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3 이다은입니다. 저는 모태신앙으로 화목한 가정에서 태어나 별다른 어려움 없이 살았습니다. 제가 중학교 2학년 때 저희 가족은 중국 상하이로 가게 되었고, 그곳에서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영어를 못해서 학교에서 힘들었지만 한국인도 많고, 사교적인 성격이라 적응하기 쉬웠습니다. 하나님은 규원이라는, 마치 다윗과 요나단처럼 서로 믿고 말이 잘 통하는 친구도 붙여주셨습니다. 이제껏 가장 친하고 진심으로 좋아한 친구였습니다. 그런데 규원이가 한국으로 돌아가게 되었고, 친구의 가족은 중국에 남았기에 방학 때 보자며 헤어졌습니다. 저는 방학만 기다리며 규원이 집에 전화를 자주 했었고, 어느 날엔 아주머니께서 짜증 섞인 목소리로 친구가 중국에 오면 연락하겠다며 전화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저도 너무 자주했다고 생각했기에 그냥 기다렸습니다. 하지만 개학이 가까워 올 때까지도 연락이 없자 전화를 했고, 친구가 받았습니다. 너무 황당해서 왜 전화를 안 했냐고 물었는데 돌아온 건 귀찮다는 듯한 말투와 차가운 태도였습니다. 친구의 이런 태도는 이간질 때문이었고, 저는 오해를 풀고 싶어 만나자고 했지만 겨우 만나서도 달라진 건 없었습니다. 그날 저녁부터 배신감에 울다가 제 자신이 한심스러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화도 나기 시작했고, 욕을 적은 장문의 편지와 그 동안 주고받은 편지, 우정반지 등을 쇼핑백에 넣어 던져줄 계획을 짜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다음 날 친구를 만나자 마자 쇼핑백을 던지고 돌아오려던 것은 잊고 서러움에 울고 말았습니다. 그런데도 변하지 않는 친구의 모습을 보고 홧김에 쇼핑백을 던졌고 그렇게 큰 상처로 남았습니다.
친구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타카라라는 친구와도 친하게 지냈는데 그 친구가 자기 나라로 돌아가게 될 즈음 또 상처를 받게 됐습니다. 가기 전에 저와 성관계를 맺으면 안 되겠냐는 말을 했고, 저는 친구가 쓰레기 같고 하찮은 존재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제 곁에 친구는 항상 있었지만 늘 선을 그었고 진심이 아니라 인위적으로 대했습니다. 그럴수록 저는 외로움에 빠졌고, 가족의 사랑으로 채우려 노력했지만 늘 부족했습니다. 상해 코스타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함을 경험하고도 말씀과 삶이 분리되어 있으니 받은 은혜가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말씀 보다는 공부에 쏟았고, 꼴등 반에서 일등 반으로 가게 되었을 때 들은 칭찬들로 교만해져갔습니다. 그렇게 점수와 등수에 집착하기 시작했고, 시험 공포증도 생겼습니다. 한 번은 시험에 집중하지 못하고 그 시간에 점수와 등수를 걱정하다가 등과 이마에 식은땀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글이 보이지 않았고 그 시험에서 망하고부터 제게 트라우마로 남았습니다. 시험을 볼 때마다 동일한 증상을 보이게 되었고 시험장에서 뛰쳐나간 적도 있습니다. 저는 그 때마다 “하나님 저한테 왜 이러시는 거예요! 저랑 장난하시는 거예요?” 하며 대들고 맞섰습니다.
저는 늘 겉으로는 사람을 만나지 않으면 상처 받을 일도 없다며 괜찮은 척을 한 적도 많았습니다. 그런데 ‘고난이 축복이다’라는 말씀을 들으면서 이게 하나님이 제게 주신 고난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엄마랑 나눈 큐티 말씀과 대화를 통해 하나님이 저의 교만함과 하나님보다 시험을 중시하는 제 모습을 보게 하려 그러셨다는 것을 깨닫고 눈물로 회개했습니다. 물론 아직도 세상적인 고민이 많아 아직도 하나님을 온전히 믿지 못하고 묻지도 않을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저도 불쌍히 여겨주셔서 믿음과 평안함을 다시 허락해 주시길 간절히 원합니다. 또 여전히 제가 사람을 만날 때 처음부터 의심을 하고 선을 긋고 사람을 만나기 때문에 저에게 지금 사과하는 규원이나 한 번이라도 잘못한 친구가 있으면 바로 무시하고 버리는 저의 극단적인 성격도 제 스스로가 아닌 하나님 안에서 회복되길 간절하게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