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화목하고 별 탈 없는 가정에서 모태신앙으로 태어났습니다. 외동인데다가 외가에서는 유일한 3대로 온갖 예쁨을 다 받으며 자라왔습니다. 초등학교 5학년 때까지는 사립학교에 다녔으며, 누구에게나 인정받는 우등생이었습니다.
저의 고난은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아이들은 점차 저를 피해 다녔고, 심지어 저와 제일 친한 친구마저도 제 곁을 떠나버렸습니다. 저는 따를 당한 것입니다. 엄밀히 말하자면, 은따. 은근히 따를 당하는 것을 뜻합니다. 학우들뿐만 아닌 무능력한 담임 선생님도 원망했습니다. 직접적인 폭행을 당하는 것이 아니었지만, 저를 향한 그들의 무관심은 과거에 제가 살던 세계와는 너무나도 달랐습니다. 충격과 혼돈, 우울함 등이 공존하는 가운데 저는 끝내 결심했습니다. 아, 내가 바뀌어야겠구나.
새로운 벚꽃이 화려하게 자태를 뽐낼 준비를 하던 이듬해 봄날, 저는 중학교에서 다시 한 번 학생으로서의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6학년 때와 같은 시련과 마주하고 싶지 않아 학교는 그다지 기대되는 곳이 아니었습니다. 그래도 마음속 한편 나름 설렜던 기억이 납니다. 허나, 일은 다시 꼬여만 갔습니다. 문제의 발단은 이와 같습니다. 같이 다니던 친구들이 멀리하는 아이가 있었는데, 나쁜 친구같이 보이지 않아 가까워지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것은 두고두고 후회하게 되었고, 결국 친구들만 나쁜 물이 들게 하고 저 혼자 그 상황을 회피해야 하는 처지에 이르렀습니다. 이윽고 저는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려고 했지만, 때는 이미 늦었습니다. 아마 저의 접근 방식에도 문제가 있었을 것입니다. 결국 저는 다시 혼자가 되었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친구가 있었지만, 그 아이는 제가 아닌 다른 아이들과 어울릴 때면 저는 나 몰라라 했다가 필요할 때만 수차례씩이나 사과 편지를 써 가며 찾는 비겁한 아이였습니다. 저는 그러한 나날들이 괴롭고 지긋지긋했고, 하루빨리 벗어나고 싶었습니다.
그 다음해, 즉 원래라면 다니던 중학교의 2학년이 되어야 했을 때, 아버지의 해외 파견으로 1년 간 미국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개방적인 민중의식과 미국의 열린 문화에 저는 빠른 속도로 적응했습니다. 시차와 학기 초 스쿨버스에 관한 것 말고는 딱히 어려운 점도 없었고, 주변인들은 당연히 제가 원래부터 그 곳에서 살아왔다고 믿었습니다. 그 해에는 친구들도 많이 사귀었고, 세계의 넓고 좁음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선교지에 직접 가서 하나님의 사랑을 몸소 실천하는 기회도 있었습니다. 저에게 있어 2016년도는 하나님께서 주신 회복의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현재 저는 중학교 3학년입니다. 반에는 저를 싫어하는 아이들도 없지 않아 있으나, 친한 친구들이 대부분입니다. 제 입으로 말하려니 쑥스럽지만, 최근 들어 저는 몇몇 친구들이 힘들어할 때 힘을 북돋아주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제가 누군가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게 해 주셨다는 것이 감사할 따름입니다. 하지만, 저는 아직도 정죄와 나태라는 죄를 반복합니다. 아직도 저를 불편해하거나 제 눈치를 보는 친구들을 보면 난 아직 모나고 날카로운 돌이구나 싶습니다.
저의 역경들은 들이킬 때에는 입에 쓰지만 효험이 매우 좋은 약인 것 같습니다. 지금 생각하니, 저는 이로부터 잃은 것보다 얻은 것이 훨씬 많습니다. 저를 편견 없이 바라봐준 소중한 친구를 얻었고, 늘 혼자라고 생각했던 매 순간마다 가족과 하나님께서 제 곁에 서서 '넌 혼자가 아니야'라고 당부해주셨습니다. 그리고 오만과 자만심에 찌들어 있던 제 모습을 항상 되돌아보게 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저는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2년 동안 무시당한 것보다 그 이전에 타인을 훨씬 더 많이 무시했다는 것을. 저는 저로 인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매달리셔야 했던 죄인입니다. 회개하고 돌이키라고 저게 일깨워주셔도 저는 응석만 부릴 뿐입니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저는 하나님의 일을 하기 위해서라면 멸시받고 조롱당하여도 마다하지 않을 거라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