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약을 세우되]
왕하 22:20~23:3
우리는 자주 하는 거짓말 중 하나는 "읽었으며 동의합니다."입니다. 앱 설치나 회원 가입, 결제할 때도 내용을 제대로 읽지 않은 채 동의 버튼을 누를 때가 많습니다. 신앙도 이와 같습니다. 말씀은 제대로 듣지 않고 "아멘" 하며, 하나님이 무엇을 원하시는지, 내가 무엇을 회개해야 하는지도 모른 채 "은혜받았습니다"라고 말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말씀을 듣고 회개한 요시야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백성을 모아 언약책의 모든 말씀을 들려주고, 그 말씀 앞에 함께 서서 언약을 세웠습니다. 오늘은 말씀을 들은 회개가 어떻게 언약을 세우는지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첫째, 공동체를 하나님 앞에 모읍니다.
하나님은 요시야에게 조상들에게로 돌아가 평안히 묘실로 들어가게 하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지금까지 본 열왕기의 왕들의 죽음은 '자니라'라고 기록되었지만, 요시야에게는 믿음의 조상들에게 쓰였던 '돌아가서'와 '들어가게 하리니'라는 표현이 사용되었습니다. 원어로 보면 두 표현 모두 "모으다"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성도에게 죽음은 단절과 버림이 아니라 하나님 백성과의 재회입니다.
요시야는 하나님이 자신을 하나님의 백성에게로 모으신다는 구원의 확신으로, 재앙의 말씀을 듣고도 자포자기하지 않고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다른 사람을 하나님 앞으로 모으는 데 최선을 다합니다. 옷을 찢고 회개한 요시야는 가장 먼저 공동체를 대표하는 모든 장로를 모읍니다. 회개는 개인의 감정이 아니라 온 공동체가 함께 참여해야 할 공동체적 사건입니다. 요시야의 회개와 통곡의 진정성은 장로들의 신뢰를 얻었고, 그 회개는 온 유다에 확산되어 모든 백성을 여호와의 성전으로 모이게 했습니다. 사람들을 내 밑으로 모으면 세력과 패거리가 되지만, 진정한 회개는 사람들을 여호와 앞으로 인도합니다. 그래서 회개보다 확실한 전도는 없습니다.
우리나라는 지금 인구 절벽이라는 위기 앞에 서 있습니다. 말씀을 들은 회개는 나만의 평안에 머물지 않습니다. 구원을 위해 이 시대를 애통하며 끝까지 회개해야 합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흩어진 백성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다시 하나로 모으시는 이야기입니다. 하나님께 모임 받은 사람은 하나님 앞으로 사람을 모으는 사람이 됩니다.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사는 성도는 "예수 믿고 천국에서 모이자."라는 최고의 유언을 남길 수 있습니다.
둘째, 언약책의 모든 말씀을 들려줍니다.
요시야는 성전에 모인 백성에게 언약책의 모든 말씀을 들려줍니다. 처음 이 책이 발견됐을 때는 요시야가 듣는 사람이었지만, 이제는 읽어 주는 사람이 됩니다. 말씀을 들은 사람이 말씀을 들려주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회개한 지도자는 자신의 권위를 세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을 권위로 세우며, 그 말씀 아래 머뭅니다.
언약은 지켜야 할 규칙이 아니라 하나님과 우리를 묶는 생명줄입니다. 율법이 나를 살리시려는 하나님의 언약으로 들릴 때, 율법책은 언약책이 됩니다. 말씀이 살아 움직여서 나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으로 들리면, 어떤 상황에서도 길 되신 예수님을 만나게 됩니다.
언약책의 말씀은 듣기 좋은 말씀만 골라 읽는 것이 아니라 복도, 책망도, 위로도, 저주의 경고도 모두 내 말씀으로 받는 것입니다. 요시야가 자신이 옷을 찢고 회개할 수밖에 없었던 말씀까지 하나도 빼지 않고 읽어 주었듯이, 우리도 말씀을 편식하지 않고 책망까지 받을 때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해지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됩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차례대로 읽는 것은 내 죄를 피해 갈 수 없는 최고의 훈련입니다. 나를 찌르는 말씀은 언약 밖으로 밀어내는 말씀이 아니라 "너는 내 백성이니 돌아오라." 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본문도 구속사로 듣고 나를 살리시는 언약의 말씀으로 받아들이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셋째, 함께 서서 언약을 세웁니다.
언약책의 모든 말씀을 읽은 요시야는 단 위에 서서 여호와 앞에 언약을 세웠고, 백성도 함께 그 언약 앞에 섰습니다. 말씀을 들은 회개가 가야 할 자리는 잊었던 언약 앞에 다시 서는 것입니다. 언약을 세우는 것은 목숨을 건 진지한 약속이며, 기록된 말씀이 내 삶 속에 실제로 서도록 순종하겠다는 결단입니다. 그러므로 성도의 삶은 말씀이 응하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요시야 한 사람이 언약의 말씀 앞에 서자 온 백성이 함께 언약 앞에 서며 언약 공동체가 세워졌습니다. 말씀을 삶에 세우는 일은 혼자 할 수 없기에 하나님은 공동체를 주셔서 함께 말씀 앞에 서고 순종할 힘을 얻게 하십니다. 우리의 힘으로 언약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새 언약이 되어 주셨기에 그리스도의 몸 된 공동체에 속하는 것이 언약을 세우는 유일한 비결입니다. 예배와 목장의 자리에서 말씀을 나누고 죄를 고백하며 함께 순종할 때, 연약한 우리는 공동체 안에서 그리스도의 몸이 되어 갑니다.
공동체 고백은 한 목원 집사님의 나눔입니다.
"빚이 언제쯤 갚아지나" 많이 기다리는데, 이 기다림이 제 삶의 중심을 잡아주는 역할을 합니다. 한눈팔지 않고 직장생활을 잘하게 되었고, 교회와 목장이 즐겁습니다. 아내에게 "죽은 개 같은 나와 살아줘서 고맙다."고 하니 아내도 감동을 받았습니다. 지금은 돈이 넘치는 것보다 마음 편하게 서로 의지하는 것이 최고라는 생각을 합니다.
이 나눔을 들은 목자님은 "저도 쇼핑 중독인 아내의 카드 빚 때문에 망하고 이혼까지 했지만, 우리들교회 공동체로 인도되어 재결합했습니다. 이후 아내에게 생활비 카드를 주었는데 1년도 안 되어 또 빚이 생겼습니다. 공동체에 물었더니 '생활비를 더 올려주라. 애 엄마니까 살아야 한다.'는 처방을 받았습니다. 말도 안 되는 이 처방에 순종했더니 아내가 감동을 받아 변화되어 지금까지 신용카드를 쓰지 않고 있습니다. 집사님도 지금 순종의 자리를 잘 걷고 계신 것입니다."라고 권면했습니다.
세상에서는 이혼을 권할 상황이지만, 공동체의 처방에 순종하여 가정을 지켜 낸 이런 간증이 가고 오는 세대에 언약을 세우는 교과서가 될 줄 믿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를 모으셨기에 우리도 사람들을 하나님 앞으로 모아야 합니다. 모인 사람에게 말씀을 들려주면 함께 서서 언약을 세우는 공동체가 됩니다. 말씀대로 살아낸 우리들의 간증이 찬란한 언약의 교과서가 되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