 사랑하셔서 주신 사건임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만나 말고 고기주세요 하고 모세만 섬겨야 하나요? 하면서 투덜거리는 저였기에, 고기 냄새 싫어질 때까지 누워서 도움 받고 교만한 제가 옳고 그름으로 정탐하지 말고, 세워주신 남편, 맡겨주신 아이들을 위해 겸손하게 섬기라고 하시니 불평불만이 회개되고, 큰 안식을 주셨습니다. 평소 도움 못 받는 깍쟁이 성격의 저에게 목장집사님의 도움으로 부모학교,수요예배 갈 환경을 주시니 이래저래 100프로 옳으신 주님을 경험하고 갑니다. 할렐루야^^
박수자 : 교육자집안에서 태어났고 할아버지는 경희대 한의학 교수, 아빠는 중학교 과학선생님이셨다. 권위적인 아빠는 자식들이 공부 잘 할 것을 늘 강조했고, 100점을 못 받으면 매를 맞았다. 오빠들에게만엄격하셨고, 딸인 나에게는 비교적 관대한 편이어서 내가 맞은 적은 거의 없었지만 오빠들이 맞는 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큰 상처가 되었다. 아빠는 알콜중독이셨고, 매일 소주 한병,담배 한갑씩 피우셨다. 술을 많이 드시면 언제나 엄마와 싸우셨고, 늘 시끄러운 집안환경에서 자라면서 불안한 감정이 성격이 되었다. 학교에 가면 집에 오기 싫을 정도였다. 아빠는 일본에서 중학교를 다니셨어서 일본에 대한 동경이 있었다. 그리고 고대 나온 걸 늘 자랑스럽게 여기셨다. 싫어하면서도 나도 모르게 영향을 받았는지 대학 졸업 후 일본에서 3년정도 일했었고, 고대 교육대학원 석사로 졸업했다.꿈은 대학교수였는데 28세에 결혼을 하고 29세에 큰 애가 생기면서 박사과정을 포기했고, 이후 모든 진로가 막혔다. 큰 애는 8개월만에 1.65키로 태어났고, 2달동안 인큐베이터에 있었다. 나에게 이런 일이 생기다니..그 동안 내가 노력만 하면 어느 정도는 보상을 받았었기 때문에 갑작스런 큰 애의 조산사건은 받아 들이기 힘든 너무나 큰 사건이었고, 큰 애의 기질이 까다롭고 누워 있으려고 하질 않아서 내내 안고 있어야 했고, 밤에도 3년 내내 2시간만 자고 일어나 안아 줘야 했다. 체력이 바닥이 왔고, 우는 소리가 너무 듣기 힘들었다. 그렇게 3년을 울면서 키웠고 산후우울증이 생겼었다. 3년 만에 직장에 다시 나갔고, 5분이상 자리에 앉아 있다는 것이 너무나 행복했고, 좋았었다. 큰 애 5살에 둘째를 낳았고 1년 산후조리 하고 다시 회사를 다녔다. 그렇게 큰 애 초등학교 4학년까지 아이들 종일반을 시키며 학원으로 돌리면서 점점 나도 지치고 있을 때 둘째의 아토피가 진물이 흐를 정도로 심해졌고, 큰 애는 학교 부적응의 문제로 학교 선생님이 상담을 요청했다. 그래서 직장을 내려 놓고 아이들 양육에만 전념하게 되었다. 직장 다닐 때 아이들 타임으로 돌봐 주시던 목자님 통해 회사 그만두자마자 우리들교회에 오게 되었고, 하나님이 나를 양육하고 계시는 환경에 있다. 작년에 부목자로 세워졌지만 사명감이 없었기에 힘들었었고, 지금은 신앙도 아이들 양육도 회복의 때를 살고 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니 아이들과의 관계와 남편과의 관계, 목장식구들과의 관계도 회복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