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3 안현재입니다.
제가 어렸을 때 저희 가정은 밖에서 보면 정말 완벽한 가정 이였습니다. 엄마는 미국에서 대학을 나오셨고, 아빠는 2007년 당시 유전자검사 시장에서 점유율60%, 매출 54억원, 영업이익 1억5000만원을 창출해내는 바이오벤처 기업의 사장이셨습니다. 제가 어릴 때 기억은 거의 없지만 제 주변의 사람들은 전부 저에게 좋은 말만 해주었습니다. 하지만 그때 저희 부모님은 매일같이 싸우셨고, 저는 그날 해야 할 공부를 다 마치지 못하면 엄마한테 국자, 백과사전, 대걸레 봉 등으로 맞으며 쌍욕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후에 알게 된 사실은 아빠가 결혼 이후로 대략 10년 동안 만나는 여자가 두 명이 있다는 것 이였습니다. 저는 너무 어렸는지, 아니면 아빠가 원체 집에 잘 안 들어와서 인지 그렇게 신경을 쓰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2009년, 회사가 폐업하게 되고 저희 집은 삼성동 90평 남짓 되는 빌라에서 두어 차례 이사한 후 16평 남짓 되는 빌라로 이사하게 됐습니다. 이러한 가정사를 가지고도 저는 중학교에 올라갈 때 까지도 너무 해맑았고, 비정상적일 정도로 정상적으로 자랐습니다. 저는 그때도 우리들 교회를 다니고 있었는데, 제 또래 애들이 저보다도 힘들어하는 것을 보고 저는 ‘아 나는 괜찮은 편이구나’ 하면서 스스로 상처를 묻었습니다. 하지만 중학교에 올라와보니 굳이 바르게 안 살아도 즐겁게 살수 있다는 것을 알았고, 그렇게 놀다보니 저뿐만 아니라 제 친구들도 질이 나쁜 애들로 채워졌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강자는 아니었습니다. 저는 제가 제일 싫어하는 아빠의 혈기 본받아서 그 혈기를 약한 애들한테 풀었고, 강자한테는 그 혈기를 굽히는 찌질이였습니다.
그러다가 무리 중 한 친구가 반에 한 명씩 있는 음침하고 만만한 애를 따돌리기를 시작했습니다. 저는 그때 그 왕따가 좀 심한 장난 수준이라고 생각했었고, 실제로 경찰서에서 조사 때문에 연락이 왔을 때도 증인 정도로 소환되는 줄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왕따를 당한 애가 지목한 4명중 한 명이였고, 그 뒤로 3주 동안 경찰서에 불려가야 했습니다. 그리고 검찰로 이 사건이 넘어가기 전에 합의 할 수 있는 2달이라는 시간이 주어졌고, 저는 수련회를 가서 내가 상처 많은 사람이라고 고백하면서 제 모든 상처를 주님 앞에 내려놨습니다. 그렇게 수련회가 끝나고 1주일 뒤에 왕따를 당한 아이가 이 사건을 그냥 취하하였고, 심지어 저는 학폭위에 불려가지도 않았습니다.
물론 저는 이때 너무 은혜를 받았고 주님을 만났지만, 사람이 쉽게 바뀌지는 않았습니다. 저는 그 뒤로 2년동안 아무 생각없이 즐겁게 살았고, 펜은 일주일에 두번, 수학학원 갈때만 잡았습니다. 그렇게 살다보니 고1 3월 모의고사에서 영어는 8, 국어 5, 수학 3등급을 맞게 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하지만 제 안의 상처는 그때까지 남아있었고, 저는 열등감에 사로잡혀서 주변의 모든 사람들에게 2~3등급정도 나왔다고 거짓말을 하고 다녔습니다. 부모님한테 중간에 몇 번 들켜서 부모님이 자퇴를 고민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어찌어찌 버텨서 고2때부턴 펜을 1주일 내내 잡았습니다. 물론 공부하는 법을 몰라서 해매고, 이미 망한 내신에 기대를 걸다가 다시 망하느라 여름방학까지 날려먹었습니다.
지금 점수도 자랑할 만한 점수는 아니지만 그래도 대학은 어떻게 갈수 있을 것 같아서 다시 한 번 주님이 살아 계시다는 것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아직 저에게 남아있는 가장 큰 죄악은 음란입니다. 이번 여름 수련회 때 제가 이름은 기억을 못하지만 음란 그 자체로 테드를 하셨던 선생님한테 기도를 받아서, 매달 p2p사이트에 만원씩 결제하던 것을 세 달에 한 번씩으로 줄이긴 했지만, 아직도 끊지 못한 것은 사실입니다. 이 음란의 죄는 제가 수련회를 갈 때 마다 앞에 나가서 기도를 받게 했는데, 정말 이제는 끊어지기를 원합니다. 제가 이렇게 간증할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하고, 주님께도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