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2 박영준입니다. 저의 마음속은 독기와 혈기와 증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아빠를 미워하기 때문입니다. 저희 가정은 겉보기에는 너무도 멀쩡합니다. 아빠가 바람을 피우시지도, 돈을 안버시는 것도 아닙니다. 술을 드시고 물건을 깨부수지도 가족들을 때리지도 않으시며 더욱이 이혼가정도 아닙니다. 하지만 저의 고난은 가족관계, 특히 아버지와의 관계입니다. 아빠는 대학교 교수이십니다. 어려서부터 공부를 무척 잘하셨습니다. 완벽주의에 전혀 남을 감정적으로 이해하지 못하시고 무엇이든 마음에 들지 않으면 지적부터 하시며 화를 참지 못하십니다. 아버지의 이러한 모습은 가족들에게 고스란히 행해졌습니다. 그로인해 부모님은 매일같이 싸우셨습니다. 아빠는 매일같이 엄마에게 혈기 가득한 목소리로 소리 지르셨으며 엄마는 항상 당하고 울기만 하셨습니다. 엄마의 그 스트레스는 곧바로 저에게 이어졌는데 아빠가 엄마에게 한 것처럼 엄마는 저에게 자주 화를 내셨고 두세살 즈음 30cm자로 엄마에게 미친 듯이 맞은 기억이 아직도 머릿속에 남아있습니다.
어려서부터 저는 아빠가 정말 싫었고 그에 대한 분노는 쌓여만 갔습니다. 아빠가 독기 가득한 표정으로 소리 지르는 모습은 저에게 공포로 기억됩니다. 저 또한 아빠의 주 타겟 이었습니다. 아빠만큼 공부를 잘하지 못했기에 언제나 저를 무시하였고 저의 행동을 일일이 지적하고 미친 듯이 화를 냈습니다. 언제나 화가 난 표정을 하고 있었고 저를 이해해주는 순간은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아빠가 어떤 일에 집중하고 있을 때는 발소리만 나도 그것으로 트집 잡고 윽박질렀습니다. 그런 부모님도 한 가지 의기투합 하는 것이 있었는데 바로 저의 공부에 관한 것입니다. 저를 과학 고등학교에 보내겠다며 초등학생 때부터 학원을 미친 듯이 돌리셨는데 성적이 잘 안 나오면 언제나 혼이 났습니다. 저는 정말 의지할 곳 하나 없었습니다. 초등학생 때부터 자살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수없이 했고 얼굴을 손톱으로 긁는 자해가 시작되었습니다. 중학교에 입학하고 점점 몸집이 커지면서 아버지에게 맞서기 시작했습니다. 중2때 반항심에 노는 친구들과 어울리며 술 담배를 하고 놀러다녔습니다. 하지만 공부를 손에서 놓지는 않았습니다. 다행히 중3때 전학을 가면서 친구들과의 연락과 함께 술 담배도 끊어졌고 고등학교 입학 후에는 전혀 손댄 적이 없습니다.
