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의 무게가 무거우면 무거울수록~~
작성자명 [김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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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5.03.27
고난의 무게가 무거우면~~<요>20;1~10
참으로 힘든 한 주간을 보냈습니다.
영이 힘드니 육이 힘들고
육이 힘드니 영은 더더욱 혼돈 가운데 미지근한 한 주간이었습니다.
차든가 뜨겁든가 하지 미지근하지는 말라 하셨는데
설사를 만나고 몸살도 만나고
한편으로는 새로운 상담과 수업도 시작하고
생각과 사각 가운데 혼란을 겪다가 사각에 점령당하기도 하고
다시금 묵상 가운데 기도가 회복되기도 하고
그랬습니다. 이게 고난이었습니다.
그러나 고난의 무게가 크면 클수록 부활에 대한 소망도 함께 커집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누구나 자신의 멍에가,
자신이 겪고 있는 연단, 고난, 고통의 무게가 가장 크게 느껴지면 느껴질수록
주님의 부활이 가슴 저리도록 갈급한 소망으로 다가온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창조 역사가 그랬습니다.
땅이 혼돈하고 흑암이 깊음 위에 있을 때
[빛이 있으라] 하시며 첫 창조의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지속하여 [어둠이 되니 반드시 아침이 되는]
역설적 진리의 기초위에
하나님의 섭리가
창조의 질서 가운데 열리기 시작했음을 깨닫게 하십니다.
홍해를 가르실 때도 먼저 동풍을 허락하셨습니다.
동풍은 태풍과 해일을 동반하기에 그 위력이 실로 대단하다고 합니다.
물론 허락하신 풍속의 속도에 따라 다르겠지만
어렸을 때 희미한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사라 호 태풍을 압니다.
담벼락이 무너지고 지붕이 날아다니고 했었던 그 위력!
그런데 그 보다 더 몇 십 배의 강한 위력이 있다는 하리케인!
그러나 이보다 몇 십 배 더 강한 동풍도 있다는 것입니다.
바닷물이 그 흐름을 억제당하여 한 곳에 쌓일 정도의
초강력의 동풍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동풍을 피할 바위조차 없는 모래의 사막에 그대로 노출된 채
모세와 이스라엘 족속들은
그 강한 비바람을 온 몸으로 맞으며 홍해의 갈라지는 기적을 체험했다는 것입니다.
이런 동풍과 같은 고난의 어둠이 있었기에
아침으로의 소망의 부활은 참된 진가가 있을 것임을 깨닫습니다..
요단강은 평소에는 가장 깊은 곳이 어른의 허리 정도에 찰 정도라 합니다.
그런데 1년에 한번 모맥 거두는 시기가 되면 일주일에서 열흘 정도 범람하는데
그 깊이가 어른 키의 3길 정도라 합니다.
하나님은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족속에게
그 때가 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건너라 하셨습니다.
주님은 건너기가 가장 어려운 시기를 택하셨습니다.
물이 범람하면 물살이 매우 빠르고 노도와 같아
주변의 큰 바위가 휩쓸려 떠내려가고
아름드리 큰 나무가 뿌리 채 뽑혀 떠내려가는 강한 위세가 있습니다.
주님은 이러한 때를 골라서 건너라 하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주님!
이러한 내용을 묵상하게 하시는 주님의 뜻을 깨닫습니다.
가장 힘들고 지쳐 있을 때
혼돈이 배판하고 어둠만이 지속될 때
고난과 고통이 가중되어 숨조차 쉬기 어려울 때일수록
역사하시는 주님은 가까이 계시다는 것을 말씀으로 들려주십니다.
이러할 때 소망의 부활은 참된 가치요 의미임을 깨닫습니다.
오늘 이 아침에 빛을 주셨고 부활 소망의 아침으로 하나님의 역사는 다시 시작합니다.
빛의 부활이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입니다
참 소망이 예수님의 부활로 새 생명을 얻으니
이제 더 이상의 혼돈과 혼란의 어둠과 무질서는 없습니다.
이제 더 이상의 흑암의 깊이도 사라졌습니다.
어둠에 잠겨 있었던 모든 일들이 주님의 뜻하신 대로 회복됩니다.
내 가정이 어둠 속에서 빛을 얻어 소망 가운데 부활하여 회복됩니다.
<이레 공부방>이 어둠 속에서 빛을 얻어 소망 가운데 부활하여 회복됩니다.
그렇습니다. 주님!
어둠이 너무도 짙었고
흑암이 너무도 깊었고
고난과 고통이 너무도 극심하였기에 빛의 부활이
표현 못할 기쁨과 형언키 어려운 감격과 강물처럼 흐르는 눈물의 감동으로
내게 다가옵니다.
할렐루야! 주님이 부활하셨습니다.
이제 이 아침에 주님의 부활하셨기 때문에
내 가정의 회복의 부활과 <이레 공부방>의 회복의 부활도
반드시 아름답고 찬란하게 빛날 것임을 믿음으로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