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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에서 바다로 김양재 목사님이 전하는 큐티엠과 우리들교회 이야기
2000년 7월 17일에 창립예배를 드린 큐티엠(큐티선교회)이 올해로 17주년을 맞이하였습니다. 공식적으로 큐티 모임을 시작한 1991년부터 손꼽아보면 26주년이 되었고, 가정집 작은 안방에서 단 한 분과 마주앉아 시작한 모임까지 더하면 30년이 훌쩍 넘는 긴 시간이 흘렀습니다. 큐티엠의 큐티사역은 결코 하루아침에 이뤄진 게 아닙니다. 30년 전에 시작된 말씀의 은혜가 생수처럼 흘러나와 여울(灘)을 이루고, 큰 강물이 되었습니다. 눈(雪)처럼 온 세상을 덮는 말씀 운동으로 성장했습니다.
1986년, 한 분의 집사님과 골방에 마주 앉아 시작한 큐티모임
제가 평신도이던 시절, 남서울교회에서 처음 구역장을 맡았을 때의 일입니다. 당시 구역장에 불과했던 저의 큐티 나눔을 유일하게 잘 들어주던 한 미용실 집사님이 계셨습니다. 그분과 작은 골방에서 무릎을 맞대고 마주앉아 말씀을 나누면서 작은 열매가 맺히는 기쁨을 맛보았습니다. 밤새 내린 이슬이 모여 작은 이슬방울을 이루듯 그 소식을 듣고 여기저기서 한두 사람씩 모여들기 시작했습니다.
1986년, 남서울교회에서 공식적인 큐티 모임을 시작하다
1986년, 교구장의 권면으로 15분이 모인 가운데 남서울교회에서 공식적인 큐티 모임을 시작하였습니다. 이후 6차례의 새벽 큐티 모임을 비롯해서 목요 큐티 모임, 구역 큐티 모임, 학부모 큐티 모임, 재수생 큐티 모임, 대학부 조장 큐티 모임, 엘더 큐티 모임, 신입반 큐티 모임 등 한 주간 동안 무려 13번의 모임을 가져야 할 만큼 순식간에 큐티 사역이 확장되었습니다. 말씀을 사모하는 이슬방울들이 여기저기서 흘러들어와 작은 옹달샘을 이루기 시작했습니다.
1998년 7월, 제1회 큐티전도대회
한 번만 하고 그만둬야지, 한 달만 하고 그만둬야지, 이번 텀만 하고 그만해야지, 이게 얼마나 오래가겠어? 했습니다. 그러나 재수생 큐티 모임에만 매주 천여 명이 참석할 만큼 하나님께서 날마다 힘들고 아픈 사람들을 보내주시고, 말씀으로 가정이 회복되고 살아나는 열매를 보여주셨습니다. 1998년 7월, 아무런 조직도 없는 상태에서 제1회 큐티전도대회를 열었습니다. 특별한 홍보도 없이 큐티 모임 참석자들을 대상으로 시작했는데, 이것이 믿지 않는 친척이나 이웃들을 초청하는 구원 잔치로 이어졌습니다. 1회 때 600여 명이 참석했던 그 전도대회가 날로 확장되어 2회 때는 무려 1,700명이나 모였습니다.
2000년 2월, 큐티엠 홈페이지 오픈
2000년 2월에는 모임에 오시던 한 집사님의 헌신으로 큐티엠 홈페이지를 오픈했습니다. 그 홈페이지를 통해 말씀에 목마른 영혼들이 너무나 많다는 것을 절감하였습니다. 13년 넘도록 조직도 없이 몇몇 동역자의 도움을 받으며 잘 감당해 왔지만, 규모가 점점 커지면서 체계화된 조직의 필요성을 느꼈습니다.
