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귀가 울리리라]
왕하 21:10~18
큰 소리에 갑자기 노출되면 귀가 먹먹해지듯,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은 두 귀가 울릴 만큼 크게 외치십니다. 왜 그렇게까지 외치셔야 하는지 므낫세의 인생을 보면서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하나님은 왜 우리에게 두 귀가 울릴 말씀을 주실까요?
첫째, 귀를 막고 있기 때문입니다.
므낫세 죄의 무게가 이방 민족의 악행보다 더 심했지만, 하나님은 포기하지 않으시고 그의 종 모든 선지자를 통해 말씀하십니다. 므낫세의 가증한 악과 우상숭배가 성전 안까지 채워져 온 유다 백성을 우상 숭배로 물들였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타락한 백성인 예루살렘과 유다의 이름을 다시 불러주시며 “내가 너희의 하나님이야!” 외치시고 두 귀가 울릴 정도로 무서운 재앙을 내리겠다고 미리 알려주십니다.
귀를 틀어막고 있는 우리에게 이름 없는 모든 선지자를 동원해서 제발 좀 들으라고, 들어야 산다고, 두 귀가 먹을 만큼 큰 폭탄처럼 터지는 재앙을 내릴 거니까 그렇게 되지 말고 지금 귀를 열고 들으라고 외치고 또 외치십니다. 여러분 주변에 이렇게 외쳐주는 분들이 계십니까? 잔소리로 외쳐주는 가족과 지체들이 오늘 여러분의 귀에 대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입’입니다. 그러니 귀를 열어 들으시기 바랍니다. 듣는 것이 사랑입니다.
둘째, 남은 자임을 잊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줄과 추를 심판의 도구로 사용해서 므낫세가 다스리는 예루살렘에 심판을 베풀고 설거지하듯 남김없이 씻어버리겠다고 예고하십니다. 그런데 심판 중에도 하나님이 은혜로 남은 자를 두셨는데, 이 남은 자들까지 버린다고 하십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하나님의 진노를 일으켰기 때문입니다. 엄청난 은혜를 경험한 출애굽 때부터 므낫세가 다스리는 때까지 700년의 시간 동안 하나님 백성이 한 일은 악을 행하고 또 행하며 남은 자라는 것을 잊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예배하고 섬길 자유를 얻은 존재인데, 살려주신 은혜를 기억하지 못하고 인생 그릇에 거짓과 음란, 미움, 탐욕을 마구 쓸어 담으며 하나님 아닌 피조물을 우상으로 섬기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남은 자가 바로 우리들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은혜받은 그 순간부터 그 은혜를 잊어버립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제발 좀 들으라고, 돌아서라고, 은혜를 생각하라고, 자유를 잊지 말라고" 두 귀가 울리도록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선발된 인생이 아니라 남겨진 인생입니다. 자랑할 인생이 아니라 회개할 인생입니다. 그러니 듣기 싫은 심판의 말씀을 자꾸 외쳐줄 때 남겨주신 은혜를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셋째, 죄만 남기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므낫세가 예루살렘을 무죄한 자의 피로 가득 채웠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을 등지고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착각은 독재로 이어지고 결국 살육으로 변했습니다. 이것이 우상 숭배의 파괴력입니다.
남몰래 나 혼자 즐기는 일이라며 끊지 않았던 죄를 어느덧 자녀가 따라 하고, 손주에게 이어지며, 우리 집에서 이웃으로, 공동체로, 나라로까지 전염되는 것입니다.
서울대 음악대학은 5월 7일에 열리는 ‘스타인웨이 피아노 기부 감사 연주회’에서 기부한 분이 작곡한 ‘세상의 모든 낙태된 아이들을 위한 헌정곡’을 연주할 예정이었습니다. 그분의 프로그램 노트에는 "낙태로 세상을 떠난 모든 무고한 생명을 묵상하며 용서를 구하는 마음을 담았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임신 중단을 폭력으로 규정하고 낙인을 찍는다는 학생들의 항의에 따라 프로그램이 삭제되었다고 합니다. 낙태가 합법화되었기 때문입니다.
여성 인권만, 소수자 인권만 중요하게 여기는 인권법이 자꾸 제정되면 어느덧 자유가 제한되고 권리도 빼앗기게 됩니다. 오늘 본문에 ‘무죄한 자의 피’라고 했는데, 태아도 포함되지 않을까요? 그러므로 '태아 생명 보호법'이 제정되어야 하고, 동성애를 보호하고 인정하는 '차별금지법'은 막아야 합니다.
열왕기 기자는 므낫세의 55년 통치가 남긴 업적은 ‘범한 죄’뿐이라고 기록합니다. 므낫세만 그러겠어요? 모든 인생의 욕심이 하나님 자리에 내가 앉는 것이니, 가장 위험한 우상은 바로 나 자신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떤 환경에 있든, 어떤 모습으로 살든 죄만 남길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반전이 있습니다. 역대기에 보면 므낫세 인생에도 망하는 사건이 찾아 왔습니다. 앗수르의 침략을 받고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는 환난을 겪으니까, 하나님께 항복하며 기도하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므낫세의 회개를 받으십니다.
므낫세는 악행에 대해 져야 할 책임이 있었기에 다윗 왕의 무덤에 묻히지는 못했지만, 구속사를 이어가는 하나님의 신실하심 때문에 다윗 왕조가 이어지고, 예수님의 족보에 그의 이름이 올라가는 구속사의 은혜를 주셨습니다.
십 년 전, 'THINK 목회세미나'를 처음 시작할 때 큐티 본문이 에스라여서 온 교회가 금식을 선포하고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요즘 에스라서를 큐티인 본문으로 다시 묵상하고 있습니다.
에스라가 죄를 자복하며 불신결혼 때문에 금식하고 기도합니다. 다음 세대를 위해서 불신결혼은 아주 중요한 주제입니다.
우리들교회도 이십 년 동안 불신결혼은 안 된다고 심각하게 외치고 왔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인권과 인격을 논하며 “나중에 돌아오겠죠.” 하시면 안 됩니다. 나중에라도 돌아오라고 이 문제만큼은 심각하게 외쳐야 합니다. 그래서 에스라가 본을 보이며 금식한 것처럼, 저도 여러분을 위해 대신 깨닫고 대신 회개하며 안타까운 마음으로 삼일 금식을 하고 있습니다. 에스라의 자복을 통해 백성이 크게 통곡했듯, 저 한 사람의 회개가 전염되어 우리에게 회개의 역사가 일어나길 소망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왜 우리에게 두 귀가 울릴 말씀을 주실까요? 우리가 귀를 막고 있기 때문입니다. 남은 자임을 잊었고, 이 땅에서 죄만 남기고 가는 인생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끈질긴 사랑과 두 귀를 울리는 말씀으로 우리를 찾아오십니다. 그러므로 오늘 귓가를 두드리는 소리가 있다면 두 귀를 쫑긋 세우고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 주님의 말씀을 들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