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터리 ㅅㄱ ㅅ
작성자명 [심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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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5.03.17
2005/03/26(목)
요16:25:33 많이 기도하지 못했습니다
저는 베트남에서 10년을 넘게 살았지만 이곳에서 기도를 많이 하지 못했습니다. 사실 한국에 있는 성도님들의 기도의 지원으로 살아왔음으로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한 번씩 한국에 나갈 때면 저를 만나는 성도님들께서 심 선생님을 위해서 기도하고 있습니다. 어떤 분은 새벽마다 기도하고 있다는 분도 계셨습니다. 한국에 있을 때는 기도를 많이 했는데 변명인것 같지만 베트남에 와서부터는 기도를 하고 싶어도 기도가 잘 나오지가 않았습니다. 그냥 살았습니다. 일단 살아남자 그것도 ㅅㄱ이다 라는 말로 스스로를 위로하며 보내었습니다. 생각해보면 참 엉터리 선생입니다.
저를 너무나도 잘 알고 계시는 우리 주님께서 영적으로 이렇게 피폐해진 저를 다시 일으켜 세우시려고 은혜를 주시지 않았나하는 생각이 오늘 아침 묵상시간에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주님께서 저에게 좁게는 기도를/넓게는 영성을 회복시키고 있는 것 같습니다. 말씀하시는 하나님께서(우리 하나님은 말씀하시는 하나님이시게)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14:13/15:7/16:24)고 제자들에게 기도할 것을 요청하시었는데 오늘 아침 묵상의 본문 말씀이 바로 저를 위한 말씀인 줄로 생각됩니다. <그 날에> 너희가 내 이름으로 구할 것이요(16:25) 과거에는 내가 기도하지 않았는데 주님이 약속한 말씀이 이루어져 이제 <이 날> 저는 우리 주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하고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감격입니다.
아침에 눈뜨면 나사렛 예수여, 나사렛 예수여, 하늘에서 강생하신 우리 주 나사렛 예수여 이 종을 불쌍히 여기시옵소서 하면서 저는 이 나사렛예수의 이름으로 기도의 문을 열었습니다. 참으로 처절한 심정이었습니다. 우리 주님 이 종을 불쌍히 여기시어 마침내 예수의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기도할 수 있는, 제가 느끼고 있는 이 <무엇이든지>의 의미는 일차적으로 ‘어떠한 상황가운데서도 절망하지 말고’ 라는 의미로서 다가왔습니다(지난 3월12일 요15:1-8을 묵상하는 가운데서) 그래서 요즘은 묵상가운데서 기도가 나오고 또 일상가운데서도 기도해야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먼저 떠오릅니다. 주님의 은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앞서간 신앙의 선배들이 이래서 열심히 기도하였구나하는 생각이 들면서 그 동안 기도를 많이 하지 못했던, 정말 누구보다도 기도를 많이 해야 되는 제가 참 부끄럽고 이제야 정작 믿음의 단계에 들어섰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주 예수의 은혜입니다. 내가 주 예수를 믿습니다!(16:31)
이런 믿음의 확신가운데서 무엇보다도 제가 진정 가져야 할 확신이 무엇인지 오늘 주께서 다시 상기시고 계시옵니다. 왜냐하면 제자들이 예수께 <이로써 우리가 주께서 하나님께로 나오심을 믿삽나이다>(16:3)라는 제법 확신에 찬 고백을 하는 그 순간 우리 주님이 제자들에게 칭찬을 하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너희가 나를 믿느냐 보라! 너희가 다 각각 제 곳으로 흩어지고 나를 혼자 둘 때가 오나니 벌써 왔도다>(16:31-32) 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포도나무의 비유에서(15장) 너희는 [나]를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는 주님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신앙은/믿음은 자기 확신이 아닌 모양입니다. 내가 가지는 확신이 곧 실패로 돌아갈 수 있음을 깨닫는 순간이었습니다. 저는 앞으로 되어질 일들, 많은 일들이 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조심스럽게 저는 다음과 같이 기도하였습니다. 내가 주를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주는 포도나무이요 저는 가지에 불과합니다. 여전히 이 비사의 뜻을 묵상해야하리라 여겨집니다. 주 예수여 이 종은 주의 비사를 더욱 더 묵상해야 할 때입니다. 생각나게 해주시고 주께서 앞에서 하신 여러 비사의 말씀들을 곰곰이 새기며 주의 성령의 은혜로 이 비사의 의미가 더욱 더 저의 심령에 새롭게 밝혀지는 성령하나님의 조명이 요청되나이다(16:25).그래야 종이 세상으로부터 고난이 닥쳐 와도 이길 수 있습니다. 오 성령하나님이시어 저와 함께 하시옵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