2000년 7월 17일, 큐티엠 창립예배
결혼생활 13년 만에 남편이 떠나면서 홀로 시작한 사역이었습니다. 뒤돌아보니 그 십자가의 길을 걸어온 지 13년이 지나고 있었습니다. 그즈음 누가복음 19장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가라고 하시는 길에 대해 깊이 묵상하게 되었습니다. 여자평신도에, 과부 집사인 제 자신이 바로 나귀새끼와 같은 존재였습니다. 그러나 그런 나귀새끼도 '주가 쓰시겠다'(눅 19:31)고 하면 매인 것을 풀고 나가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러나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사역을 확장하려면 무엇보다 조직이 필요했습니다. 큐티선교회를 시작하려면 이사회가 조직되어야 하는데, 특히 말씀 운동에 앞장서시는 목사님들을 초교파적으로 모시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그분들 중 개인적으로 교제하거나 친분을 유지해온 분들이 단 한 분도 없었습니다. 모시고 싶지만 거절당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 때문에 잠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불과 2,3일 안에 그분들과 통화가 이루어지고, 한 분도 빠짐없이 다 허락해주셨습니다. 옥한흠 목사님, 홍정길 목사님, 김진홍 목사님, 이동원 목사님, 김동호 목사님, 이철 목사님, 이태웅 목사님, 정주채 목사님, 정근두 목사님, 박은조 목사님, 방선기 목사님, 김서택 목사님, 김인수 장로님, 박성수 장로님이 바로 그분들입니다. 제가 워낙 연약한 나귀 같으니 울타리를 만들어주신 것 같아 너무 감사했습니다. 그분들의 격려가 큰 힘이 되었습니다. 2000년 7월 17일, 이 분들을 모시고, 제3회 큐티전도회를 겸해 큐티엠 창립예배를 드렸습니다. 무려 2500여 명이 넘는 성도들이 모여 큐티엠 설립을 축하해 주었습니다. 상상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대형교회 행사도 아니고, 신문 광고 한번 하지 않았는데, 그야말로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옹달샘이 차고 넘쳐흘러 여울을 이루기 시작했습니다.
2000년 10월, 큐티 나눔방 목장의 태동
많은 사람들이 말씀을 깨닫고 주님을 알아가는 은혜를 누렸지만, 교회가 아닌 큐티모임이었기 에 한계가 있었습니다. 말씀만 듣고 뿔뿔이 흩어지므로 삶의 나눔과 소통이 없어 공동체 의식도 약했고, 각 사람의 영적 성장을 점검하는 양육이 이뤄지지 못했습니다. 모여드는 사람들의 구원과 고난의 문제를 끝까지 돕고자 큐티 나눔방을 열었습니다. 매 요일마다 반장을 세워 고난 가운데 있는 지체들의 삶을 들어주고, 서로의 간증을 나누며 아픔을 함께 했습니다. 기도제목을 나누고 함께 중보기도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것이 오늘날의 목장모임으로 자연스레 발전했습니다.
2002년 4월, QTM 소식지발행
큐티선교회가 설립된 후 여러 소식을 전하기 위해 QTM 소식지를 발행했습니다. 두 달에 한 번, 격월간으로 발행된 소식지에는 큐티 나눔과 큐티엠 홈페이지에 올라온 간증들과 후원해주신 분들의 명단 등이 실렸으나 그해 11월 제8호를 마지막으로 잠시 발행을 멈추었습니다. 예배 처소 마련이 더 시급했기 때문입니다.
2002년 10월 20일, 교회 개척 준비 예배와 기도 모임
시간이 지날수록 큐티 모임 참석자들이 많아지자 집에서는 더 이상 모임을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고, 식사, 주차 등 여러 문제들이 발생하면서 예배 처소가 더욱 간절해졌습니다. 2002년 10월 20일 오전 11시, 저희 집에서 교회 개척을 위한 준비 예배와 기도 모임을 가졌습니다. 그날 예배 순서지에는 기도, 성경, 봉독, 봉헌 순서에 누구의 이름도 없습니다. 엘리베이터도 없는 5층 아파트에서 드린 예배에 무려 100여 명의 성도들이 참석했습니다. 아파트 옥상으로 향하는 계단까지 늘어선 수많은 신발들이 진풍경을 이루기도 했습니다. 마치 하나님나라를 향해 줄지어선 천사들의 무리 같았습니다.
