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살아나심
1. 막달라 마리아
주님만을 바라볼 수밖에 없는 그 마음에 하나님께서 큰 은혜를 베푸셨다.
우리의 아픈 사람들이 매 마지막에 우리들 교회를 지켜야 한다.
막달라 마리아가 하나님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알아야 한다.
이런 사람에게 주님이 부활을 주신다.
우리에게 고난이 오는 것은 축복이다.
우리가 무언가가 잘 되어도 교만할 수 없고 안 되어도 낙심할 수 없다.
우리 모두 막달라 마리아가 되어 주님만 바라보는 환경이 되길 맏는다.
2. 주님이 살아나셨는데 무서워하는 자가 있다.
천사가 부활하신 영광에 예수님의 신성을 나타내는 역할을 하는 것을 보여준다.
3. 주님이 살아나신 것은 무서워할 일이 아니다.
1)예수님이 오시는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연약해도 주님을 사랑하는 것을 주님이 아시면 된다.
우리는 모두 죄인이다.
2)말씀하신대로 살아 나셨기 때문이다.
말씀하신 모든 것을 성취하는 하나님이시다.
죽음의 권세를 깨뜨리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말씀의 권세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아야 한다. 죽음을 정복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암흑 속에 누워야 할 때가 있어야 간증할때가 온다.
3)나에게 사명을 주시기 때문이다.
겸손함이 있어야한다.
무서움이 있지만 큰 기쁨이 있는 것은 말씀이 있기 때문이다.
평범한 인사가 얼마나 큰 평강인지 재난을 받지 못한 사람은 모른다.
평강이 없으면 사명을 감당할 수 없다.
마지막까지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느낀 점 및 적용
막달라 마리아의 주님만을 바라볼 수밖에 없는 그 마음을 갖고 싶다.
솔직히 나에겐 남들처럼 큰 고난은 아직 없다. 하지만 나 나름대로의 고난은 공부에 집중이 않된다는 점과 내가 정말 가장 크게 느끼는 고난은 항상 남과 내자신을 비교하여 너무 낮은 자라고 느끼는 것이다.
우리동네에 학교를 같이 다니는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와 난 중3때부터 알고 친하게 지냈다. 그런데 요즘 들어 그 친구가 나에게 불편함을 갖고 있는 듯 하다. 문자를 하다보면 나에게 무언가 불편한것이 있다고 느끼지만 막상 만나면 아닌 것 같기도 하다. 그런일이 있으면 난 잘못한점이 없는것 같은데도 괜히 죄책감이 들고 말 잘못한 점이 있는 것 같기도 해서 계속 계속 생각한다. 그리고 그 생각히 머리에서 오랫동안 떠나질 않는다. 신경이 많이쓰인다. 그러면 그럴수록 내가 너무 나쁜애 같고 너무 부족하다고 느끼고 이러면서 내자신을 깎아 내린다. 이럴때면 정말 내 성격이 맘에 않든다.
난 내가 나자신을 사랑하는지도 잘 모를때가 있다.
그래서 내가 정말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인가 가끔 의심하게 된다.
그냥 내가 힘드니까 매달리는 것은 아닌가 라는 생각도 가끔씩 들 때가 있다.
난 목사님의 남편이 돌아가셨을때 무서움이 있지만 말씀이 있기에 큰 기쁨이 있다고 하셨는데~ 내가 만약 그상황에 온다면 지금 솔직한 마음으로는 그렇게 못할것 같다. 구원받고 가신거면 영원히 사는 거라고 믿어야 하는데~ 정말 많이 울부짖을것 같다.
아직 이렇게 부족한 날 보면서 하나님을 의심없이 사랑하는 것을 우선으로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