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와 설교, 찬양을 통해 말씀 앞에 섭니다.
말씀을 묵상하고 삶을 나누며 함께 성장합니다.
목장 공동체에서 삶을 나누고 말씀으로 세워집니다.
교회와 세상을 섬기며 복음의 사명을 이어갑니다.
우리들교회를 처음 찾은 분의 새로운 시작을 돕습니다.
우리들교회의 비전과 사람들, 채플 소식을 안내합니다.
사무엘하 23:20-39
20 또 갑스엘 용사의 손자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이니 그는 용맹스런 일을 행한 자라 일찍이 모압 아리엘의 아들 둘을 죽였고 또 눈이 올 때에 구덩이에 내려가서 사자 한 마리를 쳐죽였으며
21 또 장대한 애굽 사람을 죽였는데 그의 손에 창이 있어도 그가 막대기를 가지고 내려가 그 애굽 사람의 손에서 창을 빼앗아 그 창으로 그를 죽였더라
22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가 이런 일을 행하였으므로 세 용사 중에 이름을 얻고
23 삼십 명보다 존귀하나 그러나 세 사람에게는 미치지 못하였더라 다윗이 그를 세워 시위대 대장을 삼았더라
24 요압의 아우 아사헬은 삼십 명 중의 하나요 또 베들레헴 도도의 아들 엘하난과
25 하롯 사람 삼훗과 하롯 사람 엘리가와
26 발디 사람 헬레스와 드고아 사람 익게스의 아들 이라와
27 아나돗 사람 아비에셀과 후사 사람 므분내와
28 아호아 사람 살몬과 느도바 사람 마하래와
29 느도바 사람 바아나의 아들 헬렙과 베냐민 자손에 속한 기브아 사람 리배의 아들 잇대와
30 비라돈 사람 브나야와 가아스 시냇가에 사는 힛대와
31 아르바 사람 아비알본과 바르훔 사람 아스마웻과
32 사알본 사람 엘리아바와 야센의 아들 요나단과
33 하랄 사람 삼마와 아랄 사람 사랄의 아들 아히암과
34 마아가 사람의 손자 아하스배의 아들 엘리벨렛과 길로 사람 아히도벨의 아들 엘리암과
35 갈멜 사람 헤스래와 아랍 사람 바아래와
36 소바 사람 나단의 아들 이갈과 갓 사람 바니와
37 암몬 사람 셀렉과 스루야의 아들 요압의 무기를 잡은 자 브에롯 사람 나하래와
38 이델 사람 이라와 이델 사람 가렙과
39 헷 사람 우리아라 이상 총수가 삼십칠 명이었더라
♱ 용맹스런 일을 행한 자 ♱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 나라를 위해 용맹스러운 일을 행하길 원합니다. 말씀해 주시옵소서. 듣겠습니다.
용맹스러운 구원의 용사는 첫째, 개인의 능력으로 세워지는 것이 아닙니다.
20절에 ‘또 갑스엘 용사의 손자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이니 그는 용맹스런 일을 행한 자라 일찍이 모압 아리엘의 아들 둘을 죽였고 또 눈이 올 때에 구덩이에 내려가서 사자 한 마리를 쳐죽였으며’라고 해요. 브나야라는 이름은 ‘여호와께서 세우신 자’라는 뜻입니다. 그 활약상이 대단하죠. 그런데 처음 등장한 무명의 세 용사의 행적은 이렇게 화려하고 자세하지도 않고 그냥 단순하게 기록되었어요. 그래서 얼핏 보면 개인적인 능력은 두 번째 세 용사가 훨씬 더 대단해 보입니다. 그러나 23절에서 브나야를 가리켜 ‘삼십 명보다 존귀하나 그러나 세 사람에게는 미치지 못하였더라’고 표현합니다. 19절에 나온 ‘첫 세 사람에게는 미치지 못하였더라’는 말이 반복되는 것이죠. 이를 보면 하나님이 보시는 용맹스러움은 개인의 능력과 행위가 아님을 알 수 있어요.
