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강] 나의 삶선 그래프와 지원 동기
<전숙례 조장님>
다들 모태신앙이라 하지만 저는 알코올중독이신 아버지와 우울감이 심하신 어머니밑에서 태어나서 성장하면서 낮은 자존감으로 어릴때부터 주변사람들에게 성추행과 폭행을 당하면서 성적 모멸감으로 살아오다가 초5년에 처음으로 자살을 시도했습니다. 그렇게 지옥같은 삶을 살다가 우연히 소개로 만난 남편과 결혼하면서 아버지의 주사와 폭력에서 벗어나고 싶었습니다. 이제 불행끝 행복시작이라 생각했는데 결혼3년만에 남편의 외도 사건을 알게 되고 극심한 우울감과 경제적으로 어려워 이혼도 못하고 남편과 형식적인 결혼생활을 하다가 채팅으로 만난 남자와 외도를 하게되었고, 절대로 들키지 않을거라고 굳게 믿었던 사실이 들통이 남으로써 또 한번 죽음을 준비하는 제 자신을 보다가 큰 아들이 자살하겠다는 말에 정신을 차리고 남편과 다시 한번 더 결혼생활을 유지하고자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 수많은 과정속에서 벼랑끝에 서 있는 제 자신을 보게 되니 주님이 찾아오셔서 저에게 위로해주시고 살려주셨습니다. 저는 주님을 영접한지는 3년 반정도 되었지만 이제까지 살아온 제 찌질하고 창피하고 치욕적인 삶이 교회의 양육과 말씀속에서 해석을 받게 되면서 제가 태어나고 살아야 하는 이유를 알게 되어서 그 사명을 알게 하여 주셔서 지금 이자리에 죽지 않고 살아있습니다. 앞으로는 제 사명이 다할 때가지 저와 같은 그 한 영혼을 구원의 길로 인도하기 위해 기도하고 섬기며 살아가려고 합니다.
지원동기:두 아들과 소통에 어려움이 있고 친정엄마와의 관계가 원만하지 못하여서 답을 찾고 싶다.
<서영혜 집사님>
저의 이름은 서영혜입니다.
부모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10대를 잘 보냈지만 고등학교때 친구 전도로 가게 된 이단종교.
대학교 2학년때 거기서 빠져 나왔지만 마니 힘들었습니다.
대학 졸업후 번번히 면접에서 실패하고 아빠의 갑작스럽게 돌아가시면서 전 피난처로 도서관 짝꿍이였던 남편과 결혼 하게 되었습니다.
남편은 저의 든든한 지원군일 줄 알았지만 실망이 엄청났습니다.
그 와중에 돌도 되기도 전에 큰 딸의 화상사건은 깊은 나락으로 빠지게 되었습니다.
기적적으로 목사님의 기도로 사택과 한강성심병원에서 수술할 수 있는 기회를 열어 주었습니다.
전 큰아이를 위해서 저의 모든것을 내놓고 교육에 집착하는 엄마로 변신했습니다.
남편은 골프에 빠져 있었고 전 자식교육에 올인하며 아이를 공부하는 기계로 만들었습니다ㅜ.
그러는 와중에 대학교1학년때 첫사랑을 만났고 1년간의 몰래한 사랑은 저의 맘을 설래게 했습니다.
그 전에는 엄청 뚱뚱한 아줌마였지만 첫사랑을 만나면서 많은 변화를 겪게 되면서 이 사람과 살면 사랑받으면서 잘 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착각과 허상에 빠져 있었습니다.
하지만 재혼은 정말 몇십배 노력에도 정말 넘 힘들었습니다.
8년간의 재혼생활에서 남는건 무식한 싸움, 상처많은 아이들.
매일큐티 아니면 하루하루 살아내기 힘든 상황이 되었습니다.
환경은 바뀐게 없지만 제대로 주님을 알게되어 감사하면서 하루하루 살아내고 있습니다.
지원동기: 사랑을 믿어서 재혼을 했지만 너무 힘든 삶을 살기에 어떻게 사는게 맞는지 알고 싶어서 지원하게 되었다.
<전은영 집사님>
전은영입니다. 저는 딸 2 아들 1 중 둘째 딸로 태어났습니다. 태어난 지 3개월만에 부모님의 유학으로 조부모님께 맡겨졌고 돌아오셨을 때는 남동생이 생겨 관심을 빼았겨 늘 눈물 많은 아이였습니다. 무난한 유년기를 보내다 사춘기 즈음 부모님을 따라 미국에서 1년을 보내었는데 학교에서 소통도 되지 않고 차별을 받기도 하여 상처를 받았고 한국에 돌아와 1년 늦추어 학교 생활을 하며 조금씩 회복이 되었습니다. 대학 진학을 서울로 하면서 혼자 나와 살게 되었고 자유를 만끽하며 잠시 기뻤지만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퇴직에 경제적으로 힘들어졌고 언니가 이단(단월드)에 가고 취업도 잘 되지 않아 마음이 낮아져있었을 때 연애 실패까지 겹치면서 해 달 별이 떨어진 것 같이 힘들었고, 출석만 하던 우리들교회 청년부에 등록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 한 번 더 연애 실패를 겪고 힘든 가운데 말씀으로 양육되었고 공동체에서 남편을 만나 신결혼하게 되었습니다. 결혼과 동시에 첫 아이가 찾아왔고 3개월만에 복직을 하여 직장생활을 했고 둘째를 낳으면서 말씀으로 엄마의 자리가 저의 사명임을 깨닫고 회개하여 휴직하고 2년째 초보 엄마로 지내고 있습니다. 부모 학교를 통해 내 감정대로 하는 육아가 아닌 일관된 육아를 할 수 있기를 소망하며 신청하게 되었고 저의 상처가 해석되고 죄를 볼 수 있는 시간이 되길 기도합니다.
