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상을 가루로]
왕하 23:4~14
어느덧 한 해의 절반을 지나 오늘은 맥추감사절입니다. 여전한 모습으로 예배당에 나와 예배드릴 수 있음이 참 감사합니다. 그러나 감사해야 할 주일에도 우리의 마음은 쉽게 불평과 원망에 사로잡히고, 때로는 내게 상처 준 사람을 가루로 만들고 싶어 하기도 합니다.
오늘 본문에는 진짜 모든 것을 '가루'로 만든 요시야왕이 나옵니다. 그러나 그가 부순 것은 사람이 아닌, ‘우상’이었습니다. 말씀으로 회개한 사람은 남이 아닌 내 안의 우상을 깨뜨립니다. 과연 어떻게 해야 우리 안의 우상을 가루로 만들 수 있을까요? 본문을 통해 그 세 가지 길을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첫째, 꺼내 불사릅니다.
요시야는 말씀을 듣고 언약을 세운 후 가장 먼저 성전을 정결하게 했습니다. 그는 할아버지 므낫세가 성전에 들여놓았던 바알과 아세라, 일월성신을 위한 모든 기구를 꺼내 기드론에서 불사르고, 그 잿가루를 우상숭배의 중심지였던 벧엘로 보냈습니다. 이는 우상이 결국 죽음을 가져온다는 사실을 보여 주며, 북이스라엘의 멸망을 기억하게 하는 경고였습니다. 또한 우상을 섬기게 한 제사장들을 폐하고 성전 안 남창의 집까지 헐어 우상숭배와 음란의 뿌리를 제거했습니다. 이는 요시야 개인의 열심이 아니라 말씀 앞에 하나 된 언약 공동체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성전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거룩한 자리입니다. 그런데 그 안에 우상이 들어왔다는 것은 거룩의 자리에 세상의 행복과 기복신앙이 들어선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성전인 마음속에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돈과 성공, 자녀와 인정, 체면과 욕심이 한가운데 자리 잡고 있다면 그것이 곧 우상입니다.
성도의 삶은 마음의 성전을 정결하게 하는 끊임없는 종교개혁의 과정입니다. 우상은 숨겨 두면 사라지지 않습니다. 죄를 공동체 안에서 정직하게 고백하고 드러낼 때 우상은 비로소 힘을 잃습니다. 내 안의 우상을 입술로 인정하는 순간, 그 우상은 이미 불타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힘만으로는 우상을 없앨 수 없기에 성령의 불이 임하여 탐욕과 교만, 두려움과 중독까지 모두 태워 주시기를 간구해야 합니다.
둘째, 더럽게 합니다.
요시야의 개혁은 성전을 넘어 유다 전역으로 확장되었습니다. 그는 산당들을 헐고 더럽혀 다시는 우상숭배의 장소로 사용되지 못하게 했습니다. 산당은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도 내가 높인 자리에서 내가 편한 방식으로 드리는 예배를 상징합니다. 또한 그는 힌놈의 아들 골짜기 도벳을 더럽혔는데, 그곳은 몰록에게 자녀를 제물로 바치던 장소였습니다. 이처럼 우상숭배는 결국 가장 소중한 것까지 빼앗아 가는 죽음의 길입니다.
오늘날 우리도 성공과 인정, 체면과 성취라는 산당을 쌓으며 살아갑니다. 때로는 자녀를 위한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자신의 욕심과 만족을 위해 경쟁의 불 속으로 밀어 넣기도 합니다. 성문 어귀마다 산당이 있었다는 것은 우상이 삶의 모든 영역에 스며들어 있음을 의미합니다. 주일에는 예배드리지만, 평일에는 세상의 가치관을 따라 사는 모습 역시 우리의 산당일 수 있습니다.
산당을 무너뜨리기 위해서는 먼저 그것을 더럽혀야 합니다. 이는 결국 자신을 낮추는 일입니다. 회개는 내가 티끌과 재 같은 존재이며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살 수 없는 존재임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행복해지기 위해 산당을 쌓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기 위해 그 산당을 허무십니다. 내가 높인 것을 내려놓을 때 하나님께서 높이시고, 내가 가루임을 인정할 때 우상도 함께 무너지고 가루가 됩니다.
셋째, 빻아 내립니다.
요시야는 우상을 부수는 데서 멈추지 않고, 가루가 될 때까지 빻아 흔적조차 남기지 않았습니다. 성전 입구에 있던 태양 숭배용 말과 수레를 없앴고, 조상들이 세운 제단뿐만 아니라 300년 전 솔로몬 시대부터 내려온 산당까지 철저히 헐어 가루로 만들었습니다. 이는 단순히 우상 물건을 제거하는 수준이 아니라 오랫동안 가문과 삶에 뿌리내린 죄의 근원을 끊어내는 일이었습니다.
사실 가장 깊은 죄의 뿌리는 고난의 때보다 오히려 가장 좋았던 시절에 심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솔로몬의 산당이 그 예입니다. 가장 지혜롭고 영광스러웠던 시절에 시작된 죄가 300년 넘게 이어져 왔지만, 그동안 누구도 쉽게 손대지 못했습니다. 우리 역시 실패의 경험보다 성공과 자부심, 인정받았던 기억, 내가 의지해 온 방식들을 더 내려놓기 어려워합니다. 그것들이 어느새 내 정체성과 가치관이 되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릇은 꺼내 버리면 되고 산당은 헐어 폐쇄하면 됩니다. 그러나 뿌리를 뽑는 일은 다릅니다. 대물림된 기질과 상처, 자랑과 욕심은 이미 내 삶의 일부가 되어 있습니다. 성경은 이를 ‘옛사람’이라 부릅니다. 결국 마지막까지 남는 가장 깊은 우상은 돈이나 성공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스스로 그 뿌리를 뽑을 수 없습니다. 감사하게도 하나님은 우상의 제단은 철저히 부수시지만, 상한 갈대 같은 우리 인생은 결코 꺾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우리를 살리기 위해 예수님께서 대신 상하시고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러므로 마지막 우상 앞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내 힘으로는 안 된다고 인정하고 주님의 은혜를 의지하는 것입니다.
한 신입 사역자 부부가 목장에서 고난을 나누었는데, 처방과 권면을 듣고 상처받아 솔직하게 마음을 표현하며 사과를 요청했습니다. 그러자 목자님은 변명하지 않고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며 진심으로 사과했습니다.
서로의 상한 마음을 건드리며 상대를 무너뜨리기보다, 그 일을 통해 내 안의 우상을 발견하고 무릎 꿇을 때 공동체는 개혁됩니다. 우리가 잘나서 변화되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상처와 죄를 숨기지 않고 드러내며 서로를 사랑으로 받아들일 때, 우상은 힘을 잃고 가루가 됩니다.
여러분, 우상은 저절로 사라지지 않습니다. 꺼내어 불사르고, 더럽혀 다시 돌아오지 못하게 하며, 끝내 가루가 되도록 빻아내려야 합니다. 이제는 다른 사람을 바꾸려 하기보다 내 안의 오래된 우상을 부수고, 가장 큰 우상인 ‘나 자신’을 내려놓아 오직 예수님만 내 삶의 주인 되시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