2002년 12월, 첫 저서 《날마다 큐티하는 여자》 발간
교회 설립문제를 놓고 하나님께 기도드릴 무렵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을 일일이 만나 제 간증을 나누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런 저런 시간적 공간적 형편 때문에 저와 함께 하지 못하는 분들을 위해 제 간증과 큐티하는 법을 책으로 엮어 공유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처음 펴낸 책이 《날마다 큐티하는 여자》입니다. 이후 《복 있는 사람은》, 《그럼에도 살아냅시다》, 《나를 살리는 회개》 등 여러 권의 강해서와 자녀교육서 《문제아는 없고 문제 부모만 있습니다》, 구속사적 기도 책인 《100프로 응답받는 기도》에 이르기까지 지금껏 27권의 책을 출간하였습니다. 이 책들을 읽고 많은 사람들이 우리들교회로 왔습니다. 그리고 살아났습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저의 책에 기록된 말씀 한 구절을 붙잡고, 눈물 흘리며 회개하고, 그럼으로 살아나는 한 영혼이 있으리라 믿습니다. 주님 다시 오시는 날까지, 그 한 영혼을 구하기 위한 저의 문서사역은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2002년 12월 25일, 휘문고교 식당에서 드린 성탄 감사예배
모든 성도들의 간절한 기도 끝에 대치동 휘문고등학교가 예배 처소로 허락되었습니다. 그해 겨울,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휘문고등학교 식당에서 성탄예배와 감사예배를 드렸습니다. 비록 설립 예배도 드리지 않고, 공식 명칭도 없는, 마치 초대교회 같은 공동체였지만 매주일이면 예배를 드린 후 김밥으로 점심을 때우며 나눔 하는 것을 잊지 않았습니다. 이 무렵부터 우리들교회의 사역 부서와 목장의 틀이 점점 갖추어지기 시작했습니다.
2003년 3월, 큐티 매거진 <날마다 촉촉이 적셔주는 이슬비> 탄생
잠시 발행을 멈추었던 QTM 소식지가 <날마다 촉촉이 적셔주는 이슬비>(이하 이슬비)라는 새 이름을 달고 2003년 3월부터 발행되기 시작했습니다. QTM 소식지로서는 9번째 호이지만 큐티 잡지로서는 창간호나 다름없었습니다. 큐티엠 이사 목사님들의 메시지와 발행인 칼럼, 인터뷰, 큐티 나눔, 이달의 책 소개, 다시 듣고 싶은 말씀 등 다양한 소식들을 실었습니다. 이후 우리들교회가 창립되면서부터는 제자양육을 받은 분들의 일주일 치 큐티 나눔이 담긴 <이슬비>를 주보와 함께 배포하기도 했습니다. 큐티를 어려워하는 사람들을 돕고, 지속적으로 큐티를 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한 큐티 견본서였습니다. 그리고 그해 10월호부터는 15명의 큐티 집필진이 구성되어 15일치씩 큐티 맛보기를 실었습니다. 2004년 7,8월호부터는 30명의 필진을 구성해 한 달 치 큐티 맛보기를 선보였습니다. 이렇게 시작한 것이 오늘날의 격월간 큐티지 《큐티인》이 되었습니다.
