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은 나에게 누구신가>
마태복음 26:57~68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왕따 당하는 것인데, 예수님은 이 땅에서 왕따 당하시는 첫 번째 모델이셨다. 또한 야곱의 고통스러운 인생을 통해서 구속사적인 인생에 대하여 배워 나가야 한다.
1>멀찍이 따라 갈 분으로 알고 있으면 안 된다.
베드로는 1~2시간 전에 주님을 버리지 않겠다고 장담했으나, 베드로는 예수님이 대 제사장에 잡히자 멀찍이 쫓아갔다. 멀찍이 갔다는 것은 예수님을 끊지도, 버리지도 못하는 상태에서 멀찍이 따라가는 베드로의 모습이다. 그래도 다른 제자들은 다 도망갔으나, 그나마 베드로는 예수님의 수제자로써..? 주님을 사랑했기에 관계를 끊지 못한 것이다. 우리 자신도 순식간인데 베드로와 같이 이해타산 앞에서 멀찍이 따라가는 동행이 아닌 미행하는 사람이 된다. 주님과의 사랑은 거리와 비례하다. 동행을 하는가? 미행을 하는가?
2>거짓증거 하는 분이 아니시다.
제사장들에겐 예수님이 거추장스러운 존재가 되었다.
예수를 죽일 명분을 찾으면서 회의를 가진 대제사장들과 온 공회들.... 우리는 수많은 모임에서 예수를 죽이려고 하고 있으며 거짓증거 하고 있는가..(모임에서 왕따 시키고, 소곤소곤... 나 살고 너 죽이는 모임. 예수님을 죽이는 모임을 갖는 것이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으면서도 환경 등은 나 살고 너 죽자는 예수 죽이는 일이며, 입을 다 닫고 있는 거짓 증인자들 이다. 누군가가 나의 허점을 찾아 날 넘어뜨리려면 내 속에 허점 없는 예수님에게 넘겨야 우리는 산다. 또한 거짓증거를 내세울 때에는 영적으로 안 통하는 문제 앞에서는 예수님처럼 잠잠해야한다. 잠잠해야 할 때와 말해야 할 때를 알아야한다.
3>예수님만 주님이요, 그리스도이시다.
대제사장이 대단한 증거를 잡은 것처럼 너가 바로 그리스도냐고 물을 때 거짓증거 할 때는 잠잠하시던 예수님은 입을 열어 너가 말하였다. 라고 하셨다. 우리도 잠잠할 때가 있어야 하지만, 입을 열어야 할 때가 있다. 이 지혜는 큐티를 할 때만이 생기며, 나타나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친히 자신이 고난을 받기 위해 자신이 그리스도이심을 처음으로 밝히는 모습이셨다.(사마리아의 여인 물음 후) 그러므로 우리도 가정에서 가족이 구원 되는 쪽에서는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밝혀야 한다. 돈이, 자녀가 다가 아닌 오직 그리스도만이 구원이심을 밝혀야 한다.
우리가 밝혀야 하는 것은 세상적인 것을 손해보고 예수가 그리스도가
되어야만 한다고 밝혀야 삶에서 역사가 일어난다. (내속을 예수님께 넘기자)
예수가 그리스도라고 우리가 아무리 밝혀도 하나님께서 계시하지 않으시면, 그리스도가 구주임을 몰라 참담하다고 대제사장처럼 세상 사람들은 말한다. 우리의 군중심리는 믿을 것이 없다. 그러나 미국의 군중심리는 조 승희 사건을 볼 때 우리와 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군중심리를 이용한 대제사장은 결국 예수님을 사형으로 몰고 갔으며, 군중들을 통해 예수를 때리고 조종하게 하였다. 터키의 선교사님들이 순교를 당하면서도 주님을 그리스도라는 것을 보여 주었듯이 우리는 그리스도를 동행해야지 미행하며 가는 인생이 되어서는 안 된다.
느낀점>
정말 오픈은 지혜롭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무작정 말하고 다니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잠잠하셔야 할때와
말 하셔야 할 때를 아신 것 처럼 나도 지혜롭게 기도하면서
잠잠해야 할 때를 알아야 할것 같다.
설교내용을 주일날 엄마께 들었었는데,
진짜 내가 잠잠해야할 상황을 잘 파악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그리고 나서 몇일 후 언니와 엄마가 싸우는데..
정말 언니가 잘못하고 있다는 생각에 내가 욱해서
언니한테 따져들뻔 하다가 이 말씀이 생각났다.
그리고 마음에 잔잔히 울려오는게 잠잠해야 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기도하면서 참았다. 만약 내가 입을 열어서 막 언니에게 쏘아댔다면
엄마와 언니의 사이는 물론, 나와의 사이까지 더욱 악화 되었을 것이고
언니가 받을 상처를 생각 해보니 정말 잠잠해야 할 때를 기도하면서
찾아야 할것을 느끼게 되었다.
그리고 군중심리에 대한 말씀을 들으면서 지난주에 있던
체육대회 사건이 떠올랐다. 아이들은 그 계주사건의 진상을 알지 못한 채
전교생 : 2반 의 싸움이 될뻔한 적이 있었다.
거기서 보게 된 사건에서.. 난 신경쓰지 않았는데도 내가 7반이라는 이유로
2반애들한테 끌려가서 해명하는것을 들어야 했던 상황과..
모든 반 아이들이 우리과로 몰려와서 2반애들을 묵살하자고 쟁쟁되었던 사건..
한 아이의 저거 2반애들이 잘못한거야! 이말 하나에 전교생이
동요되었던 사건이 떠올랐다. 아.. 그때는 잘 몰랐는데 이 군중심리라는건
참으로 무서운 거구나..라는 생각을 하면서 군중심리에 이끌리기 보단
기도하면서 옳고 그름, 잠잠해야할 때를 알아야 하는 지혜가 나에게 필요함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터키의 순교자 목사님들의 죽음앞에서
그 타이캇이라는 열심당을 용서 한다는 가족들.. 을 들으며
지금도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미묘한 감정에 휩싸여 있다.
그들은 알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용서하는 모습은
나로썬 감히 상상도 하지 못할 일이라 생각했다.
이런사람들도 용서 하는데, 내가 아직 용서하지 못한 사람은 누구인가..
어떤 일이 닥쳐도 나는 이제 용서하는 사람이 되기를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