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3 이해지입니다. 저는 어렸을 때부터 동네 교회에 다니다가 4학년 때 우리들교회로 오게 되었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 저희 집은 정말 가난했습니다. 아빠 사진관 안에 있는 작업실 단칸방에서 네 식구가 함께 살았는데 빚을 갚기 위해 부모님은 밤낮 없이 일을 하셨고 그러면서 엄마는 건강을 잃었습니다. 무릎이 안 좋아서 수술도 했었는데 교통사고도 나고 또 일을 하면서 몸이 망가졌고 지금은 빚을 다 갚았지만 ‘섬유근통’이라는 겉보기엔 멀쩡해 보이지만 뼈와 살이 아픈 병을 가지고 계십니다. 이 병은 완쾌가 불가능해서 진통제를 먹는 수밖에 없습니다. 몸이 아프다 보니 예민해지고 하필이면 엄마가 가장 아팠던 2009, 2010년에 저는 질풍노도의 중학교 1, 2학년이었습니다. 그 때는 정말 가족보다 친구들이 더 좋았고 친구들과 있는 시간이 늘어나다 보니 같이 나쁜 것에도 손을 대게 되고 그러면 그럴수록 엄마와의 사이는 더욱 안 좋아졌습니다. 엄마가 특히 몸이 더 안 좋아 예민한 날이나 제가 잘못을 한 날은 집안이 말 그대로 지옥이 되었고 그 때마다 저는 엄마에게 수도 없이 많이 맞아야 했습니다. 엄마는 정신과에 가고 우울증 약도 먹으며 저에게 제발 평범하게만 살라고 하셨습니다. 중학교 1학년 때는 언어장애가 있는 친구에게 심한 장난을 치고 같은 반 친구의 지갑에 손을 대서, 2학년 때는 담배를 걸려서, 3학년 때는 화장을 하고 다닌다는 이유로 엄마는 3년 내내 학교에 불려가셨습니다. 교회 수련회에 가서는 말씀도 잘 듣지 않고 남들 기도할 때나 찬양할 때 멀뚱멀뚱 보고만 있었습니다. 유치원 때부터 다니던 교회에서는 찬양팀도 하고 초등학교 2학년 때 수련회에 가서 눈물로 기도를 할 정도로 교회도 열심히 다니고 모든 일에 하나님과 함께 했었는데 나이를 먹을수록 ‘하나님이 정말 있는 건가, 내가 어렸을 때부터 교회에 다녀서 쇠뇌를 당한 것 아닌가.’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중학교 3년이 지나가고 그 사이에 저도 철이 많이 들고 엄마의 건강도 많이 나아져서 가정이 회복 되었습니다. 지금 생각 해 보면 그 시기를 어떻게 견뎠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엄마는 “우리들교회에 있지 않았으면 난 자살했을 거다.” 하십니다. 고등학생이 되면서 ‘정말 마음먹고 공부하자, 3년만 열심히 하자.’ 하고 인문계 여고로 진학해서 처음에는 화장을 안 하는 것이 너무 힘들어 1달을 하고 다니다가 다른 친구들이 다 안하는데 나만 하는 것이 창피해서 쌩얼로 다니며 나름 공부하는 척도 열심히 했습니다. 그런데 고1 여름방학 때 공고를 다니는 지금까지도 저와 가장 친한 친구의 유혹으로 2년간 끊었던 담배를 다시 피게 되었습니다. 수련회에 갈 때마다 내 몸을 망가트려 죄송하다고 회개를 하고서도 수련회에서 돌아온 후 얼마 안돼서 다시 하는 것의 반복이었습니다. 사실 이번에도 2014년엔 정말 안하겠다고 다짐하고서 중간에 동네 친구들을 만날 때 아주 가끔 하나씩만 하면서 버티다가 결국 이번 주에 다시 사고 말았습니다. 하루 종일 독서실에만 있으면 너무 답답하다는 핑계 때문이었습니다. 저도 제가 한심하기도 하고 창피하기도 합니다. 사진작가가 꿈이라 사진학과에 진학 하기위해 작년 4월부터 사진 입시학원도 다니고 친구들도 잘 안 만나고 공부도 열심히 하는 중입니다. 그렇지만 지금까지 남들 보다 공부를 너무 해놓지 않았기 때문에 정말 죽기 살기로 해야 하는데 마음대로 잘 되지 않습니다. 가장 힘든 것은 내가 사진을 찍으려고 공부를 하는 건데 공부 때문에 사진 찍을 시간이 없다는 것입니다. 학생의 때에 순종해서 지금은 공부를 더 열심히 해야 하는데 안하던 공부를 하려니 독서실에서 몇 시간 공부를 하다보면 그 적막함이 너무 싫어서 마구 소리 지르고 싶기도 합니다. 지금 내 수준을 내가 아는데 정말 이렇게 해서 가고 싶은 대학에 갈 수 있을까 하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끊임없이 밀려옵니다. 그래도 지금 까지 그 좁은 단칸방에서부터 우리 가족을 이렇게 편안히 살 수 있게 해주시고 수많은 기적을 보여주신 하나님을 믿고 물으며 믿음을 잃지 않도록 기도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