2003년 6월 15일, 우리들교회 창립예배 및 담임목사 취임예배
2003년 6월 15일, 드디어 휘문고등학교 체육관에서 우리들교회 창립예배와 담임목사 취임예배를 드렸습니다. 122명이 학교 식당에서 모여 예배를 드리기 시작한 지 8개월 만에 230명(장년 150명, 청년 20명, 중고등부 25명, 주일학교 35명)의 성도들이 모여서 드린 교회창립예배였습니다. 저의 작은 집 골방에서 한 사람과 함께 시작한 영혼구원 사역이 그 결실을 맺어 정식으로 교회의 모습을 갖추게 된 것입니다. 특히 이날 아침부터는 비가 주룩주룩 내렸습니다. '1 그 후에 그가 나를 데리고 문에 이르니 곧 동쪽을 향한 문이라 2 이스라엘 하나님의 영광이 동쪽에서부터 오는데 하나님의 음성이 많은 물 소리 같고 땅은 그 영광으로 말미암아 빛나니 3 그 모양이 내가 본 환상 곧 전에 성읍을 멸하러 올 때에 보던 환상 같고 그발 강 가에서 보던 환상과도 같기로 내가 곧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렸더니 4 여호와의 영광이 동문을 통하여 성전으로 들어가고 5 영이 나를 들어 데리고 안뜰에 들어가시기로 내가 보니 여호와의 영광이 성전에 가득하더라'(에스겔 43:1-5) 그날 주신 말씀 그대로 많은 물소리가 들렸습니다. 예배를 마친 후에는 말씀 그대로 비가 그치고 비에 씻긴 땅이 그야말로 빛이 났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고스란히 그 땅에 임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생의 중요한 때마다 저를 에스겔 말씀으로 인도하셨습니다. 큐티엠과 우리들교회가 큰 강이 되어 바다로 나아가기까지 그 흐름의 중심에서 저를 이끌어주셨습니다.
2003년 6월, 일대일양육 시작
교회를 개척하고 가장 먼저 시작한 제자양육프로그램이 일대일양육입니다. 2003년, 처음으로 16명의 성도들을 선발하여 36주 동안 직접 일대일양육을 했습니다. 일대일양육 프로그램은 양육자와 동반자가 큐티를 어떻게 하는지 배우고, 말씀묵상을 통해 하나님이 각자에게 주신 말씀을 나누는 교육 과정으로서 이후 THINK(Telling죄 고백과 간증, Holifying거룩한 삶, Interpreting큐티, Nursing공동체 돌봄, Keeping가정중수) 원리를 적용한 THINK 양육으로 발전하였습니다.
2003년 7월, 소그룹 모임 목장과 공동체 고백의 시작
2003년 7월부터 지역별로 나누어 남녀 13개 목장을 편성했습니다. 특히 주일 오후 2시에 청년부가 휘문채플 강당에서 예배를 드리는 동안 장년들은 시청각실에 따로 모여 간증 예배를 드렸습니다. 지금 주일예배마다 한 사람씩 나와서 간증하는 공동체 고백이 이때 시작되었습니다. 이러한 고백과 나눔으로 인해 모든 성도들이 큰 은혜를 누리고, 도전받고, 살아나는 역사가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이렇듯 성도들이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모이기에 힘썼습니다. 목장에서 떡을 떼며 기뻐하고 말씀을 나누며 자기 죄를 고백하니 한 사람 한 사람 살아나기 시작했습니다. 그 소식을 듣고 빚지고 환란당한 자들이 곳곳에서 모여들었습니다. 날이 갈수록 교인 수가 늘어났습니다. 성도들의 증가로 인해 처음 13개로 편성되었던 목장이 1년 만에 26개(남자 7, 여자는 19)로 재편성되는 등 크게 확장되었습니다.
2006년 4월, TV 방송 사역 시작
2006년 4월 22일, CTS 기독교TV에서 김양재 목사의 공동체 고백이라는 타이틀로 우리들교회 주일설교가 전 세계 곳곳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하였습니다. 이후 CTS뿐만 아니라 C채널, GOODTV, CGN 등 주요 기독교TV를 통해 주일 설교가 방송됨으로 온 누리의 백성들이 우리들교회 성도들과 함께 같은 말씀의 은혜를 누리고 있습니다.
