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텝 허예인입니다.
모태신앙으로 어렸을 때부터 교회를 다니며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상처가 많아 결혼으로 도피하셨던 엄마와 폭력적인 집 안에서 자란 아빠 사이에서 부모님의 모순적인 모습과 행동으로 인해 저는 자존감 낮고 외로운 아이로 자랐고, 어렸을 때부터 사이가 안 좋았던 부모님 때문에 누구와도 관계가 어려웠습니다. 친구들 사이에서 늘 은근히 소외받고, 소외받는 줄도 모르다가 그 사실을 알게 되면 외로움과 자괴감에 견딜 수 없어했습니다. 첫 째였지만 의존적이었던 저는 어른스러운 행동들을 요구받았고, 엄마에게 인정받고 싶어 했지만 엄마는 칭찬을 못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때문에 제 안에 항상 인정받지 못했다는 열등감과, 제 자신에 대한 미움이 있었기 때문에 그것들을 숨기고 상처받아도 안 받은 척, 괜찮은 척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저의 모습을 보며 어릴 적부터 교회 사람들과 학교 선생님들이 ‘예인이는 성숙하다, 어른스럽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 때부터 저는 더 성숙한 척, 생각이 깊은 척하며 친구들을 무시했습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제가 죽을 것 같았습니다. 그럼에도 끊임없는 관계훈련과 하나님을 찾는 시간들을 통해 놀랍게 저를 변화시켜주시고, 부족함이 많은 저에게 좋은 사람들을 보내주셔서 회복이 되고 있을 때쯤에, 아빠가 가출하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아빠는 청년시절부터 목회자의 꿈을 가지고 계셨지만, 현실적인 엄마와 늘 돈 문제로 다투시며 제가 중3때까지 그 꿈을 미루셨습니다. 제가 중2때에는 목회를 하겠다고, 모든 경제활동을 그만두시고 가정예배를 드리며 5년 가까이 아무 일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생활비는 대출금으로 메꿔 빚은 늘어갔습니다. 생활의 거의 모든 것이 빚으로 유지되는 것들이었지만, 극단적이고 하나님을 믿기는 하는지 의심스러운 엄마와는 다르게 아빠는 저와 동생에게 너무나 좋고, 든든한 버팀목 역할을 해주었습니다. 그래서 아빠가 하는 일은 하나님이 함께 해주실 거고, 다 잘 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빠가 저희에게 그렇게 말하고 행동했기 때문입니다. 어느 날, 평소처럼 엄마와 아빠가 크게 싸우고 답답한 마음에 엄마와 대화를 했는데, 이제까지는 알지 못했던 아빠의 이중적인 모습을 알게 되었습니다. 엄마에게 5년 안에 죽을 것이라느니, 너는 마귀라느니, 영적인 학대를 해왔고, 가장으로서, 남편으로서 무책임한 것들에 대해 듣게 되었습니다. 혼란스럽고, 엄마를 사랑하지 못하는 아빠가 이해되지 않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아빠를 전처럼 살갑게 대하지 못했습니다. 아빠가 무슨 얘기를 해도 지지해줄 수가 없었습니다. 아빠는 사역을 핑계 삼아 점점 집에 들어오지 않았지만 아빠가 그런 식으로 집에 잘 들어오지 않은 일이 이전에도 있었기에 처음에는 크게 걱정하지 않았고 신경도 쓰지 않았습니다. 엄마가 ‘아빠가 또 집에 들어오지 않으니 연락을 해 봐라’라고 하기에 그제서야 연락을 해봤는데, 답장이 오지 않았습니다.
