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1 배고은입니다.
저의 고난은 알코올 중독의 아빠입니다. 저는 모태신앙으로 태어나 엄마를 따라 교회를 다니는 것은 당연한일이였습니다. 저희가족은 3남매로 언니 남동생 저로 두살터울씩 입니다. 아빠는 알코올중독으로 항상 술을 드셨는데 어릴 때 가장 생각나는 일 중 하나는 교회를 간다는 엄마를 눕혀놓고 청소기로 엄마머리를 친 것 입니다 그때 당시 제 나이가 아마도 4살5살쯤인걸로 기억합니다. 그렇게 항상 술.가정싸움등으로인해 엄마와 아빠는 이혼을 하셨습니다. 그렇게 저희는 외할머니 집으로 가서 살게 되었습니다. 할머니가 어릴 적부터 3남매 중 저를 제일 이뻐해주셨기에 평화롭게 지내며 제가 하고싶은 걸 쉽게 얻으며 살았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할머니 집에서 지내다가 엄마가 가정방문교사로 돈을 모아 새 보금자리를 마련하였습니다 집을 잘치우지않아 집이 더러웠지만 저희 3남매와 엄마는 잘 지냈습니다. 어느 날 동생과 아빠가 오랜만에 만나 찜질방을 가는 날이 있었는데 그 다음날 엄마가 동생을 데리러 갔어야했는데 데리러 가지 못해 어린동생은 새집주소를 아빠에게 알려주어 아빠와 같이 저희 집을 왔습니다 오랜만에 보는 아빠라 처음에는 반가웠지만 불안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하루만 묵고 가겠다는 아빠에 말을 듣고 안심을 하였지만 아빠는 그다음날도 집에 묵으시며 저희 집에서 사셨습니다 아빠가 집에 오시고 첫날이 지나고 다음날부터 아빠는 변해갔습니다 둘째날이 되자 욕을 하시기 시작했고 그이후로 부터는 저희집에 계속 사시며 술을 드셨습니다 항상 배란다에는 술병이 30병에서~50병정도 배란다에 차있었으며 하루도 화목하게 넘어가는 날이 없이 부부싸움 등 싸움이 잦았습니다. 아빠를 원망하며 살수밖에 없었습니다. 아빠가 오실 때쯤 저는 친구 사이 관계 속에서도 힘든 일을 많이 겪었으며 전학을 가는 사건도 생겼었습니다. 아빠와 특히 성격이 더 맞지 않아 외할머니 집에서 통학을 하며 학교를 다니기도 했으며 전학은 고모네로 전학을 가게 되었는데 공주까지 멀리가게 되었습니다. 저 혼자만 가게 되어 어린나이에 엄마가 많이 보고싶기도했습니다 그곳에 친척오빠둘이 있었는데 함께 사는 것이 너무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전학을 오기로 하였는데 다시 집으로 가면 힘들 것 같아 다시 외 할머니 집으로 가기로 했습니다. 그곳에서 살며 편한 것도 있었지만 혼자 외로워 갑자기 울기도하고 가끔 엄마가 언니와 동생을 데리고 왔는데 그때마다 언니와 동생과 싸우며 안좋게 헤어지길 반복했습니다. 그렇게 엄마가 갈 때마다 가슴이 너무 답답했습니다. 저는 가족 사이에서 왕따였습니다 제가 성격이 고집도 많고 순한 성격은 아니라 밖에서는 잘 그러지 않는데 가족에게는 양보란 없고 항상 싸우려고만 들어 그럴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 때면 정말 미쳐버릴 것 같았고 너무 먹먹한 기분이 들어 슬펐습니다.