중3이 되면서 아빠와의 전면전이 시작되었습니다. 한번은 아빠와 싸운 후 저는 분노를 주체하지 못하여 이성을 잃고 피가 흐를 정도로 제 얼굴을 긁고 온 몸을 미친 듯이 뜯었습니다. 이 사건 이후로 저희 가족은 정신과에 다니게 되었고 아빠와 저, 그리고 동생은 우울증 약을 복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약 복용과 상담치료도 병행했지만 아빠에 대한 저의 분노는 더욱 뿜어져 나왔습니다. 중3때 또 한 번 큰 사건이 있었는데 그 때 처음으로 아빠한테 직접 반말하고 욕하며 대들었습니다. 그 때 아버지는 크게 충격을 받으신 나머지 통곡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때부터 저는 아빠를 본격적으로 개무시하기 시작했습니다. 고1이 된 후에는 정말 수없이 직접적으로 아빠와 부딪혔고 아빠 말은 언제나 건성으로 대답했으며 눈도 쳐다보지 않았습니다. 제 마음속은 혈기와 증오로 가득 차 썩어 문드러져갔습니다. 저는 속으로 아빠를 수천번은 죽였습니다. 작년 여름, 매우 큰 사건이 또 벌어졌습니다. 아빠와 싸우다가 화를 주체할 수 없어 집에 있는 물건들을 마구 집어던지고 부쉈습니다. 이성을 잃고 눈이 뒤집어져서 아빠에게 혈기를 쏟아부었습니다. 아빠는 경찰을 불렀고 어떻게 자식을 신고할 수 있는지, 아빠의 그러한 태도에 분노가 치밀어 그 앞에서 칼을 집어 들었습니다. 하지만 아빠를 찌를 수는 없기에 그저 도망치듯 집을 나와서 학원으로 향했습니다. 그리고 아무렇지 않은 듯 공부를 했습니다. 저는 격리조치를 당했고 그날 밤 이후로 이틀동안 집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이 사건 이후 정지훈 목사님께서 저희집에 심방을 오셨습니다. 정지훈 목사님은 아빠도 지금 매우 힘든 상황에 있고 우리들교회에 나오는 제가 아빠를 먼저 이해해야한다고 하셨습니다. 아빠는 현재 할아버지 할머니를 뵙기 위해 원래 다니던 교회에 나가고 계십니다. 그 때 처음으로 머리로나마 이해가 되었습니다. 저희 아빠는 지금 매우 힘든 상황에 놓여있습니다. 지금 학교에서의 일이 매우 안 되시는 것 같습니다. 엄마말로는 아빠가 학생 가르치는것도 잘 안되고 논문도 잘 쓰지 못하고 점심에는 같이 밥먹을 사람이 없어서 자기 교수실에서 혼자 도시락을 드신다고 합니다. 엄마는 자주 그 얘기를 저에게 하셨고 vip캠프에 다녀온 후로는 매일 큐티도 하고 의식적으로라도 아빠를 이해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아빠를 덜 미워하고 혈기를 줄이자’라는 기도제목으로 기도했습니다. 그저 힘들다고 하나님께 불평만하고 큐티도 안하던 저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큐티를 할 때 마다 아빠의 구원을 위해 의식적으로, 그저 머리로라도 기도했습니다. 모든 구절을 아빠와 관련해서 이해하려고 노력했고 매일매일 적용에 아빠를 덜 미워하자고 써놓았습니다. 그리고 이번 겨울 수련회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왔습니다. 처음으로 아빠를 위해 눈물로 기도하였습니다. 우리아빠 제발 살려달라고. 우리아빠가 지금 우리 가정에서 제일 힘든 사람이라고. 직장에서도, 심지어 자기 자식들한테도 개무시 받는 아빠는 정말로 의지할 곳 하나 없고 가장 마음이 공허한 사람이라고 눈물로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저에게는 이러한 아빠를 용서하고 구원을 위해 힘쓸 능력이 없다고. 저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저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하나님께 의지하며 가겠다고. 아빠를 용서할 용기와 아빠의 구원을 위해 힘쓸 제가 되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고백하였습니다. 아빠가 구원받기 위해서는 우리들교회에 나와야하고 그 첫 단추는 저로부터 시작한다는 것이 마음으로 이해되었습니다. 솔직히 지금 저는 전혀 달라진게 없습니다. 여전히 아빠를 보면 분노가 치밀어 오릅니다. 하지만 이렇게 매일 말씀보고 가다보면 하나님께선 차차 저의 혈기와 증오를 없애 주실거라 믿고 아빠의 구원이 언젠가 현실이 될거라 믿으며 하나님만 보며 앞으로 나아가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저의 장래희망은 패션에 관한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현재 의상학과를 목표로 열심히 공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제 앞길을 인도해 주시고 저의 달란트와 열정이 하나님께 쓰이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