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2 안현재입니다. 저는 모태신앙으로 태어나 중소기업의 사장인 능력 있는 아빠와 피아노를 전공한 엄마, 이런 폼 나는 부모님 밑에서 자라며 겉으로는 남부럽지 않은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하지만 그런 모습은 겉모습이었을 뿐 아빠의 오랜 외도로 부모님의 갈등의 골은 날마다 깊어져 갔습니다. 또, 아빠 회사의 갑작스런 몰락으로 아빠는 집에서 폐인같이 지내셨고 엄마와 싸우시다가 집을 나가 동거하기 시작하셨습니다. 사실 저는 원래도 일찍 출근하셔서 새벽에야 들어오시고, 주말에만 겨우 뵐 수 있었던 아빠가 집을 나가셨다한들 큰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라 여겼습니다. 그러나 엄마에게 아빠의 빈자리가 주는 스트레스는 상상 그 이상이었습니다. 그 스트레스는 제게 고스란히 돌아왔고, 저는 아빠의 부재가 이렇게 힘들게 하는 일이라는 것을 느끼고 그제야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아무리 수련회에서 기도를 해도 응답이 없었고, 정말 그때마다 하나님은 안 계신 게 아닐까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지칠 대로 지친 와중에 아빠가 구치소에 들어갔다는 소식도 들었습니다. 회사가 망하는 것을 조금이라도 막기 위해 직원들의 월급을 쓰신 게 걸렸던 것이었습니다. 그래도 주말에는 아빠를 만날 수 있긴 했었는데 아예 못 뵌다는 생각이 드니까 겁도 나고 눈물도 났습니다. 두려움에 방황도 했지만 제가 기댈 곳이 어디에도 없다는 것을 깨닫고 기도하며 매달리기 시작했습니다. 엄마와 같이 기도원에 가서 기도도 해 보고, 저 나름대로 열심히 주님을 찾았습니다. 그랬더니 아빠가 제가 크리스마스에 교회에서 연극을 하는걸 보기 위해 교회에 처음 오셨고 그 이후부터 차츰 목장도 나가시고 집에도 정착하게 되시는 구원의 역사를 보여주셨습니다. 물론 그때 ‘이제는 우리 집이 회복되어 살아나겠지’라고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엄마의 우울증과 아빠에 대한 뿌리깊은 의심과 미움, 부부싸움은 그대로였습니다. 그래도 다행히 주일과 부부목장 날에는 집이 조용했고, 아빠가 부목자가 되실 때쯤엔 부모님이 거의 안 싸우시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중2가 될 무렵 사춘기를 겪게 되었고 관심을 받고 싶었던 저는 양아치 무리에서 이도 저도 아닌 애매한 자리에서 가오를 부리고 잘나가는 척을 했습니다. 그런 무리에서 애매하게 껴 있다 보니 그 애들이 하는 짓들을 저 또한 같이 해야 좀 어울릴 수가 있으니까 그 짓이 잘못되던 아니던 항상 같이 하게 됐습니다. 그 중 하나가 정신적으로 좀 아픈 같은 반에 친구를 괴롭히는 것이었는데, 처음에는 저도 이건 아니다 싶었지만 그 애들하고 같이 놀려면 어쩔 수 없이 하는 거라고 자기합리화를 했고 나중엔 저도 즐기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애는 정말 힘들어 했었는지 저와 같이 자기를 괴롭히던 3명을 경찰에 신고 했습니다. 그 애가 바로 경찰에 신고한 덕분에 학교에서도 조치를 취하기 전에 저희는 조사를 받았고, 그 애가 취하를 하지 않으면 검찰에 곧 출두하게 될 거라는 형사님의 말도 들었습니다. 그 조사를 받는 기간 동안 저는 정말 몸에 힘이 하나도 남지 않았고 학교 또한 나가기 싫었습니다. 힘이 하나도 남지 않으니까 그제야 큐티와 기도가 생각났습니다. 그러다가 그 애가 검찰에 이 사건을 넘길 건지 취하할건지를 두고 생각해 보겠다고 보류했고, 저는 그때 수련회를 가서 주께 부르짖었습니다. 잘못했다고,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다고 회개했습니다. 그리고 수련회가 끝나고 검찰에 나갈 걸 각오하고 있던 도중에 그 애가 고소하는 걸 취하했고 이 사건은 아예 종결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학폭위 또한 저를 뺀 나머지 3명의 이름만 올라갔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응답인 것을 체험했고, 중학교를 졸업할 때 까지 공부를 열심히 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정말 조용히 살았습니다. 지금의 저는 아직도 음란에서 제대로 못 빠져나오고, 열등감과 인정중독을 달고 삽니다. 차라리 뭐라도 열심히 하면서 인정을 바란다면 말이라도 될 거라고 생각하는데 공부고, 운동이고, 교회고 그냥 설렁설렁 다니면서 인정을 바라는 저입니다. 앞으로는 더 제 모습을 보고 고치는 적용을 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