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문 고등부 미디어팀 간사로 섬기고 있는 89또래 송부영입니다. 저는 불신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술을 마시면 가족을 괴롭히고 자해하는 아빠, 모든 걸 참아내고 늘 인상 쓰며 잠드는 엄마, 그리고 여동생과 함께 불안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제가 중학생이었을 때, 부모님이 하시던 공장일이 갑자기 끊기게 되고 무리한 대출까지 받게 되었습니다. 아빠는 하루가 멀다 하고 술을 마셨고, 엄마는 식당에 나가 생계를 이어가셨습니다. 저는 친구들과 있을 때는 온유한 모습을 유지했지만, 집으로 돌아와 술 마신 아빠를 보면 참을 수 없는 화가 올라왔습니다. 어둡기만 한 내 미래를 생각하며 아빠를 증오하고 또 증오했습니다.
2005년 어느 날, 아빠가 갑자기 집을 나가게 되고 전화로 많은 돈을 요구해 오자 저는 엄마와 여동생을 부추겨 셋이 함께 집을 나오게 되었습니다. 당시 담임선생님 도움으로 쉼터에서 지내던 중 전화 한통을 받게 되었습니다. 아빠가 스스로 목숨을 끊으셨으니 집으로 돌아오라는 것이었습니다. 이후 저의 삶을 지배한 감정은 죄책감과 허무였습니다. 아빠가 나의 일기장을 보고 죽음을 결심했을지도 모른다는 죄책감, 아빠 친척들이 우리를 원망할거라는 생각이 저를 괴롭혔습니다.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그래, 지난 일은 잊어버리자. 생각해봤자 변할 건 아무것도 없다’고 마음먹자 제 안에 허무가 찾아왔습니다. 삶의 의미가 없었습니다. 대학에서 영상을 공부하며 무분별한 영상들과 가치관을 접했습니다. 처음에는 무언가 채워지는 것 같았지만 시간이 지나자 더 큰 허무가 찾아왔습니다. 아빠의 죽음으로 인해 죽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두려워하고 분노했으나 저의 마지막 도피처도 늘 죽음이었습니다.
그러다 2011년 4월 먼저 우리들교회를 다니기 시작한 친한 친구의 “우리 교회 한번 올래?”하는 말에 그냥 한 번 와 본 것이 지금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저는 제 이야기를 하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의지하지 않았습니다. 사실 누군가와 깊게 관계 되는 것이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목장에서 제 이야기를 하는 것 자체가 어려웠습니다. 그런데 한 텀, 두 텀 훈련을 받으며 꺼내기가 괴로워 눈물만 났던 아빠의 이야기를 계속 하게 되었고 점점 그 사건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땐 나만 괴로운 줄 알았는데, 아빠도 괴로워서 술을 마셨겠구나. 그럴 수 있었겠다’ 하며 8년 만에 아빠를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에스겔 16장 6절 “내가 네 곁으로 지나갈 때에 네가 피투성이가 되어 발짓하는 것을 보고 네게 이르기를 너는 피투성이라도 살아 있으라 다시 이르기를 너는 피투성이라도 살아 있으라 하고”… 삶의 의미가 없던 저에게 이 말씀이 큰 위로가 되었고 깊은 허무에서 건져주심을 경험했습니다. 지금은 그저 살아있음에 감사합니다. 결정적으로 해석이 되지 않던 아빠의 죽음 역시 작년 사무엘상 설교를 통해 ‘사울은 그렇게 자살하였지만 하나님은 그 후손을 버리지 않으셨다’는 말씀을 통해 위로해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내가 우리들교회에 왔을 때 만나주신 것이 아니라 태초부터 함께 하셨고 우리 가족을 절대 버리지 않으시겠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지금은 졸업 후 계속 하던 영화 일을 그만두었습니다. 주일만 겨우 지킬 수 있는 환경과 이제는 체력이 받쳐주지 않는 것, 무엇보다 나의 악하고 음란한 마음 때문입니다. 아버지의 사랑을 받지 못해 사람들의 마음을 훔치려 애썼던 압살롬의 모습이 내게 있다는 것을 깨닫고 회개했기에 일상생활 잘하는 적용을 하려 노력중입니다.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마음이 곤고한 가운데 이렇게 고등부를 섬길 수 있음에 감사합니다. 매주 고등부 친구들의 간증을 들으면서 ‘내가 청소년 시기에 하나님을 만났더라면 우리 가족이 다른 선택을 했을 수도 있었겠다.’ 생각하곤 합니다. 그리고 나도 예수 믿는 부모가 되어 나의 자녀들을 말씀과 공동체 안에서 양육해야지, 기도합니다. 기도해주세요. 아직 믿지 않는 엄마와 여동생, 여동생의 가정, 아빠 친척들의 구원을 위해서도 기도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