전쟁의 승리는 그들의 능력과 화려함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전적인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이루어진 것입니다. 하나님이 개입하셨기에 큰 승리를 얻고 큰 영웅이 탄생한 거예요. 이것을 알면 우리는 비교의식을 내려놓게 됩니다. 재능을 비교하며 우월감이나 열등감에 빠지는 것은 사탄이 주는 생각이에요. 비교의식은 실패의 감정을 낳고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게 해요. 그러나 승리가 하나님의 것임을 알면 공동체 전체의 승리로 여겨 함께 기뻐할 수 있습니다. 브나야의 이름처럼 여호와께 세우신 자가 용맹스러운 용사이며 내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행하심에 동참하는 사람이 참된 용사입니다. 여러분은 어떠세요?
♱ 내 능력으로 용사가 되려고 애쓰나요? 재능을 비교하며 우월감이나 열등감에 빠져 있진 않습니까? 내가 동참해야 할 하나님의 구원의 일은 무엇인가요?
용맹스런 구원의 용사는 둘째, 차별 없이 부르심 받은 자들입니다.
24절부터는 앞에서 언급된 여섯 용사보다는 못하지만 다윗의 용사들로 충성한 이들의 이름이 줄줄이 나와요. 이들은 이스라엘 전 지역을 대표하는 인재들이었어요. 베냐민, 유다, 에브라임 사람은 물론 이방인인 아람, 암몬, 헷 사람까지 다 명단에 들어갔습니다. 한마디로 다국적 연합청의 용사들인 거예요. 십자가를 잘 지는 것에는 남녀노소, 빈부귀천, 출신 지역 등이 따로 없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일에 반응하며 동참하기만 하면 개인의 능력이나 출신, 가문, 배경과 상관없이 하나님이 용사로 불러주십니다. 이타적으로 구원을 위해 살아가는데 무슨 출신과 스펙이 필요하겠습니까? 그런데 이 용사들의 이름 앞에는 출신 배경이 꼭 기록되어 있어요. 이는 그 출신 덕에 용사가 되었다는 게 아니라 자신이 속한 고향과 공동체에서 인정받고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을 하나님이 이렇게 쓰신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니 지금 내게 주어진 아내의 자리, 남편의 자리, 부모와 자녀의 자리, 학생의 자리를 잘 지켜내는 사람이 곧 용맹스러운 용사인 거예요. 내게 줄로 재어준 구역에서 열심히 산 사람은 꼭 쓰임을 받아요. 왜냐하면 그것이 하나님의 구원의 일에 동참하는 일이기 때문이죠. 십자가는 내가 속한 그 장소, 내게 주어진 그 시간 속에서 지는 거예요. 그런데 이 명단에서 정작 빠진 사람이 있어요. 바로 다윗의 군대장관 요압입니다. 군사적으로도 정치적으로도 그는 요직에 있었어요. 그러나 요압이 다윗에게 꼭 필요한 사람은 아니었어요. 요압이 아니었더라도 하나님은 다른 사람을 세워 일하셨을 거예요. 하나님 나라와 교회는 결코 사람의 능력과 도움으로 세워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적용 질문 드립니다.
♱ 낮은 신분이나 부끄러운 과거로 위축되어 있진 않나요? 내 든든한 배경이 되어 주리라 여기며 굳게 의지하는 요압 같은 사람은 누구입니까?
