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성옥 조장님
부모님의 불화속에 우울한 유년기를 보냈고 고등학교때 친구의 전도로 교회 다니게 되어 주님을 만났습니다. 부모님에 대한 상처 속에서 독립을 외치며 결혼했는데 남편의 알코올 의존증이 심화되어 알코올 중독이 되었고 6년간의 결혼생활은 별거후에 이혼으로 이어졌습니다. 이혼을 겪고 재혼만큼은 전남편같지 않은 사람과 잘하려고 했지만 사람을 분별하는 가치관이 없는 내 자신에 대한 불안감으로 불면증에 시달리다가 우리들 교회로 인도받고 재혼 연기가 파혼에 이르렀지만 공동체에 붙어 여호수아의 말씀으로 내속의 전쟁을 해나가면서 힘든 시기를 견뎌낼 힘을 길러가게 되었습니다. 가정을 회복하고자 재결합 적용을 하면서 전남편의 구원을 기도했지만 끝까지 이루어지지 않았고 구원은 오직 하나님만 하실 수 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14년만에 재혼하게 되었고 재혼으로 얻은 23살 딸을 반드시 영적 후사로 키워낼 사명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1년 한국에 머무는 동안 우리들 교회로 인도했지만 작년말에 뉴질랜드로 돌아가서 애착 관계도 형성할 수 없는 안타까움으로 어떻게 엄마의 역할을 해야할지 부모학교에 오게 되었습니다.
조미옥집사님
엄마의 세상가치관인 돈과 명예로 무기력한 청년기를 보냈어서 주도적인 연애도 못해보고 맞선만 6년을 보다 선택을 못하다가
어쩌다 남편을 만나 분별없는 육적인 탐닉으로 선택했습니다. 엄마의 갑작스런죽음은 내 불행한 결혼생활의 원인제공자같아 슬픔보다 분노가
배가되어 남편의 도박과 부재 폭언으로 불행한 결혼생활의 화살은 딸에게로 고스란히 전해져갔고 딸은 명문대에 병적으로 집 착하고 3수끝에
우울증에 조울증의 경계에 있다는 의사의 진단에 수능을 망치고 전문대에 진학했습니다
그동안 해석이 안되는 사건에 분노하고 남편탓으로 모든것을 돌리는것과 사건을 객관화하지못하는 것이 병적인것을 인정하고 정신과치료를
받으며 지금은 있어야할 사건으로 해석되고 마음의 안정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남편과의 갈등과 저의 병적인 분노와 첫째로서의 차별로 외면당한 딸을 다시한번 해석하는 시간을 갖고 싶었고 사춘기에 접한 아들이 편하게
지나가는 시간이 되도록 신청하게 됐습니다
장재희 집사님
어렸을때부터 부모님의 잦은싸움으로 우울하고 내성적인 성격으로 학교생활과 직장생활의 대인관계가 넘 힘들고 적응을하지못해 잦은 이직을했습니다
열등감으로 연애도 못하고 늦은나이에 유년부교사로10년가까이 섬기는 남편에게 반해서 결혼했지만 넘 우유부단한 성격으로 시댁에 휘어잡혀사는 남편과 결혼을 후회하며 결혼식날 도망갔다가 전세버스에 하객들을 데리고올 엄말 생각하니 눈물이나서 식만치르고 남편과 별거와 이혼준비에 들어갔다가 정신과의사 소개로 우리들교회를 오게되면서 남편과 관계가회복 되었습니다
3살인떼쟁이 아들에게 휘둘리며 어떻게 양육해야할지몰라 불안해하는 저에게 둘째를 임신하며 이때가아님 부모학교강의를 듣기힘들것같아
지원하였습니다
원종미 집사님
비교적 평범한 유년시절을 보냈고. 모태신앙으로 어려서부터 교회를 다녔지만 복음을 전혀 알지못하였습니다
우연히 후배를통해 복음을듣고 성경을 읽으며 구원의 확신을 갖게됬지만 죄인임을 머리로만 인정하고 진정한 회개가 없는 신앙생활을 하였고. 그와중에 세상남자에 빠져 교회를 떠났었고. 그 이후에도. 기복적인 신앙생활이 계속되다가 결국 34살에 교회를 완전히 떠났고 37에 결혼을 하였습니다. 결혼 후 5년이 지나도록 아이가 안생겨 결국 인공수정을하게 되었고. 그때 하니님께 1차에 성공하게 해주시면 다시 교회로 돌아가겠다고 기도를 하였는데. 하나님께서. 인공수정1차에 성공하게 하셨고 지금의 딸을 선물로받았습니다. 하지만 전 교회로 돌아가지않았고 3년이란 시간시 흘렀고 그 3년속에. 