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길!]
왕하 21:19~22:2
우리가 일상에서 행하는 행동의 절반 가까이는 깊은 생각 없이 몸에 밴 습관에 따라 반복되는데, 이러한 익숙한 관성에서 벗어나기란 결코 쉽지 않기에 우리가 어떤 길을 선택하느냐는 매우 중요합니다.
본문에는 두 왕이 대조적으로 등장합니다. 악한 길을 따라가다 2년 만에 삶이 끊어진 아몬과 어린 나이에 왕이 되었지만, 여호와의 길을 걸으며 31년을 다스린 요시야입니다.
오늘은 이 두 사람을 통해서 '그 길', 여호와의 길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첫째, 익숙한 길의 반대입니다.
아몬은 우상숭배가 극심했던 므낫세 통치기에 태어나 자랐습니다. 그의 롤모델은 왕으로서 원하는 것을 마음껏 누린 아버지 므낫세였습니다. 아몬은 아버지가 행한 모든 길을 따랐습니다. 가장 익숙한 아버지가 좋아 눈에 보이는 대로 살았을 뿐인데, 그것이 결국 악을 행하는 결과가 되었습니다.
악의 끝은 결국 하나님을 버리는 것입니다. 아몬은 아버지 므낫세가 바벨론에 사로잡혀 갔다가 하나님의 은혜로, 극적으로 돌아온 사건을 분명히 보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고난 속에서 회개하고 돌이킨 아버지의 참된 모습은 외면한 채, 평생 익숙하게 보아온 우상숭배의 길만 따라갔습니다. 치열하게 씨름하지 않아도 원하는 것을 쉽게 얻는 편한 삶처럼 보였기 때문입니다. 아몬은 주어진 환경 속에서 나름대로 성실하게 살았을지 모르지만, 삶의 방향성 자체가 악했기에 결국 하나님을 버리는 길로 나아가게 되었습니다.
우리도 자녀에게 성공이 보장된 세상의 익숙한 길을 열어주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익숙한 것 가운데 선한 것은 없습니다. 죄인인 우리는 본성적으로 하나님보다 내 욕심과 편안함을 따르는 데 익숙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스스로 하나님의 길을 갈 수 없습니다. 내 죄를 깨달아야 나를 구원하신 주님을 보게 됩니다. 죄를 깨닫는다는 것은 내게 당연했던 생각과 행동을 말씀에 비추어 '불편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남 탓하던 익숙함을 내려놓고, 회개와 용서, 순종이라는 불편한 길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도 익숙해지면 형식이 되기 쉽습니다. 그러므로 날마다 큐티하며 공동체에 묻고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결국 익숙한 길의 반대는 편한 길이 아니라, 말씀 때문에 불편해지는 길입니다.
둘째, 떠나면 길이 사라집니다.
아몬은 왕이 된 지 불과 2년 만에, 가장 안전해야 할 궁중에서 가장 가까운 신하들에게 살해당하는 비참한 결말을 맞이했습니다. 성경이 이 죽음의 구체적인 이유를 침묵하는 것 자체가 강한 메시지입니다. 여호와의 길을 떠나면 내가 믿던 사람, 권력, 환경 등 그 어떤 것도 내 인생의 안전망이 되어줄 수 없다는 경고입니다.
아몬은 아버지 므낫세의 모든 것을 따라 했지만, 딱 하나 ‘회개’만은 따라 하지 않았습니다. 우상숭배와 자기중심적인 삶은 익숙하게 받아들였지만, 하나님 앞에 낮아지고 돌이키는 회개는 외면했습니다. 결국 심판으로 이어졌고, 이것이 아몬의 길의 끝이었습니다.
하지만 사람의 길은 끊어져도 하나님의 길은 끊어지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그 땅 백성’이라는 약하고 미련해 보이는 이들을 사용하셔서 반역을 진압하고, 그의 아들 요시야를 왕으로 세워 구속사의 길을 이어가셨습니다.
어쩌면 아몬이 2년 만에 죽임당한 것도, 더 악을 행하지 못하도록 막으신 하나님의 구속사의 손길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길이 끊어진 아몬의 이름조차 유다 왕가의 계보 안에 남겨 두셨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아몬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우리 모두의 모습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여호와의 길, 말씀의 길을 떠나면 안 됩니다. 그 길이 당장은 좁고 험하며 힘들어 보일지라도, 그 길의 끝에는 우리를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이 활짝 열려 있기 때문입니다.
셋째, 좌우로 치우치지 않습니다.
사라질 뻔했던 왕좌가 하나님의 은혜로 아몬의 아들 요시야에게 이어졌습니다. 요시야는 겨우 여덟 살에 왕이 되었지만, 이미 아버지와 할아버지를 잃었고 반역 가운데 죽을 뻔한 연약한 아이였습니다. 의지할 후견인도 없는, 두렵고 겸손한 환경 속에서 그는 자기 이름의 뜻처럼 “여호와께서 고쳐주시고 붙들어주시기”만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요시야는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했습니다. 특별히 성경은 그가 “그의 조상 다윗의 모든 길로 행하였다”라고 평가하며, 좌우로 치우치지 않고 여호와의 길을 끝까지 걸어간 왕으로 특별하게 기록합니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그는 아버지 아몬의 길이 아닌 하나님의 길을 선택했습니다. 인간은 본래 치우치고 빗나갈 수밖에 없는 존재이기에, 오직 여호와의 길 위에 있을 때만 바른길로 갈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요시야는 진정으로 회개한 므낫세의 마지막 모습을 보았습니다. 우상숭배 하던 왕이 환난 속에서 겸손히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들으시는 모습을 본 것입니다. 결국 최고의 자녀 양육은 예배와 회개 가운데 사명을 감당하는 부모의 뒷모습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도 우리에게 길이 되어 주신 말씀에 순종하며, 좌우로 치우치지 않고 “여호와의 길”을 한 걸음씩 따라가면 됩니다.
한 목자님의 공동체 고백입니다.
저는 싫은 소리를 들으면 1초도 못 참고 혈기를 부리던 자였습니다. 아내의 고발에 분노해 던진 노트가 다른 집사님 코에 맞기도 했고, 게으름과 나태함에 지쳐 목자 사역을 버리고 도망치고만 싶었습니다.
그때 초원님은 "나태함은 모두의 본능"이라며 위로해 주셨고, 지혜로운 처방으로 제 분노를 잠재워 주셨습니다. 과거 주차 시비로 육두문자를 남발하던 제가 분수령적인 회개로 죄의 길에서 돌이키는 은혜도 주셨습니다.
여전히 편해지려고만 하는 악하고 게으른 마음에 '내가 목자가 맞나' 수치스럽지만, 제힘으론 안 되기에 공동체에 끝까지 붙어 가려 합니다. 익숙한 나쁜 길을 벗어나, 좌우로 치우치지 않고 오직 '여호와의 길'로만 걷기를 기도합니다.
여러분, ‘그 길’ ‘여호와의 길’은 익숙한 길의 반대입니다. 사라질 길을 붙들고 가다 보면 낭떠러지 앞에 서게 됩니다. 그러므로 좌우로 치우치지 않도록 말씀 붙들고 한 걸음씩 나아가야 합니다. 무슨 일을 만나든지 내 삶의 결론으로 인정하며 나를 위한 야심보다 진심으로 영혼 구원의 사명 감당하시길 축원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