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과 전통]
김용호 목사
막 7:1~13
오늘은 취학부 헌신예배로 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취학부에서 열두 해 동안 ‘왕 노릇’을 했던 초통령 김용호 목사입니다. 올해부터는 장년부와 새가족부를 섬기고 있습니다.
설날 새해 인사를 드리고 가족을 만나는 건 참 좋은 전통입니다. 우리 취학부에도 귀하고 큰 전통이 있습니다. 담임목사님이 전해 주신 구속사 주일 설교 말씀으로 성탄절 날 우리 아이들이 연극을 합니다. 이처럼 좋은 전통이 있는가 하면, 나만의 고집으로 가족을 힘들게 하는 전통도 있습니다.
오늘은 우리가 왜 말씀보다 전통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깨끗한 척하기 때문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수많은 병자를 고치시고, 오병이어로 무리를 먹이시며, 천국 복음을 선포하시는 현장에 있으면서도 제자들이 씻지 않고 먹는 손 하나만 보았습니다. 그들의 목적이 이미 예수님을 책잡는 데 있었기 때문입니다.
목적이 악하면 보는 것도 악해집니다. 은혜가 메마르면 하나님의 일하심은 보이지 않고 사람의 허물만 보이게 됩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공동체 안에서 은혜는 보지 못하고 지체들의 말과 행동 하나를 붙잡아 정죄할 때가 많습니다. 우리가 보아야 할 것은 나의 삶 속에서 지금도 일하시는 예수님의 구속의 사역입니다.
유대인들이 손을 씻는 전통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위생적으로도 유익하고, 처음에는 하나님 앞에 정결하게 서고자 하는 마음이었습니다.
저에게도 전통이 있는데, 어머니께 물려받은 절약 정신입니다. 아끼는 것은 좋은 것이지만, 그 전통이 기준이 되어 아내를 힘들게 하고 다른 사람을 정죄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이런 저를 사명자로 써주신 그 은혜에 감사합니다.
좋은 의도의 전통이라도 그것이 겸손이 아니라 자기의가 되었을 때 문제가 됩니다. “나는 이렇게 하는데 너는 왜 못 하느냐”라는 기준이 생기는 순간, 전통은 생명을 살리는 도구가 아니라 사람을 묶는 율법이 됩니다. 우리가 진짜 봐야 할 것은 다른 사람의 손이 아니라 내 안에 있는 바리새인의 마음입니다.
둘째, 핑계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고르반’이라는 전통을 예로 드십니다. ‘고르반’은 하나님께 드려진 예물을 뜻합니다. 자기 재산 중 어떤 것을 구별해 “고르반!”이라고 선언하면, 그것은 하나님께 드려진 것으로 간주되어 누구도 사용할 수 없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자신의 것을 다른 사람에게 주기 싫을 때 이것을 악용했고, 고르반을 명분 삼아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을 은근슬쩍 어겼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도 이런 거룩한 핑계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하나님은 가정을 돌보라고 하셨는데 우리는 “교회 일이 많아서 가족 돌볼 시간이 없어요.”라고 말합니다. 이것이 ‘현대판 고르반 신앙’입니다. 이번 명절, 어떻게 부모님을 잘 공경하고 오셨습니까?
당시 율법은 부모 공경을 아주 엄하게 명령합니다. 부모를 모욕하는 자는 반드시 죽어야 한다고까지 말합니다. 육신의 부모가 완벽해서가 아니라, 나를 이 땅에 보내어 예수 믿게 해주신 생명의 통로이기 때문입니다. 부모를 무시하는 것은 곧 생명의 근원 되신 하나님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더 심각한 것은 전통과 원칙을 이유로 회개할 기회조차 막아버리는 태도입니다.
저는 아내와 다툴 때, 내가 잘못한 것이 아닌데 먼저 사과하면 아내가 자기 잘못을 깨닫지 못할까 봐 사과하기 싫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십자가는 자존심을 세우는 자리가 아니라 내려놓는 자리입니다. “미안하다”는 말은 패배가 아니라 구원에 더 가까이 가는 길임을 우리는 가정에서 먼저 배워야 합니다.
또한 공동체에 오래 있었다는 사실이 훈장이 되어, 말씀으로 살아난 은혜는 사라지고 또 다른 율법으로 지체를 숨 막히게 하는 위선적인 내 모습을 보아야 합니다.
셋째, 마음을 씻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을 향해 ‘외식하는 자’라고 하십니다. 이 말은 헬라어로 ‘가면을 쓰고 연기하는 배우’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교회에 다니면서도 여전히 세상의 가치관을 기준으로 삼고, 그 가치관으로 자녀를 가르칩니다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물으십니다. “네 마음은 지금 어디에 있느냐?”
우리는 하나님을 섬긴다고 말하면서도 마음에는 온갖 다른 것들을 심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과 생명을 심어주시지만, 그 말씀은 메말라가고 대신 자기만족과 가식, 인정중독과 세상 자랑, 주식과 도박을 심습니다. 성공과 능력과 돈을 붙잡고 기도하면서도 여전히 하나님을 잘 섬기고 있다고 착각합니다.
교회에서는 “믿음만 있으면 결혼해라, 가스버너 하나만 있어도 된다.”고 가르치는데, 부모님들은 “믿음만 봐서는 안 된다. 그것이 지혜는 아니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사이에서 우리 자녀들이 혼란을 겪고 있습니다.
조금 전, 우리는 취학부 큐페에 참석한 한 어린이의 간증을 영상으로 보셨습니다. 잠을 못 잔다는 이유로 큐페에 오기 싫어했는데, 그런 자신을 위해 죽어주신 예수님이 깨달아져 부끄러웠다고 고백했습니다.
부모가 먼저 공동체에서 자신의 욕심을 나누고 회개하는 모습을 보일 때, 우리 자녀들도 예수의 제자로 자라갑니다. 믿는 우리가 세상 방식과 성공을 붙드는 것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욕망을 경배하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참된 예배는 내 고집이 무너지는 시간입니다. “하나님, 제가 옳다고 붙들고 있던 이것이 우상이었습니다”라고 고백하는 자리입니다. 더러워진 마음은 오직 회개와 그리스도의 보혈로만 씻깁니다.
바리새인들의 가장 큰 죄는 사람의 전통을 지키기 위해 하나님의 계명을 버리고 방치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끝까지 하신 이유는 바리새인 때문이 아니라, 곁에 서 있던 제자들을 양육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목장에서도 변하지 않는 그 한 사람을 끝까지 품고 갈 때, 그 자리에 함께 있는 이들이 보고 듣는 가운데 양육을 받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말씀보다 전통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이유는 깨끗한 척하고 하나님을 핑계 삼기 때문입니다. 오늘 이 말씀 앞에서 겉이 아니라 마음을 씻는 은혜가 있기를 소망합니다. 그리고 다시 말씀 앞에 서는 우리 가정과 공동체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