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눅 17:11-19
요약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실 때에 한촌에서 쉬고 계셨는데, 10명의 문둥병자들이 와서 주여 우리를 긍휼히 여기소서 하자, 주님께선 그들을 치유해주셨다.
그중 1명만이 예수님께 돌아와 감사를 드렸다.
느낀 점 적용
① 병 앞에서의 무력함.
문둥병은 지금도 치명적인 전염병이다.
온 몸이 썩어들어가도 고통을 못느낀다.
이 사람이 예전에 누구였든, 문둥병에 걸리면 세상으로부터 격리된다.
평생을 외롭게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가끔 가다가 난 내가 신의 자리에 앉곤한다.
신의 자리에 앉아, 뉴스나 신문에 나오는 범죄자들을 정죄하고 비판하고,
가족들을, 친구들을, 정죄한다.
예전보다야 덜해졌지만, 지금도 가끔가다가 마음 깊은 곳, 무의식중에 튀어나오곤 한다.
목사님께서 남을 정죄하고 비판하는 건, 자기 자신에 대한 열등감이 있어서라고 하셨는데, 난 개인적으로 성경을 읽으면서 이건 나다 라고 100%인정이 되는 인물이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다.
어쩜 하나부터 열까지 나하고 어찌 이리도 똑같은지...
볼때마다 아프다.
내가 얼마나 무력한 존재인지 인식하지 못하고, 하나님 없이도 잘 살 수 있다며 예전에는 그렇게 큰소리 땅땅쳤던 것 같다.
공부열심히 하고, 돈 열심히 벌고, 책 많이 읽으면 되지, 하나님 믿으면 오히려 손해본다는 느낌이 들었다.
괜히 종교 때문에 싸우기도 하고 말이다.
문둥병에 걸려 죽어가고 있으면서도 필요없다고 도움의 손길을 뿌리치던 그런 모습이 있었다.
앞으론 온전히 하나님만 의지할 수 있도록, 학교다니게 됐다고 큐티빼먹지 말아야겠다.
②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느 있느냐?
문둥병이 나았는데, 여기서도 갈린다.
사마리아인이었던 문둥병자는 치유받고 돌아와서 구원까지 받았는데,
유대인이었던 (아마 유대인이라고 추측) 문둥병자들은 치유만 받고선 떠나가 버렸다.
여기서 이방선교가 시작될 것이라는 암시도 보인다.
사마리아인은 내가 봐왔던 바에 의하면 유대인들에게 아주 멸시의 대상이었던 것 같다.
되도록 사마리아인과 부딪히지 않으려고 했다고 한다.
사마리아인은 약자다. 유대인이 강자다.
약한 사람은 하나님 밖에 붙들 것이 없어서 인지도 모른다.
나는 보통 강자의 입장에 서게 된다.
집에서도 부모님도 내 눈치를 많이 보셨다고 한다.
교회에서도 일단은 목자고... 형제도 여동생 하나니까...
난 피해의식이 있어서 내가 강자라고 생각을 하지 않고 함부로 하는 경향이 있다.
왜 내가 용서해야 되는데? 왜 내가 먼저 해야 되는데? 라며 불만을 가졌던 적이 한두번이 아니였다.
최근에 책임감을 조금씩 느끼게 된건, 동생이 보이는 여러가지 행동들 때문이었다.
어째 내가 했던 걸 똑같이 따라하는지....
이제 보니 정말 미워보였다. 내가 이렇게 보였겠구나.. 라고 생각하니, 마음도 아프고
무엇보다도 부모님과 동생에게 많이 미안했다.
내 이기심의 가장 큰 피해자들이니까.
이제부터 동생의 나쁜 버릇들을 고쳐가기 위해서 내가 모범을 보일 생각이다.
일단, 명령조로 얘기하는 것부터 고쳐야 될 것 같다.