남과 비교하며 열심히 살아온 것이 결국 자기 야망이었음을 깨닫고 이제는 주님이 기억하시는 용사로 살아가겠다는 한 청년의 청년 큐티인 간증이에요.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다윗의 용사들처럼 저도 모태신앙인으로 별다른 문제 없이 살아왔어요. 그러나 늘 뒤처지기 싫어 남과 비교하며 열심히 살아온 것 같아요. 믿는 사람은 열심히 살고 세상에서도 잘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그러던 중 뮤지컬 배우로 활동하던 제게 무릎 십자인대가 세 번 끊어지는 큰 사건이 찾아왔어요. 이 일로 저는 주께 엎드려 베드로처럼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한 죄인임을 깊이 인정하게 되었지요. 말씀을 묵상하며 제가 그렇게까지 열심히 살아온 것은 부모님께 인정받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음을 알게 되었어요. 늘 믿는 사람은 참고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부모님의 기대에 부응하고자 제 의견 없이 순종해 온 거예요. 그래서 유명한 자가 되는 게 믿는 사람의 성공이며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이라 여겼죠. 그러나 하나님은 그것이 저의 야망이었음을 깨닫게 하셨어요. 구원의 확신을 얻은 후 주님은 저를 인정받던 자리에서 끌어내리셨고 지금은 부모님을 섬기며 교회 공동체 소그룹 리더로 섬기게 하세요. 나아갈 길이 막히고 오직 말씀을 듣는 자리로 인도하시니 이제야 지금의 예수 믿는 소그룹 리더 자리가 주님이 기억하시는 용사의 자리라는 생각이 들어요. 맡겨진 자리에서 무명한 자로 살아내며 말씀을 따르는 것이 저의 사명임을 깨달아요. 이제는 남과 비교하지 않고 구원의 은혜를 기억하며 말씀 앞에서 주님의 용사로 살아가기를 소원해요. 저의 적용은 ‘부모님의 부르심에 즉각 응답하겠습니다. 소그룹 공동체 기도 제목을 가지고 자기 전에 매일 기도하겠습니다.’입니다.”
39절에 ‘헷 사람 우리아라 이상 총수가 삼십칠 명이었더라’고 해요. 다윗의 용사는 모두 37명이었는데, 첫째 용사인 요셉밧세벳, 엘르아살, 삼마를 비롯하여 둘째 세 용사인 아비새와 브나야 및 요압으로 추정되는 익명의 한 용사, 그리고 24절에 아사헬부터 39절의 우리아까지 31명의 용사가 포함되죠. 그런데 용사 명단의 맨 마지막 가장 강조되는 자리에 헷 사람 우리아가 기록됩니다. 우리아는 이방 헷 족속이었지만 그 이름은 여호와는 나의 빛이라는 뜻이에요. 놀랍게도 우리아 뿐만 아니라 그의 아내 밧세바의 아버지인 엘리암도 34절에 그 이름을 올리고 있어요. 다윗 입장에서는 더없이 고마운 사람들이에요. 다윗은 그 사실을 알고도 밧세바와 범죄하고 이를 덮으려고 충성스러운 우리아를 죽였습니다. 이는 다윗에게 뼈아픈 수치이자 회개의 제목이죠. 그럼에도 하나님 우리아를 용사 명단에 정확히 기록하심으로 그를 영원한 다윗의 용사로 기억하십니다. 그뿐만 아니라 마태복음 1장 구속사의 계보에도 찬란히 그 이름을 기록해 주십니다. 다윗 역시 왕의 권력으로 충분히 그 과거를 지울 수 있었음에도 이를 그대로 둠으로써 그가 진정으로 회개했음을 보여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세속사는 우리아를 빼고 요압을 넣는 것을 당연시하죠. 그러나 구속사는 정반대예요. 하나님 나라는 내 능력을 세우는 나라가 아니라 내가 가장 지우고 싶은 그 이름을 사용하여 하나님이 세워가시는 나라입니다. 내 인생에 빼버리고 싶은 우리아와 같은 이름, 떠올리기도 싫은 그 사건을 직면하고 회개하며 품고 갈 때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고 구속사의 계보가 이어집니다. 그러므로 내 재능과 배경을 자랑하지 않고 나를 세우시는 하나님만 의지하며 내게 맡기신 무명한 자리를 묵묵히 지켜내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기도 드립니다.
주님, 용맹스러움을 자꾸 행위와 자격으로만 여겨 큰 능력이 있어야 용사가 된다는 생각에 열등감과 비교의식에 사로잡히는 저희입니다. 재능을 자랑하지 않고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묵묵히 충성한 무명의 용사들처럼 저희도 남편의 자리, 아내의 자리, 부모와 자녀의 자리, 학생의 자리를 잘 지켜내길 원합니다. 사람의 능력과 도움이 아니라 오직 주님의 은혜로 하나님 나라가 세워짐을 믿습니다. 승리가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임을 깨달아 비교 의식을 내려놓고 공동체의 승리에 함께 기뻐할 수 있게 도와주시옵소서. 지우고 싶은 우리와 같은 이름도 정직히 회개하며 품게 하시고 그 이름으로 이어지는 구속사의 계보에 저희도 함께 올라갈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