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나신 주님
이집트 카이로에서 발견된 3000년된 완두콩을 심자 이 콩에서 싹이나고 잎이나고
열매를 맺게 되었는데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바 받은 인간은 왜 부활할수 없다고
생각하는가 ? 예수님의 부활에 대해서 생각해 본다
1.막달라 마리아 가 예수님을 처음 보았다.
예수님의 무덤 앞에 앉은 마리아는 마리아 중에서 가장 비천한 마리아 이다.
무덤을 향하여 앉은것도 막달라 마리아엿고 부활을 처음 보러온 이도 막달라 마리아
였다. 주님만을 바라볼수 밖에 없는 그마음에 하나님이 큰 은혜를 부어주신다.
많고 많은 사람들중에 힘들고 가장 낮은 자가 주님의 무덤을 지키고 된다.
이런 사람에게 주님이 부활을 보여주신다.
2. 주님이 살아나셨는데 무서워 하는 사람이 있다.
번개같은 형상으로 갑자기 오는 사건은 나의 옷을 눈같이 희게 하는 거룩하게 하는
사건인데 본질을 모르기 때문에 낙심하게 된다.
우리는 인간승리를 위해 내맘대로 내건강, 나의 좋은 것들을 지키면서 살았지만
결국 그것이 무덤이된다.
내 활과 칼만 믿으면서 시체 없어진것만 집착하면 안된다.
예수님께서 살아나는 사건은 구원이며 아주 큰 기쁨된 일이지만 이사건을
무서워떨고 두려워 하면 안되고 나를 희게하고 거룩하게 하는 사건임을 깨달아야한다.
3.무서워 하지 않아야할 사건이다.
왜냐하면 이 사건을 주님이 아시기 때문이다.
내가 너무 연약한 것도 주님이 아시기 때문에 두려워 하면 안된다.
또한 말씀하신 대로 살아나셨기때문이다.
우리는 파수꾼은 무서워 할지라도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두려워 해선
아니되는 것이다.
이세상 모든 위인은 무덤이 있다. 하지만 예수님은 죽음의 세력에서 털고나오셔서
영원한 생명으로 들어가셨기 때문에 무덤이 없는것이다. 말씀하신 모든것을 성취
하셨으며 결코 무덤에 계시지 않고 죽음을 정복하셨다.
말씀을 믿고 순응 하면 말씀대로 된다.
주님은 누우실 필요가 없었지만 우리를 위해 누우셨다. 그러므로 우리도 내가족의 구원을 위해 암흑속에 잘 누워있어야할 때가 있어야 한다.
또한 주님은 나에게 사명을 주셔야 되기 때문에 살아나신 것이다.
우리는 날이갈수록 겸손해야한다.
조금만 환경이 달라져도 교만하게 되는데 우리는 주님의 겸손함으로 나의 갈릴리로
내려가고 낙심되서 물고기 잡고있는 남의 갈릴리로 가서 전해야 한다.
무서움 보다 더 큰 기쁨은 말씀이 있기 때문이다.
느낀점 _ 내가 연약하고 가난하고 비천한 자인것에대해서 세상에선 부끄럽고
설 자리가 없지만 주님 안에서는 가장 축복받은자 임을 알게 되었다.
내가 살지 못할것 같아서 주님이 아니면 살아갈 힘이 없어서 너무나 낮은자 이고
비천하기 때문에 주님만 바랄수 있음에 정말 감사하다.
또한 주님이 살아나시는 것을 무서워 하지 않는것 ... 결국엔 이일이 나를 희게하고
거룩하고 구원이 이루어지는 사건인데 내가 어리석게 무섭다고 떨며 두려워 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감사하며 기뻐해야할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내게는 날마다 두려움과 무서운일이 찾아오지만 이 사건의 끝에는 주님의 거룩하신
뜻이 있다는것을 알지못하고 피하려고만하고 떨고만 있었다.
하지만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친히 부활을 보여주셨듯이 말씀을 매일 붙잡아서
무서움보다 더 큰 기쁨을 누릴수 있도록 노력하고 기도해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