2006년 11월, 홈페이지 개편
우리들교회 홈페이지(http://woori.cc/)는 TV 방송 사역 못지않게 구속사적 예배와 말씀이 전 세계로 전파되는 구원의 도구가 되고 있습니다. 주일설교를 비롯하여 새벽큐티 나눔, 목장이야기, 공동체 고백 등이 실시간 업데이트되고 있습니다. 2003년에 우리들교회 홈페이지로 개편한 뒤 수많은 접속자 수를 보유하고 있으며, 최근 모바일에도 최적화되고, 안정성을 높인 홈페이지로 새롭게 단장하였습니다.
2012년 1월, 《큐티인》 창간과 세대별 큐티잡지 4종 발행
<이슬비>의 맥을 이어받아 2012년에 격월간 큐티지 《큐티인》을 창간했습니다. 구속사적 본문해설과 60여 명의 평신도가 집필한 묵상간증 및 다양한 읽을거리를 담았습니다. 2013년에는 《청소년 큐티인》, 2014년에는 초등학생을 위한 《어린이 큐티인》을 차례로 창간했고, 여기에는 어른들 못지않은 청소년과 어린이 필자들의 생생한 묵상간증이 실려 있습니다. 2016년 1월에는 미취학 아동을 위한 《새싹 큐티인》까지 창간해 우리들교회 온 가족이 하나의 말씀으로 묵상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2013년 6월 16일, 판교채플 헌당감사예배
2013년 6월 16일, 교회설립 10주년 기념 주일에 판교채플 헌당감사예배가 있었습니다. 개척 때부터 고등학교 체육관을 빌려서 예배를 드렸던 우리들교회는 이후 10년 동안 교인들의 신앙고백으로 드린 헌금을 모아 판교채플을 헌당할 수 있었습니다. 이에 따라 교회는 매주 서울 강남 삼성동 휘문고등학교 안에 위치한 휘문채플과 분당의 판교채플 두 곳에서 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2014년 10월, 제1회 목욕탕 큐티목회세미나 개최
교회가 설립된 이후 우리들교회에 놀랍게 부어주신 은혜와 부흥을 한국교회 사역자 분들과 함께 나누기 위해 2014년 10월, 목욕탕 큐티목회세미나를 시작했습니다. 말씀 안에서 두루마기를 벗고 내 부끄러움과 수치를 드러내며, 죄와 때를 씻는다는 의미로 목욕탕 큐티목회세미나로 이름 지은 이 세미나는 말씀을 듣고 목회 현장을 체험하고, 나눔을 하는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지난 2017년 5월, 제6회 목욕탕큐티목회세미나를 진행하기까지 전국 800여 개 교회 950명의 목사님과 사모님, 그리고 평신도 지도자들에게 큰 은혜와 도전을 안겨드렸습니다. 교단별로는, 장로교(합동) 197명, 장로교(통합) 120명, 감리교 93명, 침례교 93명, 순복음(예하성) 69명, 장로교(백석) 43명, 순복음(기하성) 35명, 장로교(고신) 30명, 독립교단 28명, 장로교(대신) 16명, 장로교(합신) 9명 등입니다. 이를 통해 큐티목회가 한국교회에 놀라운 변화를 일으키고, 부흥의 열매를 풍성하게 맺고 있습니다.
2014년 10월, 《THINK 일대일양육》 초판 발행
기존 제자 양육 교재에 우리들교회 THINK 원리를 적용해 새롭게 구성한 《THINK일대일양육》 교재를 발행했습니다. 2016년 5월, 《THINK 일대일양육》 개정증보판을 필두로, 우리들교회 중보기도학교 교재로 사용되는 《THINK 중보기도》를 발행했고, 목자 배출을 위한 《THINK 예비목자양육Ⅰ》, 《THINK 예비목자양육Ⅱ》까지 각각 동반자용, 양육자용으로 제작해 총 8종의 교재를 발행하였으며, 모든 교회들이 우리들교회 THINK 양육원리를 잘 접목할 수 있도록 보다 다양한 교재 개발에 힘쓰고 있습니다.