지원동기: 아이들에게 일관된 양육을 하고 싶어서 지원함
<문선옥 집사님>
문선옥 집사입니다. 시골에서 1남 2녀중 장녀로 태어났고, 초등학교 저학년때까지 친할머니와 대구에서 생활하다가 여동생이 초등학교 입학할 때 부모님과 같이 살게 되었습니다. 부모님은 시골에서 농사를 짓고 계셨습니다. 동네에서 어린나이에 성추행을 당한것이 큰 상처로 남게 되었고 20대에 이상한 남자친구를 만났지만 헤어지는게 두렵고, 다른 남자를 만나서 사귀는데 자신감도 없어서 매달리다가 더럽게 차였습니다.
그러던중 친구소개로 지금의 남편을 만나서 6개월만에 불신 결혼했습니다. 남편은 책임감도 강하고 성실하고 가정적이지만 말씀이 들리지 않고 교회뜰만 밟는 운동장교인 입니다. 결혼한지 2년동안 친정아빠가 교통사고로 돌아가시고, 시부모님 두분이 폐암과 위암으로 투병하시다 돌아가셨습니다. 가까운 가족들의 죽음을 연거푸 겪으면서 죽음의 대한 두려움과 불안으로 불안장애를 진단받아 1년정도 정신과 약을 복용하고 지금은 괜찮아졌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때 복막염 수술로 유착이 심해서 자연임신이 불가능하다는 진단을 받고 시험관아기로 애기를 낳게 되었습니다. 우리들교회에서 유아세례도 받았고 지금은 남편의 구원과 양가집안의 구원을 위해 사명 감당하고 있는 중입니다.
지원동기:목자님의 권유와 말씀을 적용하기 위해
<박이화 집사님>
저는 엄한 아빠 밑에서 소심한 성격으로 자랐고 다행히 엄마는 사랑이 넘치는 분이여서 엄마에게
기대며 살았습니다.
초등학교때 엄마는 성당을 다니기 시작했고 저도 몇년동안 성당을 열심히 다니며 순수한 마음으로 처음으로 기도를 했습니다. 중학교를 들어가면서 학업에 전념한다는 이유로 성당을 나가지 않았습니다.
20대초반 아빠의 외도를 엄마가 아닌 내가 알게되었고 그로 인한 충격으로 우울감이 시작되었던것 같습니다.
사람을 믿지 않기 시작했고 무기력감이 지속되었습니다. 지금 남편을 만나 아빠에게 받지 못했던 사랑을 기대했었고 남편은 저를 많이 아껴줬습니다. 결혼후 신혼생활은 혈기가 많은 남편의 성격과 소심한 저의 성격이 자주 부딪쳐 싸웠고 자존감도 낮아지고 불행했습니다.
첫째가 6개월무렵 아빠는 10년동안 외도한 여자와 살겠다며 당당히 선포했고 엄마는 집 하나만 겨우 건지고 이혼을 당했습니다.
저는 그때 이후부터 친정엄마가 안쓰럽고 불쌍했으나 한편으로는 그런 상황에 아빠한테 큰소리 한마디도 못하고 집이며 생활비를 달라는 얘기도 못하는 엄마가 너무 무력해보였고 사이가 불편해졌습니다.
집은 저와 동생이 기를쓰고 얻어냈고 엄마는 항상 저의 뒤에 서있었습니다.
세상일에 열심히 사는 남편덕분에 아이 둘을 혼자 키우다시피 한 저는 작년여름 남편과 심하게 싸우고 우연히 본 인스타 피드에서 하나님을 알고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마침 둘째 어린이집에 다니는 아이 엄마가 우리들 교회로 저를 인도하시어 작년10월부터 남편 몰래 수요예배와 목장을 나오고 있습니다.
저는 아직 하나님에 대한 확신조차 없는 초신자이고 예배와 목장 그리고 큐티를 사수하는것이 현재로서는 할수 있는 최선인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실현되지 않을것만 같은 남편의 구원 그리고 동생가족의 구원을 위해 매일 기도드리고 있습니다.
지원동기: 첫째 아이가 예민하고 짜증이 많아서 양육하기가 힘들고 주말에 혼자 아이들을 돌봐야되는 상황이 힘에 부쳐서 도움을 받고자 지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