저의 딸은 계속 아프고 병치레를 쉬지 않았습니다. 전 하나님께 약속한것이 계속 가슴에 남아있었고 교회로 돌아가야한다는것을 느낄때 새언니의 소개로 우리들교회를 알게되었고 목장에 방문자로 출석하며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던 저는 진심으로 자신의 죄를 드러내고 회개하는 성도님들을보며 마음문을 열개되었고 지금은 나 자신이 용서받을수없었던 죄인임을 깨닿고 회개할수있기를 기도하고 남편과 딸도 구원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동기: 4년간 딸을 어떻게 키웠는지 점검받고 싶고 알게 모르게 줬을 상처도. 지금 저때문에 딸에게 아픔이 있다면 같이 치유하고싶고 앞으로 어떻게 키워야할지 배우고싶어 지원하였습니다
송지언 집사님
결혼 전까지 큰 기복 없이 사랑 받으며 자랐으나 같은 이유로 개인주의적이고 관계나 소통에 둔감하였습니다. 결혼 이후 정반대의 성격인 남편과 관계를 조율하는 것에 어려움이 컸으며 이로 인해 부부간 불화가 극단으로 치닫았습니다. 이혼에 대해 고민하던 중 임신하였고 미처 부모됨의 의미를 자각하기도 전에 출산 및 육아를 시작하게 되면서 가족 구성원들 모두 상처 받고 힘든 시간을 보냅니다. 그러던 중의 남편의 싱가포르 지사 발령은 나름의 변곡점이 된 듯 합니다. 가족이 함께 하는 시간이 증가하면서 늦었지만 가족의 소중함을 깨닫고 안정을 되찾을 수 있었고 재작년 귀국과 함께 인생 곡선도 제자리를 찾아가나 했습니다. 그러나 갑작스런 동생의 발병과 사망은 또 한번의 개인적인 큰 시련이 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많이 우울한 상황이고 부모로서도 지혜롭지 못하고 서투른 모습에 도움의 손길을 찾고 있던 중 지인의 소개로 부모학교를 알게 되어 얼른 그 동아줄을 잡았습니다. 이번 기회를 통해 제 가족이 건강한 생명력을 가진 유기체로서의 성가정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김상은 집사님
불우한 가정에서 초등학교 고학년때 부터 힘듬을 느끼며 청소년기에 사춘기로 비행을 저지르면서 행복 하고 싶었지만 더 아프고 고통 스럽게 살았습니다. 20대에는 혼전 임신으로 남편에게 상처를 받으며 아이를 낳게 되었고 남편이 집을 나간 사건으로 5년간을 혼자 아이를 키우다가 우리들교회 와서 삶을 해석 받고 남편과 회복을 하고 지금은 주님과 동행 하는 방법을 배우며 행복을 느껴 가고 있습니다. 지원 동기는 내 자식은 나와 똑같은 유년기를 보내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 부모학교에 지원 하게 되었습니다.
김희정 집사님
어렸을때 평탄한 삶을 살았습니다. 바로 밑에 남동생과 비교하며 차별하시는 엄마에게서 느끼는 사랑보다는 억압하고 화를 받아내는 장녀로서
살았습니다. 대학졸업후 바라던 대형병원에 간호사로 근무하면서 태움이라는 간호사 문화에 적응못하며 부모님으로부터 위로받지 못한다는
외로움이 커져갔습니다. 31살 허무하며 성공도 공허하였고 더이상 부모님때문에 신앙 생활을 포기하고싶지 않았습니다. 그무렵 부모님의 불화로 예수님을 영접하였고 교회에서 훈련과 양육을 받아 기쁨을 누리고 살때쯤(+100)에 부모님의 핍박이 심하였고 때마침 불신 남편을 소개받아서 내인생의 도피처로 불신결혼을 했습니다. 남편은 육체적 관계를 회피하였고 우울증 심한 어머니와 분리 되지않은 채 내 탓으로 돌리는 불소통의 지옥 속에 살았습니다. (-80) 내 감정의 쓰레기통이 된 큰 딸이 분리불안과 위축된 모습이 있어 놀이치료를 받았습니다. 현재는 남편이 일대일양육을 마쳤고 우리들 공동체에서 소통하며 지내니 기쁨을 누리고 있습니다. (+50)
지원동기는 목자님의 추천이 있었고 여전히 화 조절이 안되어 자녀들에게 소리 치는 내모습을 회개하고 치유 되길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