2016년 6월, 제15차 한인세계선교사대회, 제8차 한인세계선교대회
지난 2016년 6월,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개최된 제15차 한인세계선교사대회와 제8차 한인세계선교대회에 주강사로 초빙되어 1200명의 한인 선교사 포함 세계 각지에서 모인 목회자와 평신도 5000여 명에게 큐티목회 사역을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 한국교회의 선교올림픽으로 불리며 한국 선교운동의 중심인 이 두 선교대회에 주강사로 여자 목사가 강단에 서기는 제가 처음이었습니다. 주최 측에서는 제가 여자 목사라는 이유로 수차례 회의를 거듭했다는데, 십자가가 뚫고 들어가 각종 세미나와 포럼이 열리는 대회 기간 중 자리가 모자랄 정도로 많은 분들이 참석해주셨습니다. 특히 '여자 목사를 선교대회 강단에 세울 수 없다'며 가장 반대했던 임원 한 분이 첫날 제 간증을 듣고는, 이튿날 집회에서 '김양재 목사를 강사로 못 모셨으면 내가 지옥에 갈 뻔했다'고까지 말씀하셨습니다.
2016년 7월, 큐티엠 법인 발족 및 감사예배
하나님께서는 큐티엠을 통해 우리들교회의 부흥만 맡기신 것이 아니라 전 세계에 큐티사역을 전해야 할 사명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설립 초기에는 집회 때마다 수천 명이 모이는 등 규모가 작지 않았음에도 한국 교계가 별로 주목하지 않았습니다. 교회가 세워져 크게 부흥되고, 이 교회 저 교회가 큐티잡지 《큐티인》으로 큐티를 하게 되면서 주목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제 큐티엠의 사역은 그 지경을 넓혀야 할 때를 맞이하였습니다. 한국교회와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한인교회와 선교사들을 섬겨야 할 때가 이르렀습니다. 큐티엠 법인 발족은 이때를 위함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사역에 기름을 부어주셔서 어려운 법인 허가도 순조롭게 나옴으로 이를 기념하고 감사하고자 감사예배를 드렸습니다. 이제는 보다 조직적으로, 전문적으로, 효과적으로 맡기신 사역을 담당할 것입니다. 한국교회를 섬기는 목욕탕 큐티목회세미나 개최를 비롯해 THINK 양육 교재와 《큐티인》 보급과 함께 각 언어로 번역하는 사역도 시작했습니다.
2017년 2월, <목욕탕 큐티목회세미나 뉴스레터> 창간호 발행
큐티엠에서는 목욕탕 큐티목회세미나에 참석하신 분들과 관심이 있는 분들에게 그간의 소식을 전하기 위해 <목욕탕 큐티목회세미나 뉴스레터>를 창간했습니다. 이 뉴스레터에는 세미나를 통해 큐티목회를 접목함으로써 놀라운 변화를 경험한 교회의 목사님과 성도들의 소식 등을 담았습니다. 지금은 비록 작고 미약한 뉴스레터이지만 앞으로는 전 세계의 교회를 향해 큐티목회를 전파하는 소식지로 발전되기를 소원합니다.
2017년 4월, 제1회 큐티목회 컨퍼런스 개최
5회까지 진행된 목욕탕 큐티목회세미나 수료자 대상으로 컨퍼런스를 개최했습니다. 이 콘퍼런스는 큐티목회를 목회에 접목함으로써 질적, 양적 부흥을 경험한 교회들의 다양한 사례들을 나누고, 패널토의와 질의응답 형식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세미나 참석 이후 아직 큐티목회를 접목하지 않았거나 큐티목회 접목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목회자들을 격려하고 돕는 귀한 시간이 되었습니다.
