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
작성자명 [김철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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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5.03.25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걸으신 길은 골고다로 향하는 좁고 비탈진 언덕길이었습니다.
넘어지고 쓰러지기를 수차례나 반복하면서 그 길을 힘겹게 걸어가시는 주님의 모습을 생각해봅니다.
이 때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그 아버지의 마음을 어떻게 헤아리겠습니까 마는,
100세에 낳은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산을 오르는 아브라함을 생각하면 조금 알듯 합니다.
저에게도 고1짜리 아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아들 둔 아비의 마음을 조금은 압니다.
그래서 어떤 신학자는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 이란 책을 쓰기도 했습니다.
우리 예수님도 하나님이시지만, 이 책은 성부 하나님이 십자가에 친히 달리셨다고 보는 것입니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가 만나는 장소입니다.
자기의 독생자를 대신 주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자기의 아들을 죽게 하시면서도 철저히 죄를 벌하시는 하나님의 공의가 교차하는 곳입니다.
예수님은 강도들과 함께 가장 수치스럽고 고통스러운 십자가에 못박히셨습니다.
그런데 빌라도는 유대인의 왕 이라는 패를 3개 국어로 써서 십자가 위에 붙였습니다.
아이러니한 일이 아닙니까? 십자가에 왕이라는 명패가 붙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심으로 진정한 구주와 만왕의 왕이 되신 것입니다.
십자가에는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와 신비한 지혜로 가득차 있습니다.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십자가지는 것은 세상적으로 보면 지금도 고난이고 수치입니다. 자기의 목숨을 잃는 것입니다.
그러나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다 보면 신비로운 것을 알게 됩니다.
놀라운 평안과 기쁨이 있음을 경험합니다. 세상이 알 수도 없고 줄 수도 없는 것입니다.
그것을 지기 전까지는 아무리 설명해도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져본 사람만이 압니다.
주님이 십자가를 먼저 지시고, 다 이루셨기에 우리가 지는 십자가는 전혀 다른 십자가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는 십자가요, 생명을 더욱 풍성하게 얻게 하는 십자가입니다.
십자가를 지기까지가 힘들고 망설여지고, 고민되고 죽을 것같지만
막상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 가면, 날마다 내 대신 주님이 십자가져 주심을 경험합니다.
십자가 잘 지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피하고 싶고, 미루고 싶은 십자가가 많이 있습니다.
아직도 내 안에 내가 너무 많이 있습니다. 십자가에 잘 달려 있어야 하는데, 자꾸 살아 내려옵니다.
십자가로 처리되지 않은 내 욕심이 아직도 스멀 스멀 기어나옵니다. 내가 봐도 징그럽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운명하시기 직전에 당신의 육신의 어머니인 마리아를 요한에게 부탁하십니다.
요한이 다른 제자들과는 달리 끝까지 순교하지 않았던, 아니 못했던 이유가 여기있다고도 합니다.
스승의 어머니를 모셔야 했기에, 순교보다 더 힘든 길을 걸었을지도 모를 요한을 묵상해 봅니다.
하나님의 하시는 일은 언제나 옳습니다. 내가 이해가 되든 되지 않든 무조건 순종해야 겠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을 나에게 부탁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나도 나의 가장 소중한 사람을 대신 부탁할 만한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는 인생이고 싶습니다.
주님은 구세주로서 죽기까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셨거니와, 한 개인으로서도 잘 산 인생이었습니다.
마지막 순간에 누군가에게 자기 어머니를 부탁할 수있는 인생이라면 성공한 인생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다 이루었다 하시고 돌아가셨습니다.
저도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후회없이 다 이루었다 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맡기신 생명과 가정과 사명을 다 이루어 드리고 싶습니다.
날 위해 십자가에서 쏟으신 그 보혈, 그 생명이 헛되시지 않도록 잘 살아드리고 싶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
사람들이 자꾸만 십자가와 상관없는 삶을 살려고 합니다. 좀더 편하고, 좀더 성공하려고만 합니다.
신앙생활하는 이유도 복받고 잘살고 싶어서 입니다. 십자가는 지기 싫고 영광만 누리려고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가슴을 찢으며 아들을 매달리게 했던 십자가가 사람들에게 외면당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이제는 하나님을 십자가에 매달고 있는 것입니다.
십자가가 더 이상 십자가 되지 못한다면 기독교는 더 이상 구원의 종교가 될 수 없습니다.
십자가의 고난을 선포하지 않는 교회는 더 이상 세상을 책임질 수 없습니다.
높고 높은 교회 종탑의 십자가를 끌어 내려 그곳에 내가 먼저 내 옛사람을 못박기를 원합니다.
묵상을 옮기다가, 잠시 적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