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빌라도입니다
작성자명 [김철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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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5.03.24
누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았을까요?
사도신경은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라고 고백합니다.
왜 빌라도가 오고 오는 시대마다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은 장본인으로 고발당하고 있을까요?
빌라도는 예수님이 죄가 없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아무리 심문을 하여도 죄를 찾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유월절에 죄인 하나를 사면하는 전례를 따라 예수를 놓아 주고자 합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이 소리질러 예수님 대신 흉악한 강도였던 바라바를 놓아달라고 합니다.
불과 며칠 전 종려나무를 흔들며 호산나 호산나 하면서 소리높여 예수님을 환영했던 자들입니다.
그런 그들이 이제는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소리칩니다. 군중들은 믿을 수 없습니다.
사람들의 환호에 속지 말야야 하겠습니다. 그들의 칭찬과 호응보다 주님의 뜻을 따라야 겠습니다.
사람들 때문에 일희일비할 수 밖에 없는 연약함이 나에게 있지만, 하늘영광을 바라보아야 겠습니다.
바라바는 예수님때문에 생명을 구한 표상적인 인물입니다.
전설에 의하면 바라바는 십자가의 현장에 있었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자기가 달렸어야 할 십자가에 대신 달려있는 예수님을 바라보는 바라바의 마음을 생각해 봅니다.
저는 십자가를 바라볼 때마다 내가 곧 바라바 라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주님의 십자가는 곧 나를 위한 십자가입니다. 그곳에 달려야 할 사람은 바로 저입니다.
빌라도는 당시의 총독입니다. 로마황제의 위임을 받아 유대지역을 치리하던 최고 책임자였습니다.
그에게 사형을 언도할 수 있는 최종 결정권이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무죄도 알았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의 원성에 예수님을 채찍질하고 온갖 고난과 수욕을 당하도록 합니다.
물론 이렇게 해서라도 빌라도가 예수를 풀어주려고 노력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을 풀어주려고 무진 애를 썼고, 오히려 유대인들이 예수를 죽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린 여전히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당하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라고 고백합니다.
예수님이 죄가 없으시다는 사실을 알고도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넘겨 주었으며,
예수님이 유대인의 왕이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는 사실을 알고도 믿지 않았으며,
당시 총독으로 최종 책임자였으면서도 무리들의 함성으로 인해 십자가형을 언도했으며,
민란이 일어나 자기의 자리를 빼앗길까봐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고 했던 빌라도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빌라도에 의해 십자가에 못박히셨다고 사도신경에 고백된 것은 당연합니다.
오늘 내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몰고 있지는 않은지? 다시 그곳에 못박지는 않는지 생각해 봅니다.
예수님은 스스로 십자가를 선택하시고, 그 목적을 향하여 묵묵히 걸어가고 계신데,
내 눈 앞의 작은 이익과 이기적인 욕심과 체면과 다른 사람의 이목때문에 십자가를 벗어 둡니다.
그리고 그것을 다시금 피멍이 성성한 주님의 어깨에 지게합니다. 이것이 저의 악한 모습입니다.
주님을 다시 십자가에 못박는 자는 바로 저입니다.
안되는 줄 압니다. 그렇게 하지 말아야 한다고 기도하고 다짐합니다. 그런데 또 못박습니다.
100% 죄인이기에 그렇다고, 그럴 수밖에 없다고 변명하지 않겠습니다.
빌라도처럼 예수를 놓으려고 애썼다고 그런데 할 수 없었다고도 하지 않아야 겠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스스로 삶과 죽음을 선택할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어느 길이 사는 길이고, 어느 길이 죽는 길인지를 밝히 보여 주셨습니다.
그런데도 사망의 생각에서 쉬이 벗어나지 못합니다. 알량한 내 자존심때문에 그렇습니다.
나의 사회적 지위와 체면때문에 알면서도 죽음의 길을 스스로 걷고 있습니다.
이것이 빌라도처럼 주님을 십자가에 못박는 일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오늘 만큼은 주님을 십자가에 못박히시도록 그냥 버려두지 않으렵니다.
이제는 내가 주님을 대신해서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겠습니다.
이것이 은혜받은 자의 마땅한 삶의 태도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