그게 마지막이었습니다. 고3이었던 저에게는 큰 충격이었고, 심한 무기력과 방황을 겪으며 등교도, 입시도, 생활도 제 마음대로 하고 살았습니다. 아빠가 집을 나간 것이 제 탓인 것 같았고, 늘 견디기 힘들었던 엄마와 함께 살아야 한다는 것이 힘들었습니다. 엄마와는 대화도 안됐기에 더 그랬습니다. 교회도 다니기 싫었고, 앞에서 설교하는 목사님들이 가증스럽기도 했습니다. 다 아빠처럼 자신의 안 좋은 부분은 숨기며 거룩한 척 하는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난생처음으로 교회와는 상관없는 주일들을 보내는 중에 친구의 제안으로 우리들 교회를 오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설교만 한 번 들으러 갔다가 전도축제 영상만 틀어주기에 설교를 못 들어서 그 다음 주에 또 오게 되고, 그 주일에는 간사님이 설교를 하셔서 목사님 설교 들으려고 3주를 계속 나오게 되었습니다. 제가 이제까지 다녔던 교회와는 다르게 제대로 된 예배당도 없었고, 창고 같은 곳에서 찬양을 드리니 매 주 여름성경학교 하는 느낌이었습니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은, 설교가 설교가 아닌 간증 같다는 점이었습니다. 안 그래도 절 데려 온 친구 부모님이 교회까지 태워다 주시면서 ‘우리 교회는 너무 솔직해서 놀랄거야.’ 라고 해주신 말이 무색하게 놀라운 걸 떠나서 거부감이 들 정도였습니다. 그럼에도 계속 다니게 된 것은 단순히 있었던 일을 솔직히 말하는 것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말씀으로 해석하시고, 또 적용하는 것들을 몸소 설교해주시는 것에서 신뢰가 생겼던 것 같습니다. 절대 말할 수 없는 것들을 교회 안에서 나누는 것 자체가 저에게 특별하게 다가왔습니다. 너무 말하고 싶었습니다. 힘들다고, 힘들었다고. 상대의 반응이 무서워 괜찮은 척 하는 것이 아닌, 서로의 아픔을 공유하고 공감하고 기도해주는 공동체가 필요했기에 변덕심한 제가 지금까지 붙어있는 이유입니다.
감사하게도 우리들 교회를 다닌 지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제 삶의 전반이 해석되는 은혜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아빠가 집을 나간 것은 제 탓이 아니고, 하나님은 이 사건을 통해 우리 가족을 더 본질적으로 다루기 원하셨다는 것과, 저는 늘 피해자라고만 생각했는데, 저도 제 상처를 핑계 삼아 가장으로써 힘들 엄마를 더 몰아붙이는 사람이었다는 것, 믿음이 있다고 생각하며 다른 사람들을 정죄하면서 엄마가 상처를 주면 곧이곧대로 받아 자해하고, 제 생활이 마음대로 되지 않으면 바로 무기력해지는 완벽주의에 교만한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늘 열등감과 무기력함을 왔다 갔다 하면서 하나님이 저에게 주신 하루들을 낭비하고, 하나님도 저를 버릴 수밖에 없을 거라고 단정 지으며, 내 편은 아무도 없고 이게 다 부모님 탓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사람에게는 버려질 수밖에 없는 죄와 아픔을 가지고 있음에도 하나님은 그 아픔을 가진 저를 머릿돌로 세워주신다고 하는 마가복음 12장 말씀을 큐티하고 나서는, 사람에게 버려지지 않기 위해 애쓰며 몸과 마음을 너무 쉽게 주는 제 모습을 보고 오히려 하나님이 쓰기 좋게 사람에게 버려짐을 두려워하지 않을 용기를 달라고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2월 3일 수요예배에서 담임목사님이 ‘순종은 예수님을 무서워서가 아니라 사랑하기 때문에 하는 것이라서 예수님이 요한에게 세례 받을 때 성령이 무섭게 임하는 것이 아니라 비둘기 같은 모습으로 임하는 것이다’라고 하셨는데, 못하면 혼내는 하나님이 아닌, 선한 모습으로 저를 만나주시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지내는 중입니다. 근래에는 사람으로 채우며 끊임없이 연애하던 저의 모습을 보고 혼자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그 마저도 생각지도 못한 방법으로 제 틀을 깨부수어 주셔서 회복하는 중입니다. 사람을 만나는 것도, 잊어야하는 사람을 잊는 것도, 눈 뜨고 살고 쉬는 것 어느 하나 제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없기에 큐티하며 교회에 붙어만 있습니다. 여전히 외로워서 사람 찾는 죄가 끊어지지 않아 낙담될 때가 많지만 그럼에도 올 한 해 제 자신을 사랑하고 제 하루를 사랑하며 잘 보낼 수 있도록 기도해주세요. 엄마와 동생도 교회에 잘 붙어가며 생활에 기쁨이 회복될 수 있도록 기도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