2017년 5월, 제6회 목욕탕 큐티목회세미나
2017년 5월 22일부터 25일까지 4일 간 진행된 여섯 번째 목욕탕 큐티목회세미나는 여느 때와 달리 참석자 모집 때부터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200명으로 제한된 참가신청접수가 조기 마감되는 바람에 미처 신청하지 못한 목회자들의 요청으로 부득이 추가신청을 받은 끝에 무려 243명 목회자와 사모, 평신도지도자들이 참석하는 대성황을 이루었습니다. 목욕탕 큐티목회 세미나에 대한 교계의 뜨거운 관심을 실감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참석자 모두가 마치 옷을 훌렁 다 벗고 목욕탕에 입장하듯, 마음을 활짝 열고 세미나에 임해주셨습니다. 또한 큐티와 오픈, 큐티와 구속사, 큐티의 실제, 큐티 소그룹 나눔 시연, 목장 탐방 등 기존 프로그램 외에도 큐티목회를 접목함으로써 교회가 새로워진 목사님들의 패널토의, 우리들교회 부목사님들의 찬양콘서트와 치리간증 시간 등이 추가되어 더욱 업그레이드된 큐티목회세미나가 되었습니다. 앞으로 큐티엠은 큐티목회세미나를 통해 한국교회가 다시 도피성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도록, 그리하여 이 땅의 모든 성도가 살아나고 가정이 살아나고 교회가 살아나도록, 주께서 맡기신 사명을 잘 감당할 것입니다.
탄설(灘雪), 그리고 강에서 바다로
지난 2016년 6월,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개최된 제15차 한인세계선교사대회와 제8차 한인세계선교대회에 주강사로 초빙되어 말씀을 전하러 갔을 때의 일입니다. 제 간증을 들으신 교계의 큰 어른 목사님이 제게 탄설이라는 호를 하나 지어주셨습니다. 여울 탄(灘)에 눈 설(雪). 제가 마치 여울을 덮은 하얀 눈 같다고 하셨습니다. 하늘에서 내린 이슬 한 방울이 모여 물이 되고, 그 물이 산꼭대기에서부터 흘러 여울을 이루는데, 제가 마치 그렇게 이루어진 여울 같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물의 여정, 생수의 여정은 실로 험난하지만, 하나님의 은혜가 눈처럼 임해 그 물길을 포근히 덮어준다는 것이었습니다. 제 삶이 그러했습니다. 힘든 인생을 살아왔지만, 하나님이 때마다 지켜주시고 덮어주셨습니다.
이슬방울 같이 여리디 여린 저 한 사람을 통해 옹달샘을 이루시고, 여울을 이루시고, 강을 이루신 하나님께서는 이제 저에게, 규티엠에게, 우리들교회에게 '바다로 나가라'고 하십니다.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이 물이 동쪽으로 향하여 흘러 아라바로 내려가서 바다에 이르리니 이 흘러내리는 물로 그 바다의 물이 되살아나리라'(겔 47:8). 이 강물이 이르는 곳마다 번성하는 모든 생물이 살고 또 고기가 심히 많다고 하십니다(9절). 또한 '그 열매는 먹을 만하고 그 잎사귀는 약재료가 되리라'(12절), 너희는 공평하게 나누어 기업을 삼으라 이 땅이 너희의 기업이 되리라'(14절)라고 말씀하십니다. 바닷물을 되살리고, 생물을 번성케 하라고 하십니다. 더 많은 열매와 잎사귀를 맺어 사람을 먹이고 살리는 약재료가 되라고 하십니다.
날마다 말씀을 사모하며 모인 지체들이 내 죄를 고백하고 회개하며 흘린 눈물 방울방울이 모여 이슬이 되고, 옹달샘이 되고, 여울이 되고, 큰 강이 되었습니다. 이제 그 강 같은 큐티엠, 강 같은 우리들교회가 바다로 나아가고자 합니다. 강에서 바다로 나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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