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 가정은 원래 목회자 가정이었습니다. 아빠는 많은 사람들을 도와준, 많은 사람들이 존경하던 좋은 목회자이셨고,저희는 태어날 때부터 알아온 친구들과 함께 교회에서 홈스쿨링을 하며 자라왔습니다.
하지만 어릴 때부터 엄마 아빠는 자주 말다툼을 하셨고, 아빠는 화가나면 집을나가 교회에서 주무시곤했습니다. 가족과 보내는 시간보단 교회에서 지내는 시간이 더 많았던 아빠는 저에게 우리 아빠, 우리가족이 아닌 목사님으로 느껴졌고, 교회 어느 삼촌보다도 불편했습니다. 그래서 그때는 아빠가 퇴근하시고 집에 오시면 항상 무슨 일이 생기진 않을까 눈치를 살피기 바빴고, 비밀번호 누르는 소리가 들리면 긴장이되고 많이 불안했었습니다. 저녁마다 엄마에게 오늘은 아빠 오신데요?라고 물으며 속으로는 안오시면 좋겠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리고 삼년전에 아빠는 엄마가 교회사람들과 자신을 이간질하며, 자신을 인격장애자라고하는 감사는 조금도 없는 여자라고 교회사람들에게 말하시며 엄마를 교회에서 쫓아내셨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빠는 너희가 엄마랑 살면 엄마에게서 나쁜영향을 받고 클것이라며 교회에서 아빠랑살자고 하시면서 엄마랑 살지 아빠랑 살지 결정하라고 하셨습니다. 엄마랑 살면 교회 친구들도 볼 수 없을 뿐더러 학교와 경제적지원도 다 끊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결국 그날 저희 세 명은 엄마가 연수가셔서 집을 비우신 사이에 교회 삼촌 이모들과 같이 집으로가서 울면서 짐을 쌌습니다. 그 날 저녁에 엄마는 집에 잘 있냐며 전화를 하셨는데 아빠가 앞에서 잘 있으니 다른 말하지 말라고 하셔서 잘 있다고 거짓말을 했습니다. 엄마에게 거짓말 한 것도 마음이 너무 괴롭고 힘들었습니다.
다음날 엄마가 집에 돌아오시는 날이었는데 아빠는 저희 셋보고 교회 이모와 쇼핑을 갔다오라고 아빠는 그사이에 집에가서 엄마에게 얘기 하고 오시겠다고 하셔서 조금은 마음을 놓고 마트를 갔습니다. 평소에 그렇게 좋아하던 쇼핑에 옷을 맘껏 사라고 하셨지만, 그냥 빨리 집에 가서 엄마를 보고싶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도중에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고 엄마는 너무 놀라서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거냐며 설명을 좀 해보라고 하셨습니다. 먼저 집에가서 설명을 하시기로했었던 아빠는 집에가시지 않으셨고 엄마는 아무일도 모른 채 이게 뭐냐고 설명이라도 좀 해보고라고하셨습니다. 아빠가 설명하신줄 알았는데 어디서부터 설명을 해야될지 어떻게 말해야될지 머리가 하얘지고 손이 덜덜 떨렸습니다. 몇 주간 엄마는 집에 불을 다 꺼놓고 안방에만 누워서 밥도 잘 안드시고 울기만 하셨습니다. 저희는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지겠지하며, 괜찮은척 적응하려 밤마다 울며 잠들었습니다.
아빠는 엄마가 보고싶을때는 언제든 갔다와도 된다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아빠는 엄마를 보는 횟수를 줄이셨고, 나중에는 잠은 자지말고 그날갔다가 그날 오라고 하시고 교회에서 10분거리였지만 엄마랑 보는 날은 일주일에 한번뿐이었습니다. 그리고 아빠의 말의 거의 세뇌되어 일주일에 한 번 엄마를 보러가서도 엄마는 감사도, 공감도없고, 뭘 잘못했는지도 모르는 사람이라고 엄마에게 상처가되는 말들을 거리낌없이 뱉어냈습니다.
그런데 엄마가 우리들 교회를 다니시면서 어느새부턴가 바뀌시기 시작했습니다. 고맙다는 말과 공감을 자주 해주셨습니다.
