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예수만 보이는 인생]
김성권 목사
막 9:2~10
오늘은 사랑부 헌신예배로 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오랜 시간 사랑부를 섬겨오다 올해부터 장년부와 주차부에서 사역하고 있는 김성권 목사입니다.
사랑부는 장애라는 고난을 절망이 아닌 '약재료'로 삼아, 오직 예수님만 바라보며 걸어가는 공동체입니다. 사랑부에서는 장애인을 다정한 친구라는 뜻의 ‘버디’라고 부르는데, 우리 버디들은 누구보다 예배를 사모하며 기쁨으로 주님을 찬양합니다. 우리도 삶의 여러 고난 속에서 원망하기보다, 그 사건을 통해 나를 돌아보고 주님께 더 가까이 가야 합니다. 주님은 오늘도 우리를 변화산으로 부르시며, ‘오직 예수만 보이는 인생’으로 초대하십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오직 예수만 보이는 인생으로 살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함께 묵상해 보겠습니다.
첫째, 초막의 영광을 버려야 합니다.
변화산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신성과 인성이 결합된 영광스러운 본체를 드러내시며, 장차 임할 부활의 빛을 미리 보여주셨습니다. 주님 곁에 선 모세와 엘리야는 모든 율법과 예언이 결국 예수 그리스도 한 분을 통해 완성됨을 증거합니다. 주님은 이를 통해 세상의 복과 성공만을 기대하던 제자들에게 참된 영광의 의미를 가르치고자 하셨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도 예배와 간증을 통해 이 변화산의 영광을 보여주시며, 무너진 가정이 살아나고 고난이 축복으로 해석되는 은혜를 경험하게 하십니다.
하지만 베드로는 그 영광에만 취해 "여기가 좋사오니 초막 셋을 짓자"라고 말합니다. 이는 십자가의 고난을 외면한 채 세상의 안락함에 안주하려는 어리석은 모습입니다. 우리 역시 성공, 물질, 중독, 불신 교제라는 이름의 초막 뒤에 숨어 고난 없는 영광만을 구하곤 합니다. 이러한 '초막 신앙'의 뿌리에는 미래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주님을 온전히 신뢰하지 못하기에 눈에 보이는 헛된 영광에 집착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를 고난의 자리로 부르셔서 시선을 세상에서 예수님께로 옮기게 하십니다. 나를 지치게 하는 중독과 장애, 힘든 가족은 우리를 괴롭히는 걸림돌이 아니라, 오히려 주님께 더 가까이 가게 하는 구원의 디딤돌입니다. 헛된 초막의 영광을 내려놓을 때, 우리는 비로소 십자가 너머의 부활을 바라보며 '오직 예수'만 보이는 인생으로 거듭날 수 있습니다.
둘째, 그의 말을 들어야 합니다.
우리가 세상 초막에 집착할 때, 때로는 앞이 막막한 구름 같은 사건이 찾아옵니다. 하지만 마태는 그 구름 속에서 빛이 났다고 기록합니다. 내 고난의 구름 속에서도 하나님의 음성은 빛처럼 찾아오시며, 그 말씀이 들릴 때 비로소 내 인생이 해석되고, 나도 살고 남도 살리는 인생이 됩니다. "그의 말을 들으라."는 하나님의 명령은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며 오직 예수님만을 기뻐하라는 뜻입니다. 장애와 고난의 구름 속에 갇힌 버디들을 향해 주님은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기뻐하는 자라”고 말씀하십니다. 내가 힘들어서 버리고 싶은 그 가족, 지체도 주님은 “내 사랑하는 자”라고 말씀하십니다.
최근 저에게 종아리 근육 파열이라는 먹구름이 찾아왔습니다. 다리를 다쳐 꼼짝 못 하는 상황에서 조용히 큐티를 하며 지난날을 돌아보았습니다. 10년 전, 아들의 경계성 지능 장애 판정 소식에 눈물로 "고난이 축복"이라고 설교했지만, 정작 아들의 우울과 아픔은 내 기준과 정죄의 채찍으로 외면해 왔음을 깨달았습니다. "살기 위해 노는 걸로 버티고 있다"라는 아들의 절규는 저의 위선과 낡은 가죽부대를 찢는 하나님의 음성이었습니다. 자녀라는 초막 우상을 짓느라 아들에게 상처를 줬던 제 죄가 보이자, 비로소 눈물의 회개가 터져 나왔습니다.
놀랍게도 아들은 그 고통 속에서도 "하나님이 이런 나도 어떻게든 쓰시겠지"라며 매일 큐티를 놓지 않고 있었습니다. 아들은 이미 고난 속에서 주님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정작 제가 혈기와 잔소리로 주님의 영광을 가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말씀을 들으려면 먼저 곁에 있는 배우자와 자녀, 그리고 지체들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그들의 아픔을 듣지 못하고 귀를 막으면 주님의 음성도 들리지 않습니다.
셋째, 십자가의 영광을 붙들어야 합니다.
변화산의 찬란한 영광을 경험한 주님과 제자들은 다시 고통과 눈물이 기다리는 산 아래의 삶으로 내려옵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당신의 죽음과 부활 전까지는 본 것을 말하지 말라고 경고하십니다. 이는 고난 없는 영광, 즉 나를 힘든 상황에서 즉각 건져줄 힘 있는 메시아만을 기다리는 이들을 경계하신 것입니다.
참된 영광은 화려한 산 위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의 길을 통과할 때 비로소 완성되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은 당장 그 깊은 뜻을 다 몰랐지만, 말씀을 마음에 품고 순종하며 결국 순교의 자리까지 나아가 '오직 예수만 보여주는 인생'이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도 주일 예배의 은혜를 안고 다시 힘든 가족과 일터라는 사명의 땅으로 내려가야 합니다. 우리 사랑부는 바로 그 산 아래에서 묵묵히 십자가의 영광을 일구어내고 있습니다.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때로는 버디들에게 꼬집히고 머리카락이 뽑히면서도 "어차피 썩어질 육신"이라며 웃으며 머리를 들이대는 교사들의 헌신은 주님이 기억하시는 진짜 영광의 길입니다.
또한 평생 휠체어에 의지해 소통조차 쉽지 않지만, 교회 근처만 와도 기뻐 흥얼거리는 버디들의 모습은 우리에게 큰 울림을 줍니다. 비록 육신은 장애라는 십자가를 지고 있으나, 그 영혼은 누구보다 깊이 예배를 사모하며 '오직 예수'만 보이는 인생을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우리 인생이 고달픈 십자가처럼 보일지라도, 장차 천국의 변화산에서 우리는 모두 가장 거룩한 모습으로 변화될 것입니다. 그날에 우리가 포기하지 않았던 지체들과 힘들게 했던 가족들이 영광의 모습으로 변하여 서로에게 "고마웠다"라고 고백할 날이 반드시 올 것입니다.
여러분, 밑동 잘린 나무 같은 인생길을 걷는 우리에게 주님은 오직 예수만 보이는 인생을 살라고 하십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세상의 초막 영광을 내려놓고, 그의 말씀에 귀 기울이며, 끝까지 십자가의 영광을 붙들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우리 삶에 오직 예수만 남는 복된 인생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