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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언약]
이성훈 목사
삼하 23:1~7
여러분, ‘영원한 언약’은 인생의 절정기가 아니라, 모든 것이 무너진 다윗이 생의 끝자락에서 붙잡은 마지막 단어입니다. 그리고 좋은 때나 나쁜 때나 어떤 날이든지 끊어지지 않고 끝까지 계속되는 언약입니다. 이 언약은 우리 삶과 동떨어진 약속이 아니라, 삶의 한가운데에서 끝까지 우리를 붙드시는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오늘은 하나님께서 어떻게 우리의 흔들리는 삶을 끝까지 붙들어 주시는지 함께 묵상해 보겠습니다.
첫째, 여호와의 영이 나를 세우십니다.오늘 다윗이 ‘마지막 말’을 하는데, 이는 임종 직전에 남긴 유언이 아니라, 40년 동안 나라를 다스렸던 왕이 인생 전체를 결산하여 백성 앞에 공식적으로 선포하는 최후의 발언입니다. 그런데 그 첫마디가 ‘이새의 아들 다윗’입니다. ‘이새의 아들’은 영광스러운 호칭이 아니라, 사람들이 다윗을 깎아내리고 조롱할 때 부르던 이름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무 별 볼 일 없이 평범한 이새의 집 안에서, 가장 존재감 없던 막내의 자리에서 그를 불러내셨습니다. 내가 지우고 싶은 바로 그 이름 위에 하나님은 은혜를 부어 주셨습니다. 내가 무너진 바로 그 자리가 하나님께서 나를 다시 부르시는 자리입니다. 다윗은 마지막 말에 "하나님께 기름 부음 받은 자"라고 고백하였는데, 이는 삼상 16장 13절에 "다윗이 기름 부음을 받던 날 여호와의 영에게 크게 감동되었다"라고 이미 기록된 말씀이며, 이 뜻은 성령에 감동되었다는 것이고, 여호와의 영이 다윗을 붙드시고 사용하기 시작하셨다는 것 입니다. 사람을 세우는 것은 스펙이나 조건이 아니라 오직 성령입니다. 또한 다윗은 인생의 끝에서 가장 자랑한 것이 자기의 혀였습니다. 그의 혀가 성령에 감동되었고, 성령께서 그 혀에 하나님의 말씀을 두셨기 때문입니다. 성령께서 우리를 높이 세우셨다는 것은 내 혀에서 내 말을 내리시고, 그 자리에 대신 하나님의 말씀을 올리는 것입니다.둘째, 참된 왕이 나를 살리십니다.다윗은 하나님을 ‘이스라엘의 반석’이라고 고백합니다. 평생 흔들리는 삶을 붙들어 주신 하나님을 반석으로 고백한 것입니다. 그 반석이신 하나님께서 왕의 통치 기준을 알려 주셨는데, 바로 공의와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해야만 자신이 하나님 아래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내 옆에 있는 사람들을 함부로 대하지 않게 되고, 그것이 공의가 됩니다. 신명기 17장은 왕이 될 사람에게 율법책을 직접 베껴 쓰고 평생 곁에 두고 읽으라고 명령합니다. 이 숙제를 내주신 목적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을 배우기 위함입니다. 그래야 통치가 바로 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참된 다스림을 ‘돋는 해의 아침 빛’으로 설명하십니다. 밤새 비가 내린 뒤 구름 한 점 없는 아침 햇빛이 비치자, 새 풀이 돋아나는 모습입니다. 햇빛을 받은 새 풀은 왕과 그 왕 아래 살아가는 백성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이 그림대로 세상을 다스린 왕은 다윗도 솔로몬도 아닙니다. 그분은 바로 참된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다윗은 자기 왕조를 지키려고 우리아의 피를 흘렸지만, 예수님은 우리를 살리시려고 자기 피를 흘리셨습니다. 우리는 햇살이기 전에 먼저 참된 왕이신 그리스도의 빛 아래 살아나야 할 풀 같은 인생입니다. 내가 먼저 말씀 앞에 살아나야 다른 사람도 살릴 수 있습니다.셋째, 하나님이 나의 구원을 이루십니다.다윗은 “내 집이 하나님 앞에 이같지 아니하냐”라고 합니다. 이것은 자기 집의 현실을 부정한 것이 아니라, 무너진 현실보다 하나님의 영원한 언약을 더 크게 바라본 믿음의 고백입니다.다윗이 붙든 언약은 사무엘하 7장의 약속입니다. 다윗이 하나님께 집을 지어드리겠다고 했지만, 오히려 하나님께서 다윗을 위해 집을 세워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주어가 ‘나’에서 ‘하나님’으로 바뀌는 것, 이것이 복음입니다. 5절 "나의 모든 구원과 나의 모든 소원을 어찌 이루지 아니하시랴"에서 ‘이루다’는 ‘싹트게 하다’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무너진 폐허에 우리의 구원을 싹 틔우십니다. 사람들이 끝났다고 도장 찍은 바로 그 자리에서 난 싹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러나 6절에 사악한 자는 다 내버려질 가시나무 같다고 합니다. 같은 땅에 가시나무도 있는데, 가시나무는 언약을 거부한 인생입니다. 우리는 본래 가시 같은 존재였지만, 참된 왕이신 예수님께서 우리 대신 십자가를 지시고 머리에 가시관을 쓰셨습니다. 우리에게 임할 저주를 대신 받으시고 가시 같은 우리를 언약의 땅으로 옮겨 심으셨습니다. 오늘 내 삶이 폐허 같아도 하나님은 그 자리에서 구원의 싹을 돋게 하십니다.공동체 고백입니다.태어나서 처음 다닌 교회가 우리들교회라고 하신 한 집사님은 이혼의 아픔과 두 아이를 뒷바라지하는 상황을 어디에서도 털어놓지 못하고 사셨습니다. 그러다 ‘불신결혼은 안 된다'라는 공동체의 말에 화가 나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목사님한테 따지려고 판교 성전으로 오셨는데, 그 분노의 발걸음이 은혜의 발걸음으로 바뀌어 교회에 등록하고 목장에 나가게 되었다고 합니다. 처음 참석한 목장에서 이혼과 그 힘든 삶들을 털어놓으셨습니다. 그리고 그 고백을 통해 큰 자유와 위로를 경험하셨습니다. 그 은혜가 너무도 감사해서 38주 동안 이어지는 교회 양육을 한 번도 쉬지 않고 다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어떤 일도 이제 내 뜻대로 하지 않고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겠다고 나누셨습니다.폐허라고 결론 내렸던 그 삶을 하나님은 끝내지 않으셨고, 말씀의 공동체에 꺼내놓는 순간, 바로 그 자리에서 구원이 싹트게 하셨습니다.여러분, 영원한 언약의 하나님은 여호와의 영으로 나를 세우시고, 참된 왕의 빛으로 나를 살리시며,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구원을 이루어 가십니다. 성도에게 마지막 말은 ‘폐허’가 아니라 ‘영원한 언약’입니다. 폐허가 마지막 말이 아니라 언약이 마지막 말입니다. 영원한 언약의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구원을 끝까지 이루실 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