그렇게 저희는 교회에서 2년을 지냈습니다. 아빠는 처음엔 교회를 너희 집으로 자유롭게 쓰라고 하셨지만, 저녁은 저희의 공간이 아닌 교회 사람들과 아빠의 게임 공간이었고, 낮에는 학교, 주일은 교회로 저희 방에까지 아기들로 북적거렸습니다. 개인공간도 개인시간도 점점 사라졌습니다. 또 교회에서 생활할 때 아빠에게 생활습관과 생활패턴에 대해 혼이 많이 났었습니다. 화장실에 아빠가 들어오시려고하실 때, 저희가 있거나 씻고있으면, 화장실에 누가있냐며, 왜 이렇게 오래씻느냐고, 10분 내에 씻으라며 사람들 앞에서도 화를 내시곤하셨습니다. 둘째 언니와 저는 그게 너무 무섭고 트라우마가 돼서 많이 울었습니다. 그런 일이 계속해서 반복되자 여기서 사는게 아니라 감시받으며 감옥생활하는것같아 교회에서 지냈던 2년이 저에겐 너무나도 지옥같은 시간이었습니다. 엄마 집과 교회가 같은동네에 있었기 때문에 교회사람들과 있을땐 엄마가있나 살피고, 엄마와 있을때는 교회사람들이 있나 살피며 어느 한쪽에서도 편안하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교회에서 지내고 있을 때 아빠는 교회 직원이신 젊은 이모와 교회 분들에게 자주 안마를 받으시곤 하셨습니다. 안마는 옛날부터 받아오셨기 때문에 별로 문제 삼지 않았었는데 점점 그 이모가 아빠와 불필요하게 가까워 진다고 느껴졌습니다. 밤12시가 되도록 아빠 방에 계실 때도 있었고, 자주 저희를 놓고 두분이서만 외식을 갔다 오고, 영화를 보고 오시곤 하셨습니다. 한창 예민할 나이 때인 저희는 아빠의 외도를 눈치 채고 있었지만 그분이 저희에게 엄마같이 챙겨주셨기에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빠는 그 자매분과 같은 사람과 재혼하고 싶다고 하시며 결국에는 그 자매분과 재혼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저희는 싫다고 반대했지만 아빠는 너희의 관점말고 하나님의 관점으로 바라봐주면 좋겠다고 하시며 모세이야기를 빗대어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의 뜻이면 그렇게 해주시고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면 아빠가 벌 받도록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주일 설교는 점점 설교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바뀌었고 매일매일이 행사의 연속이었습니다. 결국 아빠는 여러 번 그 젊은 자매분과 선을 넘으셨고, 그 바람사건이 결국 교회에 알려져 작년 9월 교회에서 쫒겨나셨습니다.
아빠는 그 이모와 재혼할거라고, 엄마와 이혼하기위해 그리고 이 상황을 설명하기위해 엄마에게 가셨고, 얘기도중에 엄마와 다시 살기로하셨습니다.
그 일이 있고나서야 저는 하나님을 더 간절히 찾게되었습니다. 그리고 엄마의 인도로 9월 중순에 우리들교회에 처음 가서 어른예배를 드리게 됬는데, 2017년 표어가 그는 나보다 옳도다였습니다. 그걸 본 순간, 하나님이 이 모든일을 계획하고 알고계셨다는것과 내 옆에서 지켜주셨다는게 너무 위로가 되었습니다.
제가 상상도 하지 못한 방법으로 우리 가정과 절 지켜주시고 인도해주셨다는 것이 감사했습니다. 그 후에 중등부에서 세가족쌤과 목장쌤, 목사님, 친구들을통해 많이 치유되고 회복되게 해주셨습니다. 요즘은 예전일들에 대해, 전 교회사람들에 대해 화가 나기 시작했고 꿈에서도 전교회 사람들과 거기에서 있었던 일들이 나옵니다. 아빠는 지금 대학에 가셔서 공부를 하시고 계시는데 아빠가 공동체에 잘붙어가도록, 또 제가 외모에 대해 자존감이 낮아 화장하지 않고는 밖에 나가는게 무섭고 힘든데 자존감이 높아질수 있도록, 그리고 제자신한테 만족하지 못하고 남과 끊임없이 비교하는데 만족하지 못하는 죄를 내려놓도록 기도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