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문 고등부에서 예배팀으로 섬기고 있는 96또래 박성찬 스텝입니다. 저는 모태신앙으로 태어나 교회는 당연히 나가는 것으로 알고 지냈습니다. 초등학교 때는 학원에 가기 싫어서 학원을 빠질 때가 있었는데 그럴 때면 부모님에게 크게 혼났습니다. 그렇다보니 학원에 가기 싫을 때마다 집을 나가기 시작했고, 그 횟수가 늘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어머니는 이런 제가 잘못된 길로 가진 않을까 걱정하셨고, 초등학교 4학년 때 어머니 친구 분이 계신 필리핀으로 보내셨습니다. 하지만 그 학교는 한국에서 문제아들이 많이 오는 학교였고, 저는 그런 형들을 보며 형들의 방황이 멋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형들의 방황하는 모습들을 하나 둘씩 따라 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다행히도 그 학교가 기독교 학교였기 때문에 매주 예배를 드릴 수 있었습니다. 어머니의 기도 또한 있었기에 나쁜 길로 빠지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형들의 방황을 따라 하기 시작했을 때 가장 먼저 따라했던 행동은 폭력은 먼저 배운 것은 폭력이었습니다. 형들의 말을 듣지 않으면 맞았고, 저 또한 저의 말을 듣지 않는 동생들을 때리곤 했습니다. 선후배 관계를 관리하면서 그게 멋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세상적으로 보여 지는 것에 집중하며 살았습니다. 그렇게 6년이란 시간을 필리핀에서 지내던 중 갑자기 저의 마음의 외로움이 생겼습니다. 사람만을 바라보며 살아왔고 보여 지는 게 중요했던 저에게 외로움은 견딜 수 없었습니다.
저는 2주 동안 밤마다 엄마에게 한국에 가고 싶다고 울며 전화했고, 결국 한국에 고등학교 1학년 때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저의 것이 아닌 항상 남의 모습들을 닮아왔기에 자존감도 없었고, 1년을 꿇었기 때문에 학교에 적응하는데도 힘이 들었고 외로워서 가족만 있으면 될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한국에 와서 달라진 것은 없었습니다. 두 살 어린 남동생의 방황과 아버지의 알코올중독, 어머니의 잔소리는 저의 생각과 너무 달랐고 저의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필리핀에서 배웠다 피지 않았던 담배를 피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중 어머니가 인터넷으로 말씀을 듣고 우리들교회가 좋다며 가족을 우리들교회로 데려 오셨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자존감이 낮아 공동체 생활이 힘들었지만, 시간이 지나자 점점 괜찮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고등부 수련회도 너무 가기 싫었는데 가면 갈수록 눈물을 흘리며 찬양하는 시간이 좋아졌습니다. 하지만 항상 그 때 뿐, 저의 생활은 바뀌는 것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다 고등부를 졸업하고 청년부에 올라가 처음 청년부 수련회를 가는 날 김양재 목사님이 눈물 흘리시며 말씀을 전해 주시는 모습에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날 기도하며 진심으로 하나님이 저를 위해 십자가의 못 박혀 죽어주셨다는 것이 믿어졌습니다. 그날 이후 조금씩 말씀이 들리기 시작하고 큐티도 회복되어지고 저의 죄도 조금이나마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마냥 싫었던 부모님인데 내가 한 번이라도 순종한 적이 있나 생각 해 보니 없었고, 방황만 하는 동생인 줄 알았는데 ‘그 환경을 만들고 폭력을 가르친 게 나구나’ 라는 게 깨달아졌습니다. 말씀이 조금씩 들린다 해도 사실 지금도 저의 삶에 제가 아직 적용하고 있는 부분은 거의 없습니다. 아직도 질서의 순종하지 못하고 조금만 저를 정죄하면 혈기가 나며 남에게 보이는 것이 너무도 중요하고 많은 죄를 지으며 살고 있습니다. 그래도 큐티가 회복되어지면서 조금씩 저의 죄를 보게 되고 회개할 수 있게 되었고, 고등부 스텝을 섬기면서 자존감도 많이 회복 되어진 것 같습니다. 청년의 때에 공동체에 붙어있으며 섬길 수 있음에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잘 붙어있을 수 있도록 기도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