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가 믿느냐
작성자명 [김철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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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5.03.17
비사란 비유와 같은 의미를 가진 단어입니다.
예수님은 비우가 아니면 말씀하지 않을 만큼 많은 비유를 사용하셨습니다.
양과 목자의 비유, 한 알의 밀알의 비유, 포도나무비유등이 생각납니다.
그러나 이제 밝히 이르리라고 하십니다. 직설적으로 말씀하시겠답니다.
그렇게 말씀하실 수 있는 날이 언제일까요?
26절엔 그 날을 하나님 아버지께 직접 기도할 수 있는 날이라고 합니다.
그 날에 내 이름으로 구하겠다 는 말씀을 잠시 묵상해 봅니다.
아마 이런 식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 저 아시죠? 예수님의 제자 베드로입니다.
지금까진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을 알았고, 예수님의 사랑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배웠습니다.
그러나 그 날엔 아버지의 사랑을 친히 받게 될 것입니다.
제자들의 믿음이 성숙해서 홀로서기가 되는 날에 예수님이 밝히 말씀하시겠답니다.
그래서 28절은 내가 아버지께로 나와서 세상에 왔고 다시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가노라 고 합니다.
짤막한 말씀 속에 모든 것이 다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신분과 사역을 간결하게 나타냅니다.
믿음이 좋은 사람에겐 단도직입적으로 말할 수 있습니다.
본론만 말해도 통하는 사람이 성숙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세상에는 믿음이 성숙한 사람이 별로 없습니다.
주님도 제자들에게 직설적으로 말씀하실 때까지 3년을 보내셨습니다.
귀챦고 힘들지만 알아 들을 수 있도록 예를 들어가며 잘 설명해 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말은 전달력이 약합니다. 충분히 알아듣게 설명했다고 생각하지만 상대는 그렇지 않습니다.
오해하거나 곡해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말이 통하고 마음이 통하는 것이 얼마나 축복인지요.
30절은 제자들의 도통하는 소리가 나옵니다.
주께서 모든 것을 아시고 사람의 물음을 기다리지 않는 줄 아나이다
사람의 마음을 다 아시기에 무엇을 물을 지를 들을 필요조차 없는 분이심을 고백한 것입니다.
3년을 따라 다니고서야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고백합니다. 제자들의 수준이 낮다고 생각지 않습니다.
10년을 믿고, 20년을 믿어도 예수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만나지 못한 사람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저도 모태신앙이지만,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것은 20대 초반이었습니다.
어릴 때 교회를 다니면서 모든 상을 휩쓸고, 임원을 두루 거쳤지만 주님을 만나진 못했습니다.
제가 주님을 만난 것은 지금 제 아내와 연애할 때 였습니다.
불치병에 걸려 사경을 헤매던 아내로 인해 주님 앞에 엎드렸을 때였습니다.
정말 간절하게 진심으로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바로 그 때 주님이 저를 만나 주셨습니다.
그 때 제 아내의 사건을 통해 주님을 만나지 못했으면, 제 신앙의 방황이 아직 끝나지 않았을 겁니다.
그러나 한번 주님을 만나고, 신앙을 고백했다고 언제나 견고한 믿음위에 서있는 것은 아닙니다.
넘어지고 쓰러지고 또 일어나는 것이 신앙생활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제자들의 믿음의 고백을 들은 주님께서 이제는 너희가 믿느냐? 그러나 또 흩어지리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신앙고백을 듣고 한편으론 기뻐하셨지만, 계속 저들을 양육하기 원하십니다.
그래서 칭찬보다는 훈련을 택하셨습니다.
요즈음 묵상을 할 때마다 주님이 제자훈련하시는 부분에 눈길이 멈춥니다.
자기 목숨을 버려 사랑하셨던 제자들을 칭찬보단 강한 질책으로 훈련하시는 주님을 만납니다.
나에게 가장 부족한 부분이기에 그런가 봅니다.
진정한 사랑으로 사람을 사랑할 수 있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너희들이 다 나를 떠날 것이다. 그것이 너희 믿음의 현주소다 고 하십니다.
그런데 그것이 평안이고 안식이라 하십니다.
다 잘될꺼야. 꼭 승리할거야 가 아니라 너희들이 넘어질거야, 실패할거야 가 평안이라 하십니다.
이렇게 생각해 봅니다. 제자들, 특히 베드로는 죽기까지 주님을 따르겠습니다. 배반하지 않겠습니다.
그렇게 호언장담했습니다. 그런데 주님이 그래 베드로야 꼭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 고 했다면
베드로가 주님을 부인했을 때, 얼마나 죽고 싶고 자괴감이 들었겠습니까?
그러나 주님이 닭울기전에 세번 부인할거야 고 하셨기에 넘어졌지만 일어날 용기가 생긴 것입니다.
주님을 배반하고 주님을 떠나는 것이 우리의 수준입니다. 그렇게 연약한 존재입니다.
그러나 세상을 이기신 주님이 계십니다. 주님이 나를 너무나 잘 알고 계십니다.
사람들은 내 믿음의 수준을 높에 볼지 몰라도, 주님은 정확하게 나를 아십니다.
내가 넘어지고, 실패하고, 아주 하쟎은 일로 주님을 배반할 것을 미리 아십니다.
그래서 나를 이해해 주십니다. 담대하라고 하십니다. 평안하라고 하십니다.
신앙생활은 환난이 없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환난이 와도 언제나 승리하는 것도 아닙니다.
꼭 같이 환난을 당하고, 꼭 같이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죽을 것같은 근심과 이것밖에 안되나 싶은 열등감으로 우울증에 걸려 자살하지 않는것이 신앙입니다.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아멘,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