중학교부터는 학교를 집근처에 다니기 위해 집에서 살자 라는 마음을 가지고 집에갔습니다 할머니집에서 살때 집에 왔을때마다 아빠는 저에게 폭언을 엄청 하셨는데 집에 오자마자 아니나 다를까 술을 드시고 계셨고 제가집 에 없을땐 아빠가 언니와 남동생을 괴롭혔다가 1순위로 괴롭히던 순서가 언니였다가 그다음으로 제가오자마자 순서가 바뀌어 버린 것이었습니다. 아빠의 불같은 성격을 저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아빠와 저는 너무 닮았고 그렇기에 아빠는 저를 정말 힘들게 했습니다. 정말 억울할 때가 많았습니다. 이유 없이 욕을 듣는 날이 많았고 그 중 저에게만 그렇게 더 욕을 하니 죽고 싶단 생각 밖에 들지 않았었습니다. 그때당시에도 전학을 다시 집근처로 오게 되며 친구들 관계 속에서 힘들었습니다. 우리들 교회를 오게 된 것은 그전에 다니던 아는 집사님소개로 오게 되었는데 처음에 우리들 교회를 왔을 때는 정말 이상했습니다. 처음엔 엄마를 따라 어른예배를 드렸는데 어떤 남성분이 간증을 하시는데 그런 것을 다른 교회에서는 볼 수 없었으니 자신의 창피한 얘기를 많은 사람들 앞에서 하는 것이 신기하기도 했고 이상하기도 했습니다. 처음에는 왜 엄마는 이렇게 멀리 교회를 다니려고 할까 정말 싫다 우리들교회가 뭔데 이럴까? 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교회를 계속 다니다보니 내가 기존에 다니던 교회하고는 많이 다르며 정말이제는 이교회가 아니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들교회 에서 처음 들린 말씀이 고난이 축복이다 라는 말씀이였는데 그 당시 정말 많은 고난이 있었기에 너무나 힘들었지만 이일들이 모두 축복이라는 말을 듣고 마음에 안정이 조금 되었던 것 같습니다. 우리들교회를 다니며 나눔을 통해 제 얘기를 할 수 있었던 것이 가장 좋았습니다. 우리들교회를 다니면서 아빠가 달라지는 것은 없었지만 공동체 안에 붙어있었습니다. 요즘 고난은 거식증과 폭식증입니다. 잘못된 다이어트를 한 번했다가 7kg정도를 감량했다가 요요가 심하게와 다시 살이 찌개 되었고 그이후로 밥을 먹게 되면 토를 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이 어렵지 그이후로는 장소를 가리지 으며 학교에서 까지 점심을 먹고 토를 하며 토를 하지 않으면 불안해서 살 수 가 없었습니다. 토를 하고 싶지 않을 때는 쫄쫄 굶다가 또 배가 고프면 엄청난 양의 음식들을 먹었습니다. 빕스 캠프에 가서도 나눔을 했지만 정말 정지훈 목사님보다 더 먹었을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저의 외적인 모습과 열등감 때문인 것 같다는 생각을 가지게 된 것은 우리들 공동체 안에서 나눔을 통해 알게된 것 같습니다 이속에서 저의 우상과 죄패를 볼 수 있었습니다. 어린 시절 혼자 있으며 음란을 쉽게 접했고 음란한 생활속에서 살아갔던것같습니다. 또 요즘은 남자들을 사귀며 고난을 겪습니다. 고등학교에 올라와 3학년 선배와 사귀게 되었는데. 그 선배와 진도를 너무 빨리 나갔으며 세상 가치관 속에선 빠른 것이 아니지만 교회를 다니는 제가 저를 봤을때 너무 죄책감이 들었으며 또 그것을 끊어낼 수 없는 저를 보며 너무 힘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교회를 다니지만 저에게는 말씀이 없었습니다. 이번에 3학년 선배를 만나며 말씀을 회복시켜주셨는데 예레미야 성경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첫사랑을 회복하라' 는 말씀으로 저를 다시 한번 찾아와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저를 사랑한다고 해주셨으며 그러니 하나님 앞에서 떠난 것을 알고 다시 돌아오라는 말씀을 통해 빠짐없이 큐티를 하며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던 와중 저에게 또다시 사건이 찾아왔는데 혼돈 속에서 삶을 살아가던 중 오빠와 연락을 가지고 싸우는 일이 잦았다가 드디어 화해를 했었는데 같은 반 남자애 때문에 핸드폰을 뺏기게 되어 그것을 대충 오빠에게 말하며 연락을 못 할 것 같다고 하자 알겠다고 하길래 이해해주나 보다 라고 생각했지만 점심시간에 무작정자신의 친구들을 데리고 저희 반에 찾아와 그 남자애를 불러 복도에서 반 아이들과 다른반 아이들 앞에서 그아이에게 면박을 주었습니다 그상황을 무작정 피하고 교회 선생님께 연락을 드려 상황설명을 하며 조금 마음을 안정시켜 나갔습니다. 그렇게 다음날 학교를 갔는데 반 남자아이들과는 아무 말도 하지않았고 여자애들사이에서도 겉 돌았고 공부는 하지도 않고 계속 엎드려 누워있기만 했습니다. 엎드려 다가오지 않는 친구들을 보며 울기도하고 관계와 분위기속에서 정말 힘들어했습니다 그렇게 있다가 오빠와도 헤어지게 되었습니다. 오빠와 헤어지며 봤던 말씀이 내 죄를 회개하고 경고의 말씀 즉 심판의 사건 속에서 하나님은 다시 나를 찾고 계신다는 말씀이었던 것 같은데. 이렇게 한 동안 또 큐티 말씀을 보고 수요예배를 나가며 친구들과의 관계도 회복되어 나갔습니다. 지금 또 현재 저에게는 남자친구가 있습니다. 끊어지지 않는 죄들과 우상들이 남아있습니다 그리고 요번에 아빠가 또 췌장염으로 입원하셨었는데 술이 끊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아빠에 술이 끊어지길 간절히 원하고 다시 말씀 속에서 멀어져가고 있는데 저의 죄와 우상을 내려놓고 회개를 통해 하나님 앞에 나아가길 원하며 저희 가족이 말씀으로 회복되길 원하고 아빠의 구원을 위해 기도할